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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가 사랑한 천재들 - 조성관

고영남 2019. 2. 8. 16:06


푸쉬킨, 러시아 문학의 태양

도스토예프스키, 선과 악의 투쟁

차이코프스키, 발레음악의 천재

쇼스타코비치, 러시아의 모차르트

일리야 레핀, 천 개의 얼굴


p11. 러시아는 장장 244년간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서유럽의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는 칭기스칸 군대의 유럽 침략을 막아준 방파제였다. 러시아가 1236년부터 1480년까지 몽골의 말발굽 아래 신음하는 동안 서유럽은 발전을 거듭했다. 몽골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뒤로도 러시아는 오랜 세월 이웃나라의 침탈을 받았다.

p14. 페테르부르크는 20세기 세 번의 혁명을 거치며 이름이 세 번 바뀌는 시련을 겪었다. 첫 번째 혁명은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1905년 혁명이다. 도시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독일식 이름을 버리고 러시아 식인 페테로그라드가 되었다. 러시아 지명에 흔히 보이는 '그라드'는 러시아 어로 마을이나 도시를 뜻한다. 1917년 2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로마노프 왕조가 막을 내린다. 이어 10월 혁명이 발생해 레닌이 니끄는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선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단계를 거쳐야만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난다고 예언했지만 인류 최초의 공산 혁명은 봉건제에서 성공했다.  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소비에트 정부는 1918년 11월, 수도를 페트로가라드에서 모스크바로 옮긴다. 도시는 정치 권력을 모스크바에 넘겨주고 문화예술의 중심지로만 남게 되었다. 1924년 레인이 죽자 소비에트 정부는 도시에 레인의 이름을 붙여 레닌그라드가 된다. 레닌그라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히틀러의 공격 표적이 된다. 이는 지정학적인 중요성도 있었지만 이 도시에 소장된 문화 유적을 탈취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도시는 74년간 레닌그라드로 불리다가 1991년 소련이 붕괴한 이후 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p21. 걷기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다. 인간은 걸으면서 두 손의 자유룰 얻었고, 자유로워진 손은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고, 도구를 이용하면서 인간의 뇌는 점점 커졌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중 목표 지점을 정해놓고 일정한 시간 동안 꾸준히 걸어 그곳에 도달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순간적인 달리기 속도가 인간보다 빠른 동물이 무수하게 많지만 꾸준한 걷기를 통한 이동은 오로지 인간만이 가능하다.


p22.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p95. 1859년 12월말, 도스토예프스키는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10년 만의 귀환이었다. 10년 전 이곳을 떠날 때는 양발에 족쇄가 달린 부자유의 몸이었지만 이제는 가족이 달린 자유의 몸이었다.


p152. 알려진 대로, 발레는 15세기 프랑스 부르봉 왕조 시대에 탄생해 발전해 왔다. 발레에서 두 사람이 추는 춤을 가리키는 '파드되'와 '티베르티스망' 등과 같은 발레 용어가 프랑스 어로 되어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프랑스에서 발레가 전성기를 구가할 때 이탈리아에서는 오페라가 유행했다. 이런 서유럽의 공연예술 흐름이 러시아에도 그대로 수용되었다. 당시 발레는 독립된 장르가 아닌 음악극의 레퍼토리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외신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뜨겁게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에 반대하며 이 지상에서 인류의 사명이란 파괴가 아닌 창조임을 생각하게 하는, 현대인들의 사상과 희망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