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 - 서은국
그렇다면 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도 답 할 수 있는것인가? 인간은 살려고 사는 것이고 자기의 유전자를 번식하기 위해 산다는 것인가? 우리가 태어난 이유가 '생존과 번식'일 뿐이라는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받은 영향이라면 , 그 동안에 행복해야 한다는 인생의 절대적인 목표와 기준에의한 삶이었다면 그것에 대한 부담이 상당부분 줄어듬을 느끼게 되었다. 이책에서는 개와 새우깡과 서핑을 예로들고 벌과 벌꿀 그리고 동전탐지기, 개미와 인간 등의 예를 들었다.
나의 끊이지않는 궁금증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행복의 요인 중 성공,돈,승진 등이 행복에서 10%에서 15%를 차지하는 그야말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고 50%가 유전자에 의해 이미 결정된 외향적 성격으로 행복이 결정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35에서 40%의 행복의 조건?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찌보면 인간이 그리도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것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그리고 유전자에 의한것으로 이미 결정되어진 것을 빼고는 진짜 중요한 무언가가 있지 않겠는가하는 것이다. 어찌됐든 인간이 살아가면서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행복해야만 한다.'는 절대적인 사명감 같은것이 사라지고 그저 생존과 번식을 위한 행동들이 인생이다!라고 하니 마음의 짐이 덜어진 듯 하다. 궂이 행복하기 위해서 남과 비교되는 삶을 살 필요없이 그저 이웃과의 적극적 사회적인 교류로 대화하며 좋은 감정으로 식사하는 그런것이 '그저 삶이다~' 그러다보면 '행복하고' 그러다보면 '살아가는' 것이다.
p8. 행복의 가장 큰 변인이 '유전'이라는 점을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p9. 첫째, 여타 많은 책의 주된 관심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가'다. 영어로 말하자면 'how'를 묻고 있다. 반면 이 책의 핵심 질문은 'why'다. 왜 인간은 행복이라는 경험을 할까? 또, 이 경험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역할은 무엇일까?... 이 본질적 모습을 이해하면 행복이라는 것이 어쩌면 매우 단순한 현상임을 알게 된다. 너무나 똑똑한 현대인들의 실수는 그 단순성을 외면하며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벌고 출세하는 데 삶을 바친다.
p10. 셋째, 이 책은 행복에 대한 통상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철학자들의 주장에 우리는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모든 일상의 노력은 삶의 최종 이유인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한다. 매우 비과학적인, 인간 중심적 사고다.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벌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 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꿀과 행복,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둘 다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p11. 뚜렷한 결론은 인간의 행복과 불행, 이 둘의 공통된 원천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p16. 행복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경험인데, 마치 머리에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생각 혹은 가치라는 착각이 들게한다. 불행한 사람은 긍정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생각을 고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런식의 행복 지침서를 읽고 행복해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행복은 사람 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이고, 생각은 그의 특성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뜻대로 쉽게 바뀌지도 않지만, 변한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전체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p17. 사실 인간의 모든 경험은 뇌에서 만들어내는 마법과 같은 놀라운 '쇼'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빨간 사과, 빨간색은 사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과 표면에 반사된 빛의 파장이 우리의 시각세포를 흥분시키고, 이 신경반응을 뇌에서 합성해 '빨갛다'는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만약 빨간색이 사과 자체에 묻어 있다면 사과는 항상 빨갛게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색맹인 내 친구에게 사과는 빨갛게 보인 적이 없다. 즉, 사과의 빨간색은 사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본 사람의 머릿속에서 생겨나는 경험이다. 그렇다면 빨강이라는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무엇을 분석해야 할까. 세상의 모든 사과? 아니다. 외부의 자극을 합성해 빨강이라는 느낌을 만들어내는 그 경험의 주인, 즉 경험자 그리고 그의 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p19. 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분명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성이다. 숙고할 수 있기에 어제의 경험을 통해 뭔가를 배우고, 내일을 준비하고, 이런 책도 사서 읽어본다. 그러나 무엇을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어떤 생명체의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일까?
p20. 의식적인 생각은 생명 유지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호흡, 소화, 혈액순환,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거의 모든 생리적 기능들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생명을 꾸려나가는 수많은 기능은 자동으로, 잘 짜인 프로그램처럼 우리 의식 밖에서 돌아가고 있다. 마치 나의 손발이 스스로 알아서 운전을 하는 것처럼. 요약하자면 의식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생존에 절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일상의 경험들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도 아니다. 최근 많은 학자가 의식적 사고의 중요성이 과대평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 '생각하는 모습'을 인간의 대표적 특성으로 꼽는다. 왜 우리는 이성의 능력을 이토록 숭배하는 것인가?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 중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부분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보이는' 부분이 실제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p21. 사실 인생의 수많은 선택과 행동은 의식의 손길이 닿지않는 곳에서 조용히 이루어진다.
p23.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팀 윌슨Tim Wilson은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도 '이방인' 같은 낯선 존재라고 했다.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말 모르는 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멍청해서가 아니고, 우리의 많은 선택과 결정은 의식을 거치지 않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의식은 아주 한정된 용량의 값비싼 자원이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만 선별적으로 기억하고 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의 머리에 떠다니는 생각은 쉽게 보이는 부분이지만, 그것이 우리 행동의 주원인이 아닌 경우가 많다.
p25. 동물은 항상 본능대로 움직인다. 인간의 경우는? 생사를 좌우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더 이성적이 될까, 아니면 더 본능적인 모습니 튀어나올까? 이성적 통제가 항상 도움이 되었다면, 극도의 위험에 놓인 인간은 더욱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p27. 이성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행복을 이해하는 데 왜 문제가 되는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방해가 된다. 보다 중요한 원인을 못 보게 만들기 때문에.
p28. 자, 그럼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인간의 이성적 사고 대 동물적 본능, 무엇이 진짜 모습일까? 인간은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이성의 역할을 상당히 과대평가하고 있다. 역으로 본능의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를 얼마나 움직이는지는 과소평가하며 산다.
P36. 물론 21세기의 세상과는 더 이상 맞지 않는 습성도 있다. 앞에서 말했듯 식량 문제가 해결됐지만, 아직도 우리 몸은 지방이나 달콤한 음식에 정신을 못 차린다. 과거 우리에게 긴요했던 생존 장치가 이제 약보다 병이 된 것은 우리 뇌가 문명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제리 코인Jerry Coyne 교수에 의하면 호모사피엔스가 문명인의 모습으로 산 것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정말 잠깐이다. 인간이 농경생활을 하며 본격적으로 문명을 가진 것은 길게 잡아야 6천년 전부터다. 세대로 따지면 약 250세대. 인간과 침팬지가 진화의 여정에서 갈라진 것은 대략 600만 년 전이라고 한다. 약 30만 세대 전. 시간을 1년으로 압축한다면, 인간이 문명생활을 한 시간은 365일중 고작 2시간 정도다. 364일 22시간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과 사냥, 그리고 짝짓기에만 전념하며 살아왔다. 동물이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는 1년중 고작 2시간에 불과한 이 모습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는 더 이상 동물이 아닌 줄 안다. 인간은 여전히 100% 동물이다. 바로 이것이 최근 심리학계를 뒤흔드는 연구들의 공통점이다.
P42. '인간도 동물인데, 이 동물은 왜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진화론은 현재 심리학에 막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이 새로운 물결에 이상할 정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연구자들이 한 부류 있다. 행복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서양학자들은 진화론과 대조적 시각을 가졌던 한 철학자의 영향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다. 행복은 누군가에 의해 경험되어야만 성립되는 현상이고, 그 누군가는 인간이다.
p45. 오늘 아침에도 해가 떴다. 태양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고 꽃을 피우기 위해 뜬 것이 아니다. 물리적 법칙에 따라 지구는 자전을 하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태양과 마주 보는 각도로 되돌아 오면 아침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관점에서는 우주의 모든 것이 이유와 목적이 있어 보인다.
p46. 자연의 그 어떤 것도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품고 있다는 생각, 이 목적론적 사고의 원조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생관 또한 다분히 목적론적이다. 그에게 삶은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추구하며 그것을 향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때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를 행복이라고 보았다.
p47.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인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가령 산타클로스의 정체는 아빠라는 사실. 또 하나는 목적론적 사고를 극복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저명한 물리학자 캐롤Carrol의 표현대로 우리는 아무런 '이유없는 우주pointless universe'에서 살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p48.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며, 모든 생각과 행위의 이유는 결국 생존을 위함이다.
P51. 찰스 다윈이 가진 생각의 뿌리는 토마스 맬서스Thomas Malthus의 인구론이다. 그것을 통해 다윈은 모든 생명체가 번식하며 살아가기에 지구 자원이 턱없이 모자라다는 점을 깨닫는다. 자연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누군가가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꾸준히 죽기 때문이다.
P55. 너무 중요해서 다시 한 번 쓴다. 동물의 모든 특성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다. 특히 '모든'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자.
p57. 바로 이 공작새 꼬리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p68. 한 마디로 행복의 본질은 개에게 서핑을 하도록 만드는 새우깡과 비슷하다. 차이점은 인간의 궁극적 목표가 서핑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점이다.
p71. 이 새로운 관점으로 보면 행복은 삶의 최종적인 이유도 목적도 아니고, 다만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황당한 상상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행복을 쫒는 우리 모습이 어쩌면 이 같은 주객전도의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p72.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탐지기 주인이 자기의 원래 목적(동전)보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한 신호(쾌감)에 더 관심을 갖게되는 경우 말이다.
p76. 행복의 핵심은 부정적 정서에 비해 긍정적 정서 경험을 일상에서 더 자주 느끼는 것이다. 이 쾌락의 빈도가 행복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많은 현대인의 삶이 행복과녁을 제대로 못 맞추는 이유가 쾌락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p78. 뇌의 유일한 관심사는 생존이라는 점이 결정덕 힌트다.
P85. 인간의 본성을 압축한다면 나는 "The ultimate SOCIAL machine"라고 표현하고 싶다. 사회성은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는 가장 독보적인 특성이다. 최근 여러 분야의 석학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결론이다. 미국 다트머트 대학의 마이클 가자니가Michael Gazzaniga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뇌과학자로 꼽힌다. 최근 그는 자신의 책에서 큰 질문을 하나 던졌다. 인간의 뇌는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 설계되었을까? 일평생의 연구를 토대로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다. 그는 인간이 '뼛속까지 사회적이다. social the core'라는 표현을 썼다.
p91. 고통의 역할은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다. 뇌의 입장에서는 그 위협이 신체적인지 사회적인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뇌는 비슷한 방식으로 두 종류의 '고통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이다. 혼자가 되는 것이 생존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연구다. 우리 조상이 물려준 생존 패키지의 두 번째 내용물은, 우리의 관심사인 '쾌감'이다. 긍정적 정서의 기능은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매일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을까? 한마디로 먹는 즐거움 때문이다.
p94. 약5만년전 호모사피엔스 중 아주 작은 무리가 아프리카를 나와 세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일부는 유럽 쪽으로, 일부는 시베리아나 호주 쪽으로. 고고학자들은 아프리카를 나온 이 초기 집단의 크기는 불과 150명 정도였을 것이라 추정한다.
p96. 사람이라는 동물은 극도로 사회적이며, 이 사회성 덕분에 놀라운 생존력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뇌는 온통 사람 생각뿐이다. 희로애락의 원천은 대부분 사람이다. 행복감을 발생시키는 우리 뇌는 이처럼 사람에 '중독'되어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사회적 경험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사회적 경험이 행복에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행복감(쾌감)은 사회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고 까지 생각한다.
p98. 지난 30년간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행복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중 가장 중요하고도 확고한 결론은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두 가지다.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우선 새로운 안경을 쓰고 행복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익숙한 철학의 안경을 벗고, 진화론적인 렌즈로 행복(쾌감)의 본질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의 짧은 결론은, 행복은 사회적 동물에게 필요했던 생존 장치라는 것이다.
p103. 행복을 쫓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질문이 하나 있다. 내 인생에 무엇이 있어야 행복할까? 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부분 돈, 명예, 건강 등 몇 개의 범주 안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창고에 이 행복곡물들을 많이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산다.
p104. 미국 심리학회 회장을 지낸 스콧 릴리언펠드 Scott Lilienfeld교수가 '심리학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오해들'이라는 제목의책을 얼마 전에 출간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큰 착각 중 하나도 행복이 외적인 조건에 의해 좌우된다는 믿음이다. 학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이것을 '착각'이라고 말하는가? 간단하다. 지난 30년간의 행복 연구로 누적된 엄청남 양의 자료에서 나온 총체적 결론이다. 인생의 여러 조건들, 이를테면 돈, 건강, 종교, 학력, 지능, 성별, 나이 등을 다 고려해도 행복의 개인차 중 약 10~15% 정도밖에 예측하지 못한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의 10%와 관련된 이 조건들을 얻기 위해 인생 90%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돈을 벌기 위해. 외적조건에 과도한 기대와 투자를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돈은 비타민과 비슷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비타민 결핍은 몸에 여러 문제를 만들지만, 적정량 이상의 섭취는 더 이상의 유익이 없다. 한국은 이제 돈이나 비타민 결핍에 시달리는 사회가 아니다. "그래도 더 필요해!"라고 고집 피우는 것은 기회비용 차원에서 본다면 자기 삶에 큰 손실을 입히는 것이다. 이 믿은은 행복을 위해 정작 투자해야 할 곳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p106.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행복수치는 특히 높다. 흔히 그들의 높은 소득과 사회복지 시스템에서 오는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오해다. 일본이 핀란드보다 국민소득은 높지만 행복수치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다. 스칸디나비아 행복의 원동력은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이다. 그들 사회는 돈이나 지위 같은 삶의 외형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상의 즐거움과 의미에 더 관심을 두고 사는 곳이다. 핀란드는 인테리어 소품 등을 디자인했던 알바 알토Alvar Alto의 얼굴을 화폐에 새긴 나라다. 일상의 작은 경험의 가치를 아는 나라의 상징적인 모습니다. 행복한 사회의 특정 중 하나다. 빈곤을 벗어난 사회에서 돈은 더 이상 행복의 키워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p109. 우선 감정이라는 것은 어떤 자극에도 지속적인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계속 반응을 해서도 안 된다. 이 '적응'이라는 강력한 현상 때문에 아무리 감격스러운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의 일부가 되어 희미해진다.
p114.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p115. 우선 우리의 머리는 '불행하지 않은 것'과 '행복한 것'의 질적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생수 한 병은 갈증의 고통을 없애주지만, 갈증이 가신 사람에게 물은 더 이상 행복을 주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돈이나 건강 같은 인생의 조건들은 사막에서의 물과 비슷하다. 일상의 불편과 고통을 줄이는 데는 효력이 있지만, 결핍에서 벗어난 인생을 더 유의미하게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p116. 불행의 감소와 행복의 증가는 서로 다른 별개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우리 생각이 가진 또 하나의 허점이 있다. 인생의 어떤 변화가 생기는 순간과 그 변화가 자리 잡은 뒤의 구체적인 경험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둘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는다.
p117. 프랑스 사상가 라 루시코프La Rouchefecould가 400년 전에 지적한 대로 우리는 "상상한 맘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승리의 환희도 패배의 아픔도 놀라울 정도로 빨리 무뎌지지만, 우리의 머리는 이 강력한 적응의 힘을 감안하지 않고 미래를 그린다. 그래서 항상 오버를 한다. 이것을 가지면 영원히 행복하고, 저것을 놓치면 너무도 불행해질 것이라고.
p119. 많은 사람이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이렇게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담겨 있는 곳은 'being'이다.
p121. 새우깡이 개를 서핑하게 만들듯이 우리도 어떤 보상이 있어야 사냥과 짝짓기 같은 행위를 한다. 쾌감이 바로 우리 뇌가 고안한 보상이다. 개가 새우깡 맛에 빠져 어느새 서핑까지 하듯 우리도 쾌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존에 필요한 자원들을 손에 쥐는 것이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점은, 이런 생존의 행위는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 아무리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어도, 살기 위해서는 내일 또 사냥을 해야 한다. 사냥에 대한 의욕이 다시 생기기 위한 필요조건이 있다. 오늘 고기를 씹으며 느낀 쾌감이 곧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쾌감 수준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이런 '초기화'과정이 있어야만 그 쾌감을 유발시킨 그 무엇을 다시 찾는다.
p122. 적응이란 간단히 말하면, 어떤 일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이다. 행복이라는 좁은 관점에서 보면 야속한 일이다.
p123. 하지만 앞서 말했듯 정서의 본질적 관심사는 행복이 아닌 생존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자원을 계속해서 더 많이 비축하고 확장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래서 승진의 즐거움은 며칠 뒤 없어져야만 한다...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 이유다. 그리고 수십 년의 연구에서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훨씬 행복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아무리 대단한 조건을 갖게 되어도, 여기에 딸려왔던 행복감은 생존을 위해 곧 초기화돼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지도 교수가 쓴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나는 이것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담은 문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p133.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키가 커지려는 노력만큼 덧없다.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그래도 행복에 있어서 유전적 개입을 부인하는 학자는 없다.
학계의 정설 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덜 알려진 사실이 바로 행복과 유전의 관계다. DNA가 행복을 완전히 결정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학자에 따라 다소 의견이 다른 통계적 수치지만, 학계의 통상적인 견해는 행복 개인차의 약50%가 유전과 관련있다고 본다.
p137. 최근 등장하는 행복 지침들은 이런 식으로 행복의 증상을 원인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긍정성 또한 행복한 사람들이 이미 갖고 있는 증상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어느 정도 '이미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상당 부분 타고난 기질이다.
p144. 외향적인 사람이든 내향적인 사람이든 오르고 싶어 하는 산은 똑같다. 사람들이 즐겁게 모여 있는 정상. 이 둘의 차이는 얼마나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오르느냐다. 외향적인 사람의 가방은 가볍지만, 내향적인 사람의 가방은 어색함, 스트레스, 두려움 등으로 무겁다. 그래서 중턱쯤에서 되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결국 산 정상에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있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이 산 보다 바다를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p151. 뇌는 우리의 행복에 일말의 관심도 없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도록 하기 위해 뇌는 설계되었다. 그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뇌는 사람이라는 생존 필수품과 대화하고 손잡고 사랑할 때 쾌감이라는 전구를 켜도록 설계된 것이다.
p168. 이렇듯 과도한 타인 의식은 집단주의 문화의 행복감을 낮춘다. 행복의 중요 요건 중 하나는 내 삶의 주인이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p174. 하지만 약3천년 전 인류가 돈이라는 것을 만들어내면서 부터 인간의 나약함을 보완해줄 수 있는 수단이 하나 더 생겨났다. 즉, 예전에는 생존 보호 장치가 사람뿐이었지만, 문명생활을 하면서부터 돈이 그 역할을 분담하게 된 것이다.
p175. 물론 지금 세상에서는 돈이 있으면 홀로 생존하는 것이 가능하다. 생존만이 목표라면, 사람없이 돈만 가지고도 살 수 있는 일종의 '신세계'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는 아직 이 신세계에 적응이 덜 되었고, 그 안의 행복전구는 돈 자체에 관심이 없다. 그 전구가 켜지도록하는 스위치는 여전히 사람인데, 돈을 추구하다 보면 어느새 이 결정적인 스위치가 없는 방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p179.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면 좋겠다. 각자 자기 인생의 '갑'이 되어 살아보는 것에 좀 더 익숙해지는 것이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에 더 가치를 두는 것이다.
p180. 사람은 행복의 절대 조건이지만,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남을 '위해'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각자가 가진 독특한 꿈, 가치와 이상을 있는 그대로 서로 존중하며 이해하는 것. 이것이 사람과 '함께' 사는 모습이다.
p184. 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휘자가 되려 하고, 가장 빠른 직구를 던지려고 할까? 즉, 왜 자아성취를 하려고 할까? 그동안 심리학자들은 온갖 철학적 도덕적 이유를 더한 장황한 설명을 했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적 해석은 모든 것을 간명하게 만들었다. 금강산 구경을 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욕구(식욕,성욕)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금강산 유람(자아성취)을 한다는 것이 최근 진화심리학적 설명이다. 혁명적이다.
p185. 지금까지 많은 서양 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가치 있는 삶이 곧 행복이라는 해석을 해왔다. 그 결과, 행복을 필요 이상으로 거창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이 거창한 이유가 있다. 그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귀족 가문에서 최고만을 누리며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스승은 플라톤, 제자는 알렉산더 대왕, 인류 역사에 이렇게 화려한 이력서를 가진 사람이 또 있을까. 그래서 그의 행복관도 매우 엘리트주의적이다.
p189. 이런 연구들에서 어떤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정의 했을까? 남의 칭송과 칭찬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기쁨 등)를 남보다 자주 경험하는 사람이다. 하루를 보면 이들의 삶이 조금 어설퍼 보일지 몰라도, 10년 뒤는 이야기가 다르다.
결론을 맺을 때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행복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였다. 우선, 행복은 거창한 관렴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들이다. 이런 경험은 본질적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철학이 아닌 생물학적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p190.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 되는 생각을 자주 하라는 처방을 내리는 의사는 없다. 그러나 행복에 대한 지침들은 대부분 그렇다. "불행하다면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이다. 불행한 사람에게 생각을 바꾸라는 것은 손에 못이 박힌 사람에게 "아프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을 통해 바뀌는 것은 또 다른 종류의 생각이다. 행복의 핵심인 고통과 쾌락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