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팬클럽 - 박민규 장편소설
p133. 생각해보니, 내 인생은 과연 별 볼 일 없는 것이었다. 평범하고 평범한 가문의 외동아들이었고, 거의 이대로 평범하고 평범한 가문의 아버지가 될 확률이 높은 인생이었다. 타율로 치면 2할 2푼 7리 정도이고, 뚜렷한 안타를 친 적도, 그렇다고 모두의 기억에 남을 만한 홈런을 친 적도 없다. 발이 빠른 것도 아니다. 도루를 하거나 심판을 폭행해 퇴장을 당할 만큼의 배짱도 없다. 이대로 간다면... 맙소사, 이건 흡사 삼미 슈퍼스타즈가 아닌가.
p134. 평범한 야구팀 삼미의 가장 큰 실수는 프로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었다. 고교야구나 아마야구에 있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팀이 프로야구라는 - 실로 냉엄하고, 강자만이 살아남고,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하고, 그래서 아름답다고 하며, 물론 정식 명칭은 '프로페셔널'인 세계에 무턱대고 발을 들여 놓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인간이 평범한 인생을 산다면, 그것이 비록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인생이라 해도 프로의 세계에서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삶이 될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p136. 1980년대의 세상은 3위 MBC청룡과 4위 해태 타이거즈를 하나로 꽉 묶어주는 새로운 용어 하나로 만들어낸다. 바로 중산층이다. 이 파워풀한 단어는, 그 후 세상을 바꿔나가는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 이 하나의 단어로 인해, 이제 확실히 도표의 3,4위가 새로운 평범의 기준이 된 것이다. 무진장 노력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하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p183. 1988년 12월은 어딜 가더라도 조지 윈스턴의 <12월>을 들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특히 앨범의 머릿곡이었던 <Thanks giving>은 그해에 내린 눈의 수만큼이나 들려오고, 들려오고, 또 들려왓다고도 할 수 있다.
p213. 인생은 결국, 결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이 - 거듭 버틸 수 있는데까지 버티다가 몇 가지의 간단한 항목으로 요약되고 정리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도 버티고 있는, 그래서 아무 일 없이 흘러가고 있는 우리의 삶은 - 실은 그래서 기적이다.
p252. "처음 널 봤을 때... 내 느낌이 어땠는지 말해줄까?" "어땠는데?" "9회 말 투 아웃에서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 상황을 맞이한 타자 같았어." "뭐가?" "너 4년 내내 그렇게 살았지? 내 느낌이 맞다면 아마도 그랬을 거야. 그리고 조금 전 들어온 공, 그 공이 스트라이크였다고 생각했겠지? 삼진이다. 끝장이다, 라고!? "..." "바보야, 그건 볼이었더!" "볼?" "투 스트라이크 포볼! 그러니 진루해!" "진루라니?" "이젠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 쉬고, 자고, 뒹굴고, 놀란 말이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봐.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말이야. 제발 더 이상은 속지 마. 거기 놀아나지 말란 말이야. 내가 보기에 분명 그 공은 - 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