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무진 to the 칸 - 홍대선
p16. 이렇듯 결혼을 한다는 것은 한 여성이 노동력을 무한정 제공받는다는 걸 뜻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래서 수많은 문화권에 '신부 값'이 존재한다. 아프리카의 줄루족이나 중동의 유목민은 가축으로 신부를 데려오는 값을 치렀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물품이나 현금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신부가 지참금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남녀 차별이 심한 인도에서는 노동의 권리와 의무는 대개 남자에게만 있다. 따라서 한 집안이 신부를 받아들이면 노동력은 그대로지만 노동력이 책임지는 입은 하나 는다. 이 평생의 비용을 '선결제'하는 것이 지참금이다.
p25. 크게 세 개의 강력한 부족이 초원에서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었는데, 동쪽의 타타르족, 서쪽의 나이만족, 그리고 초원 가운데를 차지한 커레이트족이었다. 여기에 몽골 초원은 외부의 입김을 받고 있었다. 바로 동쪽 '숲 사람들'인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문제였다.
p28. 당시 중국 문명의 적출은 송나라였지만 금나라와 대륙을 남북으로 양분했다. 송나라는 세계 최대의 인구와 부를 소유했지만 금나라의 군사력에 눌려 있었다. 또한 북중국과 만주, 발해 일대를 차지한 것은 금나라였다. 따라서 북방 관리도 금나라가 했다. 한편 고려와 송나라는 금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연합하고 있었다.
p32.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테무진은 역사살 생물학적으로 가장 성공한 수컷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 테무진의 후손이 6000만 명이라고 한다.
p51. 사고방식이 지역이 아닌 혈통 중심인 유목민은 핏줄 관계에 무척 민감하다. 일본은 사촌과의 결혼이 가능하며 우리도 고려 시대까지 근친혼이 용인되었지만 이런 일은 초원에서는 금기다. 부부 사이만 놓고 봤을 때는 족외혼, 즉 다른 부족과 결혼해야 한다.
p76. 테무진은 특별히 눈에 띄는 재능도, 다른 사내아이들을 압도하는 마초적 성향도 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끈기였다. 그리고 낙천성,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도 어떻게든 되지 않겠느냐고 믿는 성격이 있었다.
p98. 테무진은 타고난 카리스마를 내뿜는 인간은 아니었다. 테무진은 느린 사람이었다. 벽돌을 쌓는 노동자처럼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인지를 몸소 증명해서 신뢰를 얻는, 그런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 이 답답할 정도로 성실한 리더십이 결국 인류사를 바꾸게 된다.
p139. 테무진과 자무카의 관계를 보면 문득 철학적 질문이 떠 오른다. 역사의 흐름은 이름바 절대정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걸까, 아니면 개인들의 선택이 만들어내는 우연의 결과일까? 다시 말하면 한 문화권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되었기에 비범한 개인이 나나나는 걸가, 아니면 마침 그 사람이 있었기에 패러다임이 바뀌는 걸까?
p217. 자무카는 혁명가였다. 그는 혈통 집단과 쿠리엔들로 얼기설기 엮여 있던 초원의 질서를 자신을 중심으로 재편하려고 했다. 그러나 테무진이 더 급진적이었다. 그는 대중과 직접 소통하려 했다. 자무카는 구조의 중심을 바꾸려고 했다면, 테무진은 구조 자체를 바꾸려고 했다.
p466. 헐룬은 맏아들 테무진을 딱히 칭찬할 게 없어 "테무진은 가슴에 재능이 있다"고 평했다. 그녀의 말대로 테무진은 태도의 천재였다. 공정하고 겸허한 태도에 숱한 실패와 절망을 삼키고 소화해내는 끈기가 더해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