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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부터 성에 눈을 뜨며 본 야한 잡지와 소설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그때는 더 노골적인 사진과 표현으로 흥분했지만 하루키의 소설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야한것인지는 몰랐다. 1년전 2018년 나는 처음으로 하루키의 소설을 접했다. <밤 11:56분 부터 아침 6시 52분 사이의 7시간 동안의 짧은 시간의 이야기 '애프터 다크'>, <몇 개의 단편들과 함께 엮은 '여자없는 남자들'>, <고등학교 시절 절친 그룹으로부터 이유도 모른채 소외되고 어른이 되서 이유를 찾아가는 이야기는 특히 다 읽어갈 수록 끝날까봐 아쉬웠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진짜 달리고 싶게 만드는 '달리기를 말할때 내고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다. 내가 읽은 대부분의 소설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은근하게 흥분되는 사랑과 섹스의 내용이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이번에는 너무 노골적이다. 그런데 하루키의 소설에서 여자와 남자의 관계에서 은근한 무언가를 알게됐다. 다름아닌 내가 읽은 하루키 소설에서는 <상실의 시대>의 '미도리'도 그렇고 여자가 살짝 표 안나게 사랑을 리드한다는 것이다.
<위워크 북클럽 생각공유>
1. 언제부턴가 나는 항상 책을 쓰고 싶었다. 특히 하루키 소설을 읽는 순간은 내용이 너무도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재미에 빠져서 정말로 내 책을 쓰고 싶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이야기를 읽고 반드시 내 책을 쓰자고 다짐을 했지만 사실은 자신은 없다. 여러분들은 글 쓰는 재주가 있나요? 글을 잘 쓸려면 어떻게해야하고 무엇을 해야하나요?
2.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놀란것은 일본의 1970년초가 우리나라 2000년대와 비슷한 생활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2천년대에 오면서 일본과의 문화적 경제적 차이가 대충 20여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1970년대에는 30여년은 차이가 났던것 같다.
3. 상실의 시대의 배경은 주인공 와타나베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연애이야기다. 여러분들의 학창시절 사랑 이야기를 들려달라.
4. 일본사람들의 성에 대한 개방적인 생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성인 비디오와 일본 중년여성들에 대한 개방적 성의식 등은 아무래도 우리나라와는 다른것 같은데...
5. 결국 내 염려대로 '나오코'가 자살로 죽었다는 것은 예상은 했지만 너무도 허탈했다. 이제까지 읽은 소설이 대부분 자살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의 메세지일까?
6.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라고 말할때 전반적인 이야기에 속하는 남녀간의 사랑이 현실속에서 펼쳐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녀간의 섹스를 밖으로 내 모는것은 어쨋든 어색하니까...
p7. 그로부터 어언 이십여 년이 지나 저는 마흔 살이 되었습니다. 제 나이 스무 살 무렵엔 잘 이해되지 않았던 일입니다. 스무 살 청년이 이십 년이 지나면 마흔 살이 된다는 것 말입니다.
p14. 나는 고개를 들어 북해의 상공에 뜬 검은 구름을 바라보면서 , 내가 지금까지의 인생 과정에서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잃어버린 시간, 죽거나 떠나버린 사람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추억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춰서고, 사람들이 좌석 벨트를 풀고 선반에서 가방과 웃옷 등을 꺼내기 시작할 때까지 나는 줄곧 그 초원 속에 있었다. 나는 풀 냄새를 맡고, 살갗에 닿는 바람을 느끼고, 새소리를 들었다. 그때는 1969년 가을이었고, 나는 곧 스무살이 되려 하고 있었다.
p15. 하지만 지금 나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 초원의 풍경이다. 풀 냄새, 약각 한기를 머금은 바람, 산의 능선, 개 짖는 소리, 그런 것들이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른다. 너무나 선명하게. 그것들은 너무나도 선명해서 손을 뻗으면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만질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 풍경 속에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다. 나오코도 없고 나도 없다. 우리는 도대체 더이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나는 생각한다. ㅇ째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토록 소중해 보였던것, 그녀와 나와 나의 세계는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래, 나로선 나오코이 얼굴을 바로 떠올릴 수조차 없는 것이다. 내가 지니고 있는 건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배경뿐인 것이다.
p17. 그러나 함부르크 공항의 루프트한자 기내에서 그것들은 여느 때보다도 오래, 여느 때보다도 강하게 내 머리를 걷어차고 있었다. 일어나, 생각하라고, 하고. 그래서 나는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무슨 일이든 글로 써보지 않고서는 사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유형의 인간인 것이다.
p13. 나는 서른일곱 살이었고, 그때 보인 747기의 좌석에 앉아 있었다. 거대한 비행기는 두꺼운 비구름을 뚫고 내려와 함부르크 공항에 막 착륙하려하고 있었다. 십일월의 싸늘한 비가 대지를 검게 물들이고, 비옷을 입은 정비공들과 밋밋한 공항 빌딩 위에 서 있는 깃발들과 BMW의 광고판 같은 이런저런 모든 것들이 (...) 비행기가 착지를 완료하자 금연 사인이 꺼지고 기내 스피커에서 작은 소리로 배경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건 어떤 오케스트라가 감미롭게 연주하는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그리고 그 멜로디는 늘 그랬듯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p23. 아주 오래전 내가 아직 젊고 그 기억이 훨씬 선명했을 때, 나는 나오코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시도한 적이 몇 번인가 있었다. 하지만 그땐 단 한줄도 쓸 수가 없었다. 맨 처음 한 줄만 나와준다면 그다음은 무엇이든 술술 써지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 한 줄이 아무리 애써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 그리고 나오코에 관한 기억이 내 안에서 희미해져가면 갈수록 나는 더욱 깊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 그녀가 나를 향해 "나를 잊지 말아줘."라고 부탁했는지. 그 이유도 지금의 나로선 알 수 있다. 물론 나오코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 안에서 그녀에 관한 기억이 언젠가는 희미해져가리라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바로 나에게 간절히 호소했던 것이다. "나는 언제까지나 잊지말아줘.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기억해줘."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참을 수 없이 슬퍼진다. 왜냐하면 나오코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41. 나오코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봄이었다. 그녀도 역시 2학년으로, 미션 계통의 기품 있는 여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너무 열심히 공부하면 오히려 '품위 없다'고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로 기품이 있는 학교였다. 내겐 기즈키라는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친하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나오코는 그의 애인이었다. 기즈키와 그녀는 거의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소꿉친구로서 집도 이백 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p44. 그는 그날 밤, 자기 집 차고 안에서 죽었다. N360의 배기 파이프에 고무 호스를 연결해 창문 틈을 밀착 테이프로 막고 나서 엔진을 걸었던 것이다.... 기즈키가 죽고 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한 십 개월 동안,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속에서 나 자신의 위치를 분명하게 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떤 여자 아이와 친해져서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했지만, 결국 반년도 지속되지 못했다.
p55. 그 당시 내 주위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으며, 나와 그가 친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나가사와라는 이름을 가진 도쿄 대학 법학부 학생을, 나보다 두 학년 위였다.
p62. 나가사와 선뱅겐 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사귀고 있는 어엿한 애인이 있었다. 하쓰미라는 그와 동갑의 여자로, 나도 몇 번인가 얼굴을 본 적이 있는데 아주 인상이 좋은 여성이었다.
p65. 하지만 그녀는 스무 살이 되었다. 그리고 가을엔 나도 스무 살이 되는 것이다. 이미 죽은 사람만이 언제까지나 열일곱 살이었다.
p83. 나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러자 겨우 생각이 났다. '연극사II' 수업에서 본 적이 있는 1학년 여학생이었다. 다만 머리 스타일이 변해버렸기 때문에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p87. "내 이름은 미도리('초록'이라는 의미)야, 그런데도 전혀 초록색이 안 어울려. 이상하지? 좀 심하다고 생각지 않아? 꼭 저주받은 인생 같잖아. 그런데 말이야, 우리 언니는 모모코('복숭아 아이'라는 의미)라고 해. 우습지않아?"
p146. "난 위가 작아서 조금밖에 못 먹어요. 그래서 식사를 조금 하는 만큼 담배를 피워서 채우고 있죠" 그녀는 그럿게 말하고는 또 세븐 스타를 빼어 물고 불을 붙였다. "참, 나를 레이코라고 부르세요.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선생님은 나오코의 담당 의사 선생님이십니까?"하고 나는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p164. "<노르웨이의 숲>을 쳐줘요." 하고 나오코가 말했다. ... "내가 <노르웨이의 숲>을 신청할 땐 여기에 100엔씩 넣게 되어 있어."하고 나오코가 말했다. "이 곡을 제일 좋아하니까, 특별히 그렇게 정했어. 마음을 담아 신청하는 거야."
p211. 사정이 끝나자 나는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안고 다시 한 번 키스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브래지어와 블랑스의 매무새를 고치고 나는 바지의 지폴ㄹ 올렸다. "이제는 좀 편안하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하고 나오코가 물었다. "덕분에." 하고 내가 대답했다. "그럼 괜찮으시다면 좀 더 걷지 않으실래요?" "좋습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우리는 초원을 지나고, 잡목림을 지나고, 또 초원을 지나갔다. 그렇게 걸으면서 나오코는 죽은 언니 이야기를 했다.
p212. "그런 언니가 왜 자살했는지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어. 기즈키의 경우와 마찬가지야. 나이도 열일곱밖에 안 되었고, 그 직전까지도 자살할 것 같은 조짐도 전혀 없었고, 유서도 없었고- 똑같지?"
p357. "자기는 정말 정직해. 그런거야 대충 짐작으로 맞추는거 아니겠어?" 하고 미도리는 어이없다는듯이 말했다. "그런데도 기운이 없네?" "기운을 내려고 하고 있는데." "인생이란 비스킷 통이라고 생각하면 돼."... "비스켓 통에 여러 가지 비스킷이 가득 들어 있는데,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만 자꾸 먹어버리면, 나중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거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라고."
p383. 나오코가 죽어버린 뒤에도 레이코 씨는 내게 몇 번이나 편지를 보내, 그것은 내 탓도 아니고 누구의 탓도 아니며, 비가 내리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막지 못할 일이었다고 말해주었다.
p386. 기즈키가 죽었을 때, 나는 그 죽음에서 한 가지를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체념으로서 받아들였다. 아니면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이런 것이었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내재해 있는 것이다.'
p414. 그리고 이윽고 미도리가 입을 열었다. "자기, 지금 어디 있는 거야?"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어디네 있는 것인가?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고개를 들고, 공중전화 부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곳이 어디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로인지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걸을을 재촉하는 무수한 사람들의모습뿐이었다. 나는 어느 곳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다.
p427. 문학평론가 남진우 씨는 "가벼운 미열과 함께 몸 전체로 서서히 퍼져나가는 약 기운처럼, 그의 문장엔 읽는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 (...) 가장 환상적인 장면조차도 바로 눈앞의 정경처럼 구체적으로 떠올려주는 조형 능력을 자랑한다."고 말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