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 - 김희경 지음
p8. 2016년 출생아 수는 인구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동안 302명의 갓난아기가 길바닥과 베이비박스에 버려졌다. 같은 기간 해외로 입양된 아이는 334명. 거의 하루 한 명꼴로 아이를 버리고 해외로 보낸 셈이다. 영유아에 국한하지않고 18세 미만의 아이들로 시야를 넓혀보면 부모에게 버림받아 시설,위탁가정 등으로 간 아이들은 4,503명, 하루 평균 12명 이상이었다. 같은 기간 학대를 당해 숨진 아이은 한 달 평균 세 명꼴이었고, 아동학대 판정을 받은 경우는 하루 평균 51건이었다. 아동학대의 80% 이상은 집에서 일어났다. 한국 남성이 집에서 자녀와 함께 보낸 시간은 하루 평균 6분에 불과했다. 육아휴직을 한 여성 중 43%는 복직 1년 안에 사표를 냈다.
p166. 압축적 근대화의 해결사, 가족
1934~1960년 사회보험제도를 살펴보면 그 기간 중 개발도상국과 선진국들 모두 포함하여 사회보장제도 실시 경험이 전혀없는 나라는세계에서 딱 5개 나라밖에 없었는데 그중 하나가 한국이었다고 한다. 위기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개인을 받쳐줄 사회적 보호제도가 전무한 상황에서 개인이 부여잡을 지푸라기는 뭐였을까.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기댈 유일한 언덕은 '사적 안전망'인 가족이었다. 가족은 부계혈연 중심의 유교적 가족규범이 지배적이었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한국전쟁,근대화,도시화,산업화를 거치며 줄곧 사회적 위기상황에서 개인을 지켜주는 거의 유일한 울타리였다.
p167. 나도 성장과정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말은 1960~1980년대의 근대화 과정을 통과해온 거의 모든 한국인이 공유하던 신념이었다.
1970, 1980년대 내내 사회보장제도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공공의 사회적 보호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7년 민주화 대항쟁 이후의 일이다. 미뤄뒀던 국민연금이 1988년 시행됐고 같은 해 의료보험이 5인이상 사업장에까지 확대괬다. 이듬해에는 의료보험이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됐다.
p209. "회초리 대신 제게 돌을 던지세요"
아동문학가 린드그렌은 스웨덴에서 부모의 체벌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되기 1년 전인 1978년, 독일 도서협회가 주는 평화상을 타면서 '폭력에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젊은시절 한 여성에게 들었던 일화를 들려준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믿음이 팽배했던 시절 젊은 엄마였던 그 여성은 어느 날 어린 아들이 말을 듣지 않자 매로 가르치려고 아들에게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시킨다. 한국의 엄마들도 많이 쓰는 방법이다. 아이들이 직접 회초리를 가죠오게 하고 몇 대 맞을지도 결정하라고 함으로써 "네 죄를 네가 알렸다."와 같은 경고와 함께 스스로 반성할 기회도 갖도록 한다는 방식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이 소년은 회초리를 찾으러 나갔다가 한참 만에 울면서 돌아와 작은 돌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회초리로 쓸 만한 나뭇가지를 찾을 수 없었어요 대신에 이 돌을 저한테 던지세요" 아이는 '엄마가 나를 아프게 하길 원하니까 회초리 대신 돌을 써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천진한 아이의 이 말이 엄마로 하여금 아이의 눈을 통해 상황을 보도록 만든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자신이 아들에게 한 짓이 무엇인지 깨달은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한참을 같이 울었다. 그 순간 자신이 했던 결심, 앞으로 절대로 아이를 때리지 않겠다는 서약을 잊지않기 위해 그녀는 아들이 주워 온 돌을 버리는 대신 부엌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고 한다. 린드그렌의 연설은 체벌을 부모의 훈육방법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바라보도록 시각을 교정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p217. 아동인권운동에 앞장섰던 폴란드의 교육자 야뉴시 코르차크는 "세상에는 많은 끔찍한 일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끔찍한 것은 아이가 자신의 아빠, 엄마, 선생님을 두려워하는 일"이라고 했다.
p221. 스웨덴의 중요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는 개인적 삶의 독립성을 보장하되 개인 삶의 질은 집단적 책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거기에서 정부의 역할이 크다는 문화적 믿음이 강하다. 흥미롭게도 전 세계에서 가장 개인주의적 사회라 할 수 있는데도 스웨덴의 개인주의는 흔히 말하는 아노미 상태, 소외, 신뢰의 붕괴로 나아가지 않았다.
p222. 2011년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북유럽 국가들이 <노르딕 웨이 The Nordic Way>를 공동으로 발표했다. 여기에는 현대복지국가의 권력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비교가 나온다. 복지국가의 사회적 계약에서 드러나는 개인-가족-국가 간의 관계 유형을 비교해보니 미국은 개인-가족의 관계를 중시하고 독일은 국가-가족의 관계를 중시한다면, 스웨덴은 국가-개인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발표자들은 이처럼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가 중심에 있는 스웨덴 식의 사회적 계약 방식을 '국가주의적 개인주의 statist individualism'라고 불렀다. 여기서는 개인의 자율에 대한 강조가 국가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신뢰와 상반되지 않는다. 되레 국가는 시민들의 동맹으로서 개인의 자율성을 수호하는 조력자다. 오히려 개인들 사이에 위계와 불평등이 심한 전통적인 가족의 가부장제가 국가주의적 개인주의자들이 맞서야 할 상대다. 어떤 학자들은 이 같은 스웨덴의 국가주의적 개인주의를 '차가운 신뢰 cool trust'라고 불렀다. 친밀한 관계의 복종, 희생과 상호의존에 의해 형성되는 '뜨거운 신뢰 hot trust'에 대비하여 개인의 자율성과 평등에 대한 남다른 강조와 공존하는 높은 사회적 신뢰를 일컫는 말이다.
p223. "신뢰의 범위가 주로 가족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한국도 있고, 정부라고 하는, 가족보다 훨씬 먼 곳, 원으로 보면 테두리에 있는 정부 혹은 시민단체에까지 신뢰의 반경이 넓게 펼쳐진 스웨덴도 있다. 나는 이걸 쿨 트러스트, 즉 시원하고 개방된 신뢰관계라고 부른다. 가족에게 신뢰가 집중되어 있는 형태는 뜨겁고 구속적 성격인 핫 트러스트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쿨 트러스트는 얼핏 차가워 보일지 몰라도 그렇기 때문에 포용적이고 안정적이다."
p231. 혼외출산이 늘어나면 가족가치가 훼손된다고들 걱정하지만 스웨덴 커플의 3분의2는 아이가 태어난 뒤에 결혼한다. 92%의 남자들이 즉시 아버지됨을 승인하고 스웨덴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결혼제도와 무관하게 생물학적 부모와 같이 살고 있다. 설령 부모가 이혼하더라도 공동양육의 돌봄을 받는다. 스웨덴의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300분이고, OECD 국가 평균은 47분이다. 한국은? 6분이다.
p232. 스웨덴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삶은 개인주의적으로 살고, 해법은 집단주의적으로 찾을 때 저출산을 비롯하여 우리가 겪는 위기를 해소할 길이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스웨덴과 비교하면 한국은 거꾸로다. 삶은 집단주의적이고 해법은 개인주의적이다. 개인의 개별성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가족과 온갖 배타적 관계에 둘러싸여 집단주의적으로 살아가면서 육아, 교육, 주거 등은 다 각자 알아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니까 말이다.
p256. 핑거가 '네 이웃과 적을 사랑하라' 보다 더 낫다고 추천한 이상은 다음과 같다. "네 이웃과 적을 죽이지 마라. 설령 그들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의 선을 정하는 게 먼저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상해보는 공감의 감수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이를 개인의 도덕적 과제, 감성의 영역으로만 남겨두어선 안 된다. 역지사지하고 공감하는 능력보다 사적 관계에선 예의, 공적 관계에선 정책과 제도가 우리의 공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더 인간적인 장치다.
p263. 나는 이 책 전체에서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 안에서 어떻게 아이들의 개별성이 짓눌려지고 밖에서 다양성이 훼손되는지, '정상가족'이라는 폐쇄적 틀 때문에 가장 약자인 아이들이 어떤 상처를 받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우리와 다른 길을 걸어간 스웨덴의 사례를 통해 개인의 자율성과 높은 사회적 신뢰가 공존하는 현상을 들여다보았다. 스웨덴에서 이 공존을 가능하게 한 열쇠는 앞서 살표본 것처럼 공공성의 강화였다.
p264. 공공성의 창출은 앞 장에서살펴본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가능하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사적 지원을 찾지 않아도 되도록 그동안 가족이 떠맡아온 돌봄과 약자에 대한 보호를 사회가 공공 서비스로 책임져준다. 아이들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인격을 존중받고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호받는다. 가족 내에서도 아이들의 자율성을 인정하며 정서적, 수평적 유대룰 유지한다. 서로의 이견에 귀 귀울이되 일방적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폭력은 없다. 각 개인은 자신이 선택한 여러 개의 공동체, 상부상조의 네트워크에서 서로의 삶에 대한 억지와 규제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인다. 자율적 개인이 열린 공동체 안에서 너무 몸을 조이지 않는 느슨한 연대를 맺고 살라가는 것, 서로에게 틈을 열어주며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것, 이게 불가능한 꿈일까?
p265. 촛불의 벅찬 경험이, 민주주이의 학습이 각자가 속한 삶의 장에서도 중단 없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촛불로 태어난 정부가 공공성 강화를 통해 가족의 짐을 덜어주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각 개인들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보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뻗어가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가족 안팎에서 '정상가족'의 숨 막히는 틀 대신 수평적 유대관계를 통해 아이들의 자율을 존중하고, 다음 세대에선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지 않는 개인들이 자라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