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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2020. 3. 7. 21:34

 

페이스북 김원장 KBS 기자
.2020.11.24.

<종부세를 어떻게든 과장해야 하는 기자들의 흔한 매뉴얼>

또 종부세가 나왔다. 기사를 어떻게든 세게 써야한다. 제목은 더 세게 뽑아야한다. 그래서 나온게 예를 들면 <연봉 1억 직장인 연봉 절반 종부세로 낼 지경!> 뭐 이런 프레임이다.

그런데 그럴러면 종부세가 <5천만 원> 정도 나와야 한다. 그런데 종부세 5천만 원이 나오려면 30억 아파트가 한 서너채는 있어야한다. 여기서부터 기사가 꼬인다. 어떡하지...

일단 제목은 이렇게 쓰고, 기사에는 재산세가 3천만원+종부세 2천만원으로 쓴다. 그런데 종부세가 2천만원 정도 나오려고 해도, 아파트를 한 6~70억 원은 최소 소유해야한다. (아파트 이름을 써야하는 데 그런 아파트는 한남더힐밖에 없다) 그러니 슬그머니 '5년후에는 이렇게 낼 수밖에 없다...'고 쓴다. 이런 기사가 이틀새 쏟아진다.

자, 그럼 상식적으로 강남의 평범한(?) 한 30억 아파트 종부세로 기사를 써보자. 얼마나 나올까. 다음은 나와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을 직접 확인한 것이다. (아직 고지서도 안나왔는데 부인들이 홈텍스로 바로바로 확인하는 거 보면 부담이 되긴 되나보다)

#대치 선경 45평(전용 145)/ 시세 34억 정도-150만원

#잠실 리센츠 49평(전용 149)/시세 27억 정도- 85만원

#래미안 대치팰리스 33평(전용 85)/ 시세 31억 정도 -230만원

(장기보유공제나 부부 공동소유 등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카톡으로 한방에 확인할 수 있는데, 왜 이런 평범한 종부세 사례는 쓰지 않을까. 간단하다. 30억 아파트가 종부세 100만원 나왔다고 하면 종부세 '폭탄 프레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일단 기사에서 아파트 시세를 빼고 종부세 금액도 뺀다. 아파트 이름만 가지고 종부세가 지난해보다 4배가 나왔다고 쓴다. 틀린 표현이 아니다.

실제 25억쯤 하는 아파트는 지난 해 15만원 나왔다가 올해 60만원쯤 나왔다....이게 현실이다. 종부세 현실이 아니고 우리 언론의 현실이다. (부동산 출입을 3차례 한 나로서는 해마다 종부세에 놀라는 게 아니라, 기자들의 상상력에 놀란다)

이도저도 안되는데 데스크는 계속 종부세 기사를 원한다. 실제 부동산을 수백 억 소유한 언론사 회장님이나 대표이사는 진짜 이맘때 종부세에 잔뜩 화가나 있다. 이들의 분을 삭혀줄 기사를 써야한다.

그런데 그런 사례를 찾을 수가 없다. 부동산을 3~40억 소유해도 종부세 1,000만 원을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가 그 아파트로 종부세 1,000만원 이상을 부과받았다면, 그는 틀림없이 또 다른 고가 아파트를 갖고있다" 어떡하지, 에라 모르겠다...

누구는 1)그래도 재산세를 너무 빨리 올리는거 아니냐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종부세 50만원 내다가 250만원 내게 된 래미안 대치팰리스 34평은 7년전 13억 원이였다. 지금 31억 원이다...그런데 이런 내용은 절대 기사에 넣으면 안된다. 사장님이, 회장님이 싫어하신다.

2) 누구는 연봉 1억 가진 회사원이 (자기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집값이 올랐는데, 거기에 과세하는 게 맞냐고 한다. 특히 양도세가 비싸서 팔지도 못한다고 한다. 그말이 맞다.

그러니 왜 양도세를 일시적으로 못 내리는지, 취득세를 내리면 지방세가 얼마나 펑크 나는지, 취득세를 내리고 보유세를 올리고 양도세 중과를 완화하는 방안은 없는지 좀 전문가에게 쫌 물어보자. 경제신문이라면 그래야 하는거 아닌가. 매일 아침 7~80억 아파트 갖고있는 분들 걱정좀 그만하고.

페이스북 김원장 KBS 기자
.2020.11.9.

1등 국가 미국은 없다 下

(하편은 경제이야기다. 경제이야기는 늘 재미가 없다)

‘제국은 늘 화폐와 함께 번영하고 멸망했다’

지난달 IMF(국제통화기금)가 발행한 세계경제전망보고서에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구매력 기준 GDP(PPP)로 계산하면 미국의 GDP는 20조8000억 달러. 반면, 중국은 24조2000억 달러다($24.2 trillion versus the U.S.’s $20.8 trillion).

구매력 기준으로 중국의 생산이 미국의 생산을 따라잡았다는 것이다. 두 나라의 경제가 피자 6조각이라면, 중국 경제가 미국 경제보다 피자 한 조각이 더 크다는 뜻이다. 미 정보당국 CIA도 올해부터 각 나라의 경제를 비교할 때 이 PPP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GDP는 그 나라가 얼마나 생산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숫자를 최종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나라화폐와 달러화와의 환율이다(아직 달러말고 마땅한 기준이 없지 않는가). 그 환율은 그런데 그 나라 국민의 주머니 사정이나 물가는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 문제를 이렇게 설명한다.

1달러는 대략 6.9위안쯤 된다. 그러니 뉴욕에서 6달러짜리 빅맥을 상하이에서 먹으려면 40위안을 내면 된다. 그런데 실제로 중국에선 평균 21위안이면 빅맥을 살 수 있다. 위안화의 가치가 달러에 비해 그만큼 저평가 돼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중국 상품의 수출에 유리하도록) 중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를 그만큼 누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 위안화 가치를 실제 구매력에 맞게 적용해보니, 중국은 미국보다 더 큰 경제대국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를 토대로 ‘중국 경제는 이미 미국 경제보다 상당히 크다’고 인정했다.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가가치(Added value)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10년 전쯤 경제부 기자로 일 할 때, 국가 경제를 비교할 일이 있으면 흔히 중국과 일본은 우리 경제의 5배 정도라고 했다(그게 외우기 쉬웠다). 그런데 지금 일본 경제는 우리의 3배, 중국은 9배다

(중국 경제가 일본의 3배라는 뜻이다. 일본은 갈수록 그저 그런 나라가 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일본보다 베트남과 더 교역을 많이 한다. 그때 우리 경제의 3배쯤 됐던 영국과 프랑스는 지금은 1.5배 정도 된다)

우리도 크게 성장했지만 중국의 경제가 놀랍게 성장한 셈이다. 그 중국경제는 이제 미국을 넘어서고 있다. 중국경제는 조만간 세계 경제의 20%를 차지하게 된다. 지난 85년 미국이 세계경제의 1/4을 차지할 때, 중국 경제는 겨우 3% 남짓이였다.

이 같은 분석은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이미 2012년에 2020년 중국 경제가 미국 경제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그때 골드만삭스는 2027년에 중국이 G1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시차의 차이가 있을 뿐 추월은 시간문제다.

문제는 화폐다. 한나라의 경제가 커지면 그 나라의 상품과 서비스 교역이 늘어난다. 당연한 일이다. 자연스럽게 그 나라 화폐를 더 사용하게 된다. 그렇게 기축통화가 된다. 기축통화가 되면 사실상 마음껏 화폐를 찍어낼 수 있다. 이른바 세뇨리지가 발생한다(Seigniorage effect). 미국의 끝없는 양적완화도 달러가 기축통화라서 가능하다. 천문학적으로 찍어낸 달러는 전세계로 유통되면서 미국의 인플레수요를 가라앉힌다. 미국은 이렇게 인플레이션을 수출하는 나라다.

100여 년 전 파운드화에서 달러로 기축통화가 옮겨올 때도 그랬다. 새로운 신교를 믿는 유럽이민자들이 인디언들의 땅에 세운 나라는 어느새 자동차(Ford)와 전자제품(GE) 비행기(Boeing)를 만들어 수출했다. 백발의 유태인 물리학자를 독일에서 데려와 결국 핵무기도 만들어냈다. 그렇게 최대 무기수출국이 됐다. 그렇게 2차대전에서 위기의 유럽 국가들을 구해냈다.

국권을 지켜줬으니 무슨 할 말이 있으랴. 노르망디에서 프랑스를 구하고, 이어 영국까지 구해준 미국은 44년에 브레튼우즈(Bretton Woods)에서 ‘달러 기축통화’의 약속을 받아낸다. 곧바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이 만들어졌다. 이제 지구인들은 모든 교역에서 달러화를 쓰고, 각 나라화폐의 값을 달러화와 비교해 결정하자는 약속을 했다.

그런 달러화 패권을 이제 중국이 노린다. 주변국과의 교역에서 자꾸 위안화결제를 요구한다. 2015년에는 기어이 IMF의 특별인출권(SDR)에 위안화를 편입시켰다. 막대한 돈을 풀어 아프리카의 경제권을 사실상 쥐고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여전히 위안화 결제는 2%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구인들은 여전히 달러화와 유로화를 쓴다.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한다고 우두머리 나라가 되는 건 아니다. 정치와 문화가 수반된다. 톰 크루즈의 영화를 봐야 허리우드 영화가 수입되고 달러 결제를 할 거 아닌가? 중국산 나이키지만, 우리는 그것이 미국 브랜드라서 좋아 한다(중국산인데 나이키가 중국브랜드라면 사겠는가). 그리고 21세기 미국의 가장 큰 영향력은 사실 기독교다. 우리 보수 집회에서도 보수와 성조기와 기독교는 묘하게 결합한다.

미국은 여전히 강력한 정치력과 군사력 그리고 문화적 영향력을 갖춘 나라다. 결정적으로 중국은 공산당 1당 독재국가다. 그 막강한 리더십은 글로벌 리더십에 역행한다. 인민일보는 연일 미국의 대선 시스템을 조롱하고 있지만 중국은 정작 ‘국민투표’라는 제도자체가 없는 나라다. 어느 유럽국가가 이 나라를 우두머리 나라라고 인정하겠는가.

트럼프의 대 중국 1대 1 승부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기술력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의 전자 전기 통신기술을 억지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고, 화웨이는 그 대표적인 희생양이 됐다. 바이든이라고 다를까. 다만 품위 있는 언어를 쓰겠지만.

바이든 역시 그래서 중국과의 대결이 불가피하다. 지난 85년에도 그랬다. 미국은 그때도 턱밑까지 추격해온 일본을 불러 프라자합의(Plaza Accord)에 도장을 찍게 했다. 이후 엔화가치는 폭등했고 그때부터 일본은 계속 가라앉고 있다.(엇, 그러고 보니 트럼프대통령은 한때 그 맨해튼의 프라자호텔 주인이였다)바이든은 언제든 시진핑 주석과 손을 잡겠지만, 왕좌를 둘러싼 싸움은 화해가 쉽지 않다. 기축통화라는 왕좌는 하나뿐이다.

최강대국 미국이 기울고 있다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제국은 늘 화폐가치가 함께 저문다. 너무 많이 찍어낸 달러는 여기저기에서 세계 경제를 망가트린다. 1차 대전이 끝나고 대영제국은 채권국에서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전쟁자금을 빌려준 미국은 강력한 채권국이 되면서 그렇게 받은 파운드화를 전부 금으로 바꿔갔다.

금이 바닥난 영국은 더 이상 파운드화를 발행하기 힘들어졌고(금 본위제였으니까), 그렇게 기축통화의 지위를 뺏겼다. 지금 미국은 거대한 채무국이고, 이 나라에 가장 돈을 많이 빌려준 채권국은 다름 아닌 ‘중국’이다.

그래도 달러 찍어내기는 계속된다. 넘치는 달러는 달러가치를 희석시켜 가까스로 미국 제품의 수출 경쟁력을 지킨다. 재정적자가 너무 심해 지금의 화폐단위로 기록하기도 힘든 미국은 그래서 또 달러를 찍어 낼 수밖에 없다.

바이든도 마찬가지다. 진보정부는 재정을 더 확대한다. 친환경산업에만 2천200조 원을 쓸 계획이다. 돈이 어디서 날까? 달러를 더 찍어내야 한다. 그 달러패권은 언제까지 계속 될까.

중국 경제는 지난 3분기 4.9%나 성장했다. 보란 듯이 코로나 여파를 벗어나고 있다. 반면 미국경제는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 인공호흡이 필요한 정도다.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이 역설적으로 코로나로 가장 경제적 타격을 덜 받은 나라가 됐다. 이 사건은 새로운 경제패권을 결정하는데 또 다른 변수가 될지 모른다. 고령의 새 대통령당선자에게 매우 혹독한 경제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흔히 엉터리 조직을 ‘당나라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당나라’는 실크로드로 세계 교역시장을 주름잡았다. 그 중국이 다시 패권을 노린다. 이미 미국인이 수입해 쓰는 중국산 제품은 일본산보다 5배나 많다. 세계의 공장 중국은 이제 세계의 시장이 되고 있다. 바이든에게 높고 높은 만리장성이 기다린다. 잘못하면 더 이상 1등 국가 미국은 없다. 모든 제국이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끝)

 

페이스북Edward Lee

.2020.11.8.

지도자가 왜 중요한가?

.2007년 대통령 선거 때 세상이 참 시끄러웠다. 당시 BBK가 자신의 소유라는 광운대 강연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나는 게임이 끝났다고 여겼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시민들은 “부자 되세요”라는 이명박의 거짓 프레임에 속아 스스로를 기망하며 몰표를 던졌다. 그 결과 단군이래 최대 사기꾼 탄생과 수 백조에 달하는 국가 채무가 시민의 몫으로 부메랑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양심이 죽은 참담한 결과다. 당시 한국 사회에 대한 나의 절망감은 매우 깊었지만, 2012년 문재인의 출현을 하늘의 축복이라 여기며 열심히 참여했다. 문재인이 패하고 박근혜가 당선되었을 때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거듭된 절망감이 포기를 부른 것이다. 이명박을 경험한 시민들이 문재인의 정직함과 사람됨에 열광, 큰 차이로 당선시킬 것으로 확신했다. 깊은 절망과 우울감으로 펜을 꺾었다. 그런 나를 깨운 건 세월호였다. 당시에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 부모로서 내 일과 같았다.

.트럼프는 현재 바이든이 리드 중인 조지아주를 제외하고도 290대 214로 돌이킬 수 없는 큰 패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부가 승인한 우편투표를 부정하고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불복 중이다. 어차피 이 자는 민주주의를 모르고 모든 것을 독선으로 일관, 정치를 비즈니스로 전락시켰다. 그의 삶 자체가 온통 엔터테인먼트인 쇼이고, 돈으로 매수하는 저열한 여성 비하와 성스캔들, 문란한 사생활, 장애인 및 소수계에 대한 조롱과 차별, 무슬림 박해, 그리고 극단의 백인우월주의로 국가 분열을 획책하고 우민들을 부추겨 무장, 폭동을 방불케 한 자다.

.그가 대통령이 된 경우도 이명박과 닮은꼴이다. 하위 노동자들과 우민들을 거짓으로 꼬드겨 이민자들 때문에 가난과 저임금이 계속된다면서 국경을 봉쇄하고 이민 차별정책과 인종차별을 심화시켰다. 미국의 노동 문제와 저임금이 마치 이민자들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기망한 것. 이렇게 미국 사회 전반을 완전히 분열시키고 당선된 사람이다. 이명박처럼 더 나은 경제적 보상에 대한 기대심리를 갖도록 거짓 선동한 것이다.

.나라가 클수록 정보에 취약한 계층이 많다. 디지털 시대에 작은 나라들이 약진하는 이유는 정보의 공유 속도다. 수많은 우민들이 트럼프의 거짓에 넘어갔거나 스스로를 속였다. 트럼프는 자신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중국과 유럽 연합을 상대로 무역 전쟁을, 이란을 빌미 삼아 중동을 압박하고 한국과 북한을 지난 2년 여 동안 유린하면서 정치를 쇼로 전락시켰다. 국제사회가 들끓고 세계 경제는 저성장과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쳤다. 게다가 그의 환경에 대한 무지와 국제기구 탈퇴는 지구환경을 악화시켰다. 전 지구적 악의 축에 다름 아니다.

.불의한 지도자는 사회를 후퇴시킨다. 한국 사회와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국론이 심하게 분열, 다툼이 일고 무장까지 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인간의 극단의 이기심을 드러내 결국 폭동까지 마주했다.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는 지도자들로 말미암아 시민의식이 심하게 훼손되고, 한탕주의와 속임수가 활개를 쳐 ‘돈이 곧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젊은 세대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사회가 어떤 희망이 있고, 또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누구도 믿지 못하는 불신이 팽배한 사회, 인간의 가치와 이상마저 돈으로 환산되는 정신과 영혼이 죽은 사회는 아류인 트럼프와 이명박근혜, 그리고 개망나니 윤석열 따위들의 산물이다. 이런 자들을 방치한다는 것은 정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정치검찰이 국가 권력을 악용해 특정 세력을 압제하고, 개인과 가족을 도륙하는 이런 사회가 어떻게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의대생들이나 검사들의 부끄러운 행태가 이명박근혜, 윤석열 같은 자들에게서 비롯된 사회악이다. 정의가 죽고 불의가 팽배한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누구이고 또 교육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국가를 운용하는 지도자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국민의식이 망가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게 무엇인가?

.바이든 당선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상식 있는 시민이라면 모두 그럴 거라는 생각으로 잠시 CNN 뉴스 해설가인 Van Jones의 말을 옮긴다. "나는 오늘 부모와 아빠의 역할이 쉬워졌다. 아이들에게 인성의 중요성과 진실을 말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게 쉬워졌다. 이제 우리는 숨 쉴 수 있다." 지난 4년이 얼마나 부끄러운 세상이었는지를 모두에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어떤가, 지금?

페이스북 김원장 KBS 기자
.2020.11.6.

1등국가 미국은 없다 上

몇 해 전 미국에 살 때 일이다. 지갑을 도난당해 운전면허증을 잃어버렸다. 내가 운전면허를 취득한 Bergen County의 DMV(우리 면허시험장 같은 곳)를 찾았다. 그런데 전산문제로 내 운전면허 취득 기록이 사라졌단다. 이유도 모르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나처럼 영문도 모르고 운전면허가 하늘로 사라진 수 백여 명의 시민들이 줄지어 항의를 했지만, 누구도 책임있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후 새 운전면허증을 발급 받을 때까지 석 달이 걸렸다. 그 사이 면허증 소지 위반으로 뉴저지경찰로부터 범칙금 스티커도 한 장 발부받았다. 항의를 하자 경찰로부터 ‘소송하라’는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 해 가을에는 태풍을 만났다. 집 앞에 큰 나무들이 줄줄이 쓰려져 집 앞 도로 통행이 금지됐다(미국은 대중교통이 엉망이라 승용차를 이용하지 못하면 아이들 학교가기도 힘들어진다). 쓰러진 나무를 치우는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우리나라였다면 어땠을까.

미국은 여전히 최강대국이다. 인터넷(WWW)을 창조한 나라이면서 스마트폰을 개발했고, 그 스마트폰의 운영체제도 대부분 미국이 만들었다. 영화나 팝송처럼 미국 문화는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 메이저리그를 보고 스벅에서 커피를 마신다.(한국인은 스타벅스에서 한해 1조 5천억 원 어치의 커피를 마신다) 전기차시장을 지배하고 있고, 이번 달에는 드디어 무인 자율주행차(레벨4)의 도로 주행이 시작된다. 그리고 미국은 압도적으로, 세계 최대의 무기 수출국이다.

그런데 미국이 진짜 1등 국가일까.

국가의 최대 행사인 대통령 선거관리조차 잘 안된다. 결국 또 경찰력을 동원한다. 그러다 통제가 안되면 시민에게 발포한다. 짐바브웨 수준이다.

대통령은 선거결과를 부정하고, 사회적 신뢰(Social Trust)는 바닥을 친다. 우편투표의 유효기간마저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린다. 거짓 뉴스가 판을 치는 데는 우리보다 몇 배나 높은 문맹률이 숨어있다. 흔들리는 시스템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국민의 1/3이 제대로 된 의료보험이 없다. 낯선 바이러스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최고의 금융시스템을 가진 나라가 진단키트도 방역복도 심지어 마스크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 환자들이 밀려들자 러시아로부터 인공호흡기마저 수입했다. 입원도 쉽지 않다. 아니 서민들은 입원을 원하지 않는다. 60세 이상 코로나 환자의 입원 치료비용의 중간값은 6만1천912달러다(약 7천173만원/의료보험 청구 데이터베이스 '페어헬스'). 미국은 진짜 1등 국가인가?

연봉 수백만 달러의 CEO도 흔하고, 그만큼 노숙자도 흔하다. 일상적 빈부격차는 여러 낯선 일상을 만든다. 내가 살던 곳에서 반려견을 운동시키는 곳에 1시간 비용은 15달러 정도, 그런데 그 반려견을 돌보는 히스패닉이 받는 급여는 시간당 15달러가 안된다. 반려견의 한시간 비용이 사람보다 더 높다. 장기매매가 허용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러고보니 미국은 매혈을 허용하는 나라다. 상당수 주에서 헌혈을 하면 50달러 정도의 현금카드를 지급한다)

주가가 급등한 테슬라의 앨런 머스크(ELON MUSK)회장의 재산은 지난 10월 말 기준 919억 달러다(103조8천억 정도/포브스 집계). 매주 10억 원 씩 로또에 당첨된다고 가정하면, 1996년 동안 매주 로또에 당첨돼야 103조 원을 모을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의 다른 한쪽에서는 피를 판다. 어느 다큐에서 가족이 모두 가서 피를 파는 흑인가족을 본 적이 있다. 미국은 진짜 1등 국가인가?

미국은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다. 언어도 민족도 모두 다른 이들이 어떻게 하나가 됐을까. 8,90년대 미국에선 1년 내내 성조기를 게양한 집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처음 미국에 출장갔을 때 환승 공항 대형 모니터에서 해병을 모집하는 영상광고가 나왔다. 그러자 주변에 앉아있던 미국인 몇 명이 일어나거나 모자를 벗어 국기에 예를 표했다. 그 애국심은 도전정신(The Frontier)과 맞물려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인종의 멜팅팟(melting pot)이 됐다. 수많은 지도자들이 ‘하나의 미국’을 정책의 최우선 가치에 뒀다.

“This is a nation , not a polyglot boarding house. There is not room in the country for any 50-50 American, nor can there be but one loyalty(여기는 국가입니다, 무슨 하숙집이 아닙니다. 하나의 애국심이 아닌 절반만 미국 국민이 살 수 있는 그런 공간은 없습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1917년

그런데 지금 미국의 대통령은 내놓고 갈등과 혐오를 부추긴다.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에서 이민자를 미워한다(그런데 멜라니아 트럼프도 슬로베니아 이민자다). 대통령이 야당 대통령후보 버스를 총으로 위협한 시민들을 격려한다. 대통령이 감싼 극우단체 회원들은 야당 주지사의 납치계획을 세운다. 브라질이나 남수단 이야기가 아니다.

언젠가부터 TV뉴스에서 백악관 인사를 보면 온통 백인과 금발뿐이다. 하이틴 드라마 같다. 오직 ‘순종’만이 진실하다 믿었던 히틀러를 닮아간다(그는 반려견마저 ‘오리지널 저먼 세퍼드’를 추구했다)

기독교 복음주의가 백악관 담벼락을 어슬렁거린다. 미국의 예배당에서 무슬림이 ‘다른 그 무엇’이 아니고 ‘틀린 그 무엇’이 되면, 인류는 다시 11세기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때 인류는 다른 종교를 죽이겠다고 300년 동안 전쟁을 벌였다. 생각해보자. 미국에서 ‘다양성’을 빼면 뭐가 남을까.

아메리카 대륙 밖의 갈등도 계속 커진다. 미국은 세계 질서의 맏형이였다. 깡패가 아니였다. 지난 100여 년간 그 질서는 모두의 발전을 가져왔다.

인류의 수만 년 역사에서 해마다 몇 %씩 지속적으로 함께 성장한 건 지난 100여년이 유일하다. 그 중심에 위대한 미국이 있었다.

증기기관은 영국이 발명했지만, 모델 T(포드)가 시판된 건 1908년 미국이였다. 마이카 시대가 열렸고, 라디오가 보급되고, 비행기 여행길이 열렸다. 그리고 1944년, 히틀러에 붙잡힌 유럽을 구해준 것도 결국 미국이였다. 미국은 지도자의 나라가 됐고, 달러는 지구인의 통화가 됐다. 달러의 보급을 위해 미국의 무역 적자는 용인됐고, 그렇게 일본이나 한국, 중국같은 나라들이 부자가 됐다. 자유무역과 다자간무역시대가 열리고, 미국은 그렇게 세계 최대의 무역적자국이 됐다. 덕분에 자유와 경쟁이라는 글로벌 질서가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미국의 지도자가 이 질서를 통째로 부인한다. ‘America first!’라는 구호에 동맹은 없다. 강팀이 보따리를 싸면 리그는 금방 시든다. 각자도생이다. 영국은 보란 듯이 EU를 떠났다. WTO도 WHO도 기후변화협약도, 심지어 유네스코도 위기다. 모두가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라고 믿었던 소중한 가치들이다.

볼테르는 망해가던 신성로마제국에 대해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답지도 않으며, 로마도 아니다” 라고 했다. 지금 미국은 신성하지도 않고 미국답지도 않고 미국도 아니다.

궁금하다. 미국은 진짜 다시 위대해 질 것인가?(Make America Great Again/트럼프의 선거 구호다)

이제 경제이야기를 해보자. 이 이야기에는 당연히 ‘중국’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하 편에서 계속.

 

페이스북 Hyewon Jin 진혜원 검사
.2020.11.5.

[프로슈머, 제3의 물결, 언론사의 몰락]

'미디어의 이해' 리뷰 등 포스팅에서 요약한 바 있듯, 언론사의 본질은 '광고를 수주하고, 수주한 광고를 팔기 위해 뉴스나 연예 프로그램을 끼워파는 기관'이라는 것이 마셜 맥루헌의 통찰이었습니다.

넷플릭스와 유투브 프리미엄, 검색엔진으로서 구글의 성공은, 광고 없이 콘텐츠의 본질만 즐기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에 정확히 부합하는 체계로의 혁신이 추구하는 방향이 옳았다는 점을 증명해 줍니다.

프로슈머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1980년 저작 '제3의 물결'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인데, 소비자가 곧 생산자가 됨으로써 중간의 어정쩡한 단계의 기업들이 쇠퇴할 것이라는 예언이 담긴 어휘입니다[개념 자체는 1970년 작 미래충격(Future Shock)에서 미리 소개된 일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국내 주요 언론사의 역할은 '집권여당'이라는 등 자기들이 사용하는 용어에서 드러나듯, 선출직 공직자가 국민의 대리인이 아니라, 권력을 휘두르고, 그것을 장악하여 반대파를 숙청하는 사람이라는 의식을 전제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강화도령을 선발하고, 내세우다가 단물 떨어지면 그냥 내치고 새 강화도령을 선발하는 것에 집중되어 왔습니다.

종전에는, 그 관념에 편승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매체와 인터뷰라도 한 번 하기 위해 구걸하고, 줄 서는 형편이고, 그러한 매체에서 고정 칼럼이라도 하나 맡게 되면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기도 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8년부터 10년간 참된 민주주의 정부를 경험한 시민들이 스스로 각성하고, facebook처럼 짧지 않은 글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플랫폼이 성장하면서 권력욕, 광고팔이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지식과 이성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뉴스 형태로 생산되고, 그에 대해 순수한 지식과 이성이 댓글로 공감 또는 비평할 수 있게 됨으로써, '뉴스' 시장의 생산자 자체가 기존 '언론사'에서 소비자에게 이전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최근 자신들이 스스로 '주요 언론사'라고 자처하는 기관들이 누군가의 페이스북 글을 인용함으로써 자신들의 인터뷰 기사를 대체하는 현상도 자신들의 인터뷰 기사 가치가 다른 사람의 페이스북 글만한 영향력도 없다는 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편, 국내 언론인 신뢰도 1위를 차지하는 김어준 뉴스공장 공장장님도 기존 언론의 소개로 인해 폭발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나꼼수', '색다른 상담소(건투를 빈다)', '뉴스공장', '다스뵈이다'로 이어지는 프로슈머 현상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개 법률가의 도서, 문화, 사회, 예술, 법률 리뷰 포스팅으로서 1년쯤 전에 친구 2분(우종학 교수님, 이주혁 의사선생님)으로 출발한 이 계정이 지금과 같이 인구에 자주 회자되는 이유가, 40년 전 앨빈 토플러님이 예언한 프로슈머 현상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광고나 권력욕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지식, 사상, 의견을 갈구하고 있으며, 스스로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점차 영향력을 키워 나가고 있습니다.

인용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followers와 영향력이 감당되지 않을 경우 자신들의 체질을 바꾸면 됩니다.

추가: 인생의 좋은 교훈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지, 방법이 없습니다. ㅋ

 

페이스북 조국

.2020.11.5.

일부 정당, 언론, 논객들이 소리 높여 ‘검(檢)비어천가’을 음송하고 있다.

“해동 검룡(檢龍)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 고검(古檢)이 동부(同符)하시니, 뿌리 깊은 조직은 바람에 아니 흔들리니 꽃 좋고 열매 많다네.“

독재정권의 수족에 불과했던 검찰은 정치적 민주화 이후 점차점차 확보한 수사의 독립성을 선택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막강한 “살아있는 권력”이 되어 움직이고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쌍검을 들고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의 인사권과 감찰권에 맞서기도 한다. 특히 검찰과의 거래를 끊고 검찰개혁을 추구하는 진보정부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폐지된 2013년 12월 이후에도 검찰 구성원 상당수는 체화된 이 원칙을 고수하며 조직을 옹위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해동검국’(海東檢國)도 ‘동방검찰지국’(東方檢察之國)도 아니다. “천상천하 유검독존(唯檢獨尊)”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검찰은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기관도, 전유(專有)하는 기관도 아니다. 그렇게 될 경우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시 입법자들이 우려했던 '검찰파쇼'가 도래한다.

‘검권'(檢權)도, 전현직 조직원이 누리는 '꽃'와 '열매'도 엄격히 통제되어야 한다. ‘검찰 공화국' 현상을 근절하고 '공화국의 검찰'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수처의 항상적 감시, 법원의 사후적 통제 그리고 주권자의 항상적 질책이 필요하다. 이는 '대검귀족'(帶劍貴族, noblesse d'épée) 외 '법복귀족'(法服貴族, noblesse de robe)도 타도한 프랑스대혁명의 근본정신이기도 하다.

페이스북Edward Lee

.2020.11.3.

진짜 검사 임은정∙진혜원

검찰 작심 비판하며 개혁 주도

누가 사람이고, 누가 짐승인가?

."아무도 안 하면 나라도 해야 한다" 임은정 검사가 내부고발자로 나서면서 스스로 다짐한 말이다. 조폭 윤석열의 광란에 맞장구치며 문 정권, 즉 국민을 조롱하며 반개혁에 동참하는 짐승 같은 검사들 속에서 지난 10여 년간 검찰 개혁과 민주화를 위해 내부고발을 꾸준하게 제기해온 임은정 검사.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우리 시대에 보기 드문 강골 중의 강골 검사로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후배 검사들이 본받아야 할 귀감이다.

."아무도 안 하면 나라도 해야 한다"는 임은정 검사의 말을 뼈에 새기고 선배인 그녀를 자신의 멘토로 존경하며 그 길을 따라가는 진혜원 검사의 요즘 페북을 보면 가히 또 하나의 임은정이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우회하며 검찰총수인 윤석열과 동료 검사들을 작심 비판, 개혁을 주장하면서 관계 법령들을 제시하고 설명, 시민을 위한 검사로서의 순기능이 무엇인지를 적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검사동일체라는 매우 특수한 검찰 조직 내에서 수 없는 비아냥과 질타를 감수하며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그것도 소수인 여성 검사들이. 우리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목숨을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와 미래를 모두 포기해야 할 만큼 결기를 다지지 않는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게 그들의 조직 문화다. 사표를 내고 변호사 개업하면 된다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게다. 그러나 이 업계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할 수 없다. 한마디로 그들 업계에서 찍히면 사회적 매장이다. 우리 법조계의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역으로 모두가 그렇게 짬짜미로 엮여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관행이 검사들의 목을 조여 아무도 저항하지 못하게 하는 게다. 물론 임은정이나 진혜원, 서지현, 안미현 검사 같은 이들은 참으로 특별한 검사들이지만 말이다. 대한민국 여성들(특히 아줌마)들은 제3의 성(남성, 여성에 이어)이라 불릴 만큼 대단해서 그런지 추미애 장관도 그렇고 개혁을 추동하는 분들이 죄다 여성 일색이다.

.검찰이 지금껏 저질러온 수많은 악행을 바로잡지 못하면, 지금의 짐승 같은 검사들을 줄곧 양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개혁은 당위다. 임은정과 진혜원 검사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주어 개혁을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 개혁은 인적쇄신에서부터다. 그리고 AI가 대세인 시대에 맞게 판을 바꾸자. 전관예우를 금지하고 판검사 선별 제도를 서구식으로 전면 개선하지 않으면 개혁은 크게 의미 없다.

.국민을 조롱하는 짐승만도 못한 검사들 속에서 온갖 냉대와 질타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선봉에 선 임은정∙진혜원 검사에게 정말 고맙고 죄송하다. 하지만 이들 검사들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 정부는 시민들과 몇몇 검사의 희생을 강요할 게 아니라 모두가 일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페이스북 강남순 TCU – Texas Christian University 교수
.2020.10.29.

< 어느 가을 잿빛 하늘의 날, 찾아온 사람과 만남들>

1. 2020년 10월이 저물어가고 있다. 이제 가을학기도 3주의 수업만 하면 끝난다. 한동안 전형적인 텍사스 날씨인 햇빛 쨍쨍한 날씨가 이어졌었는데, 요즈음 며칠은 계속해 부슬비가 대지에 떨어진 낙엽을 축축하게 적시는 잿빛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텍사스와 뭔가 어울리는 것 같은 날씨가 아니어서인지 텍사스에서 살기 시작한 지 15년이 되는데도, 이런 날씨는 나를 텍사스가 아닌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2. 독일에서 지낼 때, 이런 날씨는 참으로 익숙했다. 잿빛 하늘에서 소리 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내 키에는 맞지 않게 작은 중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갈 때, 나는 축축한 잿빛 하늘이 아닌, 햇빛 찬란한 날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하곤 했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독일을 생각나게 하는 이런 잿빛 하늘은 지독한 우울함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외부세계의 제한을 홀연히 넘어서서 나만의 내면세계로 깊숙하게 들어가 집중할 수 있는 생명 에너지를 주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유토피아적 멘탈리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 이 독일에서와 같은 잿빛 하늘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지금 여기’에는 없지만, ‘아직 아닌’ 미래에는 가능할 수 있는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동경과 갈망이 유토피아적 멘탈리티의 특성이 아닌가.

3. 미국 대학에 와서 좌충우돌의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라는 제목으로 학위논문을 쓰게 되었다. 논문 주제를 정하기 위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나의 지도교수는 독일에서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다. 그를 나의 지도교수로 확정하고서 만났을 때, 독일식으로 하면 ‘박사 어머니 (독토르 무터/Doktor Mutter)’ 라고 해야 하는데, ‘박사 자매’ (한국말로 하니 조금 어색하지만)’ 즉 ‘독토르 쉬베스터 (Doctor Schwester)’로 생각하라고 따스한 미소 띈 얼굴로 내게 제안했다 미국에서는 박사논문 지도교수를 ‘어드바이저 (advisor)’라고 하는데, 독일에서는 ‘박사 아버지/어머니’라고 부른다. 이 호칭 자체로 학생과 지도교수의 위계적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4. 나의 지도교수는 내가 왜 유토피아라는 주제에 관심하게 되었는지, 그 당시에 서툰 독어와 서툰 영어를 섞어서 두서없이 말할 때도 내가 표현하는 것보다 더 깊숙하게 나를 잘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비로소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서 감격스러웠다. 교수 연구실에서 대화하며 글썽이는 눈물을 참으려 애쓰던 순간이 참으로 많았다. 복잡한 개념과 사유세계를 접하면서 그 새로운 세계를 자신의 삶 속에 체현 할수록, 가족이나 친구 등 특히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해받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그런데 누군가로부터 진정으로 이해 받는다는 경험을 가지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곤 하는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5. 나의 내면세계 깊숙이 있는 갈망, 바라는 세계, 바라는 관계 들에 대한 여러 가지 사유세계를 표현할 때, 진정으로 귀 기울여서 들으며, 공감하고, 그것을 긍정하면서 자유롭게 논문 쓰도록 나를 학문 세계의 들판에 ‘방목’해 준 선생을 만난 것은 내게 참으로 큰 행운이었다. 과정 철학 (Process philosophy)이 그의 전공 분야였지만, 자신의 분야로 학생을 제한하곤 하는 다른 교수들과는 달리, 그는 내게 전적 자유를 주었다. 내가 관심하는 것을 자유롭게 찾아보고, 공부 과정을 즐기면서 논문을 진행하도록 지켜보아 주았다. 나의 서툴고 어설픈 생각과 고민들을 늘 진지하고 따스하게 경청해주던 교수였다. 지금도 나는 그와 서로의 삶의 이야기를 지속해서 나누는 관계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런 영향 때문에 이제 선생이 된 나는 나의 학생들에게 ‘방목형’ 선생으로 남아있고자 한다. 자신의 가슴을 출렁이게 만들고, 열정이 생겨서 이것저것을 찾아보고 읽게 만들고, 그래서 잠 못 자면서도 계속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주제를 논문으로 택하라고 권하곤 한다.

6. 한국에서 책을 출판하기 시작하면서 만났던 편집자가 있다. 따스한 열정을 지닌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으며 나는 그와 일하는 것이 편하고 즐거웠다. 내가 빵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서, 합정동 근처 어느 베이커리에서 맛난 빵을 사서 내게 전해주기도 했던 편집자다. 그가 지난 5월 암 진단을 받고서 투병생활을 해 왔는데 이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7. 지난 7월에 나와 주고받은 메시지에서 그는 “건강해져서 회사에 다시 복귀하게 되면, 선생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책도 기획해서 작업해보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저녁을 잘 챙겨서 드시길”하는 배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이번 겨울에 한국에 가면 맛난 커피와 맛난 음식을 먹으면서 다시 만나자고, 그리고 빨리 나아서 나와 다시 책도 만들자고 했었다. 그렇게 3개월 전에 이런 메시지를 주고 받았던 그가 이제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야 한단다. 아득했다. 이 멀리 텍사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프고 저린 마음을 제켜 놓고 일하기가 어렵다. 마시던 커피를 들고서 서재에서 나와 멀리 창 밖을 내다보며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8. 한편으로는 남긴 재산의 상속세만 10조가 넘는다는 사람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엄청난 재산이다. 그에게 “큰별” 또는 “거인”과 같은 수식어가 붙여진 신문기사를 본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하여 ‘시대의 어르신, 스승, 큰별, 거인’ 등 과 같은 수식어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한 사람의 죽음에 지나친 과장을 담은 수식어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파괴적 기능을 한다. 한 인간이 지닌 복잡한 결들을 보지 못하게 하는 왜곡된 이해를 전 사회에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9.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재산을 쌓기 위해서 그가 평생 희생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삶의 가장 커다란 희생은 어쩌면 자기 자신의 삶을 방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이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소중한 존재임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기업에서 일하는 타자들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참으로 어렵다. 상속세만 10조가 넘는다는 그 재산을 모은 그가, 자신의 죽음의 병상에서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의 따스함이라도 느끼며 이 세상에서의 생명을 마감했을까. 아니면 자본기계처럼 생산하고 모은 물질을 모두 뒤에 남긴 채 그 어떤 인간다운 갈망이나, 갈증조차 없이 이 지구로부터 단지 소멸한 것일까.

10. 하이데거는 "인간만이 죽는다. 동물과 식물은 소멸(perish)할 뿐이다"라고 했는데, 나는 소멸하는 인간도 무수하게 많다고 생각한다. 온갖 욕망을 거짓말과 과장으로 포장하면서, 인간이든 종교든 모든 것을 자신의 권력에의 욕망을 위해 수단으로만 소비해 버리는 미국의 대통령, 그가 어떤 말을 하든 무조건 지지하겠다고 하는 열광적 복음주의 백인 기독교인들, 노동자들, 흑인과 라틴계 소수민족들을 바라본다. 도대체 인간이란 누구인가, 살아감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다.

11.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이렇게 기울어지기도 하는 생명들이 있다. 나의 가슴을 에이도록 아프게 하는 생명도 있고,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주는 생명도 있다. 이 다양한 모습들의 생명들을 품고, 기억하면서, 하루 하루 충일하게 살아가는 것—살아있는 내가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이다.

12. 잿빛 하늘은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기계적으로 이어지는 일상의 시계를 돌연히 멈추고,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돌아보게 한다. 인간만이 이렇게 과거와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시제’를 지니고 있는 존재가 아닌가. 잠시 멈추어 서서 이 살아감의 의미를 새로운 방식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것—잿빛 하늘의 날씨가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이 유한한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 것이고, 그 소중한 것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가에 대해서 사유하도록 초대한다. 이런 잿빛의 날, 고갱의 그림 제목은 우리가 소멸하는 존재가 아니라, 삶과 죽음, 과거-현재-미래를 사유하는 인간임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어디에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페이스북 김성미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이사
.2020.10.25.

[내가 원하는, 내가 믿는 진실을 발견하는 방법]

평소,

내가 '그렇지 않을까?' 의심하던

'아마도 그럴꺼야!' 스스로 믿고 있던 진실을

오늘,

기가막히게 정리해 놓은 문장을 만났다

from What I know for sure' written by Oprah Winfre

이게,

책을 읽는 이유이고

내가 믿고 바라는 진실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이로서 나의 삶은 송두리째 바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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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로 부터 옮깁니다

from 게리 주커브의 '영혼의 의자'

'모든 행위와 생각, 감정은 의도(Intentions) 에 의해 생겨난다. 그리고 그 의도는 원인이 되어, 결과와 함께 하나로 존재하게 된다. 우리가 원인을 일으키는 데 관여하는 한 그 결과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다.

이렇듯 매우 깊고 오묘한 원리로 우리는 자신의 모든 행위와 생각, 감정에 책임을 지게 된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자신이 품은 모든 의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경험을 특징짓는 많은 의도에 대해 인지하고, 어떤 의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해 정리하고 분류한 다음, 우리가 이루고자 소망하는 결과에 맞춰 의도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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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soft's AI Service에 다양한 서비스가 있다

Cognitive Service, 그 중에서 ChatBot을 만들때 사용하는 LUIS (Language Understanding)에 보면 'Intents' 라는 게 있다.

Chatting Bot은 본디 깡통기계이니

마치 사람처럼 '인지'해서

똑똑하게 대답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Learning' 학습 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리'라 했을때 신체 다리인지, 물 위에 떠 있는 다리인지

'배'라고 했을때 내 배인지, 아니면 먹는 배인지..

그것들을 잘 구분해서 써야만

Chat Bot의 태고난 그 목적에 맞게 사람들과 매끄럽게 대화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마치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 아빠한테 말을 배우는 과정과 같다.

결국,

특정 목적에 맞춰서 ChatBot이 제 역할을 하려면

그 '의도'에 맞는 Input이 제대로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의도는 원인이 되어, 결과와 함께 하나로 존재하게 된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기계가 한땀 한땀 배워가듯 그렇게, 오늘 인생의 진리를 배운다

페이스북 박윤근
.2020.10.24.

휴가 중 경주를 다녀왔어요.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천마총 순으로 방문했죠.

전 기술인이라 기술중심으로 문화재를 봐요.

65세 이상은 민증만 있으시면 무료이니 많이들 다녀오시길 추천드립니다.

전 역사를 좋아합니다. 특히 국사를 요.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였죠.

그 이전부터 인도로부터 도입되어 한국 특유의 독창적 으로 발전한 문화죠.

오죽했으면 인도, 일본에서도 배우러 많이들 오셨죠.

한국 특유의 불교 이론들이 많습니다.

신라의 도읍지라 파면 나오는 동네가 경주죠.

박정희 시대 전문적으로 정비하고 발전시켰죠.

전 개인적으로 저쪽 인물 중 인정하는 이가 두 명있는데 박정희와 김영삼입니다.

단 박정희의 경우 과도 많죠. 독재 등이요.

그러나 한 편 그 시절 아르헨티나 독재자는 대놓고 사람을 바다위에서 헬리곱터에서 떨어뜨려 죽였죠.

박정희도 일견 소프트한 독재였어요.

시민들 몰래 정치 목적으로 사건들이 있었죠.

공과는 공과 과대로 사실 중심으로 분명히 판단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경주는 고려이전 삼국시대 신라의 유산이죠.

불교와 금의 나라였죠.

찬란했던만큼 많이 망가졌죠.

향락의 극치였죠.

왕과 귀족이 술잔을 띄워놓고 시를 읊으며 니나노하고 논 데가 있는 곳이죠.

국사는 늘 백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니면 필히 망하죠. 과거 모든 왕조의 공식이죠.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향락으로 폭동, 이후 새 시대 이게 항상 공식입니다.

역사는 미래에 교훈을 주기에 항상 역사속에서 관련 사례를 찾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진짜 이유입니다. 현재와의 대화.

그래서 역사를 잊으면 미래가 없다.란 이 의미입니다.

불국사, 사찰이죠.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지요.

다보탑에는 사방으로 사자(?)상 같은 게 있는데 일본이 일부를 가져갔죠. 하여튼 뭘 혼자하는 게 없고 배겨가죠.

또한 이두문자 한자가 어려워 승려들이 외우기 쉽게 붓같은 걸로 적어놓은 한자 약어, 일본의 가타카나의 기원이죠.

최근 일본에서 역사학자가 밝혀내고 인정했는데 주류에서 인정안하죠.

전 세월 흘러 분명 한글도 자기들 꺼라고 우길꺼라고 확신해요.

실제 왠 종교하나가 한글 비스무리한 걸 신이라 여기며 한글을 자기들이 기원이라고 우기죠.

늘 남에꺼 뺐는데 혈안인 민족입니다.

ㅂㅅ같은 주장을 하다 그 황당한 얘기를 진실로 믿어버립니다. 요상한 민족입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이 기록덕후가 된 건 일본때문일 겁니다.

일본 문화중 꽤 괜찮네 하고 보면 그 기원은 대부분 신라와 백제죠. 그러니 철저히 왜곡하는 겁니다.

일본서기 자체가 한국의 설화를 바탕에 두고 중국에도 비슷한 설화가 있죠. 남매얘기요.

가미카제, 신의 바람 그게 일본 국가 성립 역사랑 1도 상관없는 소설책입니다.

대한민국 삼국사기, 삼국유사랑는 체계적인 역사책입니다.

물론 통일 신라때 신라의 관점으로 해석한 부분이 있죠. 하지만 야사인 삼국유사는 승려 일연이 야사의 떠도는 얘기들을 정리한 책이라 국가 미화는 빠진 책입니다.

이렇듯 고대시대부터 한국은 기록하고 하는 게 습관이 되어있는데 그래서 역사가 풍부하죠.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왜곡되고 짖밟혀 진 겁니다.

다시 신채호선생의 조선상고사를 중심으로 역사의식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아직도 역사에서 친일 카르텔이 심어놓은 잘못된 역사가 많습니다. 이영훈 같은 자들이 만들고 그 제자들이 받들고 있죠.

통탄할 일이지요.

저도 중고등학교때 배운 역사와 사회나와서 알게된 역사의 진실이 너무 달라 황당하고 분개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죠.

요즘 유튜브에 꽤 객관적 시선으로 풀어주는 분들이 많으니 다시 보시길 부탁드립니다.

놀랍고 충격적인 것들이 많을 겁니다.

다음은 석굴암, 이건 수학적으로 완벽한 대칭구조죠.

현대에서도 만들기 힘든 문화재이구요.

세계에 자랑스런 유산이죠.

그 시절 완벽히 수학적으로 구현해냈죠.

건축학에서 황금비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보기도 안정적이고 실제 역학적인 관점으로 안정되어 황금비율이라고 합니다.

그게 완벽히 적용된 구조물이죠.

건축 공학인들은 석굴암을 존경의 대상으로 봐요.

알면 알수록 훈민정음과 더불어 첨단과학이죠.

이걸 복원하는데 엄청 힘들었어요. 일본이 콘크리트를 부어 없애버릴려고 했거든요. 민친놈들입니다. 열등감의 표시죠. 세계 전쟁에서 건축물은 파괴를 안합니다.

그 이유는 다들 아시죠.

개밥그릇인 막사발도 국보라 여기며 애지중지하는 일본이 석굴암을 보니 질투심에 눈이 멀어 일으킨 일이죠.

무식한 새끼들이고 상종 말아야할 국가죠.

천마총에 금관, 설명이 필요 없죠. 신라시대 금속 가공술 즉, 세공기술입니다. 고대시대 금속 세공술은 현대의 국방무기처럼 매우 중요합니다. 그걸로 무기를 만드니깐 그 나라의 기술력 집약체입니다. 신라의 세공 기술이 그정도면 전쟁 무기 만들면 난리납니다. 근데 부패 향락이니 사치품만 만드는 거죠. 나라가 부강하거나 망가지면 사치품이 돕니다. 어쩔수 없고 평화롭고 국방이 강하니 국민들은 농사에 바쁘고 왕과 귀족은 정치놀음이나 권력싸움하며 노는 거죠.

할 일은 안하니 나라가 망한 겁니다

그 시절은 농업국가이니 국민은 농사에 바쁘고 요즘처럼 정보기술이 없으니 나라가 망하는 지도 모르고 견제도 안되니까요.

첨성대도 엄청난 재산이죠. 농업국가의 핵심기술은 기후 예측입니다. 즉 날씨가 어떻고 하는 것이지요. 천문관측기구입니다.

어떠신가요 ? 대단하죠...

우린 우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일제에 의해 오염된 역사말고 진짜 대한민국 역사를 요.

유튭으에 많으니 진짜 사실인 역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고등학교때 배운 가짜 역사를 잊으시고 진짜 한국역사와 대면해 보세요.

충격적일꺼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심호흡하시고 찾아봅시당...

우린 아직도 과거와 제대로 못만나고 있다는 거 잊지맙시다.

페이스북 김원장 KBS 기자
.2020.10.23.

“누군가 돈을 펑펑 쓴다면 그는 폰지 사기와 관련이 있다”

옵티머스는 결국 ‘폰지사기’였다. 언젠가 유사수신을 잘 아는 경찰이 이런 말을 들려줬다.

“테헤란로에서 수백만 원씩 술마시는 사람들 절반은 ‘폰지사기’하는 친구들이예요”.

이 인류의 오래된 사기술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우리는 참 꾸준히 폰지사기에 속는다. 모든 폰지사기는 공식이 있다. 옵티머스도 물론 이 공식을 따른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2012년 붙잡힌 ‘스탠퍼드 파이낸셜’의 앨런 스탠퍼드 회장. 80억 달러(대략 10조 정도)를 운용했는데, 그 돈이 어디 투자되는지 직원들도 잘 모른다. 그런데도 131개국 3만여 명이 거액을 투자했다. 공시도 분기별 영업보고서도 없다. 회사는 골프와 크리켓에 거대한 후원자다(비제이싱도 이 회사의 선수였다)

앤런이 그의 전용헬기로 카브리해의 엔티카섬으로 출발하기 전에, 미국의 수많은 부자들이 그에 환심을 사려했다. “저의 가장 신뢰하는 친구도 100만 달러만 당신의 회사에 투자할 수 있을까요?” FBI는 그를 잡기위해 10년 넘게 수사를 벌였다. ‘스탠퍼드 파이낸셜’의 최고 보안책임자는 FBI 마이애미 지국장 출신이였다. 앨런은 2012년 체포돼 징역 120년을 선고받았다.

정확하게 100년 전 찰스 폰지(1882~1949년)가 이탈리아 우표로 폰지사기를 시작한 뒤, 이 뻔한 사기극은 늘 성공한다. 당시 폰지는 45일 만에 50%의 수익을 약속했다. B투자자의 돈을 받아 A투자자의 수익금을 지급하는 이 기발한 금융 다단계 상품에 수만 명의 미국인들이 몰렸다.

그로부터 88년 뒤에 제대로 큰 건이 터졌다. 버나드 메이도프는 폰지사기로 650억 달러(대략 80조원 정도)를 해먹었다. 여러 상원의원들에, 스티븐 스필버그도 속았다. 속을 만 했다. 그는 심지어 나스닥 증권거래소 회장도 역임했다. 그가 폰지사기꾼이라고 누가 1초라도 의심했을까? 메이도프는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큰아들은 맨해튼에서 자살했다.

지금도 우리주변엔 수많은 ‘폰지사기’가 기승을 부린다. 라디오에서 ‘성공예감’을 진행할 때 ‘폰지사기’ 주제만 꺼내면 수많은 문자가 쏟아졌다. ‘뉴질랜드와 산업통상부에서 함께 개발한 신종코인으로 월 수익 5.27%를 보장한다는데 혹시 이 상품도 그 사기인가요? 저는 매월 꼬박꼬박 수익금이 들어오는데요’

(대기업 유럽지사에 근무하는 아들이 부모님이 금융다단계에 투자하시는 것 같은데 자신의 말은 안믿으니 김기자가 직접 전화를 해주면 안되겠느냐고 이메일을 보내와서, 직접 전화를 드린 적도 있다. 끝까지 내말도 믿지 않으셨다)

폰지사기는 매우 구체적인 수익방법을 제시한다. 옵티머스는 안전한 공사채에 투자해 2.8%의 수익률을 보장했다. 고객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 ‘안전’하고 ‘높은 수익률’. 게다가 6개월 마다 수익을 지급한다. 하지만 우리 공기업들의 채권이자율은 1% 초반 수준이다. 나머지는 어디서 벌어들인단 말인가?

정작 옵티머스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들이 돈을 굴렸다는 ‘씨피엔에스’나 ‘아트리파라다이스’는 도대체 뭐하는 회사였을까?(작명술은 거의 유병언 수준이다)

폰지사기꾼들은 처음엔 실제 수익금을 꼬박꼬박 입금한다. 처음에 의심을 하면서 가입을 주저했던 누나나, 형의 친구, 삼촌의 대학동창은 그렇게 뒤늦게 가입을 한다. 그래서 폰지사기의 피해자들은 혈연이나 지연, 학연으로 엮여있다. 4조 원을 받아 가로챈 조희팔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대구지역에 몰려있었다.

그리고 유명한 사람을 판다. 메이도프가 뉴욕 메츠의 구단주인 ‘프레드 윌폰’을 팔고 다니듯, 옵티머스의 고문에는 전직 경제부총리가 등장한다. 현직 장관 가족은 이 펀드에 6억 원을 투자했다. 그렇게 폰지의 유명 피해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폰지 사기의 광고판이 된다.

이 엉터리 펀드에 공기업인 전파진흥원은 1,000억원을 투자했으니, 누가 의심을 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판매는 NH증권이 했다.(뒤늦게 NH증권이 투자를 의심해 영업보고서를 들여다보려하자, 옵티머스측은 온갖 서류를 위조했다. 위조한 시중은행이나 유명 건설사의 도장을 마구 찍어댔다)

사모펀드는 그야말로 Private한 펀드다. 그들만의 리그다. 최소 1억 이상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수십 억 씩 투자한다. 그러니 금융당국이 서류를 들어다 볼 일이 별로 없다. 책임은 결국 투자자가 진다. 어찌 사기꾼들만 탓할 수 있을까.

시중에 돈이 넘치다보니, 300여개 운용사가 1만개 이상의 사모펀드를 운용중이다. 운용액이 500조를 넘는다. 가짜와 진짜를 가리는 것은 투자자의 몫이다. 옵티머스(óptĭmus)는 라틴어로 제일 훌륭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옵티머스펀드는 가짜였다.

‘남의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다’ 러시아 속담이다. 폰지사기가 근절되지 않은 가장 큰 에너지는 뭘까? 인간의 탐욕이다. 그들은 쉽게 돈을 벌려는 우리의 마음을 파고든다. ‘안전한데 높은 수익률’을 제시한다. 하지만 모든 게 불확실한 금융시장에서 분명한 게 하나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안전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제시한다면?

그는 사기꾼이다.

페이스북 김원장 KBS 기자
.2020.10.22.

<검증되지 않은 것들...>

기자협회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한 나라에 오직 10가구가 산다. 그중 7가구는 이미 집이 있고 나머지 3가구, A·B·C는 전세나 월세 등 세입자다. 그런데 시장 상황이 집을 사기 어려워졌다. 그럼 우리 언론은 ‘매매를 포기하면서 전세수요가 늘어 이번엔 전셋값 급등’이라고 보도한다.

그런데 A·B·C가 집을 사는 것을 포기한다고, 추가로 늘어나는 전세 수요가 있을까? A·B·C는 이미 전셋집에 살고 있는데…. 전·월세 시장은 투기수요나 가수요가 없다. 집값이 더 오를 것을 걱정한 A·B·C가 전셋집을 2~3개씩 추가로 계약할까?

물론 1인가구와 신혼부부 등 신규 가구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매매보다 전세를 선택할 경우, 전세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실제 서울의 인구는 줄어드는데, (1인가구가 워낙 늘다보니)

해마다 가구 수는 3~6만 가구 정도 늘어난다.

그런데 서울의 아파트 수도 해마다 2만~4만5000 가구 정도 순증한다. 그리고 대다수 1인가구는 연립의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 1인가구를 시작하지, 아파트 전세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다시말해 전세수요를 크게 높이지 못한다.

서울의 신규 아파트 공급은 2012년과 2013년 2~3만호 정도였다. 2018년과 2019년에는 4만3000 가구와 4만5000 가구가 각각 입주했다. 공급은 더 늘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 서울의 전세수요를 높이는 것일까.

전셋값이 오르는 것은 낮은 이자율과 풍부한 유동성, 그리고 우리 언론의 초치기 ‘전셋값 급등’ 기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전셋값은 2019년을 ‘100’으로 봤을 때 10년 전엔 ‘61’이었다

(KB 부동산통계).

쉽게 말해 10년 전 6억원이였던 전셋값이 지금 10억원이 됐다. 그런데 10년 전 전세대출의 평균 이자율은 4.5%였다. 지금(2020년 1분기) 전세대출 평균 이자율은 2.9%다. 그때 전세 6억원의 이자부담은 2700만원인데, 지금 전세 10억원의 이자부담은 2900만원이다. 이자부담은 10년 동안 7.4% 올랐을 뿐이다(2020년까지 10년 동안 소비자물가는 15.5% 올랐다).

세상에 떠도는 검증 안된 주장이 언론의 가설로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게 건물주들의 월세 인상이다. 언론은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면 집주인들이 이에 맞서 월세를 올린다’고 단정한다. 이 주장이 맞으려면 ‘건물주들이 원하면 언제든 월세를 올릴 수 있다’는 가설도 맞아야 한다.

이 주장은 10여년 전 종부세가 처음 부과됐을 때도 등장했다. 종부세를 내기 위해 강남 집주인들이 앞다퉈 전·월세를 올린다고 했다. 그래서 종부세 부담이 세입자들에게 전가된다고 했다.

진짜 궁금하다. 언제부터 시장경제는 ‘화가 나면’ 가격을 올릴 수 있게 됐나? 그럼 집주인들은 지금도 얼마든지 올릴 수 있는 월세를 선의로 올리지 않고 있는 것인가?

몇몇이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그 주장이 팩트가 될 수는 없다. 몇가지 팩트를 잘 오려붙여 시장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선한 경제학자 맬서스(Malthus)가 ‘인구론’을 발표한 1798년, 영국의 지배계층은 공포에 빠졌고, 결국 서민들의 인구를 줄이기 위해 복지 축소를 결정했다. 수많은 엉터리 가설은 엉터리 주장을 낳는다.

(MB가 서울시장이였을 때, 나는 서울시 출입기자였다. 버스 전용차선 도입과 수도권 환승제 도입으로 서울 교통은 일시 마비됐고, 나는 매일 이 문제를 고발했다. 그런데 10여년후 나는 버스전용차선으로 출퇴근했다. 참으로 편리한 제도였다.지금 생각해보면 내 보도의 주 논거는 제도 개선 직후 거리 시민들의 불평과 주장일 뿐이였다)

언론의 엉터리 추론은 거의 매일 반복된다. 지난 2010년 삼성경제연구소는 G20 회담 개최로 21조 원의 경제효과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것을 모두 받아적었다(기사를 쓰면서도 다들 기자실에서 SERI를 비웃었던 기억이 있다). 농민단체들은 한칠레 FTA로 우리 포도농가가 다 망할거라고 했다(10년후 우리 포도농가의 재배량과 수출량은 모두 늘어 있었다)

지난해 일본의 소재부품 수출 제한조치로, 우리 50년 산업화의 성과가 물거품이 될 거라고 주장했던 그 교수님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있을까? 그리고 진짜 우리가 아파트를 더 짓지 않아서 전세수요가 올라가는 것일까?

의심할만한 논거들이 언젠가부터 당연한 명제가 돼 기사로 올라온다. 의심해야 하는 우리의 직업은 점점 단정하는 직업으로 변한다. 뭐가 주장이고 뭐가 팩트인지 잘 비벼 감춘다. 진실의 세계와 정치의 세계는 그렇게 슬며시 하나가 된다.

페이스북 이주혁 성형외과 의사
.2020.10.19.

-- 차별과 인격 모독에 대한 강력한 징벌 제도가 필요하다 --

모 방송사의 전 간부가 '공인'의 신체적 문제를 조롱, 비하하는 모욕적 표현을 하여 피소당했는데, 그녀는 이를 반성하긴 커녕 "애꾸눈 잭"은 뭐냐라며 항의한다.

이 막장 사건이 어떻게 종결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단지 이 전 간부 한 사람만의 문제만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한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가 "서열화와 차별"이라 생각하는데, 이런 식의, 타자의 특징에 대한 서슴없는 모욕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이유가 그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우월함'과 '열등함'으로 모두를 서열화시키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고, - 예컨대 '우열반' 편성 - 열등함에 속하는 자에 대해 어떤 모욕도 비아냥거림도 말의 폭력도 용인하는 것을 은연중 교육해 왔다. 이런 문화적 현상이 심각한 이유는, 이런 게 항상 사회적 지배 - 피지배 관계를 더 합리화시키는 쪽으로 작동해 버리기 때문이다.

용모, 성별, 성적, 수입, 출신 집안, 출신 대학, 키, 나이, 거주하는 지역 등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의해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을 서열화하는 이런 '관습'은 심지어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이에 따른 신조어들도 늘어난다. 그리고 그런 현상들은 SNS 시대를 관통하며 사람들간의 네트워크를 타고 더 빠르고 파괴력 있게 재생산되는 것같다.

'엘사', '휴거' 이런 말들이 대표적이다. 예전엔 남자 키가 180 이하면 '루저'라는 말이 학생들 사이에 돌기도 했다.

'지잡대'라는 단어는 절대적으로 없어져야 하는 표현이다. 서울보다 지방을 경멸시하며, 대학을 그 명칭만으로 서열화하고 그 중 '하위'로 간주되는 곳은 무자비하게 모욕을 줘도 괜챦다는 이념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단지 '명칭'과 '소재'만으로 그 집단 전체의 가치를 폄훼하고 한계를 지운단 말인가? 미국에는 대도시가 아닌 지방에 있는 대학 중 세계적인 연구 실적을 올리는 곳들도 많은데 말이다.

이런 사회가 되다 보니 모든 것에 서열을 들이대고 놀랄정도로 차별을 일상화시킬 수 있게 되어 버린다.

예컨대 - 똑같이 회사 돈으로 출장을 가는데 - 사장은 1등석 티켓을 주는 것을 당연시하고, 사원은 이코노미 티켓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같이 회사를 위해 나가는 출장이다. 사장이 하는 일은 관리, 사원이 하는 일은 실무로 분업화시켰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직급'과 '서열'이 합리성을 짓밟는다. 같이 비즈니스석을 타거나 같이 이코노미를 타는 것이 옳은 것 아닌가?

나는 너무나 당연한 내용을 가진 '차별 금지법'에조차 당당히 거부반응을 보이는 집단들이 있는 것을 보면 암담하기조차 하다. 나의 자식이 자폐 혹은 발달지체가 될 수도 있고 내가 사고를 당해 걸음이 불편해질 수도 있는 것이고 나도 늙으면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질 것이다.

어떤 사회생활의 어려움이든 불편함이든 우리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게 돼야 한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버스나 지하철을 아무렇지도 않게 타고 다닐 수 있어야 하고 그로 인해 차가 늦어진다 해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 사회가 돼야 한다. 선천성 기형을 가진 사람이 연예인이 될 수도 있어야 하고 피부가 검든 희든 외국인에 대한 우월, 열등을 생각하는 관념도 철저히 없어져야 한다.

온 오프라인을 막론, 공공의 발언대에서 신체적 문제, 학력, 경제적 문제 등에 대해 모욕적으로 발언하는 경우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고 응하지 않을 경우 인신구속까지 가능케 하는 강력한 형법상 징벌제도를 만들 것을 청원한다.

서열화와 차별, 인격 모욕이 일상화, 구조화된 우리 사회는 병들었다. 이 병은 차별금지법보다도 더 강력하고 타협 없는 법을 시행하여 고쳐나가야 한다.

페이스북 김원장 KBS 기자
.2020.10.7.

 

<우리국민이 돈이 너무 많다니요...>

한 신문이 오늘 우리 국민이 돈이 넘치는데도, 정부가 돈을 너무 풀었다는 기사를 썼는데요...

1)기업은 원래 자금조달이 마이너스입니다. 어릴적 사회시간에 배우지 않으셨어요? 우리가 은행에 저축을 하면(자금 운용주체), 기업(자금조당주체)이 이 돈을 빌려 투자를 한다고...

그러니 기업의 자금조달이 더 늘어났다는 것은 (기업이 돈이 부족하다는 것도 맞지만) 기업이 투자를 늘렸다는 뜻도 된답니다. 이 신문은 기업투자가 그토록 안된다고 주장해오지 않았나요..

2)국민들이 돈이 많다보니, 주식투자가 25조원으로 크게 늘었다고 보도했는데, 그중 빚내서 한 투자(신용잔고)가 16조3천억(지난달 기준)이나 됩니다...국민들 돈 많이 없어요...

3)그럼에도 2분기 우리국민의 여유자금이 64조원으로 역대 2번째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여유자금이 많은 것은 이미 뉴스가 아니랍니다. 시중 단기 부동자금이 1,200조원을 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나 기업이 이를 고루 갖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기사대로 국민들 모두 돈이 넘친다면 왜 지금 가계와 기업의 대출 연체율은 올라가고 있나요?

4)반면 '정부는 역대급으로 돈을 펑펑썼다'고 보도하셨는데, 코로나가 본격화된 올 2분기 이후 이렇게 재정을 크게 확대하지 않은 나라가 있는지요? 한 곳만 알려주세요. GDP대비 재정확대 비율로 보면 우리는 그래도 양호한 수준아닌가요?

5)정치적 방향을 정하지 말고 기사를 쓰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기사에 더 힘이 실린답니다.

페이스북 이주혁 성형외과 의사 (코로나 일기)
.2020.10.07.

-- 우리 사회에선 "자산"이 더 소중한가, "사람"이 더 소중한가? --

명동에서 11년째 식당을 하고 있는 김모씨는 "코로나 사태 이후 매출의 90%가 떨어졌는데 매달 임대료로 천만원씩 내야 한다. 벌써 임대료가 6개월이나 밀렸다"고 말했다. (노컷뉴스 차민지.서민선 기자, 10/7. 2020)

지난달 24일 국회는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임차인에게 임대료 감액 청구권을 갖게 했고, 임대료 연체 유예 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시켰다.

허나 고작 '임대료 깎아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이라는 문구를 법에 넣어 국회는 생색만 냈을 뿐이다. 웃기는 것은 임대인이 이를 거절했을 때 강제성이 없으니 이런 명목뿐인 법에 무슨 실효성이 있단 말인가?

코로나 19 사태로 한국 사회경제의 가장 중요한 모순과 특성들이 하나하나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를 기화로 그 모순들을 반드시 사회적 논의 대상에 올리고 개헌을 하든 뭔가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모순.

한국사회는 고통 부담을 '없는 자들, 약자들'에게만 지우고 '가진자들, 강자들'에겐 지우지 않는다. 이것이 대한민국만의 유구한 전통이 되었다. IMF때도 그랬다.

서민들은 국난 극복을 하는데 보태고 싶다며 장신구든 뭐든 금모으기를 하고 혹독한 구조 조정을 감수하고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러나 IMF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부패한 경제 관료들과 금융 책임자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으며, 거대 법인 '오너'패밀리들은 다수 서민의 희생 속에 더 탄탄한 경제적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코로나 19는 지금처럼 가면, 반드시 그때와 똑같은, 아니 오히려 더 극심한 양극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해 보인다. 지금은 1997년의 리와인드 상황이다. 단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 어째서 사회 전체의 위기에서 고통 부담을 한쪽에만 지운단 말인가?

둘째 모순.

위에서 보았듯, 소상공인들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정부 통제를 어떤 저항도 없이 그 어느 국가보다도 더 잘 따랐다.

그러나 그렇게 국가의 방침에 충실히 따른 보답은? 형편없는 매출 속에 거리로 내몰릴 위협에 처한 상황뿐이다.

임대를 놓은 임대주들은 사실상 아무런 고통 분담을 하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국가가 방역을 위한 경제 행위를 통제함에 있어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대면 산업 종사자들은 생계를 위협받을 만큼의 경제활동 통제를 당하는데 임대주들의 경제활동 (임대료 징수)에는 사실상 아무런 통제가 없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사유 재산권의 행사"를 철통같은 원칙으로 세우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 "노동을 할 권리",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권리"등등보다, "사유 재산권의 행사"에 대한 권리를 더 가치있게 보고 더 무겁게 여긴다는 뜻이다.

국회는, 방역 조치로 인해 불가피한 매출 저하가 일어난 임차인이 그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빠르고 명확한 조치를 벌써 취했어야 했다. 코로나 정국 시작된 지가 벌써 10개월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국정만이 아닌, 우리 사회의 뼈대가 되는 근본 철학의 문제다.

과연 우리 사회에선 "자산"이 더 소중한가, "사람"이 더 소중한가? 국회와 행정부는 입으로만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떠들지 말고, 실제적 입법 활동으로 이를 증명해야 한다.

페이스북 김원장 KBS 기자
.2020.9.26.

<정은경은 도대체 우리에게 돈을 얼마나 벌어준 걸까?>

(경제하는 사람이라 뭐든 자꾸 돈으로 환산하려고 하는 버릇이 있다. 정은경과 중대본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지대한 공을 세웠는지는 사실 식상한 이야기다. 하지만 간단한 몇 가지 숫자로 대충이라도 계산을 좀 해보자)

모두가 알다시피 올해 성장률 전망은 어둡다. 29년 대공황수준이다. 일본은 –5.8%, 영국은 –9.5%, 프랑스는 –10.1%다(OECD 9월 전망). 우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10.55%)와 캐나다(-5.8%) 호주(-4.1%), 러시아(-7.3%) 모두 곤두박질 쳤다.

OECD는 올해 한국은 –1.0% 성장 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올해 말에 우리는 두어 계단 더 올라서서, GDP대비 세계 7~8위의 경제대국이 된다(숫자가 뭐 얼마나 중요하랴...국민의 삶이 중요하지)

만약 우리가 올해 다른 OECD국가 중 제법 선전한 호주(-4.1%)만큼만 경제가 망가졌다면? 우리 GDP는 2019년 기준 1조6421억 달러다. 여기에서 4.1%를 돈으로 환산하면 673억 달러 쯤.

우리가 한해 생산하는 부가가치 79조1천 억 원 정도가 허공으로 사라진다. 이중 절반(참으로 대충이다)이 정은경청장과 우리 중대본이 잘해서 지켜낸 것이라고 가정해도 40조 원 가량이다.

비교적 선방한 경제지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비용을 줄인다. 코로나로 나락으로 떨어진 가정이 줄었다면, 의료비도 그만큼 줄었을 것이다.

코로나로 직장을 잃은 근로자가 10명에서 5명으로 줄었다면,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그만큼 줄었을 것이다. 전세계에서 프로야구가 가장 먼저 재개되면서 얻는 효용이며, 한강 공원이 개방되면서 더 팔린 치킨 매출은 얼마일까?

며칠전 우리 정부는 외환보유고를 더 채워놓기 위해 해외에서 외평채(외국환평형기금채권)를 발행했다. 유로채권시장에서 5년 만기로 7억 유로를 발행했다. 그런데 ‘마이너스’금리로 발행됐다. 세상에 이자율이 ‘-0.059%’다.

한국정부가 돈을 빌리는데,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가 이자를 부담한다. 더 쉽게 말하면 정부가 7억 2백만 유로를 빌려서 쓴 뒤 10년 후 7억 유로만 갚으면 된다. 물론 사상 처음이다(도대체 왜 이런 기사는 네이버에 안 올라오는가?)

천문학적으로 풀린 돈을 어딘가 투자해야 하는데, 그나마 한국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이 안전하고 수익성도 높아 보인 것이다. 그렇게 서로 한국 채권을 인수하려고 하다 보니, 우리 정부가 ‘그럼 이자 안줘도 될까요?’ 하고 채권을 발행했는데 다들 인수하겠다고 나선거다.

(그렇게 인수한 우리 국채의 가격이 시장에서 오르면, 그 투자자는 이윤을 남기고 되판다. 투자자들이 마이너스 이자라도 채권을 인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튼튼한 국가신용을 만드는데 정은경과 중대본은 몇%나 기여를 했을까? 그들의 기여는 수많은 경제적 이익을 만들어낸다. 흔들리는 경제를 버티게 한다. 그야말로 ‘방역보국’이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물론 정은경청장과 방역당국의 역할뿐은 아닐거다. 우리 국민의 몸에 배인 ‘방역 의식’이 코로나 검역 전선을 지킨다. 방역당국에 매일 확진자 동선을 제공하는 SKT의 기술진이나, 일요일에도 자가격리자를 확인해야 하는 어느 구청공무원, 백화점 엘리베이터 손잡이를 하루 10번씩 닦는 환경미화원도, 사실 우리 모두 그 전선에 있다. 우리는 진짜 잘 해내고 있다.

우리 현대사에 이렇게 확실하게 선진국보다 더 성과를 낸 적이 있었나. 미국에선 이미 20만 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아침에 언론을 보면 우리는 매일 서로 물어뜯는다.

어제(25일) 월스트리저널은 ‘한국이 코로나 방역의 암호를 풀었다’며 대서특필했다. 우리 올해 성장률이 OECD 최고 수준이라고 전하면서, ‘다른 어떤 나라도 따라하지 못한 광범위한 진단검사와 기술의 조합, 중앙집중식 정부 통제와 대국민 의사소통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우리 언론만 보면 나라 망하는 분위기다.

어떤 정책이, 어떤 정책 당국자의 어떤 결정이 시장에서 얼마만큼의 효용이 있는지 계산할 수는 없다.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도, 노무현의 ’한미FTA‘도 그렇다.

하물며 코로나로 숨진 1명의 목숨의 가치나, 코로나로 숨질 수 있는 1명의 목숨을 살려낸 가치를 어떻게 GDP값으로 치환할 수 있을까. 그래도 그 가치는 엄연히 우리 시장에 파고들어 오늘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다만 체감하지 못할 뿐.

위기가 계속되니 공치사는 나중에 더 자세히 하자. 그래도 전 세계가 인정하는데 우리는 평가가 너무 박하다. 박하다 못해 욕을 하거나 심지어 소송도 한다. 그 가치를 돈으로라도 얼핏 설명하면 이런 헐뜯기 경쟁이 좀 나아지려나.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는 말이 있다. 그녀의 후생에도 이 사실을 누군가 기억해주길...

페이스북 김혜경
.2020.9.20.

이 말 을 해야하나...

일 년 을 넘게 고민 했습니다..

작년 조국사태가 막 터지고 지인의

생일 파티에 초대 되어 간 적이 있었습니다.

화두는 조국 이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tv조선, 채널A 등 종편에 패널로 자주 나오는

ㅇㅇㅇ 도 함께 했습니다.

생일 당사자 가 그 패널 에게 물었습니다.

'' 조국 어떻게 될 것 같아?

'' 추석 연휴쯤 자살할거야!

''정말?

''그럼! 지가 어떡게 버텨? 사돈의 팔촌 주차딱지 까지

다 털건데....우리는 다 계획이 있지..걱정마..곧 죽을거야!

''하하하... 공소권 없음 으로 끝나겠네? 아싸!

공.소.권.없.음. 으. 로.끝.나.겠.네....

니들의 목표가, 목적이 이거 였구나..

죽은 자는 말 이 없다..아니지..

죽었으니까 말 을 못 하는거지..

그 말 을 듣고 제가 어찌 했는지는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저들은 수없이 언급 했듯이 사람이 아닙니다.

저들의 계획은 자살 당하게 도와주는거!

사람의 생명? 가족의 행복?

이딴거 저들은 모릅니다!

자기들의 안위와 호의호식을 방해하는 자는 그 누구라도

자살을 당하게 만들어 버리는 살인집단 입니다!

조선일보 코리아나호텔 방용훈사장 아내가

왜 자살했는지 아십니까?

''조선일보를 어떡게 이겨''

이 짧은 유언을 남기고 한강에 투신 했습니다.

천륜? 인정? 의리? 도덕? 신념? 도리? 정의? 정도?

저들에게는 같잖은 개풀 뜯어 먹는 멍멍소리 정도 입니다.

왜? 진보는 완전무결 해야 합니까?

저들의 도덕성은 시궁창 밑 바닥인데

왜 우리는 서로의 순결을 강요하고 강조 해야 합니까?

저들의 아킬레스건이 도덕성! 순결! 아닙니까?

지들에게는 눈 을 씻고 찾아 봐도 없는 그 도덕성! 순결!

이 프레임을 되받아 덮어 씌우는거 저들의 전형적인

수법인거 모르 십니까?

저들은 사람 아닙니다!

인간 아닙니다!

부인 이던 자식 이던 부모던 자신들의 안위를 방해하는

그 어떤 천륜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매장 시키고 죽이는

잔혹하고 반인륜적인 범죄집단 입니다.

동정심? 측은지심?안타까움?

그런 감정은 사람에게 만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입니다.

저들은 사람이 아니기에 그딴거 개나 줘버려~~~!!!!

저들을 결단코 사람 으로 대하지 마십시요!

앞으로 조국 같이 추미애 같이 뭉개버릴 진보진영 인물들은

무궁무진 합니다.

조국 이니까 추미애 이니까 견디고 버틴겁니다.

또 누가 당 할지 모릅니다.

방어만 하실렵니까? 공격은?

먼저 치고 나가면 안 되는 겁니까?

진보는 방어 하다 한 세월 다 보냅니다!

'내가 치고 나가면 내 지난 실수 들이 다 까발려 질텐데...'

당신의 지난날의 작은 실수가 저들의 태산 같은

붉은 죄 보다 더 무섭고 큽니까?

실수 않하고 정금 같이 사는 사람이 몇 이나 된답니까?

어떤 잘 못 을 했든

지 새끼 셋 이나 낳 준 아내를 엄마를 지하실에 가두고

폭행하고 정신병원에 강금 하려 하고 그 수치스러움을

견디지 못 해서 자살하게 만든 반인륜 범죄 보다 더 큽니까?

딸 자식이 엄청난 마약을 국내에 들여 왔습니까?

아들 놈 이 음주운전에 뺑소니에 운전자 바꿔치기를 했습니까?

민증에 잉크도 마르기 전 에 미성년자 성매매를 했습니까?

지 아들을 한국에서 낳는지 미국에서 낳는지 군대는 가는 건지

마는 건지 두리뭉실 뭉갰습니까?

무당 딸 년 을 청와대에 들여서 드라마나 쳐 보고 낯짝에

주사를 찔러 되다 아이들이 그 차가운 물 속에 수장 되는데

구명쪼끼를 입었는데 왜 못 구하냐는 미친 소리를 했습니까?

3선 국회의원 하는 동안 국토위에 앉아서

수천억원을 뽀리까 봤습니까?

삼천리 금수강산을 사대강인지 지랄 인지 라는 택도 없는

명분으로 아작 냈습니까?

자원외교 방산비리로 국민혈세 수조원을 날렸습니까?

할아버지 아버지의 손자 아들 이라는 그 족보로

대기업 대표 만들려고 국민연금을 날리면서 까지

주가조작을 했습니까?

무슨 죄 인 들 저들의 죄보다 더 크답니까?

치고 나가세요! 싸우세요!

왜? 싸움은 국민들만 한답니까?

이것도 유전 입니까?

동학혁명도 농민들이, 3.1운동도 민초들이,

4.3항쟁도 국민들이,4.19 혁명도 국민들이,

5.18광주 민주화 운동도 국민들이

당신들은 뭘 할겁니까?

촛불도 국민들이 들었고 이렇게 손가락 휘어 지도록

써 갈기는 것 도 국민들 입니다!

저들 처럼 물고 뜯고 싸우세요!

표창장? 황제휴가? 이 말도 않되는 지랄 같은 프레임

당신들은 왜 못 만드는 겁니까???

이게 지금 일 년이 넘 도록 온 국민들 스트레스 받으며

견뎌야 하는 죽을 죄 입니까???

민주당 국회의원 여러분들!

답 해보세요!

표창장이 군대 휴가 가 이리도 죽을 범죄 입니까?

치고 나가면 지역 표 떨어 질 까 두렵습니까?

당신들도 국민들이 개돼지로 보이십니까?

우리도 생각이 있고 생각을 할 줄 알고 의로운 행동을

할 줄 알기에 당신들 뽑아 준거란 거 모르십니까?

국민들을 표밭 정도로 취급하지 마십시요!

당신들이 피터지게 싸워 준다면 죽기 전 유언 이라도

' 우리 집 안 은 평생토록 민주당 만 찍어라'

유언이든 가훈이든 밀어 줄 거란 믿음은 없으십니까?

국민을 믿지 못 하는데 어찌 당신들을 믿을수 있겠습니까?

속 시원하게 해주면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지금 장난하십니까?

뭐 그 딴 사이다 감정 느껴 보려고 이렇게

주일 아침 댓 바람 부터 떠든 다고 생각 하시는 겁니까?

애가 타다 타다 숯검뎅이가 되었단 말 입니다!

당신들도 조국이 추미애가 될수 있습니다!

전 인류에 코로나 라는 역병이 왜 창궐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전 감히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저짓이 악 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더는 두고 볼수 없으신

그 분 께서 걸러 내고 있으신다고 믿습니다.

코로나에 감염된 분들을 뭐라 하는게 아닙니다.

억울하게 걸리신 분들은 반드시 그에 합당한 보상을

갖은 모양과 방법으로 그분께서 해주실겁니다.

위기가 기회 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싸우십시요! 무섭게 싸우십시요!

다시는 덤빌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잔인하고 무섭게

싸우십시요! 그 누구도 흔들수 없는 나라 만드십시요!

헹주치마에 돌 을 나르겠습니다!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적장의 목을 끌어 안고

남강에 투신 한 논개의 결기로 같이 싸우겠습니다!

국민을 믿으세요!

지난 역사가 말 해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착하고 정의롭고 성실합니다!

의로운 국민들 믿고 싸워 주십시요!

제발 더는 국민들 총알받이 만들지 말고 이 번에서

귀하들이 앞장 서 십시요!

든든하고 숙련된 지원병들이 있습니다.

국민 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어 낸 국민의 저력을 의심치 마십시요!

조국의 역사가 바뀌는 그 자리엔 항상

농민들이, 민초들이, 국민들이 있었습니다....

페이스북 김원장 KBS 기자
.2020.9.16.

<정권마다 임대아파트 이름이 다른 이유>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이 마음 놓고 들어갈 수 있는 임대주택은 얼마나 있으면 좋을까? 영국과 프랑스 등 선진국의 장기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20% 정도입니다. 100가구가 산다면 그중 20가구 정도는 정부나 지역사회가 제공하는 주택에서 사는 겁니다.

국가가 경쟁에서 밀린 국민들의 최소한의 주거를 책임져 주는 겁니다. 덴마크나 네덜란드 같은 나라는 30%에 육박합니다. 우리는 4.3%입니다.

최소한의 주거안정은 장기 임대주택에서 출발합니다. 선진국도 도심이나 역세권 임대주택은 입주 경쟁이 치열합니다. 역세권은 10년, 20년 기다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앞선 임차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입주합니다. 우리는 김대중정부 때 임대주택 100만호 건설을 천명하고, 해마다 10만 가구 이상 임대주택을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짜가 많습니다.

임대주택은 일단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가장 서민 주거안정에 부합하는 임대아파트는 ➀영구임대 아파트입니다. 아주 가난하거나 장애인, 한부모가정, 국가유공자가 주로 입주합니다. 월 10만원 남짓하는 관리비 수준의 임대비용만 내고 최대 50년간 살 수 있습니다. 사실상 평생 거주합니다.

➁국민임대주택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표 장기 공공임대주택입니다. 면적은 전용 60㎡ 이하, 그러니까 한 18평 정도인데, 평균 소득의 70%이하면 입주가 가능합니다.

월세는 대략 35만 원 정도입니다. 당연히 서울 도심이나 목이 좋은 곳은 입주를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진짜 임대아파트는 이 영구임대와 국민임대 아파트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무늬만 임대아파트가 많습니다. 이름도 정권마다 바뀝니다. 여기서부터 헷갈립니다.

이명박정부는 ➂‘보금자리 주택’을 만들었습니다. 도심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주변 그린벨트를 풀었습니다. 녹지가 훼손된다는 지적에는 이미 훼손된 ‘비닐벨트’라고 해명했습니다. 문제는 절반만 장기임대주택이고 나머지는 일반에 분양했습니다.

정부가 그린벨트를 풀어 시세보다 크게 저렴한 아파트를 건설해 판 것입니다 (대중교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철이나 버스를 확충하지 않고, 아반떼와 그랜저를 30% 할인된 값에 판 것과 다름없다)

2009년부터 강남구 자곡동, 세곡동, 수서동과 서초구 우면동, 내곡동, 원지동 일대 그린벨트에 1차로 보금자리 주택 2만 가구가 분양됐습니다. 분양가는 4억 3천만 원 정도. 입주 후 6년간의 전매제한이 풀리자 집값은 8억 원을 넘어 2배로 뛰었습니다. 그야말로 로또 분양이 됐습니다.

그저 운으로 당첨된 집주인들은 공공이 그린벨트를 포기하면서 발생한 사회적 이윤을 독점했습니다. 입지가 탁월한 이들 아파트들은 2020년에는 15억 원을 육박합니다. 모두 이명박 정부 때 공공임대주택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겁니다.

정부가 분양 아파트를 싸게 공급하자, 국민들은 모두 이 청약만 기다렸고, 이는 (제값 받는) 건설사들의 대량 미분양으로 이어졌습니다. 시장 전도사 대통령이 만든 최악의 반시장 정책이 됐습니다. 정부가 ‘보금자리 주택’이라는 브랜드에 집착하면서 국민임대 공급은 크게 줄었습니다. 영구임대 아파트는 아예 공급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정부도 또 새로운 브랜드를 내놨습니다. ➃‘행복주택’. 도심 자투리 땅을 꼼꼼하게 찾아내 임대 주택으로 공급합니다. 서민들이 원하는 도심 한가운데의 주택 수요를 충족하고, 신혼부부 등에게도 저렴하게 공급합니다. 문제는 땅이 부족했습니다. 그나마 용산과 서초 목동 등에 계획했던 행복주택의 상당수가 주민반대로 축소되거나 백지화됐습니다.

장기 임대주택을 공급하려면 막대한 재정이 투입됩니다. 그런데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관리하는 LH의 부채가 100조원을 넘었습니다. 당연히 질 좋은 임대주택 공급은 크게 축소됐습니다. 이때부터 공공임대라는 말 대신 ‘공적임대’라는 이상한 용어가 등장합니다. 차마 공공임대라는 말을 쓰기는 부끄러웠을까? 그리고 ➄뉴스테이(NEW STAY)가 등장한 것도 이때입니다.

LH가 아닌 민간이 돈을 투자하고 임대 수익을 가져갑니다. 연 5%이상 임대료를 올릴 수 없고, 한번 들어가면 최대 8년간 거주할 수 있습니다. 소득 상관없이 누구나 입주 가능합니다. 대신 투자한 민간 기업에는 취득세나 재산세 등 각종 혜택을 줍니다. 관리는 LH가 만든 민간업체가 해줍니다.

그런데 투자자들의 수익성을 맞춰 주다 보니, 월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서울의 원룸형 뉴스테이의 월세가 5,60만원을 넘어갑니다(도대체 이게 무슨 서민형 공공임대주택인가?) 하지만 모두 임대주택 통계에 들어갑니다. 이쯤 되면 도대체 어디까지 장기 공공임대주택인가? 간격이 모호해집니다.

➅분양전환 임대아파트는 진짜 많습니다. 민간건설사(주로 부영이 짓는다)가 건설합니다. 5년이나 10년 살고, 그 집을 분양받을 우선권을 줍니다. 분양받지 않으면 당연히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5년 임대는 건설원가에 맞추지만, 10년 장기임대는 분양가를 주변 시세의 90% 선에 맞춥니다.

분양전환가가 쉽게 수 억 원을 넘어갑니다. 판교의 임대아파트는 10년 뒤 분양전환가가 8억 원을 육박합니다. 8억 원이 있으면 왜 임대아파트가 필요한가? 하지만 건설사는 분양대금으로 건축비를 회수하고, 정부는 재정 투입 없이 임대아파트 공급 통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무늬만 임대아파트가 난립합니다.

문재인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MB정부에서도 해마다 3~4만 가구씩 짓던 국민임대아파트는 연 1만 가구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양전환 임대아파트가 훨씬 더 많습니다. 문재인정부가 만든 임대아파트 브랜드인 ➆신혼 희망타운도 분양주택입니다.

위례 신혼희망타운의 경우 전용 55㎡형의 분양가가 4억 6천만원 이였습니다. 정말 서민을 위한 주거복지인가? 정권마다 연 10만호 임대주택 공급의 슬로건을 걸었지만, 사실은 절반 이상이 무늬만 임대아파트입니다.

임대아파트는 대량 공급이 쉽지 않습니다. 건설과 유지보수에 막대한 재정이 들어갑니다. 임대아파트를 지을 도심의 땅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너무 멀리 지은 국민임대아파트는 공실도 제법 있습니다. 하지만 LH가 건설한 임대아파트는 사실 정부와 국민의 자산으로 남습니다.

30년 후엔 얼마든지 땅과 건물에서 건축비를 회수하고 남습니다. 사실 공공임대아파트는 남는 장사입니다(목 좋은 땅에 지구지정을 하고 원주민에게 적당한 가격만 보상해준 뒤, 택지를 조성하고 아파트를 지어 30년 지나 따져보면 자산가치가 어떻게 될까)

결코 예산 퍼주기 사업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정부가 임대아파트를 많이 건설하면 자신의 임기 중 공공부채에 늘어납니다. 먼 훗날 임대아파트라는 자산을 팔아 재정에 보탬이 될 때는 다른 대통령 임기중의 부채를 줄여 줄 것입니다.

청와대는 물론,‘균형재정’을 신주단지로 모시는 기재부 관료들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임대아파트에 수동적인 것은 우연이 아닐지 모릅니다. 덕분에 무늬만 임대아파트가 계속 늘어납니다. 서민 주거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습니다.

정부는 강남을 중심으로 한 다주택자를 타깃으로 부동산 대책의 첫 단추를 뀄습니다. 시장을 선도하는(?) 고가주택의 투기를 잡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대치선경아파트가 20억이든, 30억이든 사실 오갈 데 없는 서민들의 삶은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이태원 이건희 회장의 집이 300억에서 400억 원으로 올라도 국민들의 삶에는 큰 영향이 없습니다.

정부가 최소주거여건도 못갖춘 수많은 도시 서민들의 주거를 먼저 생각했으면 어땠을까. 복지 중에 최고 복지는 ‘주거복지’입니다. 내 가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집만 있다면 수많은 근심이 사라집니다. 살기 좋은 임대아파트가 늘면, 결혼이나 출산을 결심하는 청년도 늘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선순환은 결코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또 주거복지는 선순위에서 밀립니다. 또 짝퉁 임대아파트만 잔뜩 늘어납니다. 지금도 5만5천여 가구가 국민임대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 들어갈 지는 모르지만.

#사진은 15년전 유럽의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취재할 때 들렸던 암스테르담의 공공 임대주택.

스톡홀름의 작고 예쁜 임대주택은 늘 장례를 치르고 새 입주자가 들어갔다, 임차인이 한번 들어가면 나오질 않으니까.

암스테르담에선 프리미어리그를 뛰는 선수가 사는 임대아파트를 취재했다. 유럽은 소득 제한이 없는 임대아파트가 꽤 있다.

유럽 임대주택에는 집을 예쁘게 꾸미고 사는 임차인이 많다, 한번 들어가면 자신이 원할 때까지 살기 때문에. 물론 이런 걸 사회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없다.

페이스북 진혜원 검사
.2020.8.11.

[Why am I not a Christian, 버트런트 러셀]

많이 보도되지 않았지만, 한 종파 신도들이 추미애 법무부장관님을 위협하는 행위를 해서, 장관님께서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하셨다가 열흘만인 어제 조치가 종결됐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장관님께서는 사찰을 자주 찾으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해당 종파는 스스로 일신교의 일종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Why am I not a Christain)'는 영국의 수학자 겸 철학자인 버트런트 러셀경의 1957년 에세이입니다.

페친님들 중 일신교 계열의 신앙을 가지고 계시거나, 교회나 성당에 다니시거나 교회를 운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 페친이시기 때문에 이 글에 대한 편견 없이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의 주된 논점은 기독교(천주교 포함)의 본질에 관한 논쟁이라기보다는, 그 교회(로마 카톨릭 교회 포함)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신앙을 빙자하여 저질러 온 갖가지 흉악한 행위에 촛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처형, 갈릴레오에 대한 종교재판, 독립적 인생관을 가진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잔인하게 화형시킨 행위들, 종교재판의 이름으로 증거 없이 행해진 고문과 살인, 구약으로 대표되는 '천벌, 화형' 등의 잔혹한 보복주의, '공포 마케팅', '배타주의' 등이 그렇습니다.

러셀 경의 결론은, 굳이 종교에 의존할 필요 없이 과학과 지식, 우리 본성에 내재된 선량함, 친절함,측은지심, 사랑으로 서로를 이해할 때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종교를 신앙보다는 문화 현상으로 이해하는 분위기에서 자라서인지, 아니면 영성이 부족해서인지 스스로를 무신론자(불가지론자와는 다른 입장)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종교 현상을 멀리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동지방에서 탄생한 일신교는 본래 '유대교'인데, 주로 구약성경의 하느님을 유일한 신으로 삼는 종파입니다.

그런데,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시기 실제로 십자가형을 당한 것으로 역사서('유대 고대사'등)에 기록된 '나사렛의 예수'의 지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입장이 나뉘면서 이단 논쟁이 시작됐습니다.

즉, 유대교에서는 예수님에 대해 아무런 지위를 부여하지 않고,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카톨릭에서는 삼위일체(아버지 하느님이 곧 아들이고, 성령도 한 몸이라는 것)를 인정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의견이 나뉜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박해하기 시작했으며, 더 동쪽에서는 하느님은 유일신이 맞지만 예수님은 마호멧과 유사한 선지자에 불과하다는 교리를 주장하는 이슬람이 새로 탄생했고, 이후 유럽에서는 죄를 돈 주고 면할 수 있느냐에 대해 교리가 나뉘어 카톨릭과 구별되는 'Protestantism(개신교)'이 탄생했습니다.

유럽에서 두 종교(카톨릭과 개신교)의 전쟁은 수백만명의 학살을 초래했고, 프랑스에서는 신교인 부르봉 왕가의 앙리 4세가 즉위하면서 일단 봉합되는 듯했으나, 결국 앙리 4세 또한 카톨릭으로 개종해야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조셉 스미스라는 분이, 같은 신앙에 기초한 '몰몬'교를 창립했고, 찰스 러셀은 '여호와의 증인'교를 창립했습니다.

모두 일신교로서 일정 부분 같은 경전을 공유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교와 신천지교가 창설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서로 상대방을 '이단'이라고 부르면서 대단히 혐오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신은 하나이고, 진리도 하나라는 강력한 신념이 다른 종교에 대한 혐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한편, 911은 극단적인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이었는데, 종교를 위해 이승에서 목숨을 버릴 경우 내세에서 영원한 우유와 젋은 아가씨들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교육 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아직도 신석기시대의 삶을 구사하는 많은 원시인들을 관찰한 다수의 보고서에 따르면, 일신교만 종교의 이름으로 잔혹한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의 일신교는 대체로 문명화된 국가에서 예배당, 교주, 신도, 교리, 규율 등의 체계를 구비한 상태에서 운영되고 있으므로, 상대방에 대한 배타성과 혐오가 급속히 증폭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경은 매우 다의적인 텍스트입니다. 구약은 잔인하고, 여성 비하적이고, 여성을 악의 근원으로 보는 듯한 부분이 다수 눈에 띄고, 상당히 불편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신약은 약자를 보호하고, 여성을 동등하게 대하며, 불의에 항거할 것을 강조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테러와 위협이 정부 부처를 운영하는 장관에게까지 가해지는 현상을 보니, 종교지도자들이 '혐오', '파괴', '보복' 등 부정적인 메세지가 아니라 '평화', '공존', '화해'를 주된 메세지로 설교하는 시대가 빨리 다가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집니다.

 

페이스북 김원장 KBS 기자
.2020.8.5.

 

후배가 갑자기 아파트를 사겠다고 합니다.

-그때 우리는 반포자이를 왜 안샀을까?

반포 자이, 반포 래미안퍼스티지, 뚝섬 갤러리아포레, 그리고 도곡동 타워팰리스. 서울을 대표하는 주택들이다. 한 채에 3,40억원을 넘는다. 이들 아파트들은 모두 분양 당시 미분양이 극심했다. 우리는 왜 그때는 사지 않고, 지금은 모두 이들 아파트를 사려고 할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다시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럴싸하게 말하자면 행동경제학이라고 할까...)

2008년 분양된 반포자이는 그중 566가구가 일반분양됐다. 절반 이상이 안팔렸다. 이듬해 GS건설은 156채를 부동산 투자신탁에 통매각한다. 매각 대금은 1405억 원쯤... 1채당 8~9억 원을 받은 셈이다. 지금은 2~30억원이 넘으니 GS건설 입장에선 땅을 칠 일이다.

이 무렵 안팔리는 새아파트를 팔기위해 건설사들은 앞다퉈 해외의 교민들까지 모시고 왔다. 그때와 지금, 부동산 시장은, 우리는 뭐가 뭐가 달라졌을까?

첨부/

래미안 퍼스티지/ “래미안을 찾은 해외교포반문단 환영 현수막”/2009년

1.집값이 오른다는 가장 흔한 논리적 근거는 수요는 늘었는데, (정부 규제로) 공급이 줄었다는 주장이다.

서울은 통계청 기준 430만 가구가 산다. 어떤 해는 줄고 어떤 해는 늘어난다. 많게는 한해 5-6만 가구가 늘어난다. 그런데 서울의 인구 수는 해마다 줄어든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가구 수는 늘어나는 것은 점차 1-2인 가구로 재편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서울의 가구수가 설령 5만가구나 늘어난다고 해도, 아파트를 매입하려는 2인 이상 가구는 ‘최대한 많이 잡아도’ 해마다 3~4만 가구 정도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서울의 아파트는 해마다 2만~4만 가구 가량 순증한다(어떤 사람은 서울 주택의 수가 재개발 멸실로 줄어든다고 하는데, 재개발 재건축으로 신규주택 수가 줄어드는 사업장은 없다). 그러니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조금만 맞는 이야기다. 사실은 집값 상승을 기대하며 집주인들이 집을 잘 팔지 않으면서, 기존 주택의 매물이 줄어든 것이 훨씬 더 큰 이유다. 결국 (집주인들의) 마음의 문제다.

2.누구는 금리가 낮아지고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져서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모든 가격의 근본에 ‘금리’가 있다. 하지만 금리는 2008년 이후에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5%를 넘었던 기준금리는 2009년이 지나면서 2%대로 떨어졌다. 그런데 그때는 왜 집값이 오르지 않았을까. 서울의 아파트가격은 2014년까지 계속 급락했다. 그때도 대출 이자율이 반 토막 났는데 우리는 왜 아파트를 안샀을까.

3.집값이 오르는 진짜 이유는, 우리 마음이 갑자기 사고 싶어진 것은 아닐까?

우리는 부동산 시장에 과연 합리적으로 접근할까?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10년전 32평이 10억원 정도였다. 지금은 30억 원이다.

“지금 온갖 과학적 근거를 대면서 서울의 아파트 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왜 그때는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사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때 합리적으로 시장에 접근하지 않았던 우리는 갑자기 10년이 지나 이제 합리적으로 변할 것일까? 인간은 과연 시장에 합리적으로 대응할까? 이마트에서 트리트먼트를 하나 더 준다고 해서 엘라스틴 샴푸를 하나 더 구입한 당신은 합리적인가? 지구인은 왜 1,000만원을 내고 에르메스 핸드백을 살까? 스타벅스 서머래디백에 농협 로고가 붙어있어도 우리는 그 가방을 위해 줄을 설까?

우리는 그닥 합리적이지 않다. 합리적으로 시장에 참여하려고 노력할 뿐. 분명한 것은 우리는 남이 하면 따라 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한 동물이다. 게다가 나의 행복은 남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은 매일 아리팍(반포 아크로리버파크)이 또 2억 원 올랐다고 중계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가 원하는 비싼 것에 눈길이 간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이탈리아의 보석상 제임스 아사엘(James Assael)은 폴리네시아 인근의 흑진주를 수확해 판매했다. 회색빛이 도는 밝은 진주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검은 진주에 눈길하나 주지 않았다. 하지만 몇해 뒤 맨해튼 5번가의 고급 보석상에 루비와 에메랄드와 함께 터무니없는 비싼 가격의 흑진주가 진열됐다. 그러자 소비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저 검은 빛의 아름다운 진주를 살 수 있을까요?’

어떤 언론은 서울의 집이 계속 줄어들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간다. 지금 못사면 영원히 내집 마련을 못할 것 같다. “서울 아파트 오늘이 제일 싸다”라는 기사까지 등장했다. 그 사이 친구는 결국 청약시장에 뛰어들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간절히 원하게 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것이 곧 사라질 것이라도 믿게 만들면 되요!”

집값이 어떻게 될까?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질녁에야 날아오른다' 헤겔은 모든 일들이 지나봐야 해석이 가능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실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10억짜리인지 30억 짜리인지 잘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단순히 사람들이 그 아파트를 사겠다고 줄을 서자, 나도 따라 줄을 서고 싶은건 아닐까?

전문가들은 집값이 오를 합리적 이유를 10가지 과학적 근거로 설명한다. 어느날 집값이 내리면 그 전문가들은 다시 10가지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집값이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할 것이다.

그때서야 우리는 ‘내 그럴 줄 알았지...“라며 시장을 이해한다. 집값은 진짜 왜 오를까? 시장엔 늘 이유가 존재하고 우리는 혹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 이유들을 재조립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디다스 이지부스트 런닝화의 가격은 50만원 쯤이다. 1년에 단 하루 8월 1일 하루 30%가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된다고 가정하자. 소비자들의 줄이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 과거의 가격을 모르고 오늘 35만원에 판매된다면 소비자들의 줄이 이어질까? 만약 지난 가격을 모르고 오늘 그 아파트를 그 가격에 판다면 과연 우리가 그 가격에 구입할까?’

4.주택공급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계속 서울의 주택 공급을 크게 늘리자고 한다. 나는 그 주장이 일부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얼마나 늘리면 될까?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종을 상향해 50층까지 허용하고 1,000가구 정도를 추가로 공급하면 이제 강남에 살겠다는 우리 국민들의 수요가 좀 줄어들까. 잠실5단지를 바로옆 롯데월드타워(123층)만큼 높게 지으면 서울의 주택 공급에 숨통이 좀 트일까? 집을 향한 우리의 욕망이 좀 잦아들까? 비로소 집값이 잡힐까?

내가 태어난 1971년, 한국에선 102만 명이 태어났다. 올해는 32만명이 태어난다. 시간이 지나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는 인구가 1/3 급감하면 그들은 어디에 있는 집을 구입할까? 평택의 시흥의 천안의 제천의 군산의 안동의 아파트들은 어떻게 될까?

5.집값은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 시장경제가 만들어지고 지금껏 오르기만 한 자산이 어디 있을까? 많이 오르다, 많이 내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 또 오른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기에 우리 마음은 너무 부지런하다.

앗, 누군가 저걸 사기위해 뛰기 시작했다. 나도 뛰어야 하는 걸까? 다들 뛰어간다. 빨리 쫓아가야지. 나만 뒤쳐지는 건 아니겠지? 여보 서둘러야되! 그런데, 저 사람들 어디를 향해 가는 거지?

 

페이스북 김원장 KBS 기자
.2020.7.23.

 

<FED의 돈풀기와 한국은행의 돈풀기는 어떻게 다를까?>

다시 위기입니다.

검찰의 시간도 법원의 시간도 아닌 중앙은행의 시간입니다. 어금니 꽉 깨물고 현금을 찍어냅니다. 석달간 연준(FED)는 3,500조 원을 풀었습니다. 돈의 쓰나미가 몰려옵니다. 바이러스가 이길까? 돈이 이길까? 다우지수가 다시 사상최고치를 향해갑니다.

(지구인들은 재정이 부족하면 중앙은행이 현금을 찍어내면 된다는 사실을 눈치챘습니다. 그동안 천문학적인 양적완화를 했건만, 좀처럼 돈의 가치가 안떨어집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코로나 위기. 이제 안심하고 윤전기를 돌릴 시간입니다. 그러니 화폐를 잔뜩 찍어내 혼쭐이 난 로마의 황제들이나 흥선대원군은 얼마나 억울한가...)

연준(FED)이 다시 헬기에서 달러를 뿌립니다. 방법은 1차 양적완화 때와 비슷합니다. 시중 국채나 MBS 같은 채권을 사들입니다. 채권을 사들이면 연준의 현금이 시중은행으로 흘러가고 시중은행이 그 돈으로 대출을 늘립니다. 시중에 돈이 더 돌도록 하는 겁니다.

자꾸 채권을 사들이면서 연준 곳간에는 우리돈 7천조 원 정도의 채권이 쌓였습니다. 물론 모니터상의 숫자일 뿐이지만.

특이한 것은 이번엔 ’코카콜라‘같은 회사채도 사들입니다. 갑자기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을 콕 찝어서 현금을 찔러주는 방식입니다. 뭐가 어때요? 최후의 대부자(The lender of last resort)라면서요? 솔까말. 중앙은행도 신한은행이나 저축은행처럼 어쨌든 은행일 뿐인데.

은인자중하던 우리 한국은행도 나섰습니다. 시중 채권을 마음껏 사주기로 했습니다. 석달간 무제한입니다.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의 시작입니다(한은 부총재가 양적완화라고 했으니, 양적완화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요).

이렇게 합니다. 매주 화요일 한국은행에선 대출 잔치가 벌어집니다. 시중은행이 갖고 있는 RP(환매조건부채권)를 무제한 사들입니다. 사실은 시중은행들이 갖고있는 여러 채권을 맡기고 돈을 빌려가는 구조입니다. “돈필요한 사람 다모여! 고고씽!”

이자율은 0.78%. 거의 공짜죠. 그러니 시중 은행은 이렇게 한국은행에게 빌려온 돈에 조금만 이윤을 붙여 대출이 가능합니다. 한국은행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시중 이자율을 낮추는 겁니다.

한국은행은 기업들의 회사채·기업어음(CP)도 사들입니다. 미국 연준처럼 직접 사들이진 못하고, 대신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은행이 SPV에 돈을 채워놓으면, SPV가 기업들의 채권을 수조 원 어치씩 사들입니다.

주로 코로나로 신용등급이 급락한 기업(Fallen angel)이 대상입니다. 현금이 급한 기업들이 이렇게 회사채를 발행해 급전을 구할 수 있습니다. 결국 부실기업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넘어, 발권력이 있는 중앙은행이 위험기업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겁니다.

어? 이렇게 쉬울 수가. 이제 돈이 필요하면 중앙은행이 발권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됩니다.

‘혹시 돈 필요하세요? 중앙은행이 찍어드립니다’

이렇게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이면 금융시장의 채권 수요가 높아집니다. 채권값도 배추값하고 똑같습니다. 수요가 높아지면 시장에서 채권값이 올라갑니다. 채권값이 오르면 채권 이자율이 내려갑니다(다들 채권을 사겠다는데 기업이 이자를 높게 줄 리가 없죠). 이렇게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집니다. 기업 돈줄의 숨통을 열어주는 겁니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채권을 잠깐 맡아뒀는데, 그 회사가 망해버리면 어떡하죠? 중앙은행 곳간에 넣어둔 회사채는 휴지가 될텐데, 그럼 부실이 중앙은행으로 넘어옵니다.

그래서 미국은 연방정부가 연준이 인수하는 회사채에 보증을 해줍니다. 우리는 정부 보증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은은 갑자기 어려워진 기업 중 부실한 기업(?)을 제외하고 회사채를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안 망할 회사만 골라 급전을 빌려준다는 뜻입니다.

진짜 다른점이 또 있습니다.

달러는 전 지구에서 유통됩니다. 하지만 원화는 주로 한반도에서만 쓰입니다. 그러니 달러는 아무리 찍어내도 좀처럼 가치가 안떨어집니다(작은 방보다 큰 방에서 방귀뀌면 냄새가 희석되는 것과 같다).

우리 돈 원화는 시장이 좁다보니 자칫하면 넘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파도처럼 넘나드는 투기자본과 맞물려 자칫 원화 가치가 폭락할 수도 있습니다. 외환위기가 오는겁니다. ‘연준은 ICBM 쏘는 데 한은은 왜 M16만 쏘느냐?' 그래서 M16만 쏘는 겁니다’

몇가지 고민할 문제들.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기업을 살린다면,

그 권리는 누가 준 것일까? 그 기준은 누가 검증할 것인가? 재정을 한푼이라도 쓰려면 국회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시장에 돈을 공급하는 문제는 어디까지 한국은행이 스스로 결정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되면 정부는 돈이 궁할 때마다 한국은행을 바라볼 겁니다. 세금을 더 거둘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 경제부총리가 보란 듯이 한국은행의 역할을 주문합니다. 이미 지난 추경 중 10조원의 국채는 한국은행이 받아줬습니다.

재정과 통화의 구별이 모호해집니다. 대우조선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은행이 공적자금을 지출하는데 한국은행이 이를 보증하면, 그 돈은 재정인가요? 통화인가요? 민간자금인가요? 기준이 모호해지면 책임도 모호해집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풀린 돈은 태풍이 멈추고 나면, 누구의 주머니에 들어가 있을까?

중앙은행의 역할은 어디까지 일까? 전쟁이 난무하던 19세기 영국 왕실은 전쟁채권을 계속 찍어냈고, 영란은행은 끝없이 이를 인수해 조국을 구합니다. 당시 영란은행의 역할을 규정한 문서를 보면, 초기의 금융불안이 공황이나 광기로 발전할 수 있다며 중앙은행의 역할을 ‘금융시장 안정’으로 규정합니다.

‘볼커 룰’로 유명한 폴 볼커(Paul Volker)도 연준의 설립 목적이 금융시장 안정이라고 했습니다.

글로벌 위기가 반복됩니다. 한국은행법 1조는 ‘물가안정을 도모해 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입니다. 파티가 더 무르익기전에 펀치보울을 치워야 한다는 중앙은행 고유의 역할은 예전의 시험범위가 됐습니다. 한국은행 현관에 있는 ‘물가안정’이라는 액자는 별관 뒤로 빼야할 분위깁니다.

위기가 또 찾아왔습니다. 방법은 또 돈찍기입니다. 어금니 꽉 깨물고, 다시 돈을 양적으로 완화할 시간입니다. '말이 완화적 통화정책'이지 그냥 돈벼락입니다.

그래도 하나는 기억해야죠. 인류 역사에서 화폐가치가 망가지면 늘 제국의 권세도 시들었습니다.

그러니 다시 찾아온 중앙은행의 시간. 섣부른 제국 따라하기도 경계해야 할 때입니다.

 

페이스북 김원장 KBS 기자
.2020.7.6.

 

(7월 8일 아침에 몇가지를 수정했습니다)

#잠실아파트를 사려면 주택 거래를 허가 받아야?

#내 돈 주고 내 아파트 사려는데, 왜 대출을 못받게 할까?

#내가 재건축아파트에 실거주 안했다고, 새아파트를 안준다고?

부동산규제가 심해진다. 보수신문들의 비판도 심해진다. 어느 신문은 ‘사회주의로 가는 지옥문이 열렸다’고 썼다. 규제는 악(Evil)의 대명사가 됐다. 정부는 시장을 어디까지 간섭할 수 있을까?

#노태우대통령은 개인 소유토지의 상한을 둔 택지소유상한제를 실시했다. 가구당 200평이 한도였다. 나라가 내 땅의 소유를 200평으로 제한하다니...

#이명박대통령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카드회사에 내는 카드 수수료를 금융위원회가 정해주도록 했다. 이대통령의 정부는 과자회사 사장까지 불러 과자값을 낮추라고 했다. 나라는 참 많은 것을 간섭하려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규제가 어디까지 선인지 우리는 잘 모른다. 규제는 선하게 만들어졌지만 어느날 시장의 악이 되고, 나쁘다고 족쇄를 풀었다가 어느날 다시 악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박근혜대통령은 사모펀드를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고 자본금요건등을 크게 완화했다. 요즘 한달이 멀다하고 사모펀드가 사고를 친다.

#내가 강남 아파트 사는 것을 정부가 허락하다니?

(사실 2년간 실거주 약속을 하고, 자금조달계획서를 내면 그만이다. 그런데 정부는 거창하게 ‘주택거래허가제’라는 이름을 붙여 그럴듯한 권위를 부여하고 보수진영의 반발을 부른다. 김현미장관은 특히 이런 걸 잘한다)

정부가 사고파는 것을 규제하면 그것은 사회주의일까? 미안하지만 시장에서 사고 팔지 못하는 건 수도 없이 많다. 인간도, 인간의 장기도 사고 팔 수 없다. 상장이 되면 대주주는 자기 주식조차 마음대로 팔지 못하고, 반려동물의 매매를 금지하는 나라도 늘고 있다. 대학졸업장도, 의사자격증도 심지어 헌혈증도 사고 팔 수 없다.

#정부가 재건축추진 아파트에 실거주 안했다고, 분양권을 주지 않는다고?

은마아파트는 10채중 8채에 집주인이 살지 않는다. 대부분 사놓고 재건축을 기다린다. 집이 아니고 사실은 '재건축 펀드'다. 다시 집이 되려면 집주인이 조금이라도 거주하는게 좋다. 그래서 2년 거주를 의무화했다. 41년된 아파트에 2년이라도 살아달라는 뜻이다. 만약 내년이라도 은마아파트가 조합 설립을 신청한다면 그때라도 들어가 살면 된다.

(물론 이미 재건축아파트를 매입한 뒤 하루도 실거주 하지 않았다가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다른 아파트 조합원과의 형평성은 어쩌란 말인가)

그러니 규제한다고 나쁜 것도 아니고, 규제의 형태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따져보면 1215년 마그나카르타도, 1791 혁명의회가 만든 프랑스헌법도 (왕의 권한에 대한) 규제다. 그럼 선진국은 부동산시장을 어떻게 규제할까? 희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일단 세입자를 집주인이 마음대로 내보낼 수 없다. 독일은 ‘특별한 이유’없이 세입자의 계약 갱신을 거부할 수 없다.

프랑스는 세입자가 고령자거나 저소득층인 경우, 나가서 살 집이 확보돼야 집주인이 임대차 갱신을 거부할 수 있다. (내 집인데 한번 들어오면 계속 살다니...)

선진국 대부분의 도시는 공공이 집주인과 세입자의 임대료 산정에 끼어든다. 뉴욕시에는 임대료를 시민위원회가 결정하는 아파트(rent-regulated apartments)가 줄잡아 100만 채가 있다. 심지어 베를린시는 지난해부터 5년간 임대료를 동결했다. (사회주의로 가는 지옥문은 이미 유럽에서 열려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2년+2년이 지나면 언제든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다. 덕분에 우리 세입자들의 평균 거주기간은 3.2년이다(국토부 주거실태조사, 2019년).

이거 말고도 선진국은 주택이라는 재화에 참 지긋지긋하게 간섭을 한다. 퀴즈 하나.

Q 영국에서 반포 자이쯤(우리돈 30억, 대략 200만 파운드)되는 주택을 한 채 사면 취득세를 얼마나 내야할까?

12%의 취득세를 낸다. 이미 주택이 있는 다주택자라면 15%, 취득세만 4억5천만원이다. (이쯤되면 국가가 아니고 강도다.)

※참고로 지난해 뉴욕에 사는 내 지인은 우리돈 7억원이 안되는 주택에 3천 4백만원의 재산세를 냈다. 자본주의의 첨병인 뉴욕에도 사회주의의 바람이 준동하고 있다.( #그래픽 참조)

규제는 형태도 범위도 없다. 사회와 시대가 규정할 뿐이다. 200여 년 전 영국의 아이들은 주 7일, 하루 15시간 가까이 일했다. 그야말로 존버다. 논란이 계속됐고 1933년에서야 영국의회는 9세 이하 아동의 노동을 금지했다.

이 규제에 어린이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며 다수 귀족들의 한탄이 이어졌다. 지금보면 인류사의 갓띵작이지만, 그때는 파격적이고 초월적 규제였다.

지금 우리가 하는 규제는 옳은 것일까? 경제학이 이걸 계산해 내는 것은 쉽지않다. (늘 말하지만) 경제학은 아기코끼리의 몸무게나 라면 끓는 물의 온도처럼 분명한 게 아니다. 인간의 마음이 경제학 논리에 섞이면서 분석도 예측도 어렵다.

그러니 지금 정부의 규제가 어리석다고 단정하는 이들도 사실은 이 규제가 어떤 결말로 이어질 지 계산하지 못한다. 다만 그들 역시 규제에 둘러싸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뿐. (당신이 엉터리 기사를 써도 잘리지 않는 것은, 해고를 어렵게 만든 고용 규제덕분이다)

정부는 이런 저런 원칙을 만든다. 정부가 곧 규제다. 규제가 없다면 정부도 없다. “그런 자유시장은 없다”(어디선가 장하준교수가 한말이다). 인간은 규제를 만들면서 안전해졌고, 덕분에 담대해졌다.

그러니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그 이상을 규제하니 사회주의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지한 것이다. 그런 류의 주장을 허용하기 위해, 또는 방지하기위해 인류는 이미 수많은 규제를 만들어 놓았다. 그것을 '법' 또는 '원칙'이라고 하고, 사회학자들은 '문명의 발전'이라고 한다. 물론 그게 진짜 시장에 최선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Q 끝으로 예시하나.

서울 대치동 A아파트는 주차장이 부족하다. 값비싼 수입차들이 2중주차돼 있다. 이를 지키기위해 (경비인력이 아닌 ) 어르신들이 고용된다. 밤 늦게까지 노출된 공간에서 비싼 차들을 지킨다. 영하 10도가 넘는 밤에도 근무는 계속된다. 우리는 이 고용을 규제해야 할까?

 

페이스북 김원장 KBS 기자
.2020.6.17.

 

돈을 도대체 얼마나 언제까지 풀 수 있을까?

돈이 정말 끝장으로 풀린다. 결국 또 집값이 흔들린다. 그런데 돈을 부으면 금방 말라버린다. 그러니 또 풀어야한다. 자꾸 풀어야한다. 그런데도 인플레가 없다. 희안한 세상이다. 그러니 안심하고 더 돈을 풀어낸다. 그 돈은 어디로 갈까?

예1)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은 A씨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치맥파티를 벌였다. 맥주는 카스를 마셨다. 카스는 OB맥주에서 만든다. OB맥주는 다국적기업 'AB인베브' 소유다. 지난해 오비맥주는 4,09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그런데 단순 투자자(쩐주!)인 'AB인베브'는 4,390억 원을 배당받아 갔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결국 정부가 공급한 돈은 잠깐 A씨 손을 거쳐서 이렇게 해외로 새나간다. 당신은 지난주에 스타벅스를 몇 번이나 갔나? 바다건너 백억 원짜리 요트를 사는 사람들은 주로 이렇게 돈을 번다.

예2)

A씨가 치맥파티를 하면서 bhc치킨을 주문했다. bhc는 지난해 900억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회사는 1,482억 원을 모 사모펀드에게 빌렸다. (MBO방식으로) 연 15%의 이자를 주기로 했다. 돈을 빌려준 사모펀드는 덕분에 지난해 이익 중 222억 원을 가져간다. 요즘은 돈을 이렇게 번다.

오늘도 가맹점주들은 열심히 닭을 튀기고, 이익금의 상당부분은 그들이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투자자에게 간다(그 사모펀드 대표의 부인은 가수 이혜영이다).

거대자본에게 돈이 들어가면 뭐가 문제일까? 돈이 넘치니 잘 쓰지 않는다. 투자처를 잘 못 찾는다. 뭉칫돈이 시장으로 흘러나오지 않고(투자되지 않고), 은행 곳간에 부동자금으로 잠긴다. 그러니 또 시장에 돈이 마른다. 정부나 중앙은행은 돈을 다시 풀 수밖에 없다.

[부동자금]:명사 “이자 같은 거 필요 없으니 받아만 주시구요, 언제든 제가 돌려달라고 할 때 돌려주세요” 하고 은행에 맡긴 돈. 1100조 원이 넘는다.

그러니 돈을 더 풀어야 한다. 돈을 푸는 방식도 과감해지고 신박해진다. 교과서 이론들은 죄다 색이 바랬다. 아...‘시장은 오직 시장이 치유한다’는 신고전학파여...

1)기준금리.

'기준금리가 뭐예요?' 이제 더 내릴 것도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기준금리가 0%다. 내리다 내리다 안되니 Fed는 엊그제 “2022년까지 계속 0%로 갑니다” 선언을 했다. 더 세일 할 것도 없는 백화점이 “이번 세일 내년 연말까지 합니다’”라고 광고하는 것 같다.

2)재정.

‘균형재정’ 이 뭐예요?' <GDP대비 부채비율>...이런 통계는 90년대 <자가용 보유율> 같은 통계가 돼버렸다. 유로존의 코로나 극복을 위한 추가 재정은 5,000억 유로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중앙은행(ECB)는 올해 유로존 각국의 재정적자가 올해 GDP의 8%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3%룰이 있지 않았나?). 이쯤되면 ‘에라 모르겠다’ 수준이다. 국채이자율이 바닥인건 그나마 다행인가.

3)양적완화

정부가 국채를 잔뜩 발행하면 몇 가지 부작용이 있다. 국내 투자자가 그 국채를 인수하면 시중 자금이 마른다. 돈 풀려고 국채발행하는데 시중의 돈이 마르면 말짱 도루묵이다. 또하나, 국채발행이 이어지면 채권값이 떨어지고, 그럼 채권금리가 올라간다. 기준금리 애써 낮춰놨는데 금리가 올라가면 안된다. 방법이 있다.

자, 이제 은인자중하던 중앙은행이 나설 시간이다. 비단 Fed와 ECB만 가능한건 아니다. 한국은행이 시중 채권을 사들이면 된다. 그럼 현금이 정부로 가고, 채권은 한국은행 곳간에 쌓인다. 이른바 ‘양적완화’다. 이번에도 10조 이상 한국은행이 국고채를 인수해줄 분위기다.

이제 정부는 안심하고 국채를 발행할 수 있고, 조폐창은 조용히 현금을 찍으면 된다. ‘중앙은행의 독립’ 이런 이야기하면 꼰데다. 기재부장관이 기자들 앞에서 '한은의 역할'을 주문한다. 위기앞에서 정부와 중앙은행은 ‘환상의 커플’이다. 돈의 무한 발행 공식은 이렇게 바이러스처럼 전세계에 번지고 있다.

돈을 마구 발행하면 죄악(?)이다. 이유는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대원군의 당백전도 그래서 ‘나쁜 돈’ 아닌가? 그런데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인플레가 안생긴다. 돈이 시장에 넘쳐나기 전에 어디론가 새나간다. 큰 구멍이 뚫렸다.

급기야 무한통화발행의 시대

서점가에 MMT(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 이론이 쏟아진다. 국채발행보다 중앙은행의 통화량 공급이 답이란다. 더 이상 금리를 낮출 수 없는 중앙은행은 이제 무한 채권매입으로 역할이 옮겨간다.

진정한 ‘최후의 대부자’가 되려나보다. “우린 모두 케인즈의 넥타이를 맸다” 처럼, CNBC의 앵커가 방송에서 “우린 모두 MMT지지자가 됐다”고 외친다. 이 새로운 통화시험은 얼떨결에 현실이 됐다.

끝으로

이런 글을 읽는 대중의 기분은 어떨까. 도대체 그렇게 많이 푼다는 돈은 왜 나에게만 안 오지? 그것이 정부와 중앙은행이 조만간 또 돈을 푸는 이유다. 물론 잠깐 우리에게 스쳐가겠지만.

 

페이스북 이주혁 성형외과 의사 (코로나 일기)
.2020.5.01.

 

경제공황기의 미국 남부.

메이엘라라는 백인 처녀를 톰 로빈슨이라는 흑인이 구타하고 강간했다는 사건으로 마을이 발칵 뒤집히는데요.
재판에서 흑인 톰의 변호를 맡은 핀치 변호사는 피해자 메이엘라의 증언이 앞뒤가 안 맞음을 차근차근 법정에서 밝혀 나갑니다.
메이엘라는 톰이 자기 목을 조르면서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고 증언 했는데, 사실은 톰 로빈슨은 오른손밖에 쓸 수 없는 외팔이였던 것이죠.

핀치가 "왜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제대로 대답을 못합니다. 그러다 그녀는, 변호사에게 할 말이 있다면서, 지독한 적대감을 드러내며 말합니다.
"저 깜동이 녀석이 날 겁탈했어요. 그런데도 당신네 신사들이 그 일에 대해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모두 비겁한 겁쟁이에요. 점쟎게 뽐내는 태도도 말짱 헛것이에요."
그리고 나서 마구 울음을 터뜨립니다. 분노의 흐느낌으로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성서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책이란 영광스런 평을 받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작품의 하이라이트 중 한 장면이에요.
팩트는 누가봐도 너무나 분명했죠. 메이엘라를 때린 것은 흑인이 아닌 그녀의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는 팩트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팩트에 관심 자체가 있질 않았어요. 사실은 검둥이가 반드시 죄인이어야만 하는 것이었어요. 백인들이 거짓말장이가 되어선 안 되니까요.

약 7~8개월 전. 수많은 언론사들이 한 가족을 완전히 쓰레기로 몰아갔었습니다.
한 신문사는, 그 집 딸이 일반 학생들보다 3배나 낮은 경쟁률로, 정원외 특례로 외고에 입학했다며 '단독'을 붙여서 보도했다가 일주일만에 보도를 철회했지요.
그집 딸이 정원외 특례가 아니라는 건 조금만 취재해도 알 수 있었던 사실이에요. 그런데도 의기양양하게 보란 듯이 그런 거짓 보도를 했다가 메칠만에 잘 보이지도 않는 한쪽켠에 '바로잡습니다'라고 다시 기사를 냅니다.

그런데 그런 게 한 두개가 아니었어요. 사실은 모든 보도, 전부 다가 그랬어요.

어떤 야당 의원은 그 집 딸이 낙제를 했는데도 천만원 넘게 장학금을 받았고 포르쉐를 몰고 다닌다고 떠들어댔고 언론에선 그걸 확인할 생각 1도 없이, 그대로 보도를 냅니다. "더이상 국민을 우롱하지 말라"고 기세등등하게 요구까지 하면서 말이죠.....
검찰은 그 장학금은 '뇌물'이라면서 기소합니다. 실소가 터져 나오는 부분이죠. 뇌물죄란 건 고위 공직자한테 줄 때 성립되는 말인데 장학금은 그분이 높은 자리에 오르기 훨씬 전 (박근혜정부때....)부터 지급되었던 것이니, 그게 말이 되나요?
그냥 처음부터 죄다 완전 엉터리였던 거에요.

더 심한 건 온 국민이 다 아는 표창장 얘기입니다. 이건 아예 미친 짓이었어요. 검찰이, '이 사람들 포토샵으로 직인 파일을 복붙해서 가짜 표창장을 만들었다'고 침 튀기며 신이나서 떠들고, 대한민국 온 매체가 다 그거 보도하느라 바빴죠.
그런데 지금 와서 검찰 스스로가 다른 증인심문을 하는 과정에서,
"사실은 그런 직인 파일 없었죠?"이렇게 물어봅니다. 이들이 조금의 수치심이라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법정에서 저런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나 거짓말 했거든? 맞지?" 이렇게 물어본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아무도 이성적이지 않았어요.
아무도 진실에 관심이 없어 보였고요.

모든 신문 방송사들이, 그저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뭔가 강냉이 뻥튀기마냥 펑펑 터지는 그거 불꽃놀이 구경하듯 사람들 모여들게 해서 보여주려 안달이었어요. 물론 팩트에는 관심 1도 없고 취재할 생각도 안 했구요.

만약 이 가족에 대해 조금이라도 옹호, 변호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어김없이 엄청난 십자포화가 날아들었죠. "넌 뭐 털면 깨끗하냐?" 이런 식으로 뒷조사를 해서 인신공격까지 퍼부었고요.
저도 그런 걸 당한 사람 중의 하나였고요. 오죽하면 애엄마가 "조국 편들지 마 당신한테 좋을 것 없어"라고 여러 번 얘기할 정도였죠.

그 뻥튀기 불꽃놀이의 시작이었던 검찰에선 쪼무래기 검사가 한참 위에 상사한테 초상집에서 막 소리도 질렀대요.
"왜 조 전 장관이 무혐의야? 너같은 게 검사야? "
상하관계가 중요한 검찰에서, 이건 거의 눈이 뒤집혔다고 봐야죠.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상가집에서 나온 이 말이 시사하는 의미는 굉장히 커요.

그 사람이 죄인인 게 팩트야? 애초부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거에요.
그 사람이 죄인이어야만 한다. 그가 죄인이 아니어선 안 돼. 그럼 우리 다 큰일 나. 그런 집단적 거짓과 비양심을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에요.

지난해 한동안. 우리나라 전체가 집단적 양심을 잃었어요.

지금에 와서야, 일부의 언론사들은 팩트 체크를 하면서, 실제 팩트는 이것이었다라면서. 그렇게 하나둘씩 양심으로 돌아서기 시작했어요.
합리적 이성을 가진 사람에게, 양심을 속이고 거짓을 옹호하는 행동은,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일일 테니까요.

하지만 일부의 언론사들은 여전히 양심을 지키는 일보다도, 자기한테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걸 더 힘들어하고 있어요. 그 가족들 하나만 철저히 쓰레기가 돼 주면, 자신들은 오류도 잘못도 없는 게 되니까 말이죠 .

소설 속에서.

핀치에게 그의 어린 딸이 따져묻습니다. 아버지가 검둥이 변호를 한다고 친구들이 지독하게 놀려댔기 때문이죠.
"왜 우리가 이성을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학교 친구들은 어느 누구도 이성을 지키지 않는데 말이죠."
그러자 핀치 변호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사건, 톰 로빈슨 사건은 아주 중요한 한 인간의 양심과 관계 있는 문제야. 내가 그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난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어."

핀치 변호사가 검둥이 톰을 변호한 이유는 톰이 그 어떤 오류도 흠집도 없는 정인군자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떤 집단이 거짓도 서슴치 않으며, 사람을 비이성적으로 몰아세우는 현장을 목격하고서 양심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죠.

지난 가을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 모두의 심정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저놈들 나쁜 놈들이야"라고 아무 근거 없이 뭇 사람들이 흥분해서 날뛸 때. 그 한가운데서
"그들이 잘못했다는 근거는 충분하니?" 라고 말할 용기.
양심을 지킬 용기. 집단적 거짓에 대항할 용기.
그것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평생동안 지속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런 긴 싸움은 의미가 없지 않아요. 조금씩이라도 우리가, 더 합리적이고 부끄럽지 않은 사회에서 살게 되는 길이라면 말입니다..

 

본 적 : 경상북도
성 명 : 류 시 민
죄 명 :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요지

본 피고인은 1985년 4월 1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고 이에 불복 다음과 같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합니다.

다 음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형량의 과중함을 호소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또한 본 피고인은 1심 판결에 어떠한 논란거리가 내포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며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본 피고인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양심이라는 척도이지 인간이 만든 법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률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본 피고인으로서는 정의로운 법률이 공정하게 운용되는 사회에서라면 양심의 명령이 법률과 상호적대적인 모순관계에 서게 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으리라는 소박한 믿음 위에 자신의 삶을 쌓아올릴 수밖에 없었으며 앞으로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집단과 인간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행위는 본질적으로 그 사회의 현재의 정치적·사회적·도덕적 수준의 반영인 동시에 미래의 그것을 결정하는 규정 요인 중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폭행법이라 함) 위반 혐의로 형사소추되어 1심에서 유죄선고를 받은 본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이 관련된 사건이 우리 사회의 어떠한 정치적·사회적·도덕적 상태의 반영이며 또 미래의 그것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규명함과 동시에 사건과 관련된 각 개인 및 집단의 윤리적 책임을 명백히 밝힐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 사회가 젊은 대학생들이 동 시대의 다른 젊은이들을 폭행하였다는 불행한 이 사건으로부터 “개똥이와 쇠똥이가 말똥이를 감금 폭행하였다. 그래서 처벌을 받았다”는 식의 흔하디 흔한 교훈밖에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건 자체보다 더 큰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 항소이유서는, 부도덕한 개인과 집단에게는 도덕적 경고를, 법을 위반한 사람에게는 법적 제재를, 그리고 거짓 성령 속에 묻혀 있는 국민에게는 진실의 세례를 줄 것을 재판부에 요구하는 청원서라 하겠습니다.
거듭 밝히거니와 본 피고인은 법률에 대해 논한다는 것이 아니므로 이 글 속에서 ‘책임’ ‘의무’ ‘과실’ 등등의 어휘는 특별한 수식어가 없이 사용된 경우, 그 앞에 ‘윤리적’ 또는 ‘도덕적’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된 것으로 간주하여 무방합니다.

그리고 본 피고인이 특히 힘주어 말하고 싶은 단어나 문장에는 윗점을 사용하였습니다. 본 피고인은 우선 이 사건을 정의(定義)하고 나서 그것을 설명한 다음 사건과 관련하여 학생들과 현정권(본 피고인이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 비추어 제 5 공화국이 합법성과 정통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표시하기 위해 정부대신에 정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각자가 취한 행위를 분석함으로써 이 글의 목적을 달성코자 합니다.

이 사건은 학생들에 의해서는 ‘서울대 학원 프락치사건’으로, 정권과 매스컴에 의해서는 ‘서울대 외부인 폭행사건’으로 또는 간단히 ‘서울대 린치사건’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명칭의 차이는 양자가 사건을 보는 시각을 전혀 달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건의 본질 자체가 달라질 리는 만무한 일입니다.

본 피고인이 가능한 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사건을 정의하자면 이는 정권과 학원간의 상호적대적 긴장이 고조된 관악캠퍼스 내에서,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은 네명의 가짜학생을 다수의 서울대 학생들이 연행·조사하는 과정에서, 혹은 약간의 혹은 심각한 정도의 폭행을 가한 사건입니다.

‘정권과 학원간의 상호적대적 긴장상태’를 해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4월 민주혁명을 짓밟고 이땅에 최초의 군사독재정권을 수립한 5·16 군사쿠데타 이후 4반세기에 걸쳐 이어온 학생운동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혈사(血史)와 아울러 가열되어온 독재정권의 학원 탄압사를 살펴 보아야 할 터이지만, 이 글이 항소이유서임을 고려하여, 1964~65년의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소위 6·3사태), 1974년의 민청학련 투쟁, 1979년 부산마산지역 반독재 민중투쟁 등을 위시한 무수한 투쟁이 있어 왔다는 사실을 지적하는데 그치기로 하고 현정권의 핵심부분이 견고히 형성되어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1979년 12월 12일의 군사쿠데타 이후 상황만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경제적 모순·사회적 갈등·정치적 비리·문화적 타락은 모두가 지난 날의 유신독재 아래에서 배태·발전하여 현정권 하에서 더욱 고도성장을 이룩한 것들입니다.
현정권은 유신독재의 마수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와 민주회복을 낙관하고 있던 온국민의 희망을 군화발로 짓밟고, 5·17 폭거에 항의하는 광주시민을 국민이 낸 세금과 방위성금으로 무장한 ‘국민의 군대’를 사용하여 무차별 학살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피묻은 권력입니다.

현정권은 정식출범조차 하기 전에 도덕적으로는 이미 파산한 권력입니다.
현정권이 말하는 ‘새시대’란, 노골적·야수적인 유신독재헌법에 온갖 화려한 색깔의 분칠을 함으로써 그리고 총칼의 위협아래 국민에게 강요함으로써 겨우 형식적 합법성이나마 취할 수 있었던 새로운 ‘유신시대’이며, 그들이 말하는 ‘정의(正義)’란 소수군부세력의 강권통치를 의미하며, 그들이 옹호하는 ‘복지’란 독점재벌을 비롯한 있는 자의 쾌락을 뜻하는 말입니다.

‘경제성장’ 즉 자본주의 발전을 위하여 ‘비효율적인’ 각종 민주제도(삼권분립, 정당, 노동조합, 자유언론, 자유로운 집회결사) 등을 폐기시키려 하는 사상적 경향을 우리는 파시즘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파시스트 국가의 말로가 온 인류를 재난에 빠뜨린 대규모 전쟁도발과 패배로 인한 붕괴였거나, 가장 다행스러운 경우에조차도 그 국민에게 심대한 정치적·경제적 파산을 강요한 채 권력내부의 투쟁으로 자멸하는 길뿐임을 금세기의 현대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나찌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군국주의 일본은 전자의 대표적인 실례이며,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 합법정부를 전복시키고 등장했던 칠레·아르헨티나 등의 군사정권, 하루저녁에 무너져버린 유신체제 및 지금에야 현저한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권 따위는 후자의 전형임에 분명합니다.

국가는 그것이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만이 구성원 모두에게 서로 방해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복과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기 때문에 존귀합니다.
지난 수년간,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요구하며 투쟁한 노동운동가, 하느님의 나라를 이땅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양심적 종교인, 진실과 진리를 위하여 고난을 감수한 언론인과 교수들, 그리고 민주제도의 회복을 갈망해온 민주정치인들의 선봉에 섰던 젊은 대학인들은, 부도덕하고 폭력적이며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반민중적이기 때문에, 국민이 자유롭게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조건 아래서라면 단 한주일도 유지될 수 없는 현 군사독재정권이 그토록 존귀한 우리 조국의 대리인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해 왔습니다.

우리 국민은 보다 민주적인 정부를 가질 자격과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정권은 12·12 군사쿠데타 이후 4년동안 무려 1,300여명의 학생을 각종 죄목으로 구속하였고 1,400여명을 제적시키는 한편 최소한 500명 이상을 강제징집하여 경찰서 유치장에서 바로 병영으로 끌고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정 구석구석에 감시초소를 세우고 사복형사를 상주시키는 동시에 그것도 모자라 교직원까지 시위진압대로 동원하는 미증유의 학원탄압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한번도 이러한 사실을 시인한 적이 없으며, 1982년 기관원임을 자칭한 괴한에게 어린 여학생이 그것도 교정에서 강제추행을 당하는 기막힌 사건이 일어났을 때조차, 최고위 치안 당국자는 국회 대정부 질의에 대하여 “교내에 경찰을 상주시킨 일이 없다. 유언비어의 진원지를 밝혀내 발본색원하겠다”고 태연하게 답변하였을 정도입니다.
현재 학원가를 풍미하고 있는 전경 특히 경찰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은 이와 같은 정권의 학원탄압 및 권력층의 상습적인 거짓말이 초래한 유해한 결과들 중의 한가지에 불과합니다.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양떼를 잃어버리는 작은 사건을 낳는데 그쳤지만 주 유왕(周 幽王)이 미녀 포사(褒似)를 즐겁게 하기 위해 거짓봉화를 울린 일은 중국대륙 전체를 이후 500여년에 걸친 대 전란의 와중에 휩쓸리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양치기 소년의 외침을 외면한 마을사람들이나 오랑캐에게 유린당하기까지 주(周)왕실을 내버려 둔 제후들을 어리석다 말하지 않습니다.

정권의 주장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불신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더욱이 야만적이고 부도덕한 학원탄압은 전국 각 대학에서 목숨을 건 저항을 유발하였고 그 결과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생명을 잃거나 중상을 당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만도 고 김태훈·황정하·한희철 등 셋이나 되는 젊은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으로 83년 12월의 소위 자율화조치 이후에도 주전선(主戰線)이 교문으로 이동하였다는 단 한가지를 제외하면 거의 변함없이 계속되어 왔으며, 특히 지난해 9월 총학생회 부활을 전후하여 더욱 강화되었던 수사기관의 학원사찰, 교문앞 검문검색, 미행과 강제연행 등으로 인해 양자간의 적대감 또한 전례없이 고조된 바 있습니다.
즉 소위 자율화조치 이후에도 ‘학원과 정권 사이의 적대적 긴장상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바로 이와 같은 조건 하에서 수명의 가짜학생이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을만한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건입니다. 이들의 의심을 받게된 경위 및 사건경과는 이미 밝혀진 바이므로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여기에서 가짜학생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설명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실제로 정보원인지 그 여부는 극히 중요한 정치적 관심사임에 분명하지만 사건의 법률적·윤리적 측면과는 거리가 있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연행·감금·조사 또는 폭행한 것은 결코 정보원이나 단순한 가짜학생이 아닌 ‘정보원 혐의를 받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폭력 자체가 정당할 수는 없으며 또 아니라고 해서 학생들의 일체의 행위가 모두 부당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이 문제에 대해 재론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정보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위의 이유에 의해서 입니다.
갖가지 목적으로 학생처럼 위장하고 캠퍼스를 배회하는 수많은 가짜 학생들, 이들은 소위 대형화·종합화된 오늘날의 대학에서, 졸업정원제·상대평가제 등 대학을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마비되어 제 한 몸 잘사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전문기능인의 집단양성소로 전락시키기 위해 독재정권이 고안해 낸 각종 제도가 야기한 바 대학인의 원자화·고립화 등 비인간화 현상을 틈타 캠퍼스에 기생하는 반사회적 인간집단으로서, 교내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절도·사기·추행·학원사찰의 보조활동(손형구의 경우처럼) 등과 복합적인 관련을 맺고 있음으로 해서 대학인 상호간에 광범위한 불신감을 조성하고 대학의 건강한 공동체문화를 파괴하는 암적 존재입니다.

현정권은 이들이 대학인의 일체감을 파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내에 사복경찰을 상주시킴으로써 야기된 숱한 문제들마저 이들에게 책임전가시킬 수 있다는(여학생 초생사건 때처럼) 이점 때문에 가짜학생의 범람현상을 방관 또는 조장하여 온 것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이들에 대해 평소 품고 있는 혐오감이 어떠한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일입니다.
이들이, 이들 가짜들이, 혹은 복학생들의 소규모 집회석상에서 혹은 도서실에서, 법과대학 사무실에서, 강의실에서, 버젓이 학생행세를 하면서 학생활동에 대한 정보 수집활동을 하다가 탄로났을 경우, 법이 무서워서 이를 묵과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이겠습니까?
상호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바로 그들을 보냈으리라 추정되는 수사기관에, 정보원 혐의를 받고 있는 가짜학생의 신분조사를 의뢰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대학의 교정은 개방된 장소이므로 은밀한 사찰행위뿐만 아니라 예전처럼 수백 수천의 정·사복 경찰이 교정을 온통 휘젓고 다닌다 할지라도 이는 전혀 비합법 행위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본 피고인은 이러한 행위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반면 이러한 부도덕한 학원 탄압행위에 대한 학생들의 여하한 실질적 저항행위도, 비록 그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 일이지만, 현행법률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정의로운 사회에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법과 양심의 상호적대적인 모순관계가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그 누구도 이 상황에서 법과 양심 모두를 지키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우리 사회 전체가, 물론 대학사회도 포함하여, 당면한 정치적·사회적 모순의 집중적 표현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은 바로 이와 같은 논거에 입각한 것입니다.
법은 자기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지만 양심은 그렇지 못합니다.
법은 일시적 상대적인 것이지만 양심은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양심은 하느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 피고인은 양심을 따랐습니다.

그것은 법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양심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이 사건에서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어느 사건에서도 그랬습니다. 지난해 9월, 10일간에 걸친 일련의 사건은 이렇게 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자체로서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이 사건은 서울대생들의 민한당사 농성사건, 주요 학생회 간부들의 제적·구속, ‘학생운동의 폭력화’에 대한 정권과 매스컴의 대공세, 서울대 시험거부 투쟁과 대규모 경찰투입 등 심각한 충격파를 몰고 왔으며 공소 사실을 거의 전면부인하는 피고들에게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일단락된 바 있습니다.

사건종료 다음날인 9월 28일 전학도호국단 총학생장 백태웅과 뒤늦게 프락치사건 대책위원장 겸 사회대학생장 오재영군 등이 지도한 민한당사 농성은 자연발생적·비조직적으로 일어난 이 사건을 부도덕한 학원사찰 및 정권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는 조직적 투쟁으로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가짜 학생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법률적·윤리적 과실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학원사찰의 존재라는 별개의 정치적 문제를 덮어둘 수는 없는 일이므로 이 투쟁은 그 자체로서 완전히 정당한 행위였다고 본 피고인은 생각합니다.

이 일이 있은 다음 날인 9월 29일 저녁 학교당국은 이정우·백기영·백태웅·오재영 등 4명의 총학생회 주요간부를 전격적으로 제명 처분하였으며 본 피고인은 9월 30일 하오 경찰에 영장없이 강제연행 당한 후 며칠간의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습니다.
본 피고인이 가장 먼저 연행당한 것은 미리 도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도피하지 않은 것은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고,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은 도망칠만큼 잘못한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은 경찰·검찰에서의 조사 및 법정진술시 기억력의 한계로 인한 사소한 착오 이외에 여하한 수정·번복도 한 바 없었으며 오직 사실 그대로를 말했을 따름입니다.
어쨌든 서울시경국장은 10월 4일 소위 ‘서울대 외부인 폭행사건’의 수사결과를 도하 각 신문·TV·라디오를 통해 발표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4명의 외부인을 감금·폭행한 이 일련의 사건이 복학생협의회 대표였던 본 피고인 및 학생대표들의 합의 아래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10월 4일 이전에 경찰에 연행된 몇몇 학생들 중(본 피고인을 포함) 어느 누구도 이 발표를 뒷받침해줄 만한 진술을 한 바 없으며, 이후에 작성된 구속영장·공소장 및 관련학생들의 신문조서들이 모두 이 발표의 기본선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임은, 만일 이 모든 서류를 날짜별로 검토해 본다면, 누구의 눈에나 명백한 일입니다.

한마디로 10월 4일의 경찰발표문의 본질은 모종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견강부회·침소봉대·날조왜곡 바로 그것입니다. 그 목적이란 다름이 아니라 학생운동을 폭력지향적인 파괴활동으로 중상모략함으로써 이 사건의 정치적 성격은 물론 현정권 자체의 폭력성과 부도덕성을 은폐하려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이 비조직적·우발적으로가 아니라, 학생단체의 대표들에 의해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몇몇 관련 학생뿐만이 아니라 학생운동 전체를 비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총학생회장, 학도호국단 총학생장, 프락치사건 대책위원장, 복학생협의회 대표 등은,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인간이며 어떤 행위를 실제로 했는가에 관계없이 선전을 위한 가장 손쉬운 희생물이 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수법은 지난 수십년간 대를 이어온 독재정권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상투적으로 구사해온 낡은 수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현정권은 막 출범한 서울대 학생회의 주요 간부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봉쇄하는 동시에, 60만 대군을 동원해도 때려 부술 수 없는 학생운동의 도덕성을 훼손시키는 데에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마치 자신이 더 도덕적인 존재가 된 듯한 자기만족조차 조금은 맛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검찰 역시 사실을 밝혀내는 일보다는 경찰의 발표를 뒷받침하기에만 급급하여 대동소이한 내용의 공소를 제기하고 그것에만 집착하여 왔습니다.
사건 발생후 일개월도 더 지난 작년 11월, 관악경찰서 수사과 형사들이 김도형·손택만군 등 무고한 학생들에게 가혹한 고문을 가함으로써 공소사실과 일치하는 허위자백을, 형사들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짜내었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즉 경찰은 본 피고인들이 ‘폭행법’을 위반하였다는 증거를 바로 그 ‘폭행법’을 위반하여 관련된 학생들을 고문함으로써 짜낸 것입니다. 그 짜내어진 허위자백이 증거로 채택된다는 사실을 못 본 체 하더라도 ‘법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중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전혀 정당한 윤리적 기초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양심인으로서는 복종의 의무를 느낄 필요가 없었던 지난날의 긴급조치나 현행 ‘집시법’과 달리 이 ‘폭행법’은 지켜져야 하며 또 지켜질 수 있는 법률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각인은 현정권에 대한 정치적 견해에 따라 이 법 앞에서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본 피고인은, 과분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폭행·고문하는 각 대학 앞 경찰서의 정보과 형사들이 그 때문에 ‘폭생법’ 위반으로 형사소추당했다는 비슷한 이야기조차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19일, ‘민주화운동 청년연합’이 주최한 광주항쟁 희생자 추모집회에 참석하였다가 귀가하는 길에, 그녀 자신 제적학생이면서 역시 고려대학교 제적학생인 서원기씨의 부인 이경은씨가 동대문 경찰서 형사대의 발길질에 6개월이나 된 태아를 사산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부부는 이 법의 보호 밖에 놓여 있음이 누구의 눈에나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고소장을 접수하고서도, 검찰은 수사조차 개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 역시 여러 차례 수사기관에 연행되어 조사받는 과정에서 폭행당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 법의 보호를 요청할 엄두조차 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협박 또는 폭행을 가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 피고인은 폭력법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말았습니다.
본 피고인이 굳이 지난 일을 이렇듯이 들추어냄은 오직, 흔히 이야기되고 있는 바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의 존재를 환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 역시 앞에서 밝힌 바 현정권의 정치적 음모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검찰이 주장하는 바 공소사실의 대부분은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경찰이 날조한 사건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서, 한편에 있어서는 정권과 매스컴이 공모하여 널리 유포시킨 일반적인 편견이 기초 위에 서 있으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이 고문수사를 통해 짜낸 관련 학생들의 허위자백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공허한 내용으로 가득찬 것입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이 이 사건에서 드러난 학생들의 과실과 본 피고인 자신의 법률적·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이렇듯 정권의 부도덕을 소리 높이 성토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짜학생에 대한 연행·조사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손치더라도, 이들에게 가한 폭행까지를 정당화할 의향은 없습니다. 조사를 위한 감금은 가능한 한 짧아야 하며 폭행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현상적으로 폭력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본질상 다 폭력의 영역에 속할 수는 없지만, 무력한 개인에게 다중이 가한 폭행은 비록 그것이 경찰에 대한 이유있는 적대감의 발로인 동시에 그들이 상습적으로 학생들에게 가해온 고문을 흉내낸 것이라 할지라도 학생운동의 비폭력주의에서 명백히 이탈한 행위라고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또 폭행을 가한 당사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책임을 감당하지 않은 것 또한, 비록 그것을 어렵게 만든 당시의 특수한 정치적 사정이 개재됐다손치더라도, 학생들이 가진 윤리적 결함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자신 폭행과 절대로 무관하며사건 전체와도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여 틀림이 없을 총학생회장 이정우군이 스스로 모든 책임을 떠맡아 항소조차 포기했다고 하는 아름다운 행위가, 그 누구도 선뜻 폭행의 책임을 감당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윤리의 공백상태를 어느 정도는 메꾸어 주었다고 본 피고인은 확신합니다.

본 피고인은 역시 언행이나 조사를 지시한 사실이 없지만(지시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만일 그럴 필요가 있었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직접 그들을 연행·조사하였을 것입니다(그것이 위법임은 물론 잘 알지만). 본 피고인은 복학생 협의회의 사실상의 대표로서 개인적으로 비폭력의 원칙을 준수해야 할 소극적 의무에 부가하여 학생운동의 전체수준에서도 이 원칙이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적극적 의무 또한 완수해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의 9월 26일 밤 전기동·정용범 양인이 구타당하는 광경을 잠시 목격하고서도 그것을 제지하려 하지 않았던 본 피고인에게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큰 윤리적 책임이 있음에 분명합니다(법률적 측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또한 임신현·손형구의 경우에도 본 피고인이 사건에 접했을 때는 이미 감금 및 조사가 진행 중이었으므로 어떠한 지시를 내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 자신 조사를 위한 감금에 명백히 찬동했으며 또 잠시나마 직접 조사에 임한 적도 있기 때문에 법률을 어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그에 따른 책임이라면 흔쾌히 감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경우, 가능한 한 짧은 감금과 비폭력이라는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실제로 이 원칙이 관철되었으므로 본 피고인은 아무런 윤리적 책임도 느끼지 않습니다.

어쨌든 상당한 정도의 법률적·윤리적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떠맡기 위해 이정우군처럼 처신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너무나도 명백한 정권의 음모의 노리개가 될 가능성 때문에 본 피고인은 사실과 다른 것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결코 시인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고 또 그런 자세로 법정투쟁에 임해 왔습니다.

그래야만 본 피고인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책임감이, 공소사실을 기정사실화시키기 위해 우격다짐으로 요구하는 그것과는 성질상 판이한 것임을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본 피고인은 이 사건의 재판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무엇이며 이 사건을 우리 사회의 도덕적 진보의 계기로 삼으려면 사법부가 본연의 윤리적 의무를 완수해야 함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사건은 누적된 정권과 학원간의 불신 및 적대감을 배경으로 하여 수명의 가짜학생이 행한 전혀 비합법적이라 할 수 없지만 명백히 부도덕한 정보수집행위가 본질적으로 부도덕하지 않으나 명백히 비합법적인 학생들의 대응행위를 유발함으로써 빚어진 사건입니다.
지난 수년간 현정권이 보여준 갖가지 부도덕한 행위들 - 학원내에 경찰을 수백명씩이나 상주시키면서도 온국민에게 거짓증언을 한 치안당국자의 행위, 소위 자율화조치라고 하는 아름다운 간판 위에서 음성적인 확원사찰을 계속 해온(이에 관해서는 법정에서 상세히 밝힌 바 있음) 수사기관의 행위,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 사건조차 서슴지 않고 날조·왜곡한 행위 등 - 은 같은 뿌리에서 돋아난 서로 다른 가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재판은 사건의 진정한 원인을 규명하여 그에 대한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행위중 비합법적인 부분만을 문제삼아 처벌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마도 사법부 자체는 이처럼 부도덕한 정권의 학원난입 행위를 옹호하려는 의도가 없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사태의 전후맥락을 모조리 무시한 채 조사를 위한 연행·감금마저(폭행부분이 아니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규정한 1심의 판결은 지금 이 시간에도 갖가지 반사회적 목적으로 위해 교정을 배회하고 있을 수많은 가짜학생 및 정보원의 신변안전을 보장한 ‘가짜학생 및 정보원의 안전보장 선언’이 아니라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 피고인은 결코 학생들의 행위 전부에 대한 무죄선고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부도덕한 자에 대한 도덕적 경고와 아울러 법을 어긴 자에 대한 법적 제재가 가해져야 하며, 허위선전에 파묻힌 국민에게는 진실의 세례를 주어야 한다는 것, 사태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고서는 우리 모두의 도덕적 향상은 기대될 수 없는 것을 주장할 따름입니다.

법정이 신성한 것은 그것이 법정이기 때문이 결코 아니며, 그곳에서만은 허위의 아름다운 가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때로는 추악해 보일지라도 진실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늘날의 사법부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正義)를 세우며, 또 그 정의가 강자(强者)의 지배를 의미하지 않는다면, 1심의 재판과정에서 매장당한 진실이 다시금 생명을 부여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 피고인은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마도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렇지 않아도 쉽게 허물어버리기 어려울 만큼 높아져 있는 현재의 불신과 적대감의 장벽 위에 분노의 가시넝쿨이 또 더하여지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고, 언젠가는 더욱 격렬한 형태로 폭발할 유사한 사태를 반드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 5년간 현정권에 반대했다 하여 온갖 죄목으로 투옥되었던 1,500여명의 양심수 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신성한 법정’에서 정의로운 재판관들에 의해 유죄선고를 받았습니다. 야수적인 유신독재 치하에서도 역시 그만큼 많은 분들이 전대미문의 악법 ‘긴급조치’를 지키지 않았다 하여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긴급조치 위반사건의 보도 또한 긴급조치 위반이었으므로 아무도 그 일을 말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변론을 하던 변호사도 그 변론 때문에 구속당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긴급조치가 정의로운 법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리고 그때 투옥되신 분들이 ‘반사회적 불순분자’ 또는 ‘이적행위자’였다고 말하는 이도 거의 없지만, 그분들을 ‘죄수’로 만든 법정은 지금도 여전히 ‘신성하다’고 하며 그분들을 기소하고 그분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검찰과 법관들 역시 ‘정의구현’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정의를 외면해 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법정이 민주주의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뜻일 것입니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정의를 세워왔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그가 진정 진지한 인간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정의란 독재자의 의지이다”고 굳게 믿는 인간일 것입니다.

본 피고인은 그곳에 민주주의가 살해당하면서 흘린 피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만은 진실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신성한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싶습니다.
본 피고인은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재판관이 ‘자신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정의에 관심을 갖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는’ 현명한 재판관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는 일이야말로 정의가 설 토대를 건설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이상의 논의에 기초하여 본 피고인은 1심판결에 승복할 수 없는 이유를 간단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본 피고인은 판결문을 받아보았을 때 참으로 서글픈 심정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무려 7회에 걸쳐 진행된 심리과정에서 밝혀진 사건의 내용과 거의 무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 피고인이 그토록 진지하게 임했던 재판의 전과정이 단지 예정된 판결을 그럴듯하게 장식해주기 위해 치루어진 무가치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판결이유」의 ‘범죄사실’ 제 1 항 중 “······임신현이····· 구타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피고인 유시민은 성명불상 학생들에게 위 임신현의 신분을 확인·조사토록 하고···”라는 부분은 형식논리상으로조차 성립할 수 없었습니다.

본 피고인에게 지시를 받은 학생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면, 어떻게 그가 성명불상일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본 피고인이 한번도 이를 시인한 바 없으며, 백수택군 등 여러학생들의 진술은 물론이요, 임신현 자신의 법정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할지라도, 본 피고인이 임신현이 연행 구타되던 현장에 있었음을 증명하기란 불가능한 일인데 하물며 본 피고인이 성명불상의 누군가에게 어떠한 지시를 내렸다는 일이 어찌 증명 가능하겠습니까?

사실 본 피고인은 그때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다음, ‘범죄사실’ 제 2 항 중 “·····위 김도인은 피고인 백태웅과 피고인 유시민 앞에서····· 구타하여 동인(손형구를 말함)에게 전치 3주간의·····다발성 좌상을 가한·····” 부분 역시, “백태웅과 유시민에게 조사받는 동안 한번도 폭행당한 일이 없다”고 한 손형구 자신의 법정진술에조차 모순됩니다. 그리고 ‘범죄사실’ 제 3 항 중 “피고인 유시민은·····동일(9월 26일을 말함) 21:00경부터 익일 01:00까지 피고인 윤호중, 같은 오재영 및 백기영, 남승우, 오승중, 안승윤 등과 같이·····(정용범을)·····계속 조사하기로 결의하고·····” 및 ‘범죄사실’ 제 4 항 중 이와 유사한 대목 역시, 본 피고인이 당시 진행중이던 총학생회장 선거관리 및 학생회칙의 문제점에 관해 선거관리 위원들과 장시간에 걸쳐 논의한 사실을 왜곡해 놓은 것에 불과하며, 이는 오승중, 김도형 등의 진술에 의해서도 명백히 밝혀진 일입니다.

이 몇 가지 예는 특히 현저하게 사실과 다른 부분을 지적한 것에 불과하며 판결문 전체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사한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습니다.
이는 사건 전체가 본 피고인 및 학생대표들의 지휘 아래 의도적으로 진행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정권의 의도를 반영하는 현상으로서, 기실 판결문의 내용 중 대부분이 침소봉대·견강부회·날조왜곡된 지난해 10월 4일 경찰발표문을 원전(原典)으로 삼아 구속영장·공소장을 거쳐 토씨하나 바꾸어지지 않은 그대로 옮겨진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1심판결은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사건과 관련된 각 개인 및 집단의 윤리적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우리 사회 전체의 도덕적 향상에 기여해야 할 사법부의 사회적 의무를 송두리째 방기한 것이라 판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듭 밝히거니와 본 피고인이 이처럼 1심판결의 부당성을 구태여 지적한 것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당한 이유에 의한 유죄선고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현재 마치 '폭력 과격 학생'의 본보기처럼 되어 버린 본 피고인은 이 항소이유서의 맺음말을 대신하여 자신을 위한 몇 마디의 변명을 해볼까 합니다.
본 피고인은 다른 사람보다 더 격정적이거나 또는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인간이 결코 아니며, 하물며 빨간 물이 들어 있거나 폭력을 숭배하는 젊은이는 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청년에 지나지 않으며 늘 "불의를 보고 지나치지 말라",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생각하라",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신, 지금은 그분들의 성함조차 기억할 수 없는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들의 말씀을 불변의 진리로 생각하는, 오히려 조금은 우직한 편에 속하는 젊은이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변명을 통하여 가장 순수한 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조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 곧 민주주의의 재생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투쟁 전체를 옹호하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1978년 2월 하순, 고향집 골목 어귀에 서서 자랑스럽게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눈길을 등뒤로 느끼면서 큼직한 짐보따리를 들고 서울 유학길을 떠나왔을 때, 본 피고인은 법관을 지망하는 (그 길이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키우시느라 좋은 옷, 맛난 음식을 평생토록 외면해 오신 부모님께 보답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또 그 일이 나쁜 일이 아님을 확신했으므로) 아직 어린티를 벗지 못한 열아홉 살의 촌뜨기 소년이었을 뿐입니다.

모든 이들로부터 따뜻한 축복의 말만을 들을 수 있었던 그때에, 서울대학교 사회계열 신입생이던 본 피고인은 '유신 체제'라는 말에 피와 감옥의 냄새가 섞여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유신만이 살길이다"고 하신 사회 선생님의 말씀이 거짓말일 수도 없었으니까요, 오늘은 언제나 달콤하기만 했으며,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 설레던 미래는 오로지 장밋빛 희망 속에 감싸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달래는 벌써 시들었지만 아직 아카시아 꽃은 피기 전인 5월 어느 날, 눈부시게 밝은 햇살 아래 푸르러만 가던 교정에서, 처음 맛보는 매운 최루 가스와 걷잡을 수 없이 솟아나오던 눈물 너머로 머리채를 붙잡힌 채 끌려가던 여리디 여린 여학생의 모습을, 학생 회관의 후미진 구석에 숨어서 겁에 질린 가슴을 움켜쥔 채 보았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모든 사물이 조금씩 다른 의미로 다가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숙사 입구 전망대 아래에 교내 상주하던 전투 경찰들이 날마다 야구를 하는 바람에 그 자리만 하얗게 벗겨져 있던 잔디밭의 흉한 모습은 생각날 적마다 저릿해지는 가슴속 묵은 상처로 자리잡았습니다.

열여섯 꽃 같은 처녀가 매주일 60시간 이상을 일해서 버는 한달치 월급보다 더 많은 우리들의 하숙비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맥주를 마시다가도, 예쁜 여학생과 고고 미팅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다 ‘문제 학생’이 될 조짐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겨울, 사랑하는 선배들이 ‘신성한 법정'에서 죄수가 되어 나오는 것을 보고 나서는 자신이 법복 입고 높다란 자리에 않아 있는 모습을 꽤나 심각한 고민 끝에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음해 여름 본 피고인은 경제학과 대표로 선출됨으로써 드디어 문제 학생임을 학교 당국 및 수사 기관으로부터 공인받았고 시위가 있을 때면 앞장서서 돌멩이를 던지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점증하는 민중의 반독재 투쟁에 겁먹은 유신정권이 내분으로 붕괴해 버린 10·26정변 이후에는, 악몽 같았던 2년간의 유신 치하 대학 생활을 청산하고자 총학생회 부활 운동에 참여하여 1980년 3월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 봄의 투쟁이 좌절된 5월 17일, 본 피고인은 갑작스러이 구속 학생이 되었고, ‘교수와 신부를 때려준 일’을 자랑삼는 대통령 경호실 소속 헌병들과, 후일 부산에서 ‘김근조 씨 고문 살해'사건을 일으킨 장본인들인 치안 본부 특수 수사관들로부터 두 달 동안의 모진 시달림을 받은 다음, 김대중 씨가 각 대학 학생회장에게 자금을 나누어 받았다는 허위 진술을 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구속 석 달 만에 영문도 모른 채 군법 회의 공소 기각 결정으로 석방되었지만, 며칠 후에 신체 검사를 받자마자 불과 40시간 만에 변칙 입대당함으로써 이번에는 ‘강집 학생'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입영 전야에 낯선 고장의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이면서 본 피고인은 살아 있다는 것이 더 이상 축복이 아니요 치욕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이후 제대하던 날까지 32개월 하루동안 본 피고인은 ‘특변자(특수 학적 변동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며 늘 감시의 대상으로서 최전방 말단 소총 중대의 소총수를 제외한 일체의 보직으로부터 차단당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하 20도의 혹한과 비정하게 산허리를 갈라지른 철책과 밤하늘의 별만을 벗삼는 생활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인 그해 저물녘, 당시 이등병이던 본 피고인은 대학시절 벗들이 관계한 유인물 사건에 연루되어 1개월 동안 서울 보안사 분실과 지역 보안 부대를 전전하고 대학 생활 전반에 대한 상세한 재조사를 받은 끝에 자신의 사상이 좌경되었다는, 마음에도 없는 반성문을 쓴 다음에야 부대로 복귀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다른 연대로 전출되었습니다.

하지만 본 피고인은 민족 분단의 비극의 현장인 중동부 전선의 최전방에서, 그것도 최말단 소총 중대라는 우리 군대의 기간 부대에서 3년을 보낼 수 있었음을 크나큰 행운으로 여기며 남에게 뒤지지 않는 훌륭한 병사였음을 자부합니다.

그런데 제대 불과 두 달 앞둔 1983년 3월 또 하나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세상을 놀라게 한 ‘녹화 사업' 또는 ‘관제 프락치 공작'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일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벗을 팔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형태의 억압이 수백 특변자들에게 가해진 것입니다.

당시 현역 군인이던 본 피고인은 보안 부대의 공포감을 이겨 내지 못하여 형식적으로나마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타협책으로써 일신의 안전을 도모할 수는 있었지만 그로 인한 양심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군사 독재정권의 폭력 탄압에 대한 공포감에 짓눌려 지내던 본 피고인에게 삶과 투쟁을 향한 새로운 의지를 되살려준 것은 본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강제 징집당한 학우들 중 6명이 녹화 사업과 관련하여 잇달아 의문의 죽음을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동지를 팔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 순결한 양심의 선포 앞에서 본 피고인도 언제까지나 자신의 비겁을 부끄러워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순결한 넋에 대한 모욕인 탓입니다. 그래서 1983년 12월의 제적 학생 복교 조치를 계기로 본 피고인은 벗들과 함께 ‘제적 학생 복교추진 위원회'를 결성하여 이 야수적인 강제 징집 및 녹화 사업의 폐지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며 복교하지 않은 채 투쟁하였습니다.

이때에도 정권은 녹화 사업의 존재, 아니, 강제 징집의 존재마저 부인하면서 우리에게 ’복교를 도외시한 채 정부의 은전을 정치적 선동의 재료로 이용하는 극소수 좌경 과격 제적 학생들'이라는 참으로 희귀한 용어를 사용해 가면서, 어용 언론을 동원한 대규모 선전 공세를 펼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여러가지 사정으로 복학하게 되었을 때 본 피고인은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형태로든 계속되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복학생 협의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복학한 지 보름 만에 이 사건으로 다시금 제적 학생 겸 구속 학생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 피고인의 이름은 ‘폭력 학생'의 대명사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본 피고인은 이렇게 하여 5.17폭거 이후 두 번씩이나 제적당한 최초의 그리고 이른바 자율화 조치 이후 최초로 구속 기소되어, 그것도 ‘폭행법'의 위반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폭력 과격 학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은 지금도 자신의 손이 결코 폭력에 사용된 적이 없으며 자신이 변함없이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늙으신 어머니께서 아들의 고난을 슬퍼하며 을씨년스러운 법정 한 귀퉁이에서, 기다란 구치소의 담장 아래서 눈물짓고 계신다는 단 하나 가슴 아픈 일을 제외하면 몸은 0.7평의 독방에 갇혀 있지만 본 피고인의 마음은 늘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빛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설레던 열아홉 살의 소년이 7년이 지난 지금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배처럼 비난받게 된 것은 결코 온순한 소년이 포악한 청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지난 7년간 거쳐온 삶의 여정은 결코 특수한 예외가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학생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경험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시대의 모든 양심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에 비추어, 정통성도 효율성도 갖지 못한 군사 독재 정권에 저항하여 민주 제도의 회복을 요구하는 학생 운동이야말로 가위눌린 민중의 혼을 흔들어 깨우는 새벽 종소리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오늘은 군사 독재에 맞서 용감하게 투쟁한 위대한 광주 민중 항재의 횃불이 마지막으로 타올랐던 날이며, 벗이요 동지인 고 김태훈 열사가 아크로폴리스의 잿빛 계단을 순결한 피로 적신 채 꽃잎처럼 떨어져 간 바로 그날이며, 번뇌에 허덕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이 성스러운 날에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에 몸바치고 가신 숱한 넋들을 기리면서 작으나마 정성들여 적은 이 글이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을 기원해 봅니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 것 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985년 5월 27일 성명 류 시 민

서울 형사 지방 법원 항소 제5부 재판장님 귀하

 

페이스북 최동석 최동석인사조직연구소장 (독일기업인사조직연구)
.2020.4.14.

 

[나는 언제 이 공간에 글을 쓰는가? 김어준의 '이상한 짓’]

▶︎ 글을 써야 하는 동기

평상시에는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動機)가 잘 생기지 않는다.

가끔 뉴스에서 잘 알려진 소위 셀렙(celeb)이라는 놈들이 멍청한 짓, 이상한 짓, 사악한 짓을 하는 걸 보면 열을 받는다. 열 받으면 쓰기 시작한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때로 멍청한 짓을 한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멍청한 짓은 타인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거나 사회적 해악을 가져오는 경우는 드물다. '멍청한 짓'이란 우리의 보편적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말한다.

그런데, 누군가 ‘멍청한 짓’을 의도적으로 반복하거나 ‘이상한 짓’을 하면 열을 받아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가 충만해진다.

지난 해 여름, 그러니까 2019년 7월 초순 한일간의 과거사 이슈로 일본이 한국에 수출보복을 가했을 때,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고위공직자로서 분연히 일어나 페북에다 매국(賣國)이냐 애국(愛國)이냐의 논조로 글을 썼다. 조중동을 비롯한 친일매국인사들은 벌떼처럼 일본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조국을 맹비난했다. ‘멍청한 짓’이기도 하고 ‘이상한 짓’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런던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였는데, 열을 크게 받았다. 그래서 휴가를 거의 제끼고 친일매국놈들에 향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곧바로 조국 법무장관 임명과 관련하여 검찰이 ‘멍청한 짓’을 넘어 ‘이상한 짓’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더욱 열을 받아 윤석열이 어떤 놈인지 과거를 조사하면서 글을 썼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왔다.

▶︎ ‘멍청한 짓’ → ‘이상한 짓’ → ‘사악한 짓'

결국은 윤석열이 ‘사악한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 즉 친일독재 세력에 뿌리를 둔 미래통합당, 친일독재 세력에 부역했던 그리고 지금도 열심히 부역하고 있는 조중동, 독재구조로 운영되는 신천지 등과 결탁한 검찰조직이 온갖 ‘사악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작년 7월부터 지금까지 대략 10개월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뉴스를 검색하고 과거를 조사하면서 글을 썼다. 페북에 올린 글은 찾은 자료의 1/10도 안 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몇 주 전부터 이빨이 시름시름 아파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치과엘 갔다. 50대 초반 기업에서 일할 때부터 내 이빨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치아를 관리・치료해 준 의사선생님은 아주 무뚝뚝하지만 정성껏 치료하는 양반이다. 사진을 찍어보더니 수명이 거의 다했다는 것이다. 지난 주에 한 개를 뽑고, 흔들흔들해서 더 이상 씹을 수 없던 한 개를 오늘 마주 뽑았다. 임플란트를 하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11개의 임플란트를 하게 되었다. 얼추 자동차 한 대 값이 입 안에 들어앉은 셈이다.

마취가 풀리자 통증을 참기 어려웠다. 예전에 임플란트가 없던 우리 부모세대, 특히 나의 아버지는 틀니 때문에 고생하신 것을 생각하면 임플란트도 아주 감사한 일이다. 오늘 저녁 식탁에서 아내와 부모세대가 살았던 시대를 얘기했다. 요즘에는 노인들에게도 보험으로 보전을 해주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세상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민정수석 시절 하도 고생을 해서 어금니 몇 개를 임플란트 했다고 하더니, 나는 민정수석도 아니고 은퇴해서 놀고 먹는 사람인데, 세상이 나를 지속적으로 열 받게 해서 이렇게 된 것인가? 물론 내가 강골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뭐 그렇다는 것인데, 이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아무튼, 지금까지의 내 관찰에 의하면, '멍청한 짓'이 여러 번 반복되면 반드시 '이상한 짓'으로 나아간다. '이상한 짓'이 계속되면 반드시 '사악한 짓'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멍청한 짓’을 관찰하다가 ‘이상한 짓’으로 나아간다 싶으면 열을 받아 글을 쓴다.

윤석열의 경우가 아주 좋은 예다. ‘멍청한 짓’ → ‘이상한 짓’ → ‘사악한 짓'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밟았다.

김종인을 보라. 전두환의 국보위에 부름을 받아 충성하다가(‘멍청한 짓’) 동화은행의 뇌물을 받아먹고(‘이상한 짓’) 실형을 살았다. 그 후의 행적은 순전히 사적 이익을 위해 행동했을 뿐이다. 이는 사태의 진실을 추구하고 타인의 형편에 공감하는 인간의 보편적 이성작용이 정지된 ‘사악한 짓’을 한 것이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김종인의 행동을 이상하다거나 사악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4년 전 총선 때 김종인에 대해 많은 얘기를 썼다. 정치평론가라는 사람들의 김종인에 대한 평가를 보면서 정말 같잖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사조직론 차원에서 썼다.

황교안, 심재철, 나경원, 유승민, 안철수, 이만희, 전광훈 등등. 친일독재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잘 관찰해보라. 한결같이 멍청하거나 이상하거나 사악한 짓을 한다.

▶︎ 김어준의 ‘이상한 짓’

김어준을 관찰하다가 멍청한 소리를 하길래 유심히 보았다. '이상한 짓'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알고, 내가 이 공간에 김어준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경고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몰빵이론은 누가 보더라도 ‘이상한 짓’에 해당한다.

민주진영 전체의 구조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김어준이 특정 정당에 몰빵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면, 타당하고 합리적이고 투명한 이유를 들어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설명도 타당하지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인류가 추구하는 자유, 평등, 연대의 가치는 사태의 투명성, 개방성, 공정성을 담보할 때 실현가능하다. 정은경의 질병관리본부가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런 정신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런 정신을 잃지 않는다면, 전영병관리에 관한 한 앞으로도 계속 성공할 것이다. 기업경영, 정당운영, 국가운영도 반드시 이래야 한다. 모든 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진영의 싸움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민주개혁세력이 친일독재세력을 무찔러야 하는 싸움이다. 민주진영 전체의 구조(Gestalt, 全貌, constellation of democratic camp)를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김어준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몰빵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이상한 짓’이다. 김어준은, 투명성과 개방성과 공정성를 저버린 양정철처럼 ‘사악한 짓’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경고의 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나는 김어준의 말에서 어떤 민주주의적 가치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경고를 듣지 않는다면, 김어준이 손석희처럼 사심(私心)을 가지고 있었거나 아니면 인사조직론의 “ㅇ”도 모르거나.

(후기)

여기는 내가 그저 끄적거리는 개인적인 공간입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친일독재적폐 세력들이 와서 분탕질을 할 경우 즉시 차단합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모든 글이 전체공개모드로 누구나 와서 읽고 댓글도 달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댓글을 보기도 하지만, 대개는 읽지 못합니다.

사람들을 평가할 때, 객관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 사람과 감정적으로 멀리 떨어져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지금까지 쌓아온 감정을 삭제하기 어렵죠. 그래서 평가에 늘 편견이 개입됩니다. 윤석열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이미지 평가라는 말입니다. 이미지 평가는 대부분 틀린 결과를 가져옵니다.

감정을 삭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의 사실을 객관화하여 살펴보는 겁니다. 과거에 있었던 사건에서 어떤 행동과 의사결정을 했는지를 보면 상당한 수준에서 상황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 분야 전문가로서의 평가와 해석이라서 일반인들의 견해보다는 예측력이 높을 겁니다. 그러나 내 견해도 틀릴 수는 있습니다.

내가 쓴 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충분히 공감하는 글도 있지만, 소위 문해력(literacy)이 딸려서 전혀 문맥에 맞지 않는 엉뚱한 얘기를 늘어놓는 분들이 있어요. 이런 분들을 만날 때는 나도 난감합니다. 일일이 댓글로 설명할 수도 없구요. 그럴 시간도 없어요. 그렇다고 내가 쓴 책을 보라고 할 수도 없구요. 오프라인의 내 강의(인사조직론)를 들으라고 할 수도 없구요. 유튜브에 있는 단편적인 내 동영상을 보라고 할 수도 없구요. ㅠㅠ

유시민의 말마따나 저도 좀 살려주세요~~!

 

페이스북 최동석 최동석인사조직연구소장 (독일기업인사조직연구)
.2020.4.11.

 

[열린민주당이 중요한 이유]

물이 한 곳에 고여 있으면 반드시 썩습니다. 이것은 과학적 진리입니다. 조직 역시 한 곳에 집중되어 독점이 되면 반드시 썩습니다. 이것은 경영학적 진리입니다.

조직론 개념이 없으면 조직설계를 잘못해서 조직을 망칩니다. 한국인에게 조직론 개념은 매우 취약한 반면, 인성론은 매우 발달하다 못해 세계적으로도 탁월한 수준입니다. 이것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우리의 전통입니다. 조직론과 인성론의 불균형이 매우 심각하다는 말입니다.

조직의 생산성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현대 경영학은 조직론이 인성론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예를 들어 보죠. 코로나 위기에서 빛나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위기 때는 일을 잘 못해서 징계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정 본부장이 세계인들에게 칭송을 받을 정도로 일을 잘하는 이유는, 인성론으로 보면 동일한데, 조직론으로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조직론의 관점에서 열린민주당의 존재가 왜 중요한지 설명하려고 합니다.

물이 끊임없이 흘러야 썩지 않듯이 조직 역시 끊임없이 현실을 반영해야 썩지 않습니다. 국가조직은 국민의 현실을 끊임없이 국가정책에 반영하는 구조와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아주 간단합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실현하면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조직 내외에 균형추(counter weight, 均衡錘)를 설치하는 것입니다. 조직이 정도(正道)를 벗어나 탈선하지 않도록 하려면, 반드시 균형추의 역할을 하는 내부조직과 외부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선박을 만들 때, 배가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평형수(ballast water)를 넣는 탱크(ballast tank)를 설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균형을 잡기 위해 배의 무게와 바다의 상태를 고려하여 탱크에 평형수의 양을 조절합니다. 조직을 설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에는 균형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현실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변화가 조직에 반영되어 탈선을 방지하기 때문입니다.

윤석열의 검찰청을 봅시다. 윤석열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면서 온갖 못된 짓을 하고 탈선을 해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실현할 수 있는 균형추가 없기 때문에 국민이 불안해지는 겁니다. 검찰조직의 부패는 균형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주식회사에는 감사(監事)라는 직무가 있어서 법률적으로는 균형추의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지만 별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재벌들의 대규모 비리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조직론 개념이 없기 때문에 균형추가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직을 설계할 때, 조직이 탈선하지 않도록 균형추를 삼중(三重)으로 설계합니다. 삼중방어선(三重防禦線, triple line defense 또는 Three Lines of Defense) 개념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군사용어이기도 한데, 경영학에서도 활용됩니다. 리스크관리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 널리 활용되는 개념입니다. 조직이 탈선하지 않도록 삼중방어선을 설계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1차 방어선, 분권화(decentralization)
제2차 방어선, 자율성(autonomy)
제3차 방어선, 네트워크화(networking)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분권화입니다. 분권화가 안 되면 자율성과 네트워크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조직론에서 이 세 가지를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세 가지가 실현되지 않으면 조직은 자신의 존재목적을 쉽게 잃어버리고 탈선합니다. 국가조직을 포함한 모든 조직은 반드시 삼중방어선 개념(三重防禦線 槪念)에 따라 설계되어야 합니다. 국가운영조직이 이런 조직론의 기본개념도 없이 설계되었기 때문에, 예전의 독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과 박근혜도 여전히 국가를 한낱 개인의 사적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도구로 활용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매우 위험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조직론의 기초개념을 모르는 사람들이 민주진영 전체를 하나의 거대 정당으로 몰빵하도록 선전선동하는 행위입니다. 김어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모든 민주진영이 하나의 정당으로 모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행태입니다.

김어준은 민주진영에는 참으로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나꼼수의 커다란 성과로 그의 영향력이 매우 커졌습니다. 이러한 영향력은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그의 혜안에서 나옵니다. 진보진영에 몇몇 탁월한 지식인들은 오피니언 리더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 그나마 정당사에서 요즘처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 겁니다. 이명박이라는 사기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민주진영의 인사들은 낙담했을 것이고, 다시 박근혜가 당선되었을 때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멘붕상태였습니다. 이 암울한 시절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의 영향력은 점점 커졌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옳은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손석희도 그랬습니다. 박근혜 탄핵을 위해 옳은 얘기를 했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 지지와 찬사를 보냈습니다. 언론인으로서의 모범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조국 교수가 윤석열의 광란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왜곡된 사실을 보도했고, 오히려 윤석열과 검찰조직을 옹호하는 듯했습니다. 그는 왜 우리의 보편적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 왜곡된 사실을 보도채널을 통해 주장을 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실망했고, 그는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이제야 왜 그랬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손석희가 언론인이었다고? 천만의 말씀. 그도 역시 언론사 종업원에 불과했습니다. 손석희는 지금까지 쌓아온 영향력의 크기를 믿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보도하면 시청자들이 그대로 믿어줄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착각이었죠. 민중을 속일 수 없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자기성찰이 없으면 손석희처럼 순식간에 탈선하게 됩니다. 손석희는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겁니다.

나는 김어준이 비례투표는 더불어시민당에 몰표를 주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 열린민주당이 창당되었을 때, 어차피 3% 지지를 받을 수 없을 테니 사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더불어시민당에 투표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열린민주당이 5% 이상의 지지율이 나오자, 이번에는 제로섬 게임이라서 표가 분산되면 안 되고, 제1당의 지위가 미래통합당으로 넘어갈지도 모르는 위기라고 하면서 더불어시민당에 몰표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의 지위가 확실해지자 김홍걸 더불어시민당 후보의 이론이 등장했습니다. 소위 ‘국민의당'설인데, 열린민주당은 예전의 국민의당처럼 배신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김어준이 아니라 김홍걸의 주장인데,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얘기죠. 선거 때가 되면 다들 미친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게 되는 모양입니다. 선거 때도 제정신으로 선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이건 차차 얘기하죠.)

아무튼 김어준이나 김홍걸의 이런 주장은 어떤 것도 우리의 보편적 상식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나는 직감적으로 개인적 이해관계(personal vested interest)에 의한 잘못된 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홍걸이야 자신의 국회의원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니까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은 조금 있다고 해도, 같은 민주진영의 사람들에게 축하와 함께 선의의 경쟁을 하자고 하는 것이 훨씬 나아 보였습니다. 김홍걸의 인간, 사회, 역사에 대한 근시안적인 인식수준을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열린민주당의 공천과정이 훨씬 더 민주적인 방식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방식은 아마도 향후 선거법을 개정해서, 더불어시민당이 그랬던 것처럼 협회와 같은 이익단체 몇 명을 알음알음 끌어들여 “뻔히 보이는 손”이 뒤에서 장난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당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김어준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상식에서 벗어난 주장을 왜 했을까? 짐작컨대,

첫째, 그 동안 자신이 쌓아온 영향력의 크기를 믿고 청취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둘째, 이런 착각을 할 수 있게 한 것은 아마도 최배근, 우희종, 양정철, 이근형 등과 함께 더불어시민당이라는 비례정당 창당에 깊이 개입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김어준 자신만이 알겠지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김어준이 조직론의 기본을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조직론을 잘 모르면, 즉 국가의 정당체계와 그 운영체계가 잘못 설계되면, 윤석열의 검찰조직처럼 탈선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을 넘어서는 거대 정당이 되어 공수처를 설치하고 공수처장도 국민이 원하는 수준의 인물로 선임해서 저 부패한 검찰조직을 개혁해 내는 일은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사안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그 일을 잘 해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내가 꿈에서도 바라는 일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진영 전체가 절대 다수의 국회의석을 점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180석을 넘어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1987년에 만든 조악한 헌법을 개정할 수도 있구요.

문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 이후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이후를 생각한다면, 오직 더불어시민당에만 표를 몰아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얼토당토않은 논리입니다. 민주진영 전체가 분권화되어 국가조직이 썩지 않도록 국가운영의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것 때문에 걱정하는 분들이 있는데, 분열과 분권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분열은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분권화는 민주주의 가치 아래 여러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들이 협력하여 국민이 원하는 제도와 정책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민주진영이 적어도 2~3개의 교섭단체 정당으로 나뉘어서(물론 더불어민주당이 맏형 노릇을 충분히 할 수 있겠지요), 그들이 민주주의 가치 아래서 서로 네트워크화(연합, networking)하여 부패한 독재주의자들을 물리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균형추의 역할을 하는 겁니다. 이것이 성숙한 민주주의 방식이고, 아마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방식을 추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민주진영에서 정의당이 균형추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해왔습니다. 그러나 노회찬 수준의 정치인을 받아들일 만큼 정의당은 성숙한 민주주의가 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노회찬의 서거 이후 정의당은 갈 길을 잃고 헤매다가 위성정당이라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말았습니다. 전략적 사고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커다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정의당의 젊은 당원들이 사과하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할테니 계속 지지해 달라고 구걸을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사태의 본질이 뭔지 전혀 모르고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조국이 아니라 검찰을 비판했어야 마땅한 일인데,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었습니다. 정의당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을 보면서 나는 정의당에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사고할 줄 아는 사람들에 의해 열린민주당이 만들어졌습니다. 그것도 한국의 현대 정당사에서 감히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국회의원 후보를 선출했습니다. 그 면면을 보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검투사들, 전사들, 전략가들,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모인 것을 보고, 더불어시민당과 비교하면서 많은 분들이 환호했습니다. 민주진영뿐만 아니라 국가운영 전체의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 겁니다.

이들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민주진영에서 확고한 균형추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우물쭈물, 흐지부지, 오락가락하는 습성이나 연약한 모습, 그러면서도 세력을 가진 몇 명이 뒤에서 조정하는 짓을 열린민주당이 바로잡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탈선하지 않도록 자극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분권화의 핵심입니다.

민주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분들은 열린민주당을 조금 더 지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스북 SOYEON SCHRÖDER-KIM 독일 NRW 경제개발공사 한국대표
.2020.4.8.

 

*슈피겔 보도 – 뉴욕 vs. 서울
Bericht von SPIEGEL – New York vs. Seoul

슈피겔 DER SPIEGEL은 독일 내 가장 권위있는 시사주간지이자, 미국의 타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와 함께 세계 3대 시사주간지로 손꼽히는 언론입니다. (아래 링크 참조)

일반적으로 high quality and high critical 매체로 알려져 있지요. 여간해서 칭찬 일색의 보도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고퀄리티는 이런 가차없는 비판을 담보로 구현되는지도 모릅니다. 담보된 비판이 신뢰/권위 구축에 충실히 기여할 테니까요.

이번 주 슈피겔은 “유령 도시 Ghost Town”라는 제하에 8일 간의 뉴욕 현장취재를 한 슈피겔 기자의 체험기를 싣고 있습니다. 기자는 감성에 호소하는 자극적 수사修辭 보다는 제3의 옵저버 눈으로 관찰합니다. 바이러스의 공습으로부터 소개령疏開令이라도 내려진 듯 각자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져 공동화된 뉴욕의 실상을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 눈길을 확~ 사로잡은 건,
뉴욕 현장취재를 다룬 기사 바로 뒤에 “온 나라를 테스트하다 ein Land wird getestet”라는 제하의 한국 코로나 대처 기사가 나란히 게재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언론에서 기사 배치 순서나 위치 잡기는 정교한 예술이죠.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각 기사의 내용에서도 드러나지만, 순차적인 기사들 간 배치를 통해 총체적으로 기승전결의 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한 권의 잡지를 읽으며 특정 기사를 랜덤하게 읽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편집국이 친절하게 정해 준 오더에 따라 읽어 내려갈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슈피겔 편집국이 기사의 게재 순서를 결코 우연에 맡기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뉴욕발 기사 바로 뒤에 바짝 붙여 서울발 기사를 실은 것은, 이 두 도시가 상징하는 나라들을 정면 비교한 것이라 흥미롭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기사의 도입부가 이런 내용으로 시작하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한국의) 첫 번째 환자는 1 월 19 일에 이미 한국에 입국했으며, 그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미국도 첫 환자 발생을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이 귀중한 몇 주를 낭비하는 동안 이 동아시아의 국가(한국)는 일찍 대응했다.”
Die erste Patientin war schon am 19. Januar nach Südkorea eingereist, kurz darauf meldeten auch die USA eine erste Erkrankung. Doch während die Vereinigen Staaten wertvolle Wochen verschwendeten, reagierte das ostasiatische Land früh.

슈피겔은 한국과 미국에서 같은 날 첫 환자가 발생한 것에 방점을 둠으로써 두 나라의 현재 코로나 확진자/사망자 현황판의 드라마틱한 대조를 독자들에게 더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사이 미국과 한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기사를 읽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전쟁 후 미국의 원조를 받으며 70년대 우리 어머니 세대 미싱공들이 희미한 불빛 아래 미싱을 돌리며 대한민국의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우리 아버지 세대가 중동 건설붐을 타고 한번도 겪어 보지 못한 열사의 건설현장 인력으로 파견되어 외화벌이에 나섰던 대한민국이, 건국이래 이렇게 세계적으로 미국과 나란히 비교당하고, 그 비교에서 심지어 우위를 차지해 본 적이 일찍이 있었던가... 하고요. (요즘 건국 이래 처음이 좀 많습니다...;;)

제가 사는 독일에서 이제 누구도 대한민국을 “외화 벌이를 위해 간호사, 광부를 파견한 나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은 어딜 가나 “코로나 방역 모범국“으로 통하니까요.

무엇보다 슈피겔지가 앞장서서 “모범사례 한국 Vorbild Südkorea“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친절하게 확진자 추이 그래프까지 그려주면서, 한국이 코로나를 얼마나 세련되게, 민주적으로, 봉쇄나 금지 없이 길들이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잖아요. 뿐만 아니라 “한국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열심히 전파하기까지 합니다. (이전 포스팅 참조)

결코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국가 이미지 홍보를 슈피겔이 대신 해주는 셈이라고나 할까요.

지난 주말 4일자 ‘ZDF 스페셜 Spezial’은 TV매체의 특성 상 뉴욕의 상황을 더 자극적인 비쥬얼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아래 링크 참조)

취재기자의 인터뷰에 응한 한 뉴요커는 “9.11 테러가 최악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최악이다. 코로나 위기가 지나간 후에도 내가 이 도시에 존재하기를 바란다.”고 공포스러운 얼굴로 시체 대란을 대변합니다.

방송은 “더 이상 시체를 매장할 무덤이 없으며, 화장터는 과부하가 걸렸고, 장례식장 예배당을 임시 냉장고로 개조해 시체를 보관하며, 그 마저도 여의치 않아 지게차로 시체를 냉동 트럭에 옮겨 싣는” 뉴욕 시의 처참한 장면을 내보냈습니다.

TV를 보는 내내 다시 한번 제 눈과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 것이 가장 잘 사는 나라의 가장 비싼 도시, 가장 현대적인 도시의 – 우리가 몰랐던 - 숨은 뒷모습이었던 걸까요…

뉴욕 한 장례사의 말은 듣고 있으면 끝내 눈물나게 만듭니다.

"그들은 시체가 아닙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버지고, 어머니고, 할머니입니다. 시체가 아니라 사람들이에요."

슈피겔은 신천지 집단감염 발생 후 대한민국의 ‘전수조사‘ 조치에 대해 “이것을 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아마도 미국처럼 되었을 것“이라는 민복기 본부장의 말을 전하면서, 한국의 코로나 대처를 “전 세계를 주목시킨 전략 die südkoreanische Strategie, die weltweit Beachtung findet“, “모든 잠재 감염자를 찾아내서 테스트시켰다. Alle potenziell Erkrankten müssen aufgespürt und getestet werden“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전략을 바이러스의 확산과 대중의 감염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경증 및 중증환자를 구분해 내어 의료기관의 과부하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전략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Nur so kann verhindert werden, dass sich das Virus unbemerkt ausbreitet und massenhaft Menschen infiziert. Nur so können milde von schweren Verläufen getrennt und Krankenhäuser geschont werden.

이러한 대대적인 전수조사 실시의 고충에 대해서도 소개합니다. 전수조사로 무증상 환자까지 찾아내면,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한국의 국가 이미지 실추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컸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일본은 검사에 소극적이어서 확진자 수가 작다는 일침도 잊지 않고 덧붙입니다.

슈피겔은 기사에서 240,000명에 달하는 신천지 신도의 전수조사 조치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고, 이를 위해 50명 이상의 공무원으로 구성된 정부합동지원단의 투입을 소개하고 있는데, 코로나 대책 마련으로 고심하는 독일 정부를 향해 시사점을 날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독일 정부도 이런 것 참고 좀 하라는... 현재 독일의 확진자 수는 10만 명에 육박하고 있거든요.

게다가 오늘 방송된 ZDF frontal 21 프로그램에서는 유럽의 급격한 코로나 확산에 불을 당긴 스키 휴양지 이쉬글(Ischgl)에서 돌아온 여행자들이 재발방지를 위한 코로나 검사를 통보 받고 병원에 갔는데 거부당하는 장면을 내보내면서 행정 당국과 의료기관의 엇박자를 비판하는 보도가 나가기도 했습니다. 당국자들은 “이런 사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어서 아무도 잘 모르기 때문”이라며 엇박자를 정당화하려 하네요. (한국이라면 국민과 언론의 준엄한(?) 심판이 벌써 내려졌을 지도..)

또한 스마트폰과 신용카드 등으로 확진자 동선 맵 정보를 활용한 것에 대해서는, 사생활 침해로 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조치를 통해 “또 다른 자유 eine andere Freiheit“를 시민들에게 확보해 준 것이라 풀이하면서 한국 국민들은 그 덕분에 아무런 통행제한 없이 살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sie sichern sich eine andere Freiheit – sie dürfen sich weiter uneingeschränkt bewegen.

전국민의 통행제한 조치로 인한 권리 침해가 확진자의 동선 트랙킹으로 인한 권리 침해보다 더 크다는 한국 입장도 보도하고 있는데, 이 역시 독일정부가 원래 추진하려던 확진자앱 조치가 ‘개인정보보호‘를 앞세워 무산되고 있는 독일의 까다로운 현실을 우회적으로 꼬집고 있습니다.
Das digitale Verfolgen der Infizierten greift nur in die Rechte weniger ein, eine Ausgangssperre in die Rechte aller.

**
슈피겔 같은 권위 있는 언론에 한국 기사가 나갔는데, 그것도 미국하고 적나라하게 비교당하는 보도가 나갔는데, 기사의 속내가

“너네 친정 나라 미국보다 잘 하더라“

라는 메시지인 것을 간파했으니, 이쯤 되면 초보교민은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거든요. 속 없이 또 친정 나라 자랑이 하고 싶어진단 말이지요...;;;

이런 철 없는 초보교민의 마음, 고국에 계신 분들은 넓은 혜량으로 이해해 주실 거라 믿으며...
지금까지 초보교민의 ‘묻지마 자랑질’이었습니다.^^;;;

#이번_슈피겔_기사는_옆지기_생일에_건진_왕건이! ㅋ

*** 참고 자료:
시사저널: 세계 3대 시사주간지에서 길을 구하다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

조선비즈: "예배당을 임시 냉장고로 개조"…'시신 대란' 겪는 美 뉴욕 장례식장
https://biz.chosun.com/…/htm…/2020/04/03/2020040303158.html…

조선일보: 뉴욕에 뜬 저 배, 병원선인가 유람선인가
출처 : http://news.chosun.com/…/html…/2020/04/07/2020040700201.html

슈피겔 DER SPIEGEL: 한국의 성공적인 코로나 전략 – 온 나라를 테스트하다
Südkoreas erfolgreiche Corona-Strategie - Ein Land wird getestet
https://www.spiegel.de/…/suedkoreas-erfolgreiche-corona-str…

ZDF 스페셜: 위기의 빅애플 – 뉴욕의 코로나 전쟁
ZDF Spezial: Big Apple in Not - New Yorks Kampf gegen Corona
https://www.zdf.de/…/zd…/zdf-spezial---corona-krise-106.html

ZDF frontal 21: 감염의 가속화 진원지 이쉬글, 실패의 프로토콜 Infektionsbeschleuniger Ischgl
Protokoll des Versagens
https://www.zdf.de/…/infektionsbeschleuniger-ischgl-100.html

 

페이스북 KBS 경제전문 기자 김원장
.2020.4.4.

 

길어도 읽어보시게요...

KBS 김원장기자의 글입니다. (이 글을 대한민국 모든 자영업자에게 전해주세요)

 

<박영선 장관은 왜 배달의민족을 만났을까?>

"뭐가 공유경제인가? 혁신기업? 뭐가 혁신인가? 내가 노점상들에게 수수료를 받는 혁신 플랫폼을 만들어 수천억 원을 번다면, 정부는 이를 반가워 할 것인가?"

배달의민족 수수료는 진짜 0%일까?
2015년, 영세 자영업자의 고혈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결국 배달의 민족은 수수료 0%를 선언했다. 매출보다 고객 확보가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배달의 민족 앱을 켜서 치킨을 주문해보자.

먼저 ‘오픈서비스’가 뜬다. 지역내 배달치킨점이 수도 없이 올라온다. 돈을 내고 하는 일종의 광고다. 광고료 명목으로 내가 치킨 한 마리를 주문하면 배민이 매출의 5.8%를 가져간다. 결국 수수료는 다시 5.8%가 됐다.

치킨 한 마리를 팔아 25%가 남는다면, 그중 1/5을 배달의 민족이 그냥 가져간다. 기가 막힌 수익률이다(2천원 정도의 배달료는 별도다).

수수료 아닌 수수료는 또있다. ‘오픈서비스’를 쭈~욱 내려가다보면, ‘울트라콜’ 서비스가 나온다. 일명 ‘깃발 꽂기’다. 내가 깃발을 넓게, 멀리 꽂을수록 우리가게의 주문이 늘어난다. 물론 깃발 하나에 월 8만8천원을 낸다. 그야말로 땅따먹기다(100개 이상 깃발을 꽂은 점포도 있다) 참여하지 않으면? 역시 그만큼 주문이 줄어든다.

논란이 되자 배민은 신규 깃발꽂기는 3개만 허용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광고를 많이 못해도 음식 맛이 좋은’ 가게의 주문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미 꽂은 깃발의 기득권은 그대로 유지된다
(깃발 10개 꽂은 점포는 매월 88만원을 계속 받겠단 뜻이다). 반면 오픈서비스 아주 아주 아래에 노출되는 ‘울트라콜’의 주문이 얼마나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그럼 이제 8만원에서 수십만원을 내며 울트라콜 수수료만 내온 점포들도 오픈서비스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수수료는 껑충 높아진다.

가입 안하면 안될까?
피할 수 없다. 5년전 현장을 취재할 때, 한 교촌 대리점 사장님은 동네 치킨점주들이 단결해 탈퇴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 반란은 불가능하다. 한두 점포가 이탈(?)해 가입하면, 주문은 이들에게 쏠리고, 결국 이 시도는 성공하기 어려운 구조다. 다 같이 안하면 좋지만, 다들 가입하니 나도 해야한다. 그야말로 ‘죄수의 딜레마’다.

배달앱이 없다면?☆☆☆
이게 중요하다. 시장경제에서 거래를 중개하면 모두 수수료를 낸다. 단 3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이 중개(brokerage)를 통해
1)거래가 쉬워지는가?(증권사는 홍콩의 한 투자회사가 만든 펀드 상품을 중개해 내가 투자하기 쉽고 믿을 수 있게 해준다)
2)거래가 늘어나는가?(결혼정보회사는 결혼을 중개해 결혼이라는 거래를 늘린다)
3)믿고 그 거래를 할 수 있는가? (공인중개사는 집을 사고 팔 때 믿을 수 있는 사회적 보증을 해준다)

배달의민족은 이 3가지 조건을 하나도 충족하지 못한다
1. 배달의 민족 없이 치킨을 주문하는 게 아주 어려운가?
(네이버나 다음에 ‘여의도 치킨’ 치면 곧바로 수많은 배달 점포와 전화번호가 뜬다. 그냥 누르면 연결된다. 어려운가? 수수료는 물론 0원이다)

2.거래가 늘어나는가?
(답할 필요도 없다. 배달앱 서비스의 탄생으로 당신은 치킨을 더 먹는가?)

3.믿고 거래를 할 수 있는가?
(당신은 치킨 주문을 한 뒤 혹시 배달점주가 내 돈을 떼먹을까봐 걱정한 적 있는가?)

물론 약간의 소비자편익이 있다. 해당 음식의 소비자 평가를 보고, 미리 맛과 서비스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배달수수료만큼 가격이 오르고, 이는 상당부분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게다가 모바일의 고객평가는 점점 정교하게 오염되고 있다. (당신은 SNS의 식당 평가를 진짜 신뢰하는가?)

자영업자들은 월평균 83만원을 배달앱 때문에 지출한다(중소기업중앙회/2018년). 배달앱은 이렇게 소비자에게 약간의 소비자후생을 주고, 영세 배달 점주에게는 막대한 부담을 준다. 막대한 부담은 [막대한 수익]을 의미한다. 독일 DH가 ‘배달의 민족’을 전격 인수한 이유다. 40억 달러를 베팅했다. 5조원을 베팅할 만큼 돈이 되는 사업이다. 물론 그 돈은 우리 동네 자영업자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이 일이 우리가 박수칠 일인가.

박영선장관이 거기서 왜나와?
그런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표하는 박영선 장관이 배달의 민족을 만났다. 그냥 사진만 함께 찍은 게 아니다. ‘한단계 도약’이라고 평가했다. 수수료를 ‘더 올리지 않겠단’ 약속도 받았다고 했다. 사실상 배민의 수수료에 ‘검인증’을 내준 셈이다.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경제를 잘 아는 박영선장관은 왜 이런 행사에 참여해 이런 입장을 밝혔을까?

박영선장관은 배달의 민족이 매각됐지만, 김봉진회장이 아시아쪽 경영을 맡는다고 추켜세웠다. 김봉진회장은 경영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더욱 경영을 잘해서, 영세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더욱 커지면,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정부는 소상공인지원에 해마다 5천억 원 이상을 지원한다==> 배달의 민족은 소상공인에게 돈을 벌어간다==> 이제 그 이익의 상당부분은 해외로 유출된다. 박장관은 정말 이 알고리즘을 몰랐을까》

박영선장관은 또 ‘배달의민족’을 공유경제라고 했다. 배민이 도대체 무엇을 공유하는가? 또 혁신기업이라고도 했다. 혁신이란 무엇인가? 혁신은 우리 모두가 잘사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조만간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결과가 나온다.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려면, 오직 독점만이 가능하다. 공정위가 기업결합을 허용하면 DH의 국내 배달앱시장 점유율은 90%를 넘는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시장 독과점 문제에 대한 근본적·다각적 차원에서의 검토와 원칙 있는 심사를 촉구한다"며 사실상 반대입장을 밝혔다. 나는 치킨을 사랑하는 시민으로서, 이 결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

 

페이스북 김재환 한국 외교부 외신과장
.2020.4.2.

 

한 프랑스 기자의 한국 자가격리 체험기

외신과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국내외 외신기자들을 많이 접하는 편이다. 국내에는 300여명의 상주 외신들이 있고, 해마다 100여명의 외신 기자들을 초청해 그들의 한국 취재를 지원하는 것도 내 업무 중의 하나이다. 최근 코로나 19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외신에는 한국에 대한 찬사와 긍정적 평가가 넘쳐 난다. 기사가 쏟아지니 외신과에 대한 주문도 폭주한다.

오늘 프랑스의 유력 주간지인 <le point>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이 주간지는 불어권 내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잡지로, 지난 3월 19일과 20일, 우리의 방역 대응에 대해 취재를 하고자 두명의 특파원을 파견했다. 펜기자인 Andre Jeremy는 주재하던 홍콩에서 한국으로 왔고, 사진기자인 Charlene는 파리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외신들이 한국에 오면 언제나 문체부 외신과가 일종의 취재 지원 창구가 된다. 우리과의 담당 직원이 이들의 취재를 지원했음은 물론이다.

이 두 기자는 한명의 코디네이터와 함께 선별진료소를 방문하고, 서울대 아주대 등의 감염병 전문가를 인터뷰하고, 자가격리자를 위한 앱을 시연해보고, 방역작업의 현장을 취재했다. 그러다, 귀국을 앞둔 지난 3월 27일 사진기자인 샤를렌느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당연한 수순으로 사진기자는 병원에 입원했고, 앙드레 제레미 기자는 호텔에서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이들이 우리 사무실을 방문했기 때문에 부랴부랴 방역을 하고, 접촉했던 직원은 코로나 진단을 받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다행히 다음날 음성이 나왔다.) 이들이 인터뷰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확진자가 된 기자는 해외 입국자의 2주 격리방침이 발표되기 이전에 무증상으로 입국한 것 같다.

그런데 이 기자가 오늘 해당 잡지에 한국에서 자가격리를 했던 자신의 체험을 기사로 써서 올렸다.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확진자의 동선 파악과 자가격리 체계, 방역에 대한 관리를 두고 서구의 식자층 일부는 '히스테릭한 파시스트 보건국가'라고 보는데, 그런 시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자신의 체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미증유의 펜데믹 사태에 대해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가격리 시스템을 두고 '파시스트 보건국가'라고 비판하는 것은 서구의 관념론자들의 어설픈 지적일 뿐이다. 이 기자는 민주주의적 가치와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방역에 성공하는 우리의 모습을 비교적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쓰고 있다. "이 모든 조치들이 그 어떤 전체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인권이나 사생활 또는 자유로운 이동권을 침해하지도 않는다. 이 비극적인 현재의 상황에서 단지 시민정신의 실현일 뿐이다."

내가 문화원장으로 부임할 예정인 벨기에는 벌써 확진자가120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어제 4월 1일자로 828명이나 된다.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사는 선진국이라 여겼던 국가들이 이제 코로나 확진자/사망자수에서 세계 10위권에 도열해 있다. 심지어 스위스같은 나라가 코로나 감염자수/사망자수 세계 9위로 우리를 훨씬 앞질렀다. 인구 대비로 따지면, 우리보다 적게는 9배에서 15배에 이른다. 질병을 통제해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 역시 선진국의 주요한 요건일 것이다. 요즘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이들을 모델로 삼아왔던 그간의 인식이 어쩌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민주주의와 국가의 역량은 생각보다 취약하기 그지없었던 것. 다음은 앙드레 제레미 기자의 기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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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자가 격리 중인 한 프랑스인의 편지 (Lettre d'un Français en quarantaine en Corée du Sud/프랑스 Le Point 04.01 인터넷판 Jérémy André, 서울)

한국에서 취재 중이던 본지 기자가 서울에서 자가 격리 중이다. 그의 편지는 상식이 통하는 시스템을 위한 변론이다.

내가 탄 앰블런스가 러시아워 시간인데도 사이렌을 울리며 이리저리 다른 차량들을 추월하며 서울의 대로를 달렸다.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장과 파리의 콩코드 광장 등 다른 국가들의 대도시들에 적막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서울의 교통 혼잡은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앰블런스가 한 호텔 앞에 도착하였다. 짐을 들고 들어서자 리셉션 직원이 묻는다. "저희 호텔 요금을 아십니까?". 하루 밤에 대략 50유로 (7만원) 정도다. 물론 내가 지불해야 한다. 마지막 담배를 태운 뒤, 호텔 직원이 내 방까지 안내하고는 나에게 열쇠를 넘겨주고 문을 닫는다. 마치 비록 의무적 격리이지만 나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것 같다.

앞으로 14일간의 격리를 시작하는 나에게는 마지막으로 사람과 접촉하는 것이 다. 3월 27일 한국 르포 취재에 동행한 사진기자 샤를렌느 (Charlène)가 Covid-19 검사에서 양성으로 판명되었다. 그녀는 곧바로 병원에 입원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상태는 양호하다. 나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감염자와 밀접한 접촉을 하였기 때문에 내가 바이러스를 보균한 채로 있다가 며칠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킬 위험을 막기 위해 한국질병관리본부에 의해 격리 조치를 받았다.

“히스테릭한 파시스트 보건국가”의 탄생일까?

나는 언젠가는 바이러스에 전염될 줄 알고 있었다. 모든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잠정적 감염 위험이 있는 사람들과 외국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조 처를 취하는 것이 규칙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칼럼 "Lettre d'Asie (아시아의 편지)"의 마지막 편에서 나는 싱가포르에서 격리생활을 하고 있는 한 프랑스 동포의 이야기를 전했었다. 그리고 내가 격리를 시작한 날 한국의 행정안전부로부터 내가 문의한 한국의 격리시스템에 대한 답변이 도착하였다.

행정안전부의 관련부서는 나에게 “3월 26일 현재, 외국인을 포함해 총 10,166 명이 자가 격리 상태에 있으며, 이들 중 대략 6,527명 (64,2%)이 자가격리용 앱을 이용하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잊은 것일까? 아니면 나를 신뢰한다는 뜻 인가? 나는 이 앱을 설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한국의 격리시스템, 특히 디지털 감시시스템은 서방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독일의 주요 일간지 Die Welt가 이 문제를 헌법학자 Hans-Jürgen Paper에 게 질의했는데, 그는 이러한 시스템을 팬더믹을 핑계로 “히스테릭한 파시스트 보건국가”가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중국의 입국자에 대한 엄격한 격리 조치, 대만의 격리조치를 위반하고 나이트클럽에 가는 사람들에 대한 엄청난 벌금 부과, 홍콩의 전자 팔찌 이용 그리고 한국이 이용하고 있는 유명한 감시 앱 등에 대해 서방 언론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정확히 무엇일까? 2월 중순 경에 한국 정부는 “감염 위험 이 높은 사람들을 테스트하고 이들과의 접촉자들을 찾아내어 격리”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전략을 수립하였다. 이는 격리될 사람의 숫자가 폭증하는 것 을 예상해 둔 전략이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따라서 임의적인 감금과는 다른 방식을 찾아야 했다. 이런 이유로 내국인들은 자택에서, 외국인들은 호텔 에서 자가 격리하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냥 집에만 있으라는 애매한 권고만 한다면 한국인들도 프랑스인들만큼 규칙을 지키지는 않을 것이다.

꼭 처벌하지 않으면서 감시하기

그래서 한 앱 개발업체가 긴급히 24일 만에 코로나 “자가격리 안전보호” 앱을 3월 7일에 내놓았다. 이 앱은 격리당한 사람들이 담당 지방공무원과 자신들의 위치를 공유하는 것이다. 개발업체는 “격리자는 하루에 두 번에 걸쳐 자가 검 진 결과를 입력해야 한다. 격리 장소를 이탈할 경우엔 전담 공무원에게 푸시 알림이 전달된다고 설명한다. 만약 격리자가 허가받지 않고 격리지역을 이탈할 경우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대다수의 경우 주의만 받을 뿐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예를 들어, 3월 19 일에 한 격리자가 격리장소를 이탈하여 시장에 갔다. 자가격리 앱으로 경고를 받은 담당공무원은 즉시 해당 격리자에게 전화하여 격리장소로 복귀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담당공무원은 격리자의 거주지를 방문하여 자가격리의 중요 성을 주지시킨다”.

이것이 오웰 (Orwell)의 소설 속에 나오는 “빅브라더가 당 신을 감시하고 있다”와 같단 말인가? 물론 격리자는 다행히도 감시를 받고 있 다. 그런데 이 감시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망자가 165명에 불과하다. 대대적인 검사와 감염자의 격리 정책 덕분에 바이러스 확산세가 중단되었다. 다른 여러 국가들 (부유국들인데도 불구하고) 에서는 하루에 수백 명씩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일부를 격리하는 대신에 모든 사람들을 감금시키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인가?

그리고 격리조치와 감시가 인권국가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망상을 이제는 중지 해야 한다. 공공 보건을 위해 격리된 개인을 감시하는 것은 파시즘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우리는 감염 위험이 높은 일부 극히 소수의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데 주저하였다. 그 결과, 우리 민주주의 국가들은 결국 “대대적인 격리”를 하 고 마치 전쟁 중인 국가들처럼 길거리에 검문소를 설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도 일부를 격리하는 대신에 모든 사람들을 감금시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할 것인가? 당신들은 아시아에서 실시하는 것처럼 스스로 자가 격리를 하는 대신 벌금을 무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말인가?

1년 징역형과 1천만 원의 벌금형

이것이 내가 겪고 있는 격리상황이다. 나는 실내만을 빙빙 돌고 있다. 동료인 샤를렌느 기자의 안부도 걱정이다. 간혹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안녕하세요, 리셉션입니다. 오늘 점심식사 하시겠습니까?” 이어 호텔방의 초인종 소리가 울 린다. 식판이 방문 앞에 놓여져 있다. 나는 한국음식을 엄청 좋아한다. 그렇지 만 매번 미지근하고 똑같은 도시락을 다 끝내기가 쉽지 않다. 복도에서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문구멍으로 밖을 내다본다.

관타나모의 포로수용소나 영화 미드나 이트 익스프레스 (Midnight Express)의 감옥과는 완전히 다르다. 자가 격리를 한지 4일째 되는 날,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서울 근교인 수원 에 거주하는 한 영국인이 격리 규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 영국인은 태국 을 방문했을 때 증상을 보였는데, 3월 20일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당국이 요청한 것처럼 자가 격리를 하지 않았다. 3월 23일 Covid-19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 그는 20여명과 접촉하였으며 골프를 치기 위해 다섯 군데의 도시를 방문하기까지 하였다. 한 번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로...

인간의 본성에 대해 환상을 갖지 않는 한국은 얼마 전에 자가 격리를 위반하는 사람을 1년의 징역형 과 1천만 원의 벌금형에 처하는 새로운 법을 통과시켰다. 외국인의 경우에는 강제 추방될 수 있다. 이 모든 조처들이 그 어떤 전체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인권이나 사생활 또는 자유로운 이동권을 침해하지도 않는다. 격리 조치를 따르고 전반적인 이동금지를 준수하는 것은 이 비극적인 현재의 상황에서 단지 시민정신의 실현일 뿐이다. 반면에, 이러한 조치를 준수해야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실부정 속에 빠져서 현재가 팬더믹 상황이고 그로인해 피해가 끔찍한 속도로 커지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페이스북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과학과신학의대화 대표 (코로나 일기)
.2020.3.29.

 

물리적 거리두기, 사회적 사귐

3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강연, 모임 등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자제하기 시작한 지도 한달 반이 넘어갑니다.

출퇴근 거리가 가깝고 주로 연구실과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종종 외부 일정이 있을 때나 주말에 동네를 벗어나기 때문에 평소에 많은 사람과 만나는 편은 아닙니다. 주로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소통해오고 있습니다. 유일한 예외가 강의를 할 때와 회의를 할 때인지 강의와 회의가 모두 온라인으로 바뀌니 더더욱 사람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습니다. 물건 사러 갈때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어쩌다 행정실에 들러 만나는 직원들 정도입니다.

출석하는 교회에서 온라인 예배로 대체한 지도 한달째입니다. 어떻게들 지내는지 궁금해서 어제는 구역모임을 제안했습니다. 직접 모이는게 아니라 온라인으로 화상회의처럼 만나서 수다를 떨었습니다. 화면에 구역식구들 얼굴이 뜨자마자 어찌나 반갑던지, 평소에 마구 돈독한 사이가 아니었다 해도 다들 서로 얼굴보고 함박 웃음을 짓습니다. 구구절절한 얘기가 없어도 그냥 좋습니다.

한 달 전 전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10만명이 안되었는데 벌써 7배나 늘어 70만을 향해 갑니다. 확진자가 10만이 넘는 미국을 비롯해서 우리나라보다 감염자가 많은 나라가 10개쯤 되고 이들 나라는 대부분 하루 확진자가 수천명 수준이라 아직 증가 추세가 멈추기는 멀어 보입니다.

교회들의 자발적 참여도 중요했대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회당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도 비판을 받았지만 많은 교회들이 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웃사랑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관계를 파괴하는 길입니다. 다들 집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면 만남과 모임이 없다면 사회는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지만 반대로 사회를 좀 먹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피하고 대신 물리적 거리두기를 해야합니다. '집에 있으라'는 세월호때의 '가만히 있으라'가 아닙니다. '집에서' 사회적 거리를 좁혀야 합니다.

온라인으로 자주 만나고 온라인으로 얼굴 보고 온라인으로 나누고 과일 한접시씩 들고, 아니면 군것질거리 하나씩 마련해서 TV에 노트북 연결해서 친구들, 지인들, 교회 분들 자주 만나면 좋겠습니다.

몇주째 예배당에 모이지 못하는 교인들이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함께 조용히 묵상하고 뜨겁게 찬양하고 상고하며 설교듣고 신나게 밥상을 마주하고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는 모임을 갖지 못하니 영혼이 죽어가는 느낌도 있겠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한번도 물리적으로 만나지 못했고 한번도 직접 대화하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예수를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는 걸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사실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낀 것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지만 바라는 것들에 대한 것입니다.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선조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 만져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약속을 받아들이고 나갔습니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고 만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합니다. 이런 교회가 물리적 만남을 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물리적으로 만나지 못한 예수, 직접 듣지 못한 그의 가르침은 오늘날 예수의 길을 걷고 있는 작은 그리스도들, 즉 크리스쳔들에 의해 드러납니다. 함께 모이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고 함께 먹고 마시는 공동체는 보이지 않는 믿음의 대상을 물리적으로 드러내 주는 매개입니다.

교회는 다니는 곳이 아니라 속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going to 가 아니라 belong to라고 합니다. 우리가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예배 '보러'가는 거지,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 가는 건지 입니다. 단지 관람하러 간다면 온라인으로 예배를 '봐도' 아주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 가는 거라면 단지 11시에 드리는 예배 말고,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돌아봐야 합니다.

한번도 같이 대화하고 식사하고 물리적으로 만난 적이 없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공동체인 교회가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대신하던 기능을 상실해 가는 시대에 물리적 거리두기와 함께 어떻게 코이노니아를 담보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이 직접 만나지 못한 여러 교회들을 안타까와하며 서신을 보냈던 것처럼 한 주에 6일 동안 만나지 못해도 공동체가 파괴되지 않아왔던 것 처럼 한달 이상씩 물리적 거리두기로 어려움을 겪는 교회들은 물리적 거리를 넘는 신앙과 사귐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미 공동체가 아니었고 상업화된 교회모임들은 잘 모르겠더라도, 공동체로 모인 교회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겠습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온라인 예배를 함께 드리고 끝나고 나서 온라인 뒷풀이 모임을 갖기로 했습니다. 평소에 각 가정에서 싸오는 밥과 반찬을 차려놓고 함께 식사하는 기쁨은 누릴 수 없고 그 맛있는 점심이 그립지만 그래도 물리적 거리를 넘어 온라인으로 만나 서로 얼굴이라도 보고 대화를 할까 합니다.

 

페이스북 이주혁 성형외과 의사 (코로나 일기)
.2020.3.28.

 

-- 한국은 강하다. 우리가 자꾸 잊을 뿐이다. --

고양이 녀석들이 방바닥에서 뭘 갖고 놀고 있길래 집어 보니 작년 No japan 집회에 갔다가 받아온 스티커였다. 그걸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불과 1년도 안 됐는데 그동안 하도 많은 일이 있어서, 그때 얼마나 불안해 했었는지 기억들이 잘 안 날 것같다.
한국 경제는 거의 반도체가 떠받치듯 하고 있는 게 현실이었고 아베 내각은 콕 찝어서 거기에 소금을 뿌리려 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달러 자산이 많은 나라인 일본이 이렇게 경제적으로 한국을 공격해 온다면, 우리는 버틸 수 있을까? 보수 언론은 문재인 정부와 대법원의 판결을 맹비난했고 실제로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것으로 보였었다.

허나 점점 시간이 가면서 아베가 똥볼을 찬 거라는 걸 사람들이 인지하게 된다. 반도체 업체들은 우회 수입이라는 방법을 통해 불화 수소 등의 재고를 확보했고 몇 달 안 돼 마침내 국내에서도 이들 제품군을 직접 생산하게 된다. 아베 내각은 슬그머니 발을 빼더니 수출 규제를 풀어 버린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한국 스스로의 힘으로 이긴 싸움이었다. 작년을 강타했던 아베의 도발 사건은 오히려 한국의 강고한 능력을 천하에 입증한 셈이 되어 버렸다.

한국은 이미 강한 나라였다. 우리가 잊고 있었을 뿐이다.

정부 여당 혐오증에 빠진 사람들은 "일본을 감히 싸움 상대로 돌리다니 친북 친중 정권답다"라며 비난했다. 이런 비난을 가만히 듣고 생각해 보면, 한국은 워낙 약해서 일본같은 강국을 상대로는 그저 설설 기어야 하는 약소국인 것같았다.

과연 그럴까? 그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식민지 교육을 주입받았기 때문일 뿐이다.
임진왜란 때 발렸지 않았느냐. 조선이 뭐가 강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 있을 꺼같다.
근데 그 전쟁에서 걔네들이 기분을 낸 건 개전한 4월부터 불과 3~4개월 정도 뿐이었다. 10월 진주 대첩 이후로 전선은 여기저기서 교착되고 일본군은 보급 부족에 시달려 이미 이겨도 이긴 싸움이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그냥 돌아갈 순 없어 7년이나 쌩고생하며 질질 끌다가 결국 일본군은 돌아갔다.
조선과의 이 전쟁의 후유증으로 그 큰 명 제국이 망해갔고 일본은 토요토미 집안이 멸문했다.
대개는 한국을 건드렸던 나라들은 뒤끝이 좋지 않았다.
한국이 쎘다는 증거다.

지금 코로나 19가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아마도 양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혹독한 시간인 듯하다. 2차 대전 이후 유럽 열강이 몰락하고 미국과 소련이 슈퍼 파워가 됐듯, 코로나 판데믹도 종결 이후 세계를 재편할 것이라 생각한다.

판데믹의 원인을 제공한 중국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보이려 애쓰고 있지만, 시진핑 체제가 아무일 없이 멀쩡할 리는 없다. 중국 인민들이 지금껏 당국에 잘 협조해 왔던 이유는 경제 성장률이 높았던 때문인데, 이제 성장률은 낮아지고 고성장의 후유증을 뒷처리하느라 정신 없는 와중에 코로나가 터졌기 때문이다.

미국-유럽은 황당할 정도로 무능하게 바이러스에 된서리를 맞고 있다. 이 난리의 끝 이후 과연 누가 제 앞가림도 똑바로 못하는 미국-유럽에 알아서 길 것인가? 그들의 시대는 솔직히 끝나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코로나 19에 대한 대처를 보면, 일본은 투명하지도 않고 혁신도 없으며 신뢰성 있는 체제도 기대할 수 없는 나라란 것을 선명히 알리고 말았다. 우리는 한때 전세계에 찬연히 빛나던 Nippon 그 브랜드 가치가,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침몰 중인 것을 목도한다.

한국은 이 난리 중에 합리적인 시스템과 혁신적인 기술,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체제를 증명했다. 확실하게 국가 브랜드를 정립하고 있는 것이다. 다들 한국꺼, 한국 제품, 한국의 노하우만을 찾고 있는 지금 상황에, 그 영향력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불과 한 달여정도 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확진자가 빨리 늘어나는 위험한 나라로 취급받았다.
지금은 모두가 한국을 따라 하고 싶어한다.

판데믹이 앞으로 몇 달이 더 갈지 아무도 알 순 없다.
그러나 과거 양차 세계 대전이 글로벌 판도를 뒤바꾸어 놓았듯, 이 사태가 잦아들게 되면 그 잔해 위에, 잿더미만 남아 있는 곳도 있겠으나 또 어딘가는 새로운 강자로서 혁혁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등장할 것이다. 그게 과연 어떤 나라일지, 나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희망을 갖고 함께 어려움을 견뎌 나갔으면 좋겠다.

한국은 강하다. 그저 우리가 자꾸 잊을 뿐이다.

 

페이스북 김응교시인
.2020.3.25.

 

【손흥민을 보고 싶은 2020년 3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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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당 지지율 더 떨어지겠다. 쓰리지만 현실이다. 현재 지지율 3.7%, 비례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는 정당 득표율 3%를. 심상정 낙선. 지역구 0석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저들 속에 노회찬의 여유있는 유모아나 민감한 안테나가 없다. 교조주의의 무덤이 염려된다.
2. 월요일부터 마스크에 여유가 생겼다. 어제는 줄 서 있던 분들 다 나눠줬는데, 백사십여 개 정도 남았다고 한다. 약사님과 한가하게 몇 마디 정담도 나눴다.
3. 남영동 다시 서기 센터에 노숙인들 식사 분배는 계속 한다고 한다. 노숙인 숙사도 계속 운영한다고 한다. 중림동 사랑의공동체는 백여 명 꽉 찼지만 한 명이라면 더 받겠다 하신다. 노숙인 숙사 거의 폭발지경이다.
4. 대구에 권영진 시장이 회의 중에 나갔다. 긴급생계자금을 선거 끝나고 나눠주겠다는 심보다. 바보다. 일찍 나눠주고, 우리도 이만치 사랑한다 하면 미통당도 올라갈텐데, 대구 시민들 미통당 더 사랑할텐데, 정말 떼바보들이다.
5. 익명으로 하는 텔레그램을 처음부터 안 했다. n번방이 뭔지 뒤늦게 알고 말 못할 정도로 놀랐다. 종일 밥맛이 없다. 26만 명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저들은 익명의 폭력조직 클러스트 사회악이다.
6. 시무라 켄[志村けん]이 코로나로 쓰러졌다. 올림픽 연기와 시무라 켄의 전염은 '일본 팬더믹'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것 같다. 오무라 마스오 교수님께 괜찮으실지, 내일은 꼭 연락드려야겠다.
7. 동네 헬스클럽 PT 선생님이 그만 두신다고 문자가 왔다. 사람들이 안 온다고 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있는 정말 착한 분인데 어떻게 견디실까. 다시 만나야 한다고 길게 문자를 보냈다.
8. 내 책을 만드는 담당 편집자가 한 달 쉰다고 연락이 왔다. 어딘가 아프다 하지만, 출판사 사정이 나쁘니 한 달씩 돌아가면서 쉬기로 한 거 같다. 예전에 한겨레신문사 기자 분들이 그렇게 견디신 적이 있지.
9. 요양원에 어머니와 못 만난지 5주째 흘러간다. 오늘도 어머니와 통화만 했다. 욕창도 사라지고, 영양실조도 나아졌다고 중국인 간병인 여사님이 말한다. 하루에 한번은 가서 한끼라고 잘 드시게 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면회 절대 사절>이라고 써붙인 요양원 현관 앞에서 주인 잃은 들개와 함께 풀죽어 어슬렁거렸다. 제발, 제발, 요양원에 계신 노인들, 버티시기를.
10. 불교는 이 기간에 템플 스테이를 한다. 충분한 거리를 두고, 자연 속에서 전인 치료의 한 방법이라 한다. 코로나로 가족을 잃은 분들을 위로하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 개신교 기도원을 치료 센터로 개방해도 좋겠다.
11. 한교총에서 총리 사과하라 했다. 예수님이라면 조용히 환자들을 보살피고 치료하셨을 것이다. '신천지=한기총=한교총'을 주도하는 자들은 예수님이 없고, 기득권만 주장한다. 명성교회 세습을 통과시킨 자가 한교총 대표다. 저들에게 예수는 자기이득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도그마에 갇힌 자들에게 예수는 도그마 자체가 예수다. 자기 가족이 전염되거나, 자기 이익이 흔들릴 때 정신차릴까. 저것들은 목사가 아니다. 예수님이 말한 양의 옷을 입은 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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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1. 지금 필요한 것은 헌신이다. 뭔가 할 수 있다면 보내야 한다. 윤동주를 공부하고 연탄을 날랐던 공릉동 주민 분들이 마스크를 만들어 어려운 곳에 나누는 기사를 보았다. 이 분들은 이때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아신다. https://tuney.kr/B54GIq
2. 이 기간에 여행사부터 시작하여, 항공사, 동네 작은 가게들, 빚 많은 교회들이 쓰러지겠다. 상위 1% 가진 자들 헌신이 필요한 때다. 이들의 손에 묻은 피를 조금이라도 씻으며 변명할 수 있는 기회다. 재벌들아, 이 기회를 놓치지 마라.
3. 아브라함이나 키에르케골 같은 단독자로서 신앙생활을 강조해온 교회는 오히려 더 단단하고 흥하겠다. 그렇게 지도해온 목사님을 더 신뢰하고 교회를 위해 헌금도 더 입금할 것이다.
4. 재택근무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다. 일거리 없고 고객 없으면 연쇄로 무너질 수 있다. 시련을 기회로 바꿀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유튜버들은 지금 엄청난 기회다. 이 기간은 미래를 위한 연습기간이다. 혼자 제국을 세울 수 있는가. 재앙이 덮쳐도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염병은 '나'에게 묻는다.
5. 쓰러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한국 진단 키트 더 많이 팔리겠다. BTS니 <기생충>이니 <킹덤>보다도 의료계가 주목 받아 기쁘다. 이번에 대한민국은 다른 건 몰라도 의료시스템은 선진국 중의 선진국으로 올랐다.
6. 인터넷 사업은 더 흥하겠다. 국민들의 컴퓨터 사용 시간은 늘고, 알게 모르게 한국의 인터넷 문화는 더 놓아질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이 나라는 대단하다. 다음주 대학원 수업은 ZOOM으로 해야겠다.
7. 아베 지지율은 더 올라간다. 지진이나 위기가 오면 철저하게 시스템으로 결집하는 일본 문화의 특성 중의 하나다. 일본인은 못 느끼지만, 무의식 속에 아직 가미가제 정신은 바이러스처럼 남아 있다. 깨어 있는 자는 소수다.
8. 일본 올림픽을 안 해서 우리도 손해가 크다. 우리가 하기로 했던 컴퓨터 보안 시스템, 입장권 판매 시스템 등등 그 이전에 일본에 민주주의 가능할까. 일본 생각하면 많이 안타깝다. 미국, 일본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9. 손흥민이 뛰는 모습은 언제 볼 수 있을까.

 

페이스북 고재열 전 시사인 기자
.2020.3.25.

 

한국 언론의 지극히 정략적인 코로나 바이러스 활용법

코로나 바이러스만큼 독했던 한국 언론의 보도 바이러스를 보도 프레임의 차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문재인정부가 통치하는 대한민국은 망하고 있다’ 프레임을 작동시켰던 우리 언론은 무리한 보도를 쏟아냈다. 코로나19 관련 보도는 우리 언론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었다.

먼저 세 가지 전제를 명확히 해둔다.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 양쪽에서 모두 받아들여지는 언론의 원칙이다. 언론의 역할은 정부 칭찬이 아니라 정부 비판이라는 것, 국익을 위해 사실과 진실을 가려서 보도하는 것보다 사실과 진실을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결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는 것, 언론의 역할은 대안과 해결책 제시가 아니라 좋은 문제제기를 통해 대안과 해결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전제다.

이 세 가지 전제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한국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는 심각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언론은 현실을 이해하는 프레임을 제공한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코로나19의 창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처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우리 언론이 제공한 프레임은 다분히 편향적이었다. 기존에 제기되던 우리 언론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문제적 보도가 즐비했다.

이 편향성은 4월15일 총선과 떼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에 근거해서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판단에 기반해서 사실을 재구성한 보도가 ‘창궐’했다. ‘우리 정부의 잘못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더욱 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기본적으로 언론의 역할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하지만 이번 보도는 언론의 의제 설정에 기능에 대한 일종의 직권 남용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처참했다.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이번 코로나19 관련 일부 언론의 보도는 마치 정부를 몰아붙일 구실의 잔칫상을 받아든 모양새였다. 마음대로 프레임을 설정하고 그 자의적 프레임대로 정부를 몰아붙였다. 코로나19의 정체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도 않으면서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합의된 방법론도 없는 언론이 프레임을 남발했다. 한국 언론이 제시한 프레임의 문제와 이 프레임 때문에 간과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하나, 도달할 수 없는 절대 선을 설정해 놓고 비난하기.
이를 대표하는 표현이 바로 ‘방역에 구멍이 뚫렸다’라는 표현이다. 바이러스의 감염에 대한 우리 언론의 몰이해를 보여준다. 하늘의 비를 다 막을 수 있는 우산을 찾는 격인데, 한마디로 하나마나한 소리다. 이런 무조건적인 비난은 적절한 대응을 위해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것을 막는다.

둘, 실체 파악하는 과정 무시하기.
초기에는 어떤 언론도 이 바이스러스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어떤 언론도 어떤 대응이 맞는 대응인지 알지 못했다. 정부 또한 마찬가지였고 다른 나라도 사정은 같았다. 바이러스에 대한 제대로 된 파악과 제대로 된 대응으로 가는 과정으로 이해해 주어야 하는데, 이해하고 파악해 가는 것을 공격했다. 이렇게 하면 욕먹는 것이 두려워 정부는 제대로 정정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셋,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가치를 동시에 제시하면서 두 가지 숙제를 함께 풀어내라고 채근하기.
이를테면 사회적 거리 두기와 경기 부양을 동시에 요구하는 것인데 전쟁과 경기부양을 동시에 이루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 당장의 숙제를 풀고 이후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순차적 접근을 막는다. 대구 봉쇄 문제나 확진자 동선 정보 공개 문제는 논쟁적인 이슈라 사회적 토론이 필요한데 비판에만 함몰했다.

넷, 진퇴양난에 빠뜨리기.
마스크를 중심으로 보면 ‘마스크 외교의 실패’라는 프레임으로 중국과 일본은 마스크 외교를 하고 있는데 한국은 소외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한국도 똑같이 마스크 교류를 하면 ‘마스크 퍼주기 프레임’으로 또다시 공격한다.

다섯, 본질과 핵심을 외면하고 흥미와 음모론을 꾀하기.
신천지 이만희 기자 회견의 박근혜 손목시계 보도는 우리 언론의 병폐를 집약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손목시계 진위 논란과 손목시계 착용 의도 등 지엽적인 것에 매달리면서 이번 코로나19 방역의 중요한 기점이 되는 신천지의 대응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하는데만 집착한 언론도 있었다.

여섯, 혐오 장세에 숟가락 얹기.
사회적으로 혐오 정서가 팽배할 때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슬쩍 혐오에 묻어가고 이를 활용하려고 하는 경향이 우리 언론에 있는데 이번 코로나19 국면에도 여지없이 나타났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시작한 것을 빌미로 ‘중국 혐오’에 기댄 보도가 많았다. 대림동에 가니 길에 침을 뱉더라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일곱, 무조건 책임 전가하기.
마스크 대란이 정부 때문일까 언론 때문일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정체와 특성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초기의 대응과 이를 제대로 파악한 뒤의 대응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마스크 착용에 대한 정부의 방침이 바뀐 것만 공격하면서 마스크 대란을 부추겼다. 우리 언론은 최소한 마스크 대란의 공범이다.

여덟, 수준 낮은 논리로 정부 골리기.
한국인 입국 통제와 입국 제한을 바탕으로 우리 정부의 외교력이 떨어진다는 비난 보도가 자주 있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국가간 입국 제한은 보건 정책의 문제로 외교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외교력의 문제로 치환했다. 왕따 당했다고, 뒤통수 맞았다고, 얼레리꼴레리 놀리는 보도였다.

아홉, 여전한 사대주의.
세계가 한국을 칭찬하는데 무리하게 해외 사례를 들어가면서 우리는 잘못하고 있다고 비교하는 보도가 많았다. 중국이 대규모 병동을 만들자 한국판 ‘팡창의원’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언론이 있었고 대만이 마스크 공적 배급 체계를 구축했다고 칭찬하다가 우리 정부가 하면 태도가 돌변해 ‘마스크 사회주의’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외신에서 한국의 방역에 대한 호평이 쏟아져 나오면서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열, 이유 있는 오보.
중국에서 지원한 마스크가 불량이었다는 오보나 미국 국회의원이 한국의 진단 키트를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는 보도는 조금만 확인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외교 갈등을 일으키거나 우리의 진단 키트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보도인데 정부 비판에만 눈이 먼 것인지 제대로 된 확인도 없이 보도했다.

우리 언론이 보여준 ‘코로나 담론’ 혹은 ‘코로나 프레임’은 사실과 진실 보도에도 부합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중국 눈치보기’ ‘방역 실패’ ‘외교 참사’ ‘자화자찬’ 등의 프레임으로 공격하면서 다함께 지향해야 할 가치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국론 분열만 꾀했다.

정확성과 신속성이 언론의 핵심인데 우리 언론은 정확하지도 신속하지도 않았다. 무분별한 정부 비판 후에는 기사 수정과 기사 삭제가 빈번하게 나타났다.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 보도가 공익을 도모하는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 국익과 배치되는 방향의 기사였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기사였다. 그런 기사를 그렇게 서둘러서 내보내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성공적으로 방역하고 있다. 드라이브 스루 등 한국의 진단 시스템과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는 옳았다는 것을 다른 나라들이 이를 따라하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이렇게 정부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동안 우리 언론이 한 일은 무엇인가? 좀더 치열한 언론 비평이 필요한 때다.

 

페이스북 김보라 영화감독
.2020.3.23.

 

“그래도 내 남편/ 남친은 그나마 나.”

한국의 이성애자 여성들이 자주 말하는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을 들으면 늘 마음이 아팠다. 왜 한국 여성들은 괜찮지 않은 남자들 중에 ‘그나마’ 나은 남자만이 선택지인 것일까.

한국은 남자에 대한 기준이 몹시 낮다. TV에는 청결관념이 아예 없는 남자들이 나와 자신의 더러움을 농담 거리로 삼는다. 20살이 넘어서 요리 조차 못하는 것을 남자의 특징이라 생각하는 남자들이 나온다. 자신의 아내에게 외모 좀 꾸미라고 언어폭력을 하는 남자들이 나와 가장 취급을 받는다. 일상의 남자들은 자신이 성매매 업소에 가지 않은 것 정도로, 맞벌이 하는 아내와 살림과 양육을 함께 하는 당연한 것 정도로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너무 당연한 것을 하는 남자가 ‘괜찮은’ 남자로 취급 되어 진다. 너무 안 괜찮은 남자들을 계속해서 미디어에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쉽게 만나기 때문이다. 낮은 기준으로 길러진 한국 남성들이 유학 생활에서 적응을 못하는 것을 종종 봤다. 한국 여성들은 한국 사회에서 후려치기를 당하다 외국에 나와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지만, 한국 남성들은 매력을 길러낼 필요가 없는 사회에 살다가 외국에 나와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취급을 받자 깜짝 놀라 괴로워 하기도 한다.

n번방 사건 이후, 남성들이 자신이 n번 방 정도의 짓은 안 하니까 ‘괜찮은’ 남자라고 자신을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법 동영상은 안 보고 상업 포르노를 보니까 난 괜찮아, 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업적으로 제작된 포르노 영상이라도 그 영상들은 ‘강간문화’에 일조한다. 스포츠에 가까운 남성의 사정이 클래이맥스인 그 지루한 영상 속에서 여성을 그리는 방식이 강간문화를 만들어낸다. n번 방에 들어가 있지 않았더라도, 한국 남성이라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농담에, 상황에 방관자이거나 가해자였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의 생에서 진심으로 투명하게 존경하는 남성이나 남성 어른이 별로 없다. 그런 존재가 있다 해도, 그들이 성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내 기대를 송두리째 배반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너무 잘 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나는 n번 방에 나의 남성 지인들이 들어가 있었다고 해도 크게 놀라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내가 그들을 특별히 나쁜 놈이라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평범한 한국 남자'이기 때문이다. 주변의 여자친구들과 이야기해보면 다 비슷할 것이다. 내 남성 가족, 남성 친구나 지인이 n번 방에 있었다 해도 놀라긴 하겠지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여자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저 남자가 좀 착해보이더라도, 결국 집에 가면 불법 동영상 볼 지도 몰라."라는 말이다. 이건 여자들이 의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건조한 수치로서 내린 결론이다. 불법 동영상 한번 다운 받는데 몇 백원이었다는 웹하드가 몇 백억의 돈을 벌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한국 남자들이 그런 영상들을 본 것일까. 맘카페에는 엄마들이 n번 방 사건에 분노하는 데 아빠들이 가는 카페에는, 남자들이 가는 카페에는 자기도 잡힐 지 몰라 불안해하는 글들이 올라온다고 한다.

한국 여자들은 한국 남자들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신뢰하기에는 우리의 일상은 늘 안전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여자들 10명이 모이면, 그 중 성희롱 등의 범죄에 노출되지 않은 여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10명 중의 9명은 자신의 생에서 크고 작은 성폭력을 경험한다. 초등학교를 제외하고, 내가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경험하지 않았던 유일한 학교 기관은 유학을 한 대학원 뿐이다. 나는 미국이 선진국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은 의료 등 많은 분야에서 후진적이다. 하지만, 젠더 이슈에서만큼은 한국보다는 나았다. (물론, 내 학과의 특성이나 교수 들의 정치 성향도 꽤 영향을 주었을 거라 생각한다.) 여기서 '나았다'리고 하는 것은 그곳도 똥통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언제가 친구에게 말했다. 한국은 똥통에서 똥이 목까지 차오른 느낌이라면, 미국은 허리 정도까지만 찬 느낌이었어. 미국 역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만, 한국보다는 한 몇 십년 쯤 진보 된 나라라, ‘그나마 나았다.'

몇 년 간 지속되는 성범죄 사건들을 겪으며 마음이 너무 아프다. n번 방 사건이 잘 처벌되지 않는다면, 공동체 안의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다. 나는 이번 사건에서만큼은 남자들이 힘을 합쳐서 싸워주길 바란다.

우리에겐 ‘그나마’ 나은 한국 남자가 아니라, 정말로 아름다운 한국 남자들이 필요하다.

 

페이스북 이주혁 성형외과 의사 (코로나 일기)
.2020.3.24.

 

--- "조기 종식"이란 구호는 금물입니다. ---

아마도 2월 17일경부터 29, 31번 확진자가 차례로 방역망 바깥에서 생기면서 지역사회 감염의 증거가 나타난 이후, 지금까지 약 한 달간은 전 국민이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상화로 가고 있다.

나는 여기서 우리의 태도에 대해 한번은 돌아보고 비평도 해 봐야 할 필요를 느낀다.

1. 조기 종식. 조기 극복. 이런 구호는 금물이다.

바짝 '거리 두기'를 해서 이걸 조기에 잡자, 벗어나자. 이런 구호들을 많이 외치곤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계속해서 깨닫게되는 것은, Covid 19가 완전 종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팩트이자 진리라고 생각한다. 전인구의 반 이상이 항체가 생기거나 백신/치료제가 나오지 않는 한 이 바이러스는 어느 시점부터 딱 종례 치르고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거리두기를 잘 지켰다 해도 외국에서 유입되기 때문이고, 우리는 외국과 무역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조기 종식이란 희망 고문이다. '박멸'이 아니라 '조절'이라고 목표를 세워야 한다. 지금 정도로 Under control 한다면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해 무방하다. 이렇게 컨트롤하면서 백신이 나올 때까지 지연전을 펼치는 것이다.

2. 사회적 거리두기의 한계

다들 힘들지만 묵묵히 이겨나가고 있다. 진짜로 칭찬받을 만하다. 그러나 인내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처음에 사회적 거리두기는 3주 정도를 얘기했었다. 그러나 지금 발발이 시작되고 있는 유럽, 미국에서는 3개월까지도 얘기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외국과 밀접하게 얽혀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예전과 같은 정상적인 경제, 정상적 일상을 찾는 것은 굉장히 긴 시간이 필요하리라 예측되고 있다. 어느 나라건 마음대로 가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예전과 같은 정상적 상태는 아니더라도 조금 덜 힘들게, 최악은 피하면서 가는 방식을 고민해 줘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국민들이 지금껏 잘 지켜나갔지만, 어느 임계점이 지나가면 결국은 헐거워진다. "거리 두기"는 경제적 댓가를 치뤄야 하는데, 지키고 지켜도 보상이 없이 계속해서 댓가만 치르라고 하면 견뎌낼 방법이 없다.

국민의 생명과 경제의 건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가 반대 방향으로 뛰고 있다. 절대로 둘을 다 잡을 수가 없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무너지지 않을 지점을 찾아내야만 한다. 대학과 학교의 개학, 개강 문제는 가장 뜨거운 감자이다. 오전 오후 수업 2부제를 하든 어쩌든 해서 결국 열어야 할 때가 임박했다고 나는 느낀다.

3. 확진자의 이마에 낙인을 찍으면 안된다.

31번 확진자처럼, 전국 방송에서 죄 두들겨 패고 다니던 직장 폐쇄되고 회사는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입고, 지인들의 차가운 눈총을 받는다면, 위험을 초래하는 것이다.
언론도 우리도 Covid 19 감염자를 죄인 취급하면 안된다. 감염병에 걸린 이는 환자이며 보호를 받아야 될 시민들이지, 비난받을 자들이라고 주홍글씨를 붙여 버려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감염병 사태에서 우리는 예컨대 구로 콜센터처럼 구조적인 취약점을 가진 사회 시설들을 공적으로 인지하고 개선의 필요성을 느껴야 할 뿐이다. 걸린 사람들은 거기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지 않나.

지자체에서 확진자에 대해 띄우는 동선 공개 문자들도 사람들을 위축시킨다. 홈페이지에 상시적으로 띄워놓는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확진자가 1만명에 가까운 상황에서 8천몇백번째 환자가 어디 어디에 들렀고... 이런 정보를 온 주민이 받아 봐야 하는지, 나는 의문스럽다. 사람들의 심리를 위축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잘 하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기약 없이 가라고 하면 무너질 것이다. 새로운 질서, 새로운 정상적 생활과 경제 활동의 방식에 대해 교육, 의료, 기업 등 모두가 방책을 내기 시작해야 한다.

 

페이스북 김기호 위드스페이스 이사
.2020.3.22.

 

 

#한국언론을 고객 관점에서 생각하기
#언론의 행동 100% 이해하기

언론사의 고객은 누구일까요? 먼저 언론사가 파는 상품은 크게 3가지입니다. 1.지면광고 2. 홍보성기사 3. 신문판매

저는 2번 홍보기사와 관련해서 적어보겠습니다. 언론사에 돈을 내고 홍보기사를 내는 고객은 첫째 기업, 둘째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입니다.

다음 글은 정부부처와 언론사를 고객관점에서 제 경험을 중심으로 작성했습니다.

저는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의 핵심 부서에서 공직을 수행한 경험이 10년 정도 있습니다.
두 정부의 차이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큰 차이는 언론과의 거래 유무입니다.

1.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잘 아시듯이 참여정부 때는 언론과 거래를 근본적으로 할 수 않는 방침이었습니다. 대신 정부난 공공기관에서 언론출신을 1명 정도 씩 채용해서 언론을 이해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언론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2. 이명박_박근혜 정부
이때는 각 정부부처 별, 또는 개별 정책별로 1년간 홍보계약을 맺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예를들면 A일보와 B부처가 년간 10억 내외의 포괄적 계약을 맺는 방식입니다. 때로는 국단위 계약도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언론에서는 장차관 인터뷰 몇 회, 홍보성 정책기사, 부처의 해당국에서 작성한 기사, 또 부처가 지명한 교수를 투고형식으로 기사화 합니다.
이 방법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왜냐면 돈을 주는 만큼 기사를 써주고, 자기들이 정책홍보를 맡기 때문에 비난기사는 쓰기가 아주 곤란한 것이지요.

지금 문재인정부의 지지도는 찬반이 거의 반반입니다. 그런데 언론기사를 보면 99:1정도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정부가 여론조서를 조작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합니다. 여론조사를 정부가 하는 것이 아니고, 각 언론사가 여론조사업체에 의뢰하는 방식입니다. 여론조사의 운영에 대해 조금만 이해가 있으면 충분히 알 수 있어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는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하거나, 어떤 정책에 대한 설명을 더한 홍보성 기사가 정말 많았습니다. 세월호 같은 기사는 거의 정부를 위한 조작, 의도적 실수로 잘 못 된 기사가 넘쳐났습니다.
그 이유는 언론사가 기사와 광고를 파는 수익을 내기 위한 주식회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진보를 추구하는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에 대한 판단과 행동이 정부에 대한 기사의 방향을 좌우할 것입니다.

지난 이명박_박근혜 정부의 언론과 맺은 홍보계약을 년간으로 모두 모으면 아마 1년에 약 500억- 700억 정도, 9년간 총 6,300억 정도로 추정됩니다. 언론의 입정에서는 이 엄청난 수익이 줄어는 것인데, 얼마나 힘들고, 위기감을 느끼겠습니까?

이 추정이 맞다는 가정을 해보면 지금의 언론지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부에서 지급된 돈은 언론사의 이익이되고, 상당금액은 각 기자들 개인에게 성과급으로 지급되겠지요. 근데 문재인 정부는 이런 비용을 거의 지불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들어 가장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직업군이 기자들입니다. 그래서 자기 경제가 어려운 것을 당당히 말하지 못하니까 다른 실물경제가 어렵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노무현정부나 문재인 정부는 언론사와 기자들 각 개인에게 고객이 아닙니다.
언론사에 돈을 쓰는 고객은 광고비를 지출하는 기업고객입니다. 특히 지난 보수정권은 홍보계약을 맺고 정책홍보비를 내는 핵심 고객인 것입니다.

그래서 조중동과 경제신문은 물론이고, 심지어 경향신문이, 한겨레신문이, 오마이뉴스가 이 정부에 부정적인 기사를 쓰게 변한것이 아닐까요? 왜 고객이 아니니까. 그것도 10년 가까이 지출하던 돈을 안 쓰니까?

혹시 기억하십니까? 박근혜 전대통령이 탄핵을 앞두고, 청와대로 기자들을 불러놓고 변명를 늘어놓을 때 아무런 반론도 하지 않고, 열심히 받아쓰기를 하던 모습 말입니다.
고객의 관점에서 보면 그 때 언론사 기자글은 지극히 당연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돈을 지불하는 고객의 니즈를 받드는 것은 지극히 합당하고, 수익을 추구하는 언론주식회사에 종사하는 노동자로서는 당연한 행동입니다.

지금 정부는 정책홍보를 위한 돈을 지불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언론사는 지난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게 돈을 지출하는 정권은 보수정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들은 보수가 권력을 잡게 기서를 쓰는 것 아닐까요? 잠재고객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언론은 자신들의 고객에 충성하는 주식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사의 고객은 누구인가?
#왜 한국 언론은 99:1로 현정부를 비난할까?
# 진보적 언론도 진보정권을 까는걸까?

 

페이스북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과학과신학의대화 대표 (코로나 일기)
.2020.3.21.

 

교회와 주일 예배

1. 코로나가 확산되는 시기에 지역교회가 자진해서 가정예배와 온라인예배로 전환하고 예배당 모임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건 누구나 동의할 만한 상식입니다.

2. 그렇지만 강제로 교회당을 폐쇄해서 주일예배를 못 드리게 행정명령을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종교 자유의 제한과 형평성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3. 오늘 국무총리가 행정 권고를 내렸습니다. 앞으로 2주간 학원, 주점, 까페를 비롯해서 종교시설도 모임을 하지 말라는 권고입니다. 강제명령은 아니지만 발열자 확인,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를 하지 않으면 책임을 묻고 감염자가 생기면 구상권을 청구한다니, 권고라고 해도 명령에 가깝습니다.

4. 어제 어느 주점에서 10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강남 클럽들은 어제 불금에 맞춰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까페나 여러 대중 시설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5. 교회만 문닫게 하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형평성 문제가 있지만 이제는 종교시설 뿐만 아니라 상업 시설까지 권고를 내렸으니, 더이상 교회만 핍박한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6. 지역교회들은 국가의 권고에 따라 교회당 오프라인 예배를 중단하고 온라인 예배나 가정예배로 전환해야 합니다.

7. 주일예배로 모이는 것은 공동체성을 위해서 중요하고 교회의 핵심인 코이노니아의 기본이 됩니다. 교회에서 모이지 않고서 공동체성과 코이노니아를 만들어 내기는 어렵습니다. 맞습니다.

8. 그러나 몇주 주일에 모이지 않는다고 공동체성이 흔들린다면 그동안 교회에서 부르짖은 공동체성은 허상에 불과합니다. 몇 주 모이지 못해서 교회가 코이노니아를 잃어버린다면 그동안 교회는 교회가 아니었던 겁니다. 계모임이나 동창회 등 이익집단과 달리 교회가 어떤 생명력을 가져왔길래 몇 주 안 모인다고 교회가 무너지는 지 오히려 돌아보고 반성해야 합니다.

9. 2주 정도 온라인 예배로 혹은 가정예배로 교회당에서 모일 수 없게 되던 시점에 많은 목회자들이 답답함을 호소하는 걸 보았습니다. 물론 그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교회에서 가르치는 신앙이 얼마나 예배당 중심이었는지를 여지없이 드러내는게 아닐까 합니다.

10. 20년쯤 전에 미주 코스타 간사로 섬기면서 일년에 한번 모이는 유학생 수련회인 코스타 집회를 비판하는 글을 썼습니다. 자신의 도시, 자신의 삶의 자리, 속한 학교에서 살아가는 삶이 훨씬 중요하고 거기서 복음을 드러내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내는게 중요한데, 코스타 집회는 일년에 한번 모이는 집회 자체가 우상화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코스타를 신병교육대에 비유했습니다.

11. 교회는 신병교육대와 같습니다. 생활공동체 혹은 경제공동체가 되지 않는 이상 현대인들은 일주일에 고작 한두번 예배당에서 모일 수 있을 뿐이고 일주일 삶의 대부분을 가정과 직장에서 보냅니다. 사실은 바로 그곳이 전투지 입니다.

12. 신병교육대가 존재하는 이유는 전투지로 병사를 보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신병교육대만 부흥하고 전투지에는 병사가 없습니다. 가장 뛰어난 병사들은 신교대 조교로 남더라도 대부분은 전투지로 가야하는데 신교대만 커집니다. 신병이 모집되고 신병 훈련이 끝나도 신병교육대만 커집니다. 전투지는 여전히 열악합니다.

13. 신교대가 없으면 신병 교육도 할수 없고 전투지로 병사도 보낼수 없습니다. 신교대는 매우매우 중요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러나 전투지로 병사를 보내지 않는 신교대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14. 지역교회 매우 중요합니다. 지역교회는 신교대이면서 전방에서 싸우다 지친 병사들이 잠시 후방에서 와서 치료하고 쉬고 전투력을 회복해서 돌아가도록 돕는 후방입니다. 지역교회가 없다면 전방을 지킬 수 없습니다.

15. 그런데 많은 교인들은 예배당에서만 소위 신앙생활을 합니다. 가정과 직장, 삶의 자리에서는 별로 사역하지 않습니다. 별로 그렇게 성경대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때맞춰 기도하고 애배드리고 문화적으로 기독교인처럼 행동하면 그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까요? 그것이 로마서를 통해 가르쳐 주시는 세상을 본받지 말고 세상에 역행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영적 예배의 의미일까요?

16. 주일예배 설교는 많은 경우 교회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교인들끼리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하는지에 촛점을 맞춘 경우가 많습니다. 신교대를 잘 유지하기 위한 훈화같습니다. 그러면 신병교육대는 사랑과 평화가 넘치고 잘 부흥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전투지는요? 직장과 사회에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17. 한주 내내 직장에서 불의한 일로, 인간관계 문제를 성숙한 그리스도인답게 풀지 못한 고민으로, 자녀와의 대화단절 문제로, 사회의 정의롭지 못한 문제로 그렇게 씨름하고 뭔가해보려다 지쳐 메말라버린 교인들이 주일에 교회에 와서 쉴 수 있고 복음의 감격을 회복할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나고 다시 세상을 거스리는 아무도 말릴 수 없는 믿음과 용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18 교회에서 찬양하며 너무 좋아서,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 집짓고 살겠다 해도 몇시간만 지나면 현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변화산에서 횡설수설한 베드로처럼 주일예배와 찬양이 너무나 좋다는 우리의 고백은 금새 칼을 들고 예수를 잡으러 온 겟세마네의 현실에 대한 불만과 답답한 호소로 바뀝니다.

19. 어떤 분들은 주일을 성수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예배한 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생색 내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머지 한 주를 내맘대로 살도록 유예해 주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현실도피적인 마음에 주일예배를 더 사모하는지도 모릅니다.

20. 교회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의 도를 따라 세상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이 공동체는 같이 모여살고 생활수단을 공유하는 생활공동체나 경제공동체가 되어 함께 많은 시공간을 공유하지 않는 이상 물리적 공동체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21 한 주에 6일 동안이나 떨어져 있으면서도 공동체가 되려면 교회활동 중심의 교회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6일의 삶의 자리에서, 바로 그 전투지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는 믿음을 나누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면 일주일에 한번 모여도 전방에서 잠시 쉬며 코이노이아를 나누는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공동체라면 몇 주 주일에 모이지 않는다고 해서 파괴될 만한 그런 형편없는 공동체는 아닐 것입니다.

22.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믿음의 반석입니다. 그 교회가 성장하고 든든하게 서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 대고 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교회를 통해 세상에 나간 사람들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그래서 세상이 감당치 못할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고 마침내 세상의 모두 하나님의 통치하심 아래 들어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교회는 교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셨고 구원하시려는 세상이 바로 교회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지옥이 오고 있다…美 전국 봉쇄 안하면 끝장"

머니투데이 뉴욕 이상배 특파원 2020.03.19.

 

[월가시각]

"지옥이 오고 있다전국 봉쇄 안하면 끝장"

"지옥이 오고 있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미국이 끝장날 수 있다. 만약 앞으로 30일간 전국을 봉쇄(shut down)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로 억망장자가 된 빌 애크만 퍼싱스퀘어캐피탈운용 CEO(최고경영자)는 미국에서 '전국 봉쇄령'만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의 유일한 해답이라고 주장했다. 존스홉킨스대에 따르면 이날 현재 미국 전체 코로나19 확진자는 7769, 사망자는 118명에 이른다.

 

애크만 회장은 "자본주의는 18개월의 봉쇄에선 작동하지 않지만, 30일의 봉쇄에선 작동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해법으로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한다면 11월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할 것이라고 확언했다.

 

S&P 고점 대비 30% "경기침체 가능성 90%"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국민들에게 현금을 쥐어주는 '헬리콥터 머니'도 소용없었다. 18(현지시간) 뉴욕증시는 또 다시 폭락했다. 열흘새 4번째 '서킷브레이커'(일시매매정지)가 발동된 끝에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2만선마저 붕괴됐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블루칩(우량주) 클럽인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1338.46포인트(6.30%) 급락한 19898.92에 거래를 마쳤다. 다우지수가 2만선 아래로 떨어진 건 20172월 이후 3년여만이다.

 

대형주 위주의 S&P(스탠다드앤드푸어스) 500 지수는 131.09포인트(5.18%) 하락한 2398.10으로 마감했다. 지난달 고점 이후 30% 가까이 떨어졌다.

 

이날 오후 1256분쯤엔 S&P 500 지수가 7% 이상 급락하면서 뉴욕증권거래소(NYSE)'서킷브레이커'를 발동하고 15분간 거래를 정지시켰다. 뉴욕증시에선 지난 9일과 12, 16일에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344.94포인트(4.70%) 내린 6989.84를 기록했다.

 

유럽증시도 급락했다. 범유럽 주가지수인 스톡스600은 전날보다 11.41포인트(3.92%) 떨어진 279.66에 거래를 마쳤다. 독일과 프랑스 증시 모두 5% 이상 하락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기침체에 대한 공포가 주식시장을 패닉으로 몰고 있다. 더블라인캐피탈의 제프리 군드라시 CEO(최고경영자)"코로나19 사태로 경기침체를 맞을 가능성은 90%"라며 "경기침체를 피할 것이란 기대는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톰 이싸예 세븐스리포트 회장은 "시장에 필요한 건 코로나19에 대한 백신 또는 치료제 개발"이라며 "무엇보다 확진자 수 증가세가 꺾여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국민 1인당 120만원씩 두번 뿌린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국민 현금 살포 계획도 주식 투매를 막진 못했다. 이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미 국민들이 연방정부로부터 받게 될 수표의 금액이 당초 알려진 1인당 1000달러(120만원)2배에 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사태에 따른 경제위기를 막기 위해 추진 중인 최대 1조달러(1200조원) 이상 규모의 '슈퍼 경기부양'의 일환이다.

 

WP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미국인들에게 1인당 약 1000달러짜리 수표를 다음달 6일과 518일 두 차례에 걸쳐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급 규모는 개인별 소득수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전날 기자회견에서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국민 1인당 지급액이 1000달러에 달할 것이란 보도에 대해 "그것보다 조금 더 클 수도 있다""백만장자들에게까지 수표를 보낼 필요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경제방송 CNBCWP의 보도를 종합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미 의회에 최소 8500억달러, 최대 1조달러 이상 규모의 경제부양책 패키지 승인을 요청했다.

 

패키지에는 현금 지원 및 세금 감면 50005500억달러 소규모 사업체 지원 20003000억달러 항공 산업 구제 5001000억달러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총 3000억달러(360조원)에 달하는 개인과 기업의 세금을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개인은 최대 100만달러(12억원), 기업은 1000만달러(120억원)까지 세금 납부를 미룰 수 있게 된다.

 

"내 인생 다섯번째 엄청난 매수 기회"

이번 부양책은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유급 병가 지원 등을 위해 추진하는 1000억달러 규모의 패키지와는 별개다. 이 패키지 법안은 이날 상원을 통과해 백악관으로 넘어갔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만 거치면 발효된다.

 

또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이날 458억달러(57조원) 규모의 추가 긴급예산도 별도로 미 의회에 요청했다.

 

CNN 방송에 따르면 미 백악관 예산관리국은 전날 밤 의원들에게 보낸 118쪽 분량의 요청서에 첨부한 서한에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확산함에 따라 자원 수요도 증가했다"며 추가 예산을 요청했다.

 

백악관은 "미 행정부가 달성한 전례 없는 조치로 기관들이 예상치 못한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완전한 운영 능력을 보장하기 위해 입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예산은 보건복지부와 보훈부, 국방부 등에 지급될 예정이다.

 

백악관 관계자는 "우리는 의회와 보다 광범위하고 중요한 문제에 대해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CNN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슈퍼 경기부양책에 긴급예산 요청이 포함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일각에선 장기적인 관점에서 낙관론도 흘러나온다. 미국의 전설적인 가치투자자인 빌 밀러 밀러밸류파트너스 회장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 4차례의 엄청난 매수 기회가 있었다""첫번째는 19731974(1차 오일쇼크), 두번째는 1982(국제 금융위기), 세번째는 1987(블랙먼데이), 네번째는 20082009(서브프라임 모기지 금융위기)이고 지금이 다섯번째다"라고 말했다.

 

페이스북 이주혁 성형외과 의사 (코로나 일기)
.2020.3.21.

 

Korea, Wonderland? 참 이상한 나라. 라는 영상을 보면서 나는 사실 손발이 많이 오그라들었다.
문체부 산하 해외 문화 홍보원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한국의 코로나 사태 극복의 특징을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여기에서 힘주어 말하는 것은 한국인의 "공동체에 대한 개인적 헌신"이다. "함께, 극복" 이라 외치자고 하는 것 역시 공동체- 개인간 밀접성에 관한 긍정적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국뽕에 잘 취하는 편이다. 국뽕 글도 얘기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 국뽕에 빠질 때는 빠져야 하는 근거를 먼저 설명해 줘야 한다. 영상을 보면서 나는 왜 한국인들이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당연히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건 한국의 기후, 지형과 관계가 깊다. 이 나라의 날씨는 불과 한 주에서 보름 사이에 완전히 바뀌어 버리곤 한다. '우기'라고 하는 장마도 동남아같은 데에 비하면 정말 짧고, 가을 추수철에도 지독히, 다이내믹하게 확확 바뀌고 하루 차이로 논밭에 아침 서리가 내려 버리곤 한다.
그러니 예컨대 모내기철이라 하면, 대부분 딱 2주 정도 되는 시간 안에 일을 죄다 끝내야 하는 것이며 그게 추수때도 그렇다. 그 적기가 눈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이러니 한국은 공동체 문화가 발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남아같은 데랑은 틀리다. 도저히 한 가구의 노동력으로 짧은 시간 내에 그걸 할 수 없으니 여럿이 돌아가며 일을 같이 해주는 게 문화가 된 것이다. "빨리 빨리" 문화 역시 여기서 기인한다.
즉 공동체를 떠나서는 개인이 혼자 잘났다고 살아갈 수 없다. 수없이 긴 세월동안 인이 박힌 인식이다.

IMF 금 모으기, 태안 기름 유출 자원봉사. 코로나 바이러스 경북 지역 자원봉사. 이 모든 것이 같은 선상에 놓고 해석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에선 공동체가 위기에 빠지면 남의 일이 아니라는 형식의 관점이 어느덧 DNA 속에 박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야 저거 큰일났는데 싶어 보이면, 너도 나도 나서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영상을 보면서 어찌 보면, "우리가 사는 모습은 이래요" 라는 걸 생판 모르는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기분, 좀 미묘하지만 참 새삼스러운 그런 느낌이었다. 그저 우리의 특징이고 우리의 삶인데...... 물론 자랑스럽지만, 왠지 자꾸 손이 오그라들어서 혼났다. 그냥 저거 영어 자막 쓰지 말고 우리끼리만 돌려보지....ㅠ

그럼 일본 사람들은 어떤가? 걔네는 왜 저러고 있나? 그것도 사실, 욕할 것도 없고 비난할 것도 없다. 생각해 보면 걔네도 당연한 것이다.
일본은 봉건시대를 오래 했기 때문에 옛날부터 전쟁을 너무 많이 했다. 현마다 성마다 영주들끼리 죄다 땅따먹기 쌈만 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촌락 자체가 요새화되어 있었다.
일본이 절대로 좁은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닥다닥 붙어서 진짜 쪼만한 데서들 산다. 공간 활용 능력은 거의 세계 최고. 왜 그런 걸까. 요새화된 성내에서 다들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공동 화장실, 공동 급수, 공동 목욕, 이런 건 오랫동안 문화로 굳어졌다. 그러니 사람들이 질서를 잘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질서를 안 지켰다간 큰일나는 거다. 그리고 순종한다. 좀 공정하지 못해 보이는 일이 있다 해도 나서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 좁디 좁은 촌락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몰려 살고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전란을 겪으면서, 이들은 관료들의 권위를 세워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같다.
지금 코로나 19 방역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책은 전세계 최악이다. 그러나 그걸 다 외국에서나 뭐라고 하지, 정작 거기 살고 있는 일본 국민들은 일언 반구 어떤 항의도 않는다. 사망자가 엄청나게 생긴다고 하여도 그들은 체념하고 또 지휘부에 순종할 것이 분명하다.

이탈리아는 왜 저러나? 거기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자. 첫째 유럽 전체가 비슷한데, 얘네들이 단일한 민족 국가를 이루게 된 게 언젠지 꼽아 보면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다 무슨 공국, 백작령, 도시국가 이런 식이었고 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무슨무슨령, 이렇게 죄다 쪼개져 있었다.
한국, 중국, 일본은 너무 오랫동안 단일한 민족으로 동일한 지역에서 계속 주구장창 살아 왔었기 때문에 민족 국가 형성이 쉬웠지만, 유럽은 전혀 절대 아니다. 아직도 쟤네들 한 나라라는 일체감이 별로 없다. 이탈리아는 더더욱 그렇다.

이탈리아가 2차 세계 대전때 독일이랑 편 먹고 추축국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무슨 두각을 나타냈다는 소리 들어본 적 있는가. 얘네들이 "이탈리아"라는 단일 국가라는 걸 느낄 때는 월드컵할 때밖에 없을 꺼같다. 그때 빼고는 저 위에 밀라노 사는 사람이랑 저 밑에 시칠리나 나폴리 사는 사람들이랑 같은 동족이라는 의식 자체가 희박하다. 그러니 코로나 어쩌고 해서 정부에서 이래라 저래라 아무리 해 봤자 안 먹히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산업과 과학, 기술이 우수하게 발달한 공업 선진국이다. 의학도 발전한 나라이다.
하지만 감염병에 대한 대처는 대중적 통제가 중요하고 엄정하고 자발적이면서 일사불란한 면이 있어야 하는데, 이탈리아에 그런 게 있을 수가 없다. 국민들이 너무나 자유롭고 낙천적이며, 그 문화가 그런 걸 해 본 적이 없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인들이 코로나 19 사태에 전세계에 주목을 받고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는 이 상황이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성취욕이 강하며 열성적이고, 교육 수준도 높다. 하지만 그걸 한국인들의 민족성이 빼어나서, 그런 식으로 갈 필요는 없다. 단지, 한국적인 성향, 특성. 그런 것이 외국인들과 비교해 볼 때 이렇다 라는 것을 우리가 새삼 느끼게 되는 그런 좋은 사례를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에서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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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유럽, 미국에선 지금 다들 시즌1의 긴 터널로 들어가고 있지만 우리는 그 터널을 나와 이제 시즌2 기획하고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할 듯....

 

클리앙 블로그 '모두의 공원'
.2020.3.20.

 

[외신] 유발하라리,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

 

국내에서도 아주 유명한 작가 유발 하라리가 오늘 피아낸셜타임즈(Financial Times)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것도 꽤 재미있는 기사여서 아래와 같이 소개해드립니다. 다소 길 수 있지만 전부 읽어보는 걸 추천합니다. 

급하게 번역한 것이어서 약간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 

 

https://amp.ft.com/content/19d90308-6858-11ea-a3c9-1fe6fedcca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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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지금 글로벌 위기를 맞고 있다. 어쩌면 우리세대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위기일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정부와 개인들의 내리는 선택에 따라 앞으로의 세계가 결정될 수 있다. 보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경제와 정치 그리고 문화를 바꿀 것이다. 우리는 신속하고 단호하게 행동해야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장기적인 결과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여러 대안 중에 선택을 할 때 우리는 당면한 위협을 극복하는 것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어떤 세상이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폭풍은 결국 지나갈 것이고, 인류는 - 사실 우리 대부분 - 생존할 것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는 많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여러 단기적 긴급 처방들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이는 사실 긴급조치의 특성이다. 이는 역사정 과정을 가속화시킨다. 평시에는 수년간의 심의를 거칠 수도 있는 결정들이 몇 시간만에 내려진다. 성숙되지 못하고, 심지어 위험할 수 있는 기술들이 곧 바로 도입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리스크가 더 크기 때문이다. 한 국가 전체가 거대한 사회실험을 위한 기니아 피그가 될 수도 있다. 모두가 집에서 일하고 원거리로 소통할 때 어떻게 될까? 보통 때라면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교육당국은 그러한 실험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보통 때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우리는 두 가지 힘들고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첫째는 전체주의적인 감시체제와 시민적 역량강화 사이에서의 선택이다. 두번째는 민족주의적 고립과 글로벌 연대 사이에서의 선택이다. 

 

밀착감시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인구 전체가 특정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정부가 사람들을 감시하고, 룰을 어기는 자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오늘날, 아마 인류 사상 최초로, 기술을 통해 모든 사람들을 24시간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50년 전 KGB는 2억 4천만명의 소련인민을 24시간 감시할 수도 없었고, 정보를 수집하여도 이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없었다. 당시 KGB는 휴먼에이전트와 분석가들에 의존하였고, 모든 사람을 감시하기 위해 1인당 요원 1명을 배치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오늘날 정부들은 유비쿼터스 장치와 강력한 알고리즘을 동원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맞서기 위해 이미 여러 정부들이 이러한 새로운 감시도구들을 동원하였다. 물론 가장 돋보이는 것은 중국이다. 사람들의 스마트폰을 감시하고, 얼굴을 식별하는 수백만대의 CCTV를 동원하고, 또 사람들에게 체온을 제고 건강상태를 보고하도록 강제하므올써 중국은 신속하게 보균자를 식별해낼 수 있었고, 이들이 접촉한 다른 사람들을 신속히 찾아낼 수 있었다. 게다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이 감염자 근처에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기술은 동아시아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네탄야후 총리는 최근에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평시에 테러리스트를 추적하기 위한 감시기술을 감염자를 찾아내기 위해 동원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안건을 심의하는 의회 상임위가 이를 거부하자, 네탄야후 총리는 긴급조치명령을 내려 이를 무시해버렸다. 

 

혹자는 이것이 전혀 새롭지 않다고 할지 모른다. 이미 최근 몇년간 정부와 기업들은 첨단기술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감시하고 추적하고 또는 조작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전염병은 감시체제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길지도 모른다. 이러한 기술을 동원하는 것이 이런 기술을 거부했던 국가에서조차 "일상화"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감시기술 자체가 "근접감시"(over the skin)에서 "밀착감시"(under the skin)로 전환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당신의 손가락이 스마트폰의 특정 링크나 어플리케이션을 누를 때 정부는 당신이 무엇을 클릭했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정부가 당신의 체온과 당신의 혈압까지 알고 싶어한다. 

 

위기라는 상황

 

감시기술 관련해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 중 하나는 우리 중 누구도 우리가 어떻게 감시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며, 앞으로 이것이 어떻게 될 것인지 모른다는 것에 있다. 감시기술은 아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10년 전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가능했을 법한 일은 오늘 관점에서 보면 이미 구닥다리가 되어버렸다. 한 가지 상상을 해보자. 모든 시민들에게 생체정보를 감시하는 팔찌를 착용하도록 강제하는 정부가 있다고 치자. 이렇게 수집한 정보는 다시 정부의 알고리즘을 통해 다시 처리된다. 알고리즘은 당신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당신이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당신에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한 알고리즘은 전염병의 확산을 획기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며 어쩌면 아예 확산조차 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멋지지 않은가?

 

물론 가장 뻔한 단점은 이러한 방식이 아주 무서운 감시체제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내가 CNN 대신 FOX NEWS를 클릭한다면 정부는 나의 정치적 성향이나 성격까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동영상을 볼 때 나의 체온과 혈압 그리고 심박수까지 알게 된다면 내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 언제 화가 나는지까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분노와 기쁨, 지루함과 사랑은 감기나 열처럼 생물학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침을 식별하는 기술은 웃음도 식별할 수 있다. 만약 정부와 기업이 우리의 생체정보를 대량으로 수집하게 된다면, 그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우리를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리가 감정을 예측할 수도 있고, 또는 조작까지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상품을 판매하거나 원하는 정치인을 지지하게끔 할 수도 있다. 생체정보를 이용한 감시는 캠브릿지 애널리티카 (필자주 - SNS 데이터를 대량으로 수집하여 여론조작을 일삼은 업체) 의 데이터 해킹 기술을 석기시대의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만약 2030년 북한이 모든 시민들에게 24시간 생체감시를 가능케 하는 팔찌를 착용하게 해서, 수령의 연설을 듣고 있을 때 분노감정을 식별한다면, 당신의 운명은 이미 끝날 것이다. 

 

물론 그러한 생체감시 기술을 아주 긴급한 위기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사용하면 되지 않겠냐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위기상황이 종료되면 바로 중단하면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임시적 조치는 대게 위기상황이 종료되어도 지속되기 마련이다. 나의 고향 이스라엘을 예로 들어보자. 이스라엘은 1948년독립전쟁 당시 비상시국을 선포하여 언론검열과 토지몰수 심지어 푸딩을 만드는 것에 대한 특별한 규제 등을 "임시적"으로 도입했다. 그런데 1948년 취해진 임시조치 중 상당수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여럿 계속되었다 (푸딩을 만드는 법에 대한 임시규제는 2011년에서야 폐지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진자가 제로로 감소하여도, 데이터 수집에 굶주려있는 정부들은 2차확산을 막기 위해 생체감시가 필요하다고, 또는 에볼라를 막기 위해서, 또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어떤 이유를 만들어내서 계속 주장할지도 모른다. 최근 몇년 동안 우리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전쟁이 지속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전쟁의 티핑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건강과 개인정보 중 양자택일하라고 한다면, 대부분 건강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누 경찰(Soap Police)

 

사실 사람들에게 개인정보와 건강 사이에 선택하라고 하는 것이 문제다. 건강과 개인정보 모두 누리는 게 마땅하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를 막고 우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전체주의적 감시체제를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 시민적 역량강화(empowering citizens)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최근 몇주동안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데 가장 성공적이었던 사례는 바로 한국, 대만, 그리고 싱가포르이다. 이들 국가들 또한 추적을 위한 시스템을 동원했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폭넓은 테스트와 투명한 정보공개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었다. 

 

사람들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중앙집권적 감시와 무서운 처벌이 만능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과학적 팩트를 제공하고, 그리고 사람들이 정부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믿을 때, 시민들은 빅브라더의 감시 없이도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다. 스스로의 이익을 알고 정보를 잘 알고 있는 시민들은 보통 감시 받는 무지한 대중보다 강력하고 효율적이다. 

 

손을 비누로 씻는 행위를 생각해보자. 이 행위는 인류 보건사에 큰 발전이었다. 이처럼 간단한 행동이 매년 수백만명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비누로 손을 씻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의사와 간호사 모두 손을 씻지 않고 수술을 시행했다. 오늘날 수억명이 매일 손을 씻는다. 이는 비누경찰이 들이닥칠까봐 두려워서 하는 행동이 아니다. 당연한 팩트를 알고 있기 때문에 손을 씻는 것이다. 내가 손을 비누로 씻는 이유는 바이러스와 세균이 존재함을 알고 있고, 이 미생물들이 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비누가 이를 제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레벨의 순응과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과학을 믿을 필요가 있고, 공권력을 믿을 필요가 있고, 언론을 믿을 필요가 있다. 최근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과학과 공권력과 언론에 대한 불신을 의도적으로 증폭시켰다. 그리고 이들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다시 전체주의적 길을 걷고자 한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옳은 일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수년간 약화되었던 신뢰를 갑자기 회복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보통 때가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생각 또한 빠르게 변한다. 형제자매와 티격태격 싸워도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서로 모르고 있던 신뢰와 우정을 발견하게 된다. 감시레짐을 만들기 보다, 과학과 공권력 그리고 언론을 다시 믿게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은 물론 사용해야 하지만, 이 기술을 이용하여 시민들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나의 체온과 혈압을 측정하는 것은 동의하지만, 이 데이터가 전지전능한 정부를 만드는 것은 거부한다. 데이터는 나의 개인적 선택 관련 나에게 더욱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데 사용되어야 할 것이고, 또 정부가 내리는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데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중략)

 

글로벌 플랜이 필요하다 

 

두번째 중요한 선택은 민족주의적 고립과 글로벌 연대 사이의 선택이다. 전염병과 이로인해 파생되는 경제위기는 모두 글로벌 위기이다. 이는 오직 글로벌한 협조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먼저 바이러스를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글로발 차원에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이 바이러스에 대해 갖고 있는 강점이다. 중국의 코로나바이러스와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는 더 많은 인간을 감염시키기 위해 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에게 바이러스를 상대로 한 유용한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의사가 아침에 발견한 사실은 저녁에 테헤란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영국 정부가 여러 정책 대안을 상대로 고민할 때, 한 달 전 비슷한 고민을 했던 한국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 글로벌 협조와 신뢰가 필요하다.   

 

국가들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할 필요가 있고 겸손하게 조언을 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주고받는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하며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의료물자를 글로벌 차원에서 생산하고 배분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테스트기와 호흡기 관련해서 말이다. 모든 국가들이 혼자서 노력하고, 모든 물자를 혼자서 독식하려고 하기보다, 글로벌 한 차원에서 생산을 가속화시키고 공정하게 이를 배분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 시 국가들이 전략산업을 국유화하는 것처럼, 코로나바이러스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전략물자를 "인류화"할 필요가 있다. 확진자 수가 적은 부유한 국가는 확진자 수가 많은 빈국에게 물자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하며, 추후 비슷한 일이 자국에서 발생했을 때 다른 국가들이 도울거라는 믿음이 만들어져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의료인력을 글로벌 차원에서 풀링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 피해가 적은 국가는 자국의 의료진을 가장 심한 피해를 입은 국가에 파견하면서 사람들을 구하고 또 귀중한 경험/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전선에서도 글로벌 협력은 필수적이다. 세계경제와 공급사슬의 글로벌 성격으로 인해 국가들이 자기만 살자고 다른 국가를 고려하지 않고 행동한다면 더욱 큰 혼란과 더욱 큰 위기로 이어질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급한 글로벌 플랜이다.  

 

또한 우리는 여행에 관한 글로벌협약이 필요하다. 모든 국제여행을 수개월간 멈춘다면 엄청난 어려움을 초래하고, 코로나바이러스를 상대로 한 전쟁에도 누가 될 것이다. 국가들은 최소 필수적인 여행을 위해 국경을 개방할 필요가 있다. 과학자, 의사, 기자, 정치인, 그리고 기업인들은 계속 국경을 넘어 이동할 필요가 있다. 여행자들을 출발지에서부터 사전에 스크리닝하는 등의 글로벌협약을 맺을 필요가 있다. 여행자들이 사전 스크리닝을 통해 출발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면, 이들을 도착지 국가는 이들을 안심하고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각국 정부들은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집단적 마비가 국제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진지한 책임자가 보이지 않는다. 보통 이런 일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글로벌 리더들이 일찌감치 어떤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모이는 것을 예상한다. G7 정상들은 이번주나 되어서야 화상회의를 진행했고, 결과는 보잘 것 없었다.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2014년 에볼라 위기 당시 미국은 글로벌 리더로서의 역할을 자임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 행정부는 리더의 역할을 방기했다. 미국의 지도자는 미국의 위대함만을 신경쓰며 인류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동맹들조차 방기했다. EU발 입국금지를 선언했을 때 EU와 한 마디도 상의하지 않았다. 게다가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한 독일의 제약회사에 10억 달러를 건내면서 독점계약을 시도했다. 따라서 현재 행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 글로벌 플랜을 위한 행동을 취한다고 해도 이를 따를 국가들이 몇개 없다. 사람들은 무책임하고,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며, 모두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리더를 따르길 원하지 않는다. 

 

미국의 공백을 다른 나라들이 채우지 못한다면, 전염병을 극복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제관계에도 해로운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위기는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번 전염병이 인류가 글로벌 분열의 위험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인류는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는 분열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연대의 길을 걸을 것인가. 우리가 분열을 선택한다면 위기는 장기화될 뿐만 아니라 미래에 더욱 큰 재앙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우리가 글로벌 연대를 택한다면, 이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상대로한 승리가 될뿐만 아니라, 21세기의 모든 전염병을 상대로한 승리가 될 것이다. 

 

페이스북 이주혁 성형외과 의사 (코로나 일기)
.2020.3.17.

 

홍** 기자분이

"대만이나 싱가폴처럼 해야 그게 진짜 칭찬받는 거지, 한국은 그저 자화자찬이나 하고 앉았다." 라고 써놓셨길래, 그럼 대만 싱가폴 등 딴 나라들이 어떻게 했는지 한번 나름 정리, 비교해 보려 한다.

전염병 대처의 3요소를 나름 정리한다면 1. 검사(test) - 2. 추적/격리 (trace/quarantine) - 3. 치료 (treat) 라 하겠다. (내 마음대로 정리한 것임 ㅠ)

지금 따지고 보면 이 3 단계를 전부 제대로 하고 있는 나라가 몇 개 없다. 한국, 대만, 싱가폴 정도인 것같다. 그 외의 나라들은 그렇게 못한다.

1) 중국은 완전히 강압적인 지역봉쇄를 택했다. 우한시를 아예 물샐틈 없이 봉쇄했으니....
시진핑 정부는 병상도 부족한 우한 시민들을 꺼내서 살릴 생각을 하기보단, 극단적인 격리를 통해 사실상 이 지역의 '치료'를 포기한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고 표현해야 하나. 이런 걸 단행할 수 있는 나라는 별로 없다. 그래도 그것이 효과를 보았다고는 할 수 있다.

애초부터 이 모든 난리는, 우한시가 경제 성장과 인구 밀집에 비해 의료 기관, 의료인 수는 형편없이 부족했다는 점과 초기의 환자 보고를 당국이 무시하였다는 데에 기인한다. 그러니 중국식 사회주의, 관료주의의 가장 취약한 헛점이 바이러스로 인해 전세계에 노출된 것이다.

2) 싱가폴은 우한 감염 사태가 알려지자 3일 후 우한발 여행객을 가려내 격리하기 시작하고 1번 확진자가 생기자 즉각 우한발 여객기 취항을 금지했다.
싱가폴이 가장 코로나에 대처 성적이 좋은 이유는 공중 위생에 대한 시민의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평소에 그게 몸에 배어 있다. 그리고 정부의 지침에 시민들이 굉장히 잘 따르는 편이다. 그리고 의료의 수준도 높다. 즉 빠른 격리와 수준높은 의료, 시민의식과 위생 관념 등이 모두 제대로 작용한 게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근데 며칠 전부터 싱가폴도 외부 유입 환자들이 스물스물 계속 늘어나서 당국이 초긴장사태라고 한다.....)

3) 대만도 비슷한데,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것관 다르게 대만은 단호하게 중국봉쇄를 하지 못했다. 1월 21일 1번 확진자가 나오고 나서 우한발 항공운항을 금지시켰을 뿐이고 3주가 지나서야 운항금지 노선을 확대시킨 것이다. 그래도 베이징 샹하이 청두 샤먼 등은 계속 운항을 허가했다. 그리고 사회적 격리 조치를 엄격하게 했고 위반시 혹독한 벌금을 매겼다.

홍콩은 사실 중국의 일부인데다, 너무 규모가 작은 도시 국가라 다른 국가들과 수치상으로 비교하기 매우 어렵다.

4) 일본은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니 그냥 얘기 안 하겠다. 일본이 노령국가라, 어차피 노인성 폐렴으로 사망하는 환자 수 월 1만명은 되는데 거따가 코로나 그까이꺼로 죽는 숫자 얹어봤자 티나 나겠는가, 굳이 그런 거 자꾸 검사해서 혼란만 가중시킬 필요 없다라는 식이다...ㅠ
그 누구도 이 사태에서 그따우로 하는 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 진짜 일본은 이상한 나라다. (그냥 딴 나라들도 다들 쟤네는 빼고 얘기하니까 얘기 맙시다. )

5) 한국 차례인가.
강경화 외무부 장관이 BBC 방송에서 인터뷰하면서 얘기한 부분이 한국 방역의 특성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개방성, 투명성, 국민과의 공유, 전산화된 시스템과 우수한 의료 수준. 이런 것들이 대표적인 Keyword이겠다. 싸움이란 건 한마디로 많이 해 본놈이 잘한다는 말처럼, 한국은 Mers때 이미 지독한 경험을 겪었고 그때 지리멸렬하게 당했던게 아프게 기억으로 남아 민과 관 모두가, 이미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첫째 한국의 방역에서 가장 최전선은 "선별 진료소"이다.
유럽이 저토록 당하고 있는 이유는 선별 진료소라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병원 앞에 텐트나 기껏 컨테이너 가따 놓고 하는 거 거 뭐 대단하냐 생각들 할 것이다. 그런데 저거야 말로 방역의 핵심이다. 유럽에는 아예 저런 게 없다. 미국에도 없다.

예컨대 코로나 의심 환자가 오면 X ray를 찍어야 할 텐데, 어디서 찍을 껀가? 그거 찍었다 치자, 그런 그 검사실 1시간 넘게 못 돌린다. 소독하느라고.
그리고 그동안 환자가 수납하고 뭐하고 왔다갔다 하는 동안 병원은 아예 감염의 허브가 돼 버린다. "선별 진료소"란 개념은 곧 "드라이브스루 검사소"란 가지를 치고 더 진화했다.
이러한 한국의 대처가 전세계적으로 찬사를 받는 이유는, 미국과 유럽은 그런 거 아예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에서는 "그까짓거 뭐라고 아무나 생각할 수 있는거..." 라고 말하는가보다. 한국의 선별진료소와 드라이브스루는, 전쟁으로 따지자면 다들 참호 파고 요새 구축하는 동안 벼란간 기갑 부대가 우회해서 후방을 쳐버리는, 그런 거랑 같다. 아예 전술적으로 너무나 앞서 있어서 다른 나라들에선 그냥 쳐다보면서 "와..." 이러고 있는 거다.


한국이 감염병 방역에 있어 다른 나라들과 차원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중국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봉쇄 전략으로 나갔다.
싱가폴 홍콩은 경제 시스템이 워낙 작은 도시 국가들이라서 격리와 차단이 단순하니 비교 대상이 못 된다.
대만은 전염병 대유행의 경험이 있고 의료 수준도 높고 시민 참여의식도 강해 한국과 좋은 비교대상인데 아마 "신천지 사태"가 없었다면 모르긴 해도 감염률 사망률 등이 한국과 대만이 비슷했을 것이다.

 

그런데 신천지 사태의 발발이, 오히려 한국의 방역 역량에 대한, 그 Full power를 시험하는 그런 시험대가 돼 버렸다.
한국의 방역 당국과 감염병 의료진은 자고 일어나면 늘어 있는 환자들에 대해 끊임없이 검사하고 추적하고 격리하고 치료하기 시작했다. 거의 몸을 갈아 넣는 수준이었다. 한국은 지금까지 26만 회가 넘는 검사를 했다. 테스트에 필요한 장비들의 생산력이 뒷받침되고 의료 병상과 의료 물자, 의료 및 방역 인력 등이 모두 뒷받침돼야만 가능했던 일이다.

세계의 어떤 나라도 한국처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못한다. 신천지같은 게 터졌을 때, 그걸 진화하고 방역의 모든 단계를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몇 주를 지속해 왔다는 것, 이런 걸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미국과 영국 다 한국 보면서 "야, 됐어, 우리는 쟤네들처럼 못해" 이러고 있다.
온 세상이 다 한국 한국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진단 의학 관련 테크놀로지, 자본, 시설, 의료 장비 등의 산업적 역량과 스케일과 의료인들의 수준 등이 모두 갖춰져 있는 나라는 드물다.

이 모든 것에 우선하여, 우리의 민주주의가 중심에서 그 힘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사태에서 지난 정부와는 달리, 현재의 우리 정부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공개하고 있다. 그리고 조기 진단을 위해, 검사 시스템을 당국은 신속히 승인했고 테스트에 필요한 장비들을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국경 봉쇄와 지역 차단이 아닌, 민주적 가치에 충실하고 있다. 정부는 군림하려 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려 하였다. 국민이 그렇게 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외국인들이 "너희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한국의 민주주의 때문이라 말해야 할 것이다.

옛날, 이승만 정부 치하에 치뤄진 자유당의 지독한 부정 선거를 본 한 외신 기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쓰레기통 속에서 장미가 피길 기대하는 격"이란 굴욕적인 말이었다. 60년이 지난 지금, 외신 기자들은 아마도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가 한국만큼 해내려면, 황무지에서 장미가 필 만큼의 기적이 있어야 할껄"

 

 

페이스북 이주혁 성형외과 의사 (코로나 일기)
.2020.3.14.

코로나 안심통신 2. -- 강원대 의전원 고유라 교수 글을 받아서 이어 쓰기.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위태롭지 않다.라고 합니다.
손자의 이 영원한 병가적 진리에서 백번 '이긴다'라고 쓰지 않았다는 게 우리에게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이러스는 싸워서 '이길' 혹은 '토벌하고 무찌를'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단지 우리가 위태로워지지 않으면 되는 것이죠.

인간은 미지의 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가집니다. 신종, 인류가 처음 겪는, 외부에서 들어온,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런 것들을 굉장히 무서워하고 쉽게 패닉에 빠집니다.
그런데 그게,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생물도 마찬가지에요. 산에서 만약 멧돼지를 만났다면, 절대로 자극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됩니다. 자기가 알아서 다른 길로 도망가니까요. 그런데, 적대감을 내비치고 공격하려 하면 큰일나는 겁니다. 근데 그게 바이러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처음에 후베이성의 우한시를 덮친 초기의 코로나19는 위협적이었던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그 유전자군이 처음 겪는,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니까,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아주 공격적으로 행동했던 겁니다. 그러면 치명률이 높아집니다.
실제 우한시의 초기 감염 환자들의 치명률은 굉장히 높았던 것같애요.
그런데 바이러스는 계속 변합니다. 그리고 적자 생존의 원칙에 따라 매우 빠른 시간만에 변화합니다. 자기가 올라탄 이 거대한 생명 기계, 인간이라는 숙주를 죽인 바이러스들은 더이상의 복제도 못하고 도태되었다는 거죠.

바이러스가 원하는 단 한가지는, 자기의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퍼뜨리는 것입니다. Covid 19도 마찬가지죠. 이 숙주를 쓰러뜨려서는 안 되겠다. 이걸 살려 놓고, 빠르게 다른 숙주로 올라탈 수 있도록 하자. 이렇게 전략을 세운 것입니다.
이런 진화론적 선택에 따라 후베이성 이외의 중국 도시들, 그리고 한국에선 우한시에서의 발병자 만큼의 치사율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고유라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 어떤 전염병이든 전체 인구의 40~70%가 감염되고 나면 전진을 멈춘다고 하네요. 항체를 가지고 회복된 사람들이 살아남아 더 이상 전파되지 않는 저지선을 형성하는 거라고요.

Covid 19는 지금 인간과의 타협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인간의 멸종이 아닙니다. 아니, 정확히 그 반대죠. 인간이 다 죽으면 그들도 멸종합니다. 같이 먹고 살자는 거에요.

유행성 독감이나 감기, 다들 겪어 보셨죠, 한 명도 감기 안 걸려 본 사람이 없을 꺼에요. 한 1~2주 콜록거리다가 마는 거. 하지만 유행, 전염력은 굉장히 빠르죠. 봄, 가을이면 예외 없이 또 오구요.
Covid 19는 자기들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겁니다. 이들은 어렵게 변이돼서 올라탄 인간이라는 숙주에서 '말살'되고 싶지 않아 해요. 이번 유행이 지나가면, 가을이나 다음 봄에 또 유행을 하면서 자기 게놈을 열심히 퍼뜨리고 싶어할 껍니다. 그때는 또 신상, 즉 새로운 게놈으로 찾아 오려 준비하겠죠. 한결 더 위협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말이죠.

예컨대 당뇨 환자가 있다 치면 (가정의학과 의사인 고유라 교수가 더 잘 설명할 수 있겠지만) 당뇨는 치료되는 병이 아닙니다. 조절하면서 살아가는 병이죠. 내가 당뇨 환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당 수치를 diet하고 운동하고 담배 끊고 생활 규칙적으로 하고 그러면서 조절해 나가는 게 대응 방안입니다. 그럼 당뇨를 이길 수 있어요. 다시 손자병법입니다. "이긴다"는 것이 곧, "위태롭지 않게 살아간다" 라는 것과 같습니다. Covid 19도, 인간도 서로 위태롭지 않으면 되는 것이거든요.

바이러스와 우리는 이제, 공존을 모색할 때가 되어 갑니다.
박멸하고 철저히 뿌리뽑자고, trace, test, treat. 이와 같은 순환을 영구히 반복할 수는 없어요. 박멸되지 않습니다. 저는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장기적으로 가는 동안, 집단 면역이 생기고 인간은 Covid 19.에 대한 더 완벽한 항체를 만들 수 있게 되고 혹은 백신이 개발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신종 플루에 대해 패닉에 빠지지 않듯, 내년 이맘때쯤의 우리는 Covid 19를 지금처럼 위협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 역시 인간 몸 속을 휘젓지 않고 얌전히 지낼 것이고요.
문제는, 경제적 산업적 문화적 충격을 너무 크게 받지 않으면서 그때까지 버티는 것입니다. 특히 대구-경북 지방의 경제가 빨리 살아나면 좋겠습니다.

 

페이스북 고유라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조교수 (코로나 안심통신)
.2020.3.13.

[코로나 안심통신] 인류멸망 시나리오?

미지의 전염병이 나타났습니다.심지어 증상도 감기 비슷해서 전 인구의 6-70프로가 걸릴 수 있다고 대비하랍니다. WHO는 판데믹을 선언합니다. 이번에는 그래도 치사율이 낮은 것 같은데, 다음에는 사스나 메르스, 에볼라 같이 더 센 놈이 나타나면 어쩌죠? 인류는 언젠가 바이러스로 멸망하게 될까요?

답은 그럴 수 없다 입니다.
먼저 모든 인류가 다 감염되지 않습니다. 어떤 전염병이든 전체 인구의 적게는 40 많게는 70프로가 감염되고 나면 전진을 멈춥니다. 항체를 가지고 회복된 사람들이 살아남아 더 이상 전파되지 않는 저지선을 형성하는 거죠. 이를 집단면역이라고 부릅니다.

두번째는 바이러스가 매우 빠르게 진화하기 때문입니다. 대략 인간보다 돌연변이가 100만배 자주 출현합니다.바이러스가 진화한다는 게 공포스럽게 들릴 수 있겠네요. 더 치사율이 높게 진화하면 어쩌죠? 아니요.다행히 더 치사율이 낮아지는 형태로 진화합니다.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는 숙주를 죽여버려 더 많이 퍼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감염력이 낮은 바이러스가 자연의 선택을 받아 인류와 더 오래 공존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신종플루가 그랬습니다. 국내에서만 76만 명을 감염시켰던 저번 판데믹. 지금은 계절성 독감과 딱히 구분짓지도 않습니다.

신종코로나도 그런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1월 23일을 전후로 독감과 비슷한 수준으로 증상이 약화되었다고 합니다. 초기에 건강한 의료진들 마저 속속 쓰러뜨리던 그 바이러스가 벌써 진화해서 한국에 이르러서는 사망율이 0.7정도에 불과하게 된 상태인거죠.

그럼 빌게이츠도 경고한 판데믹으로 인한 인류멸망시나리오는 다 엉터리인가요?
가능하긴 합니다. 우리의 대처에 따라서요.
불타는 건물에서의 가장 많은 사망은 질식과 탈출하려는 사람들에 의한 사고사입니다.
우리가 공포에 영혼을 잠식당해 나 혼자 살려고 도망칠 때 시스템이 붕괴합니다. 의료자원은 고갈되고, 법치는 무너지고, 약탈과 방화가 일어나서 우리 손으로 쌓아올린 문명을 부수어 버린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공포를 직시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며 의연하게 스크럼을 짜고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줄 때, 전염병은 인류에게 그다지 큰 위협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세계에 그 모범을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결국 바이러스와 싸워 이기거나 아니면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바이러스는 우릴 멸망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공포에 사로잡혀 이성과 인간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서로에게 백신이고 치료제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숲이 됩시다.

 

페이스북 이주혁 성형외과 의사
.2020.3.13.

-- 민주당에 감히 바라는 점. --

나는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이 모두 선남 선녀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은 장삼이사, 필부필부들이라고 불려야 맞다. 나를 포함 모든 사람들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살고 있다. 단지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어떤 곳도 고담시는 아니고, 어떤 도시도 조커와 악당들 vs 배트맨과 선량한 시민들이라는, 흑과 백의 무리로 규정되지 않다.

그러니 정치란 무엇인가? 사람들의 탐욕과 이기심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피해를 주지 않게 조절하는 일일 것이다. 그게 정치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탄핵 이후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문 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 중 하나가 "적폐 청산"이었을 것이다. 당시 시민 사회는 그릇된 것을 고치겠다는 의기와, 나라를 우리 손으로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어떤 소명감과 자신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시민사회는 그런 자신감을 잃고 소명감은 퇴색해 간다. 원래가 사회는 복잡했고 도처에서 이해의 충돌은 많았기 때문이다.
정치 세력을 바꾸는 건 어찌 보면 단순한 일이었다. 이쪽 혹은 저쪽 선택의 문제였으니. 그러나, 경제-사회 곳곳의 문제점과 난맥상을 해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바로 문재인 정부의 본질적인 어려움이 읽혀진다.

즉, 그 태생에서 시민의 기대와 참여가 워낙에 강했기 때문에, 통치 과정에서 예전 세력과 다름을 꼭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의 무게 또한 너무 컸다는 것이다.
여기는 고담시가 아니다. 악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악도 우리 몸의 일부였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 운동에서처럼, 종기 짜듯 아예 싹둑 도려내야 할 부분도 있었으나, 너무 많은 시민들이 그 문제점의 일부였던 부분도 도처에 널려 있었다는 것이다. 부동산이나 교육 문제가 대표적이다.

내가 알기로, 한국에서 무주택자와 유주택자의 비율은 45대55정도이다.
유주택자가 더 많다!!
그럼, 대체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쓰면 무주택자들은 평생 집없는 설움이 이 정부때문에 더 심해졌다며 울고 불고할 것이며, 보유세를 대폭 높이면서 집값을 밟으면 유주택자들이 "이 정부는 잘못 뽑았어, 다음 선거때 심판할 꺼야" 라고 이를 갈 것이다.

투기 세력이 존재한다 치자.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투기 세력이 집값을 홀연히 높여 놓으면 그 수혜를 받아 자기 자산이 늘어나고 있는 시민들은 겉으론 욕을 할 지 언정 속으론 안도의 한숨을 쉴 것이다. 그러니 예컨대 부동산 정책에 있어서 선과 악의 대조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정책도 그러하며 의료정책 역시 그렇다. 이런 것이 우리 세상이다. 여기는 고담시가 아니다. 그러니 바로 이런 지점에서, 적폐를 뿌리 뽑고야 말겠다는 구호는 사실은, 지난 시간동안 많은 시민들의 반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 것이다. 적폐라는 단어는, 중반기로 접어들면서 사실상 거의 정부 공식 단상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다.

정치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복잡한 실타래를 푸는 일이란 걸, 집권 민주당에서 몰랐을 리는 물론 없다. 민주당에는 정말로 훌륭한 정치인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정치인"이란, 악당들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라기보단 서로 이익이 충돌하는 지점을 잘 알고 그걸 서로 다치지 않고 풀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 이번 집권당의 탄생 자체가 그처럼 "선량함"을 강요당하는 측면이 분명 있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정권 탄생 초기에는 "적폐를 척결해"라고 소리쳤지만, 지금은 "나 먹고 사는 게 그거보다 급해" 라고 절규하고 있는 중이다. 그걸 대체 어떻게 해결하란 말인가? 그래도 해결 아니라 개선이라도 시켜야 한다. 그래서 정치란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국 사태 (검찰의 난)는 왜 일어났을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나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반정부적 정치 성향을 가진 이들은 아직도 '조국' 두 글자만 나오면 이를 갈고 입에서 쌍욕을 뱉어낸다. 그런 혐오와 분노에는, 어떤 합리적인 이유도 근거도, 증거도 없다.
내가 생각한 이유는 이것이다. 이 정부는 선량함을 강조하고 맑고 깨끗함을 내세우고 있었는데, 그걸 바라보는 시민들은 맑고 깨끗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맑고 깨끗하지 않다. 특히, 제도권 언론들, 검찰, 법조계, 의료계, 재걔 기타 등등 사실상 모든 시민 사회는 지난 시절 '적폐'와 공존 공생하며 살아왔다.

누구에게나 흑역사가 있다. 흑역사는 지우개로 문댄다고 지워지지 않는다. 문신처럼 팔이나 다리 어딘가에 찍혀 있는 걸 감추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걸 같이 감추면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너 일루 와, 그 팔 봐봐, 이렇게 하면 적이 된다.

세월호 참사에서 "유가족들 왜 저러냐" 라는 식의 거지같은 칼럼도 싣고 했지만 세월호에서 대통령과 해경 해수부의 책임론을 거론하는 기사도 실리는 것이 대부분 언론사의 모습이 아니었나. 누구도 흰색도 검은색도 아니었다. 몇 군데를 빼고 나면, 사실상 모두가 회색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흑역사가 새겨진 흉칙한 문신을 옷으로 가리고 지금은 또 더 좋은 기사를 쓰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게 내가 아는 시민사회의 모습니다.

그런데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구호는 이런 언론에게 자칫하다 내 옷을 휘릭 벗겨내고 이 흉한 주홍글씨가 노출될까 무서워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그래? 너희들은 그렇게 깨끗해?" 라는 심리를 공유했다. 사실상 대한민국 엘리트 사회 대부분이 은근하게 그런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검찰이 일을 터뜨리자 언론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엘리트 사회가 거기에 반향한다. "거 봐, 저럴 줄 알았어, 쟤네들 그렇다니까" 라고 맞장구를 쳐 준 것이었다. 그리고 전 국민으로 이런 정서가 빠르게 공유된다.

나는 새누리-자한-미통당으로 이어지는 정치 세력은 결국은 한국 사회에서 소멸될 것으로 생각한다. 혹은 아주 작은 소수 정당으로 잔존할 수 있다. 한국은 지역 정당이 강하니까, 특정 지역 정당으로 명맥을 유지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미국의 민주-공화 혹은 영국의 보수-노동 처럼, 민주당이 주류 사회를 대변하고 정의당이나 녹색당 등이 여성, 소수자, 다문화 외국인 등을 대변하는 당이 되는, 그런 구도로 점차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런 정치가 정착되는 과도기로서 너무나 중요한 시기라 생각한다.

왜냐. 정치가 안정되지 못하면 경제도 절대로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의 안정에 민생이 달려 있다. 내가 자꾸 정치에 대한 얘기를 하는 이유는,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경제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자한당-미통당과의 싸움에만 골몰해서는 안 된다. 미통당의 수뇌부는 이 선거를 포함, 아마 앞으로 그 어떤 선거에서도 자기들이 수권정당이 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해서 태극기 세력까지 끌어들이고 여러 무리수를 두어 온 게 아닌가. 그러나 어쩌겠나. 그것이 그들의 운명인 것을.....

그러니 민주당은 그들이 어떤 도발을 한다 해도 거기에 쉬 휘둘리거나 말려들지 않기를 바란다. 수권 정당으로서의 무게감과 안정감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길 바란다. 조국사태 = 검찰의 난부터 해서 지금까지 너무 심하게 휘둘려 왔다. 코로나 19 방역은 상당히 선방한 것이었고, 바로 이런 안정감을 시민사회가 원하는 것이다. 순혈주의, 선악의 이분법이라기보단. 그런 무게감과 포용감, 안정감으로 새로운 정치의 시대를 열어나가 주길 바란다.

 

페이스북 이주혁 성형외과 의사
.2020.3.12.

"조선"이라는 국호는 5000년을 이어온 한반도의 면면한 역사를 대표하는 이름인데, 바로 그런 이름을 달고 우리 정부를 외국인들 앞에서 수치스럽게 표현하느라 여념이 없는 신문사를 과연 우리의 언론이라고 해야 할까.

어제 날짜의, 외신 합동 브리핑에 대한 해당 기사를 읽어 보면 내용은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1. 한국 정부는 방역 잘했다고 외국인들 앞에서 자랑질 하느라 바빴다.
2. 그렇지만 외신 기자는 한국 정부를 단번에 무시했다.
3. 그리고 한국 전문가는 한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부인했다.
4. 결론 ; 한국 정부는 자랑질만 하다 외국인들 앞에서 완전 망신당했다.

이 기사만 읽으면, 지금껏 방역을 위해 불철주야 쉬지도 못하고 뛰던 중대본 조정관, 방역대책본부장, 이런 사람들이 마치 "정부 자랑질"만 했던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그건 사실 왜곡이다.

김강립 중대본 조정관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해져 있는 한국의 "신속하고 대량으로 이루어지는 검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저 많은 기자들이 왜 모였겠는가? 한국이 어떻게 이렇게 대응을 빠르게 하고 있는지 그걸 보고 배우고 싶어서 와 있는 것 아닌가? 이태호 외교부 차장도 "혁신적 도구, 대량의 검사, 정책의 투명성, 공동의 노력.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강조했는데, 이런 한국의 최선을 다한 방역 태도와 역량에 대한 언급을 "정부 자랑질"이라고 비난한다니..

-- 독일기자가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제쳐두고 전문가에게 묻고 싶다. 코로나 시작 단계부터 한국 정부가 시의적절하게 대응했느냐" 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김회장이 '성공'이라는 말에 저는 동의하기 좀 어렵다고...... --

이런 식으로 서술해 놓으면 할 말이 없다.

독일인 기자의 질문은 I have a question to the epidemiologists 라고 시작된다. "역학자들에게 질문이 있다" 라는 뜻이며 그 내용은 한국 정부가 "질병의 시작때부터 timely, appropariate reaction을 했다고 보느냐. 아니면 확산이 진행 되면서 그 과정에서 배워 나간 것이냐? 였다. 이건 한국 정부가 방역에 성공했다고 보느냐, 실패했다고 보느냐라는 그런 뜻의 질문이 아니라, "너희들 처음서부터 그렇게 탁탁 신속 적절하게 한 거 맞냐? 뭔가 중간에 시행착오도 있고 그러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이라고 이해하는 게 옳을 것이다.

한국 역학회장의 답변도, "우린 3개월이나 되는 시간동안 계속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결과에 대한 어떤 평가를 내리기엔 너무 이르다. 지금도 대응 중이고 공부하는 중이다. (그러니 지금 성공/실패를 나누기엔 너무 빠르다.) 이런 식으로서 우리는 열심히 대응하면서 이거에 대해 알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라는 것이지, "한국 정부는 실패하고 있어요" 라고 대답한 것이 아니지 않나. 그리고, 중대본 조정관과 역학회장의 생각이 조금씩 다른 것이 대체 뭐가 이상한 일인가? 여기가 북한인가? 민-관의 생각이 죄다 똑같게.

조선일보의 이런 논조는 식민사관과 식민지 한반도 세계관에 의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한국이 감염병 확산을 저지하는 데 신속한 진단 검사와 경험, 지식을 쌓은 것들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드라이브 스루 검사같은 것도 세계를 위해 그런 노하우를 나누어 줄 생각을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그런데 기자 머릿속에는, 외국인들이 이 모든 것을 좋게 평가해 줘야만 가치가 있다는 식의 거지같은 관념이 깔려 있다. 독일이건 대만이건 미국이건 지금 한국 하는 걸 보고서 어떻게든 벤치마킹해 보려 노력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들을 이젠 돕는 입장이다. 그런데 외국인 기자가 누구를 지목해서 질문을 했느냐를 놓고 한국 정부가 뻘쭘해졌고 얘네는 무시당할 만하다고 기사를 쓰다니, 그 뇌 속에는 "나는 아직도 식민지 조선인"이라는 바이러스가 드글대는 모양이다. 이 신문은 한국에선 더이상 안 내는 게 좋을 것같다. 아직도 여기가 식민지인 줄 아는가본데 노예근성 부리려면 아베한테나 가서 부려라. 이런 건 신문이라고 불릴 가치가 없다.

 

페이스북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과학과신학의대화 대표 (코로나 일기)
.2020.3.12.

 

코로나 팬데믹 상황

1. WHO가 결국 세계적 전염병 유행(pandemic)을 선포. 며칠전 포스팅에서 우려했던 대로 유럽 상황이 매우 심각.

2. 이탈리아 총감염자 12,462명, 하루에 2,313명 늘어남. 약국, 식료품점, 은행 등을 제외한 모든 상점, 식당, 까페, 가게 등에 영업정지 명령을 내림. 이탈리아가 중국보다 더 위험한데 방역 정책이 잘 먹혀야 함

3. 독일 감염자 증가 속도가 한국보다 빠름. 총 감염자 2천명 가량. 총리는 국회에서 독일인구의 60-70%가 감염될 가능성도 있다고 함. 체코 총리는 그런 언급이 공포를 조장한다고 비판. 공포에 빠질 필요는 없으나 합리적 대비는 필요함.

4. 스페인, 프랑스, 독일의 증가 속도 매우 빠름. 대략 한주 늦어도 2주 정도면 현재 한국 감염자 보다 많아지지 않을까 함. 물론 각 정부의 방역 능력에 달렸음.

5. 세계적으로 주가 엄청 떨어짐. 한국도 마찬가지. 이런 시기에 개미들은 주로 왕창 매입. 개미들이 주로 외국인과 반대로 움직인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미국살 때 적립해 둔 연금계좌 살펴보니 올초 기준으로 10% 이상 하락. 2008년 서브프라임 경제위기 때 만큼 떨어질 지 염려.

6. 어제 서울서 집단감염 발생. 대구 확산 이후, 커다란 파도가 될 가능성 농후. 어제 200명 이상 감염으로 증가세가 다시 2배 이상 늘어남. 콜센터 감염자들이 이미 한 주 이상 출퇴근. 이미 많은 사람을 감염시켰을 가능성 높음.

지하철에선 다들 마스크 쓰고 입다물고 스마트폰 보고 환기가 되니 괜찮을 듯. 문제는 직장과 까페 등등 밀접접촉 상황에서 마스크 없이 대화한 경우들. 지켜봐야 함.

7. 서울 감염확산을 막는게 매우 중요해짐. 특히 이번 주말과 다음 주 초까지 서울시민의 특별한 주의가 요구됨. 감염후 약 5일 동안 뿜어내는 바이러스가 가장 많다고 함.

8. 앞으로 2주가 중요하다. 그 얘기 벌써 두달 쯤 매주 듣고 있음. 그만큼 상황이 급변. 매번, 그래 조심하자. 외부활동 줄이자, 사회적 거리두기 참여하자, 했는데 계속 반복되니 매우 지침.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회적으로 약해짐.

9. 그래도 정신차려야 함. 그동안 서울 감염 확산은 크지 않았음. 잘못하면 서울도 대구처럼 될 수 있으니 밀접 접촉 피하고 어쩔 수 없으면 방역 마스크 재사용해서라도 꼭 착용하고, 마른기침, 열, 인후통 등 증상 있으면 반드시 방역 당국에 연락해야함.

10. 가상실험을 해봄. 한국에서 감염을 완벽히 막으려면 2주 동안 전국민이 자가격리하면 됨. 바이러스 갈 곳이 없어 그냥 상황 끝남. 그런데 그게 가능함? 가령 국민의 90%라도 통제가능함? 쉽지 않음. 그럼 그렇게 했다고 치자. 2주 뒤에 한국은 바이러스-프리 국가가 됨.

11. 그런데 외국에서 유입은 어떻게 함? 한국입국을 100% 금지하면 됨. 그게 가능함? 주요 발생국가에서 오는 입국만 막는 것도 쉽지 않음. 그렇게 2주간 입국을 막는다고 침. 2주 뒤에는 어쩔꺼임? 다른나라가 그동안 방역에 성공할것 같음? 2주 뒤에는 또 2주 동안 입국을 막아야 함. 그럼 언제까지? 알수없음. 이것이 바로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실효가 없는 이유. 공항에서 최대한 걸러야 함.

12. 어찌해야 됨? 국내는 줄고 있으니 해외유입을 막는 쪽에 다시 무게를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며칠전 포스팅은 수정해야함. 국내와 해외유입 둘다 중요해짐. 세계는 팬데믹 상황, 우리나라도 다시 위험한 상황이 될 조짐.

13. 한국 감염자 숫자는 수만명이 될수도 수십만이 될 수도 수백만이 될수도 있음.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림.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림. 일탈자들은 법으로 엄하게 다스려야 함

14. 그럼 언제까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인류가 공존하는 방식으로 인류가 저항력이 생겨 계절성 독감처럼 될 가능성이 높음. 무슨 말? 안 끝난다는 얘기. 감염확산을 느리게 해서 통제 가능하게 하는게 중요함

15. 그럼 어떻게? 심리적 두려움을 극복해야 함. 특히 공포를 조장하고 나라를 비방하고 불만을 댓글 알바식으로 퍼트리는 자들 사라져야 함. 특히 가짜뉴스 엄벌해야 함. 유럽 어느나라는 가짜 뉴스 벌금이 3천에서 60만 유로 사이임. 언론의 의도적 왜곡, 오보, 막무가내 보도 등 심각한 규제가 필요함.

16. 경제가 더 걱정. 코로나 사망자 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을 것임. SNS에 불만 불평 정부비판 욕 이런게 해봐야 아무 소용없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함. 개인적으로는 경제적 위기에 대비해서 유동성 자산 확보가 중요함. 사회를 위해서는 필요한 거 소비도 하고 물건도 사고 그래야 함.

17. 확진자가 다녀간 곳이 사실 제일 안전. 왜? 대대적으로 소득하고 사람들도 잘 안감. 그러니 감염 확률이 제일 적음. 번개 떨어진 곳에 다시 번개 안 떨어지는 뭐 그런 원리. 확진자 동선을 알리는 이유는 혹 내가 밀접접촉자인지, 증상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는 거임.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화이트 리스트임. 다른 곳 보다 안전함.

18. 백일조 합시다. 월수입의 백분의 일을 떼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기. 수입의 백분의 일이면 그리 크지 않음. 이미 십일조 떼서 교회에 헌금하는 분도 많지만 조금 더. 이것도 힘든 분이 많겠지만 가능한 분들은 매달 떼서 적립했다가 경제 위기가 심해질 때 기부하거나 필요한 사람들 돕기로.

 

페이스북 전우용
.2020.3.12.

 

지난 70여 년간, 국가적 어젠다로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일본 따라잡기’ 두 가지였습니다. 통일은 75년 된 소원이지만, ‘일본 따라잡기’는 150년 된 소원입니다.

1876년 이후 이제껏 대다수 한국인의 마음속에서 일본은 원수이자 모범이었고, 적이자 스승이었습니다. ‘일본을 모범으로 삼고, 일본을 따라잡자’는 150년 가까이 한국 사회를 지배한 담론이었습니다. 작년 8월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개시했을 때, 유력 언론들과 지식인들은 “자존보다 생존이 먼저”라며 일본에 굴복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한국의 일부 지식인은 <반일종족주의>라는 자기 모멸로 가득 찬 ‘노예의 역사책’을 펴냈고, 그 책을 ‘보수의 바이블’로 칭송하는 비루한 정치인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일본을 향한 관성적 ‘노예의식’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사이에, 한국의 구매력 기준 1인당 GDP가 일본을 앞질렀습니다. 그리고 지금, 전 인류가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팬데믹 상황에서 세계 유수 언론은 우리나라를 ‘코로나 대처 모범국’이자 '민주적이면서 규율 잡힌 사회’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처리부터 코로나19 대처에 이르기까지 불투명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를 전 세계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100만 명분 진단 키트를 지원하겠다고 하자 “검사를 많이 하면 확진자만 늘어난다”는 주술적, 야만적 태도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BTS와 ‘기생충’에서 보듯, 한국의 문화 콘텐츠도 일본의 그것을 앞서고 있습니다. 이제 경제 정치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일본은 더 이상 우리가 ‘따라잡아야 할’ 상대가 아닙니다. 150년 된 우리 민족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팬데믹이라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우리 눈앞에는 엄청난 역사적 대사건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2003년 아일랜드가 영국의 1인당 GDP를 추월했을 때,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 ‘역사적 성취’를 기념하고 길이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수도 더블린 광장에 ‘기념탑’을 세웠습니다. 식민지였던 나라가 식민 모국의 GDP를 앞선 사례는 한국이 아일랜드에 이어 세계사상 두 번째입니다. 20세기 제국주의 체제에서 식민지가 되었던 나라로는 세계 최초입니다. 한국인들이 이룬 성취는 한국인만의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배를 받았던 사람 모두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한국인 절대다수가 자기들이 이룬 엄청난 성취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자기들이 지금 지나고 있는 현재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무감각합니다. 기뻐할 일이 있어도 알지 못하고 자랑스러워 해야 마땅한 일에 오히려 제 나라를 욕하는 어리석음이 넘쳐납니다. 언론이 이 ‘역사적 사건’들을 외면하고 ‘현재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침묵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이런 사실을 알릴 수 없을 겁니다. 그랬다간 ‘자화자찬’이라며 욕할 게 뻔한 자들이 전국에 널려 있기 때문이죠.

지난 70년간 ‘일본을 모범 삼아 일본을 따라 잡자’는 담론을 앞장서 유포해 왔던 언론들이 막상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잡자 일제히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언론사 종업원들의 ‘역사의식’이 없기 때문일 거고, 둘째는 윤석열 장모 잔고증명서 위조 사건에 일제히 침묵하는 이유와 같을 겁니다. 저들에겐 '당파성'만 있을 뿐 '정의감'도 '공동체 의식'도 전혀 없습니다. 한국인들은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역사의 다리’를 건너고 있지만, 한국 언론 125년 역사상 지금처럼 언론계가 쓰레기로 뒤덮여 있던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언론이 침묵하더라도, 우리 조상들이 150년간 품었던 ‘소원’을 우리가 이뤄냈다는 사실은 함께 알고, 함께 기억하며, 함께 나눠야 할 겁니다. 그리고 훗날 우리 후손들이 “일본을 앞질렀을 때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느냐?”고 물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저 쓰레기들을 역사의 땅속 깊이 묻어버려야 할 겁니다.

 

페이스북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과학과신학의대화 대표 (코로나 일기)
.2020.3.10.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하루당 확진자가 200명 이하로 떨어졌지만 유럽이 심각합니다. 미국도 만만치 않네요.

1. 이탈리아는 하루 감염자가 1,598명이 나오고 총 감염자가 9천명을 넘으면서 중국 다음으로 감염자가 많아지자, 이탈리아 총리가 전국적인 여행금지 조치를 발표했네요. 북부 11개 주만 적용되던 물리적 봉쇄를 전국 6천만 국민에 적용한 겁니다. 당장 시민의 자유 문제가 이슈로 떠오릅니다.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시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2. 이탈리아뿐만 아닙니다. 스페인도 심각합니다. 하루 확진자가 500명이 넘었습니다. 갑자기 이란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도 하루 확진지가 백명이 넘습니다. 스위스,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스웨덴, 노르웨이는 하루 확진자가 백명은 안되지만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3. 유럽에서 감염확산은 더 빠르게 늘어날듯 합니다. 유럽의 총 감염자 수가 중국보다 많아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듭니다. 중국은 상당히 통제된다는 보고가 나오는 반면, 유럽은 급속한 확산세가 보입니다.

4. 독재국가 중국은 여행금지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집밖에 나오지 못하게 통제가 가능하지만 유럽이 그런 물리적 제한을 시행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의 여행금지 조치의 구체적 내용이 궁금한데 다른 나라들이 따라할지 관건입니다. 더군다나 유럽연합은 나라들 간의 국경이 열려있고 자유로운 왕래가 있으니, 향후 유럽의 확산 상황을 유심히 지켜봐야 합니다.

5. 미국도 하루 감염자가 백명을 넘었고 사망자는 우리나라 절반 수준이지만 사망자수가 빠르게 증가할 수 있습니다. 호주, 뉴질랜드, 중동, 남미,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세계 감염이 퍼지는 상황입니다.

6. 유럽 등 의료체계가 잘 갖추어진 나라들이 심각한 문제를 겪기 시작하는데, 그만큼 의료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은 나라들은 참 걱정입니다. 미국도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고통이 클것입니다.

7. 예상이 틀리기를 바랬지만 데이타는 점점 더 팬데믹(세계적 유행)쪽을 가르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름까지 모든 해외 일정을 취소했습니다. 9월에 유럽과 미국 출장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8. 우리나라는 내부 방역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밖에서, 특히 유럽에서 유입되는 감염을 막는데 좀더 신경써야합니다. 그동안 투트랙으로 감염확산을 막고 있지만 해외유입 차단이 더 중요해 질 수 있습니다. 중국보다는 유럽이 더 위험한 지역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하루 감염자가 백명이 넘는 우리나라도 안심할 때가 아닙니다. 다들 지쳐서 사회적 거리두기 긴장감이 풀리고 있지만 경계심을 풀어서는 안됩니다.

9.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세계경제가 큰 우려를 낳습니다. 유가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30% 떨어졌고 주가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금가격은 6만5천원까지 올랐네요. 유로축구와 올림픽은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우리나라가 겪을 경제적 어려움만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조심스럽게 대비해야 합니다. WHO가 아직 팬데믹을 선언하지 않은 것은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10. 경제적 난국에서 가장 피해받는 사람들은 약자들입니다. 코로나 감염으로 가장 사망률이 높은 사람들이 기저질환자와 노인들인것처럼 경제적 위기는 경제적 약자들을 심각한 고통으로 내몰 것입니다.

11. 코로나감염이 주는 교훈은 혼자만 잘 살 수 없다.입니다. 함께하는 노력, 공동체 의식, 사회적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다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데 한두 사람이 일탈해서 자가격리를 무시하고 돌아다니면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킵니다. 한두사람이 거짓말을 해서 병원이나 심지어 방역팀 전체가 폐쇄되기도 합니다. 일탈하는 자들은 통계적으로 항상 존재한다.는 정도의 생각은 위로가 안됩니다. 극소수의 일탈도 전체를 위험에 빠트립니다.

12.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만 잘 방역했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경제 규모가 큰 어느 나라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으면 전세계가 함께 홍역을 치릅니다. 그나라 국책은행이 망하면 전세계가 함께 망할 수도 있습니다.

13. 우리랑 다르게 생긴 이란인들, 이탈리아인들, 중국인들, 일본인들 모두, 그리고 우리랑 똑같이 생긴 대구경북 사람들, 모두 다 같은 인격체이고 귀한 사람들입니다.

14. 전염병의 위기,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모두들 고통스럽습니다. 특히 열악한 상황에 더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이 받는 압박을 제가 이해하기는 어렵겠습니다. 그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내놓고 무엇을 함께하고 무엇을 희생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불평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찌라시 언론에 휘둘리지 말고, 국가를 굴려대는 세력들에 끌려가지 말고, 바짝 긴장할 때입니다. 정확한 정보를 찾고 세계에 눈을 돌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15. 코로나 사태가 더 심각해지지 않기를, 경제위기가 따라오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페이스북 이주혁 성형외과 의사
.2020.3.10.

-- 의사들은 왜 저럴까? 3 --

지난번 이야기를 다시 요약한다.
한국 의사들의 집단적 정서는 의료 제도에 대한 불만인데, 그 연원은 "의사의 노동 가치에 대한 상실감"이며, 상실감의 주 원인은 원가 보전이 안 되는 저수가 제도에 있다. 또한 국가 건강보험 제도의 서비스 공급은 절대적으로 민간에 의존하나 통제는 일방적으로 관에서 주도되는 이와 같은 이원적 체제가 갈등을 늘상 내포하고 있다. 오늘 이어서 써보겠습니다.

6. 야, 너 말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직업에 귀천이 없는데 의사들 하는 일만 돈을 많이 쳐주라는 법이 있어? 택시 운전기사나 지하철 역무원들 노동은 뭐 싸야 한다는 법 있냐?

바로 이 질문을 내가 기다렸다.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잉여 가치'를 만드는 것은 오로지 노동력이라고 하였다. 자본, 토지, 공장 시설 이런 것들은 단지 가치 창출을 위한 조건일 뿐, 잉여 가치는 오직 인간의 노동만이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가져가는 것은 '착취'라고 주장한다.
지금은 사실 아무도 마르크스의 이 주장에 따라 경제를 설명하진 않는다. 잉여가치를 만드는 것은 노동력 이외의 많은 요건들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공급 과잉과 기술 혁신의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건강보험 수가 지급 상황은 정확히 마르크스의 이론과 반대쪽에 있다. 우경화된 의사들이 "사회주의 의료"라며 비난하는 것관 달리, 한국 수가제도의 현실은 완전히 반 마르크스적이다.

즉, '장비' 없이 의사의 대면 진료에 대한 진료 수가는 거의 만원정도로, 전세계 최저 수준으로 해 놨는데 반해 (북한이 얼마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웬지 북한이랑 큰 차이 없을 듯하다) 장비나 의료기기 등이 들어가는 시술,수술을 할 때에야 높은 수가를 인정받도록 정해 놓은 것이다. (미국에서 의사를 한번 대면 진료하는 데 드는 돈은 약 20만원정도이니 한국의 20배 정도이다).

예컨대 인공판막 수술, 인공관절 수술 같은 것들은 매우 비싼 의료기기가 삽입되며 의료 수가는 상당히 높아진다. 또 백혈병 치료를 할 때는 매우 비싼 항암제와 약제들이 투여되고 높은 수가를 인정받는다. 허나 예컨대 단순 X-ray의 판독. 청진. 이런 행위에는 의사의 '고도의 지식과 경험'이 요구되는데 그러한 순수 노동에는 거의 수가를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의사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지식 노동자로서 본다면 의사가 노동으로 생산하는 '잉여가치'는 환자의 건강 증대이다.

공식 1) Pi (진료 후 환자의 건강 증대 폭) = SV (창출된 잉여 가치)

그런데, 환자의 건강 증대에 있어 "의사의 노동"이 과연 전부일까?
의사의 노동이 창출한 가치가 크다고 볼수록 사실은 마르크스주의자인 것이다.
허나 의사의 노동보다는 비싼 의료기기, 커다란 병원 시설, 다국적 제약회사가 생산한 비싼 항생제, 이런 것들이 건강 증대에 더 중요하다고 볼수록 반마르크스주의자인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수많은 논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이것 만큼은 논쟁의 여지가 없을 만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선 고급화된 장비나 약물, 의료 기기의 가치가 고평가 되어 있으며, 의사의 노동력은 저평가되어 있다는 점이다.

공식 2) LV (의사의 지식/신체노동에 대한 가치) : GV (의료기기/약물 사용에 대한 가치) 는 반비례 관계 (이 자판으로는 비례 부호를 쓸 수가 없네요)

건강보험은 한정된 자원으로 의료 행위에 대한 보상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의사의 노동력, 노동 행위에 대한 현재 건강보험 수가 체계상의 보상 원리가 어째서 그토록 가볍게 되어 있는가를 이러한 반비례 관계로써 설명할 수 있다. 즉, 의료 관련 재화가 자꾸 의료 '시장'에 들어오도록 만들어져 있고 이로 인해 자꾸 돈이 빠져나가게끔 돼 있다는 것이다.

7. 아 무슨 개똥철학이나 너저분하게 늘어놓고 있어? 아니 뭐 그렇다 쳐,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결국 의사들이 돈 더 많이 벌어야 된다, 그 소리 하고 싶은 거 아냐 너?

절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의사들의 노동력에 가치의 가중치를 더 끌어와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현재 한국은 의료기기와 의약품 등에 가중치를 너무 지나치게 주고 있다. 앞전 글에서 나는 의사들의 가장 큰 공감 정서는 자신들의 노동가치에 대한 상실감이라고 썼던 바 있다. 의사의 지식적, 경험적 노동 가치가 개차반으로 대우를 받으니, 자꾸 의료기기와 검사와 약을 끌어다 대도록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은 전세계 최고의 항생제 오남용 국가이며 엄청난 진단 기기 수입 국가가 돼 있다. 이것이 과연 국민의 건강을 위해, 또 국가의 경제를 위해 좋은 일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 어떤 나라보다 한국에서 감기 환자에서 항생제 처방의 비중이 잦다. 왜 그런가?

첫째, 환자들, 국민들이 의사의 노동력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동네 병원에 당신이 감기때문에 갔다고 치자. 의사가 진찰해 보더니 "감기에는 원래 항생제같은 거 안 씁니다. 집에 가서 잘먹고 쉬시면 나아요." 이렇게 말한다면, 당신은 동네 병원 의사에게 뭐라고 하겠는가?
"뭐? 내가 그딴 소리나 들을라고 여기까지 왔는 줄 알어? 잔말 말고 주사 한대 놓고, 약도 잔뜩 처방하지 못할까. 어디서 바쁜 사람한테 그따우로 하고 있어 사람 무시하나" 99%는 이렇게 반응한다. 의사들은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감기란 약이 필요한 병이 아니며 치료제도 없는 병인데도 불구하고, 환자들에게 진통 소염제며 항생제며 거따가 스테로이드 제재까지 왕창 투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SV (잉여가치)에 소득은 없이 Pi (건강의 증대)는 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줄어드는, 아무 의미 없는 경제 행위에 불과해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것이 우리 나라의 진정한 의료 경제 상황이다.

당신이 병원에 갔다면, 주사를 맞거나, 약 처방을 잔뜩 받거나, 혹은 초음파나 CT 등 검사를 받거나 또는 물리치료를 받거나, 그런 어떠어떠한 '행위'를 원해서 간다는 뜻이다. 당신은 의사로부터 당신의 생활 양식에 대한 조언, 즉 "밥을 제때에 드시고, 수면을 충분히 취하시고...." 이런 소리를 들으러 병원에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국은 몇 십년에 걸쳐서 이런 행태가 고착되어 왔다. 그 결과는 세계 최고의 항생제 오남용 국가라는 것이다. 또 세계 최고의 과잉 의료 과잉 치료의 총본산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우리에게 엄청난 재앙을 잉태하고 있다.

왜냐하면, 불과 앞으로 10~ 20년정도 후면 한국 인구의 절대 다수가 노인이 된다. 현행 건강보험 제도상, 노인들은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고 오로지 수혜만 받는다. 지금처럼, 이런 지독한 과잉 의료 과잉 치료, 약물 오남용이 성행하는 한국의 환경에서 이는 엄청난 재앙, 건강보험제도 전체의 완전한 붕괴를 예고하고 있다.

나중에 또 얘기하겠지만, 나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경제 성장론에 대해서는 전폭적으로 동의하지만, 그 틀 안에서의 보건의료 분야 각론이라 할 수 있는 문케어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급격한 인구의 노령화에 대해 대책이 없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나라에 필요한 것은, 급여 종목을 무한대로 확대시키는 것보다는 꼭 필요한 의료 행위만 받도록 하는 일이다. 노인들이 기침 한번 했다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119 타고 가서 드러눕고 입원하겠다고 땡깡부리고 맨날 쎈 주사랑 약 달라고 보채고 항생제 내성균주에 벌써 무방비상태가 돼 버리는, 이런 막장 상황을 극복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려면, 의사의 노동력, 지식적 경험적 노동력의 가치를 인정해야만 한다.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말이다.

8. 어이구, 무슨 맑스가 나오고 뭐 난리 났네, 웃기고 있네. 아니 뭐, 의사가 기껏 청진기 들고 진찰하고 집에 가서 쉬라고 한 마디 하고 그런 거에 사람들보고 돈 더 내게 하라는 거냐? 그러다가, 그렇게 검사도 안 하고 하다가 응? 큰 병 놓치면 어떻게 할 껀데? 너 미쳤지?

MRI 한 대에 100억이 넘는다. '진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정은 그러나 그런 비싼 검사들이 아니다. 문진, 오랜 시간 환자와 대화하고 공들여서 의사가 직접 행하는 청진 촉진 시진 타진과 같은 이학적 검사들이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큰 실마리들을 잡아내지 못하면 제아무리 비싼 검사를 한다 해도 놓칠 수밖에 없다.

의료 행위란 과학적 탐구와 닮아 있다. 그 어떤 병이건, '의심'하지 않으면 결코 진단하지 못한다. 내가 찾아내겠다는 생각을 갖고 들여다보는 사람 눈에만 병이 보이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의과대학이 6년간 가르치고 5년을 수련하게 만드는 이유도 의사가 과학적, 의학적으로 환자의 몸을 탐구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바레인에서 귀국했던 최초 환자는 평택으로부터 시작해서 삼성 서울 병원 등 서너 군데의 병원을 계속 돌아다니면서 바이러스를 뿜뿜 퍼뜨리고 다녔다. 그 와중에 초기엔 어떤 의사도 메르스 코로나를 의심하지 못했고 당시 정부는 언론 통제만 하겠다고 하다 골든 타임을 놓쳤다.

단 한 명의 의사가, 초기에 이 환자를 처음 본 그 자리에서 중동 지방을 여행했다는 과거력을 듣고 기록하고 호흡기 증상을 집중하여 진찰해, "메르스"라고 하는 병명을 의심할 수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그 이후 벌어지는 수없이 많은 재앙이 갈릴 수 있었다.

한번 촬영에 70만원이 넘는 최신 MRI를 찍는다고 메르스가 진단되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도 진단되는 것 아니다. MRI보다 더 비싼 PET-CT를 찍는다고 역시, 코로나건 메르스건 진단할 수 있는 것 결코 아니다.
오로지 진찰하는 의사가 주의깊게 환자를 문진하면서 품는 합리적인 역학적 의심. 이 환자 혹시, 예전에 저널 책에서만 봤던 메르스, 중동 호흡기 증후군, 그거 아닐까? 이렇게 의심해 보는 것. 이것이 한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도, 또 국가 전체의 운명을 위해서도 그 무엇보다 비중 있는 가치를 가진 것이었다.
내가 의사의 노동의 가치를 운운한 이유는 바로 이런 데에 있다. 비싼 의료기기와 약보다, 환자의 몸을 과학적으로 깊이 숙고하는 의사의 정신적 경험적 노동이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는, 지금처럼 쓸데 없이 비싼 항생제와 비싼 장비들을 넘치도록 마구 병원들이 사들이도록 용인하지 말고 의사의 노동에 대해 제대로 된 보상을 준비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만, 전국민 건강 보험의 재정도 더욱 더 탄탄해질 수 있다. 그래야만 의사들은 양심적으로 처방하게 되고, 국민들의 지출도 더 적어지며, 건강도 더욱 더 보장될 수 있다. 지금의 행위 중심 수가제는 의료기기상과 제약 도매상들, 의료 주변 장사꾼들만을 배불릴 뿐이다.

한국의 GDP대비 1인당 연간 진료비 비율은 OECD 최저 수준이다. 7%정도로 계상되어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건강을 위해 그정도 돈만 쓰고 있질 않다. 각종 건강식품들을 사먹느라 거대한 헬스 관련업이 엄청나게 성행하고 있다. 거기에 쓰이는 돈이 1인당 연간 진료비보다 더 많다. 이런 기형적 구조도 철폐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대한민국은, 노령화 사회에 대해 준비를 들어가야만 한다. 눈앞에 쓰나미가 다가오는 중이다.

("의사들은 왜 그럴까" 일단 여기서 접을까요? 너무 길어지는 것같애서...ㅠㅠ 얘길 하다 보니 이건 한도 끝도 없고... 계속 잔가지 치고 ) 어쨌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이스북 이주혁 성형외과 의사
.2020.3.10.

-- 의사들은 왜 저럴까? 2 --

지난번 포스팅을 요약 정리하자면,

대한민국 역대 정부가 늘 의사들 이익을 뭉게는 정책을 펴는 데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의협은, 문재인 정부의 문케어가 발표되면서 극단적인 우경화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의협은 정치 이념화로 들어선다.
즉, 의사집단은 늘 투쟁과 타협 양면의 정책을 써왔었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아예 대화나 합리적 타협을 거부하고 오로지 완전한 반정부 투쟁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오늘 이어서 계속 써내려가겠다.

4. 니 말대로라면, 그럼 돈 잘 버는 의사들은 친정부적이고, 돈 못버는 의사들만 반정부적이겠네?

좋은 질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친정부적 혹은 반정부적 정서는 굉장히 여러 가지 요소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단지 의사라는 직군의 특성때문에 그게 결정된다고 볼 수 없고, 자라나는 과정과 각자의 철학, 집안 배경과 가까운 사람들의 영향과 가진 자산 기타 등등 수많은 것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의사들 집단만을 놓고 표현해 보라고 하면 아무래도 진보적이라기보단 보수적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 이전 포스팅에서, 의사들이 갈수록 더 살벌하게 직면하는 경제적 어려움이 의사 집단 우경화의 기본 베이스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그것만으로 의협의 정치화 메커니즘을 완벽히 설명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설명해야 한다.

대한민국 모든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노동의 가치에 대한 상실감을 공유하고 있다.
'노동의 가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주 단순하게는, 월 '급여액'으로 표시된다. 또 '자영업자'라고 할 수 있는 '개원의'들에게는 개개의 의료 행위에 대한 수가의 합으로서 표시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산부인과에서 초산의 경우 자연분만 수가가 얼마인지 아시는가? 얼마 전까지 불과 20만원 정도였다. 지금은 많이 올렸다고 하는 게 55만~60만원이다. 제왕 절개는 38~41만원대이다. 그런데 동물병원에서 강아지 분만시 드는 비용이 얼마인가? 15만~30만원 안팎이다.

물론 수의사들의 기술을 평가절하하고저 하는 마음은 없다. 그런데 사람의 생명이 태어나는 데 그 과정에 준비되어야 할 수많은 의료 서비스와 시간, 노력, 각종 장비와 소모품, 안전을 위한 준비와 의료 사고에 대한 책임 이 모든 것이 과연 저 금액 안에서 다 해결 될 수 있을까?

더 심하게 얘기하면, 인간의 생명을 탄생시키는 의료 행위는, 개 한마리를 태어나게 하는 행위보다 한 50프로 정도 더 가치 있다고 말해도 되는가? 이렇게 우리 사회가 같이 합의했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5. 야. 말을 가려서 해. 너무 심하쟎아, 아니 의사들은 그럼 사람 생명을 앞에 두고 돈부터 생각한단 말야? 의과 대학에서 뭘 배웠길래 전부 그렇게 돈만 밝히는 속물들이냐?

....라고 비판이 단박에 나올 것이다. 나는 어느 사회에서든, '의료'라는 것이 '산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의료는 사회 보장성이 워낙 강한 업종이니 만큼, 국가가 철저하게 관리, 지원하는 분야여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료는 운영은 민간에서 책임지되 가격은 관이 통제하는 완전히 이중적인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이것이 국민과 의사 집단, 정부가 서로 다 다른 소리를 하도록 만들고 있다. 복잡한 것이다. 영국의 경우는 근본적으로 관이 통제한다. 미국은 (조금 변했다곤 하지만) 기본적으로 민간의 자율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도 저도 아니다.

첫째. 병의원들간의 관계, 경쟁, 개설 등에 있어서는 자본주의적 경쟁 체제를 용인해 완전히 국가의 관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병의원의 개원에 정부가 어떤 지원도 하지 않으며, 도산이나 폐업시 역시 정부는 관여치 않는다. 한 골목에 의원이 몇 개가 생기건 아무런 제재 조치가 없다. 전형적인 자유 방임형 자본주의에 따르는 것이다. 의료기관들의 과당 광고와 불법 환자 모객 행위의 처벌에 대해서 법원에서조차 처벌은 허당이다.

그러나 의료 행위에 대한 가격 책정 (아까 예로 든 분만 수가를 비롯해서) 및 수입에 대해서는 정부가 아주 타이트하게 통제하고 있다.건강보험 심사평가원에서는 병의원들의 의료 행위들에 대해 수가를 지급하는데, 필요 없는 진료를 했다고 판정되면 여지 없이 삭감하고 금액을 지급하지 않는다. 이것은 관료주의적, 사회주의적인 의료 풍토에 해당한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이와 같이 자유 방임형 자본주의에 심평원이 통제하는 사회주의적 의료가 짬뽕이 되어 돌아가고 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나는 이러한 이중적인 메카니즘이 한국 의료의 결정적인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이 제도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의료 노동의 가치에 대한 문제제기와 온갖 의료 현장의 모순들은 대한민국이 없어지는 날까지 반복되어 튀어나올 것이다. 그리고 의사들은 계속해서 머리띠를 묶고 광장으로 나올 것도 분명하다.

한국이 수준 높은 의료를 많은 사람에게 저가에 공급하는 나라로서 각인될 수 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저수가 정책'이 수십년간 유지돼 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이 남아돌게 되자 역대 정부들은 초음파, CT, 등등 비급여였던 항목들을 주섬 주섬 건강보험 급여로 다 줏어 넣기 시작한다. 모든 정부가 그렇게 했다. 문케어만 "비급여의 급여화"를 외친 게 아니란 소리다.

단순화시켜서 다시 설명해 보겠다.
당신은 굴비를 만드는 기술자이다. 굴비 말리고 엮는 기술 배우는 데 12년정도가 걸렸다. 그거 배우는 데 드는 돈 당신 부모가 자갈밭 팔아서 다 댔다. 정부에서 보조금 그런 거 1원도 안 나왔다.
이제 굴비를 잘 만들어서 팔려고 시장에 갖고 나왔다. 그런데 정부가 이 굴비 값을 싹 다 정해 놨다. 그리고, 하루에 팔 수 있는 굴비 마릿수까지 정해 놨다. 70마리 이상 팔면 71마리부턴 굴비값을 안 준다. (과잉 판매)

그런데 굴비 판매 과정은 완전 경쟁 체제다.
시장에 온 손님이 여기 저기의 굴비를 비교해 보고 내 굴비를 샀다. 열심히 맛깔나게 만들어서 꽤 잘 팔렸다. 오늘 매상 괜챦다. 그럼 두 달쯤 후 내 통장에 돈이 찍히겠지. 그런데 돈이 안 들어온다. 이상하다 해서 전화해 봤더니 담당 공무원이 하는 말이, "그 굴비 무슨 규정에 어긋나서 굴비값 삭감이유. 돈 못받으세유. 받을래면 절차 갖춰서 이의신청하셔유 " 이런다.

자.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아니 정부에서 이 정도로 타이트하게 굴비를 관리하고 가격을 통제하겠다면, 그럼 아예 쌀처럼 추수 후에 전량 수매를 해서 다 정부미로 받아주거나 기술교육 양성교육을 따로 정부에서 시켜주거나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그러면서 굴비 장수들간에 자유 경쟁으로 해 놓면, 각 굴비 장수들은 서로 하나라도 더 손님 받겠다고 앞에 삐끼 보내서 호객행위시키고, 전단지 찍어서 지역신문에 끼워 돌리고, 굴비 한 마리 사면 꼴뚜기 하나 준다고 껴 팔기까지 해야 간신히 손님 하나 받는거 아녀.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잇슈"

즉, 의사들의 눈으로 볼 때엔, 이렇게 '의료 천국'과도 같은 저렴한 가격으로 누릴 수 있는 고품질의 의료 혜택,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건 의사들의 일방적인 희생에 기인한 것이다.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세계 최고' 운운하는 의료 서비스의 체인 속에는 의료 노동자의 가장 중요한 축인 의사들의 노동 가치에 대한 절대적인 평가 절하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의사 사회의 팽대한 불만의 가장 큰 원인이며, 몇 십년 동안 해소되지 않은 갈등의 본질이고 의협 우경화의 배경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의협은 이 정반대인 모순의 양면 중 "국가의 의료 수가 전면 통제는 사회주의" 라는 구호를 뽑아내, 그걸 보수 정치인들이 맨날 들이대는 "빨갱이 정부 물러나라" 프레임 속에 삽입시킨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란 것을, 의협도 모두 알고 있다. 이런 수가 정책은, 사실 박정희 시대에 시작되고 전두환때 제대로 꼴을 갖춘 것이다. 진보/보수 정부 할 것 없이 모두가 저수가 및 수가 통제 정책을 전면적으로 활용해 왔다. 왜? 그걸 높였다간 표를 잃기 때문이고 권력이 자칫 통째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의협 대의원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래도 의협은 결국 우경화의 길을 택했다.
나머지는 다음번 포스팅에....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아 거 왜케 말이 늘어지지ㅠㅠ)

 

페이스북 이주혁 성형외과 의사
.2020.3.8.

-- 의사들은 왜 저럴까? 1 --

의협은 "대통령과 중대본이 오판하게 자문한 비선 전문가들이 있다. 이들이 지난 한달간 정부 방역 실패의 단초를 제공한 인사들이다"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어 의료 상황에 대해 아는 건 쥐뿔도 없는 안철수 국민의 당 대표도 "이건 지난 정부 최순실이랑 다를 바 없다..."라고 SNS에 써서 화제가 됐다. (..라고 쓰고 빵터지게 했다고 읽는다...)

이로 인해 지금껏 열심히 현장 상황을 살펴 오고 헌신적으로 발벗고 뛰어 오던 감염내과와 예방의학과 전문의들 등으로 이루어진 대책위가 중도 해체되는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졌다.

많은 시민들이, 전문가들인 의사들로 이루어진 의사협회가 어떻게 이토록 정파적이고 정치적일 수 있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나도 의협의 이런 언동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비선' 운운한 의협의 발언은 형법상 모욕 및 명예 훼손으로 형사 고발 대상이다.

그런데, 의협이 저토록 극단적인 우경화의 길을 가는 이유에 대해 의사가 아닌 분들과 조금 대화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글을 대체 어떻게 쓸까 한참 고민했는데, QnA 식으로 한번 써보려 한다. 밑도 끝도 없지만, 일단 시작이 반이니까, 긴 이야기를 시작이라도 해볼련다. (그러나 누가 과연 관심이 있으랴....)

1. 의사들은, 왜 저러냐? 미친 거 아니냐?

의사들이 늘 반정부적 성향을 가져 왔느냐?. 라는 질문을 하는 거라면, 꼭 그렇지는 않다고 답해야 한다. 왜냐하면, 박근혜 정부 당시 의료 민영화에 대한 정책이 계속 나오고 제대혈 줄기세포 사업 등에 완화 조치를 발표해 차병원 (차움) 등에 특혜를 준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고, 원격 의료 규제 완화로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보험-삼성병원 등에 세트로 특혜를 약속했다느니 그런 비판들이 많았지만, 의협은 박근혜 정부의 그런 친기업적 행위에 대해 정치적으로 반정부적 편향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의료 민영화, 영리 병원"이야 말로 의사들이 죽는 한이 있어도 찬성할 수 없는 정책들이다.
의료 민영화는 의사 면허증 소지자들의 의료 사업에 대한 '독점권'을 사실상 박탈하고 쉽게 표현해 '몸값'을 잃게 만든다. 그런데도 당시 의협은 정부에 대해 반박근혜 기치의 정치적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 '비급여의 급여화' 확대를 얘기하자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엄청난 반문재인 정부 포화를 날리기 시작했다.

왜인 걸까? 의협이 이익단체라면, 의료 민영화와 영리 법인 소리가 10년 내 끊이지 않던 앞선 두 정부 시대에는 어째서 반정부 투쟁을 안 했던 걸까?
문케어가 나오자, 가장 반정부적인 공약을 내건 최대집 후보를 의협 회장으로 선출한 의사들. 이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설명하고자 한다.

이번 의협은 선명한 방향성을 보여 그것으로 의사들의 '불만'을 결집시키려 하는 것이다. 즉, 확고한 반정부 투쟁 노선. 태극기 부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우경화 이념 천명으로 가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념적 지향과 반정부 투쟁 노선이 의사 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끌어 모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허나 의사 사회의 불만은 언제나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절박했다. 그 '절박함'이, 이런 극단적인 우경화를 선택한 것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만약, "의료 민영화" 소리가 문재인 정부에서 나왔다면 의협은 청와대 앞으로 달려가 고공 농성이라도 했을 것이다.
반대로, 박근혜 정부에서 "비급여의 급여화" 소리가 나왔으면 (사실은 박 정부때 그 소리 이미 있었다는 건 안 비밀..) 머리띠를 묶고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history가 의협의 정치적 이념 집단화를 설명한다고 추론하게 만든다.

2. 그게 무슨 소리냐? 의사들이 무슨 놈의 불만이 많다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문제다. 왜 의사들이, 그토록 돈을 많이 벌고 있는 의사들이 불만이 많다는 것인지? 여기에 대해 건강보험 공단에 19개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순위가 나왔는데 의사들이 상위 랭크를 싹쓸이 하는 통계를 근거로 들곤 한다. 월평균 보수에서 산부인과 의사가 2672만원, 일반과 의사가 2477만원으로 나와서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한 달에 2600만원을 보수로 받는다니? 그러면서 세상에 불만이 많다니 미친 것 아니냐? 이런 말들을 할 법하다.

나는 통계라는 게 보여주는 숫자의 허구를 말하기에 앞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했던 말을 인용해 보려 한다. "한국은 엄청 잘 산다. 번창한 경제를 갖고 있는 그들의 방위비를 왜 우리 미국이 부담해야 하느냐?" 이러면서 1조원을 5조원으로 올려서 더 내라고 한국에 온갖 땡깡을 부리고 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당연히 황당해 한다. "우리가 엄청 잘 살아? 미국보다? 이꼴이 이게 잘 사는 거야? 맨날 월세에 은행 이자에 쪼들려서 허리띠 졸라 간신히 살아가고 있구먼" 이렇게 트럼프에게 달려가서 말하고 싶을 것이다. 우리 방위비 더 낼 돈 없구먼. 우리 애들 대핵교 보낼 교육비 내기도 허리가 휘는구먼.

그런데, 적어도 통계는 맞다. 통계상으로는, 한국은 너무나 잘 사는 나라가 맞다. 세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OECD 공식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GDP는 42000달러로, 일본의 41000달러를 이미 추월했다. '통계' '숫자'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수준, 생활 수준은 이미 일본을 추월했다.
그럼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1인당 GDP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 한국에서 살고 있는 여러분은 정말로 풍요롭고 행복하시겠네요. 라고. 부족한 것도 없고 좋으시겠습니다.
그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한국인들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약올리냐? 너 죽고 싶니?"

숫자란 이런 것이다. 한국의 경제 상황을 표현하는 수많은 숫자들, 주가 지수, 환율, 무역 거래량, 수출입 흑자, GDP, 구매력 지수 이런 것들은 엄청나게 많은 숫자들이 다 모여서 뭉뚱그려진 평균치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SK 등에 근무하는 임직원이 있다면 붙잡고 한번 물어보자. 너희 경기가 좋으냐고. 이분들은 지난 10년동안 진짜, 엄청나게 경기가 좋았다. 그러나, 이런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업, 자영업, 영세 하청업 등등. 이런 쪽은 같은 기간 거의 말라 죽어가는 고사된 나무와 비슷했다. '잘나가는 나라' 한국 속안에는 이와 같이 극단적인 명암차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똑같은 얘기로, 의사들의 수입에도 아주 극단적인 명암차가 있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조차도, 매달 은행 이자를 갚아나가고 병원 월세를 걱정하면서 근근히 사업을 영위해 나가는 의사들이 차고 넘친다.
반면 엄청난 매출을 신고하는 의사들은 대자본을 투여해 '기업화된' 의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평균'을 높여놓는다.

3. 진짜 의사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

의료 수가에는 '원가 보전률'이라는 게 있다. 그게 지금 70%정도. 의원급은 60%정도밖엔 안 된다. 그럼 나머지 30%는 다 적자란 소리. 큰 병원들은, 비록 수가가 낮다 하더라도 다른 것으로 돈을 만들 수 있는 게 많다.
마치 대기업이 편의점도 만들고 온라인 영업도 하고 무역, 수출도 하고 이렇게 여러 가지로 수입 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로 인해 대형 병원들은 풍요롭다.
그러나 개인 의원들은 그런 '수단'을 부리고 낮은 수가를 만회할 사업 모델을 때때마다 신설하기 어렵다. 아니 아예 불가능하다. 병원들 가운데도, 의사들 가운데도, 이렇게 매우 극단적인 명암차가 존재한다.

그러니, 그냥 '의사들은 잘 살지 않느냐' 라는 말을 하기 전에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국은 부자 나라쟎아?" 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트럼프를 생각하면서.

(다음 글에서 수가 얘기와, 의협의 반정부 집단화를 해결할 방안 등...에 대해 좀더 얘기 할께요 이거 너무 길어져서)

 

페이스북 김응교 - 【우누보레(自惚れ) 아베】
.2020.3.7.


누구나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필요하다. 자신을 사랑해야지 혐오하면 위험하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방식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자기를 성찰하며 사랑하는 방식이다. 자기성찰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두번째다.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방식이다.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흥모하여 환상에 빠져 스스로 물에 빠져 죽는 나르시시즘으로, 다른 이들까지 해를 끼칠 수 있다.
.
나르시시즘을 우리 말로 '자뻑'으로 표현하면 과장일까. 누구나 가끔 자뻑증이 있으나, 자뻑병이 지나치면 위험하다. 일본어로는 '우누보레'[うぬぼれ, 自惚れ]라고, 자만, 자부, 자부심을 뜻하는 단어가 있다. '우누'[うぬ, 己]는 자신, 나라는 단어고 여기에 반하다, 빠지다라는 뜻의 호레루[ほれる, 惚れる]라는 단어를 합쳐 우누보레, 자만이라고 한다.
.
일본인은 이 단어를 대단히 싫어한다. 잘 쓰지 않는 단어다. 돋아보이는 것이 싫어 수업시간에 손 들고 질문하기를 꺼릴 정도로 스스로 조심하며, 자만하지 않는 모습이 일본인들 겸손한 품성이다.
.
아베를 검색하면 '우누보레 아베'라는 표현이 가끔 나온다. 일본인이 보기에도 아베가 일하는 방식은 독선적이고 위험하게 보이는 것이다. 대다수 일본인은 이런 현상을 경계한다. 국수주의에 빠지면 우누보레, 자기도취에 빠진다. 이건 우리나 북한이나 중국도 마찬가지다. 사안에 따라 우누보레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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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베(일본인이 아니라 아베)는 한국인의 비자를 정지시키고 입국하면 격리시키겠다고 했다. 지금 국내에 이미 확진자가 천여 명이 넘은 일본에서 아베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일본 국민들을 검진하는 일이다. 38도 넘은 상태로 이틀을 지나야 검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국민에게 돌리고, 내부의 문제를 외부로 돌리는 형국이다. 내부에 문제가 생기면 외부로 문제를 돌리는 내부적 계급사회 일본 권력층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진재의 조선인학살도 이런 배제의 방식에 의해 진행되었다.
.
아베가 한국에 대해 어떤 '우누보레'를 했을까.
첫째, 사전 연락없이 했다는 것은 한국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모든 일에 예의 바라고 조심하는 일본인은 절대로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과 친했던 오부치 수상이 살아있다면 절대 이렇게 안 한다. 전화하고 양해를 구했을 것이다. 고이즈미도 이런 식으로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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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내부 토론없이 아베의 독단으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일본 의료관계자나 일본 시민들을 고려하기는커녕 무시하는 상황이다. 아베 스스로 우누보레를 증명하는 꼴이다.
.
셋째, 비자를 취소시켰다. 입국 제한이면 방역이라고 이해하겠으나, 비자 취소는 외교적 정치적 폭력이다. 비자 금지가 가벼운 문제인가. 유학생 멀티비자까지 중지된다. 일본에서 비자 받으려면, 거의 종일 걸린다. 나는 2년마다 비자 갱신을 했는데 은행잔고 등 서류 준비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비자 취소는 국가 이전에 질병과 관계없이 개인을 억압하는 방식이다. 한국과 일본에 거주하고, 양국을 오가는 사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우누보레 아베'의 폭력이다.
.
넷째, '격리'라는 표현은 한국인에게는 조심스럽게 써야 할 단어다. 마치 유대인에게 게토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지 말아야 금지어 같은 단어다. 관동대진재 때 일본 정부는 나라시노 등에 조선인들을 격리했다. 사실은 '게토' 방식이었다. 이현세 만화 『남벌』에서 나오듯, 보통 민감한 차별 방식이 아니다. 독도 사태 났을 때 고이즈미 슌타로도 쉽게 말하지 않았던 게토 방식이다. 불법체류자 일로 일본에 '격리'된 적이 있다. 추방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부터 격리될 한국인들이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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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부에서도 즉각 반발이 일어났다. 아베 정권에서 후생노동상을 지냈던 마스조에 요이치 전 도쿄도지사(舛添要一)가 일본 정부의 한국과 중국에서 오는 입국을 제한한 조치에 대해 “천하의 우책(어리석은 실책)으로 생각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
오래 전부터 이 사람이 쓴 글이나 텔레비전에 나와 말하는 것을 들으면, 다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꽤 객관성을 그나마 유지하는 인사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왜곡교과서나 독도 문제가 일어날 때도 우익이지만, 그래도 한국을 배려하고 상생의 길을 위해 의견을 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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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제 3월 6일, 아베가 발표하자마다 일본 방송 TBS의 ‘굿도락쿠(グッとラック)’에 출연해 가장 빠른 지적을 했다. “일본에서는 검사 수가 적은 상황에서 이미 수천 명의 감염자가 있을 수 있다”며 “외부로부터의 입국을 제한해도 전혀 의미가 없다”며, “천하의 어리석은 우책이다. 9일부터 시행할 거면 취소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몇 가지 경우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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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자정이 가까워서 한국 정부에서 맞대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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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맞대응 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관동대진재 때처럼 아무 저항도 못하고 그냥 우누보레 아베의 폭력을 이해해야 할까. 대화로 해결이 가능할까.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마스조에 요이치 씨 같은 내부 조정자의 의견도 묵살된다. 우리가 '우누보레 아베'에 반대하는 입장을 확실히 보여줘야, 일본 내부의 민주인사들 혹은 평화주의자들, 시민운동가들, 윤동주를 사랑하는 시민들 모임에게도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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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중국과는 결이 다르다. 한국은 오히려 중국을 지역별로 부분 단속해 왔다. 제주도 비자 면제도 중지했다. 중국발 입국을 제한하는 국가 리스트 133개국 중에 한국은 45번째로 써있다. 일본만은 단속하지는 않았다. 감정적인 대응이 아니라, 한국 정부이 일본과 같은 수준으로 해준 것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비자 정지'다. 일본이 한국인에게 '비자 정지'를 했다? 이거 당해 본 경험 없으면 얼마나 무서운지 상상도 못한다. 역설적으로 일본말로 하면 '온카에시'다. 해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아베가 만들었다.
.
셋째, 한국 정부의 일본관을 신뢰할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이나 정세균 국무총리가 일본에 대해 뭘 아느냐는 글을 보았다. 정 총리가 2003년이던가 와세다대학에 와서 강연한 적이 있다. 끝나고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냥 정치인이 아니구나, 아시아 공부를 오래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제 발표에 안 나타났지만 뒤에 이낙연이라는 인물이 있다. 도쿄특파원을 했던 일본통이다. 일본에 살 때 몇 번 대사관에 가서 식사 초청 받은 적 있다. 일본어도 못하고 일본을 어디까지 공부했는지 모를 대사 분들이 몇 분 있었다. 이낙연은 당장 일본 대사를 해도 모자람이 없는 인물이다. 일본에 대한 정부의 대처를 신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또한 반아베 운동을 하는 일본 시민운동과 연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
넷째, 이 문제는 아베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해결이 어렵다.
박근혜 때처럼 순순히 순종하는 정권이 아니라, 문 정권은 국민의 지지를 입어 강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에 아베가 히틀러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유사한지 쓴 글(https://tuney.kr/AI56Za)이 있다. 아베는 스스로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지 않을까. 아베가 빨리 이 우누보레의 우책을 거두는 길이 해결의 한 방식이다. 예수의 말대로, 아버지, 저들은 저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나이다.
.
더 끔찍한 상상이 떠오른다. 이건 어디까지 상상인데 제발 이렇게 가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일본은 전염병 예방을 국가가 국민에게 맡겨 놓은 상황이다. 코로나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올림픽이 실패할 수 있다. 국민들 중 한 '부분'(일본 국민 전체는 저항의지를 잊지 않았나)이 아베 정권에 저항한다. 그 저항을 국가위기로 간주하고 비상사태 법을 재정하고, 우리로 말하면 게엄령 같은 긴급사태를 선포하여, 더 급하게 우익으로 핸들을 돌리는 방법이다. 이 단락 내용은 그저 만화 같은 상상으로 끝나기를.
.
자뻑, 우누보레, 그리스말로는 오이디푸스의 휘브리스(Hubris)라고 한다.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오는 비극의 주인공은 반드시 자기오만(Hubris)에 빠져 있다. 오만한 자는 자신을 물론 그 공동체도 반드시 비극에 빠뜨린다.
.
다만 한국 국내에 계신 일본 분들에게는 최대한 친절하게 하면 좋겠다. 아베/일본인 분리해야 한다. 국내 체류 일본분들이 불편함 없도록 이 문제를 빨리 풀고, 배려하면 좋겠다. 동시에 일본에 계신 은사 오오무라 마스오 교수님, 가족 같은 친구들, 귀한 작가들, 국제결혼한 부부들 제자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오이디푸스의 오만으로 테베에 사는 시민들이 얼마나 많은 고역을 치루었는가. 아베의 오만으로 인해, 착한 일본인이 겪을 심려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다.

 

페이스북 고유라 강워대 의학전문대학원 조교수 (코로나 안심통신)
.2020.3.6.

 

언론의 질병포르노

연간 산재 사망자수 900명
연간 독감 사망자수 5000명
연간 자살 사망자수 13000명
신종플루감염자수 76만명

메르스 치사율 35%
사스 치사율 9%
코로나19 치사율 0.6%
(대략 독감의 2배)

현재유병률 대구경북 제외 인구 10만명당 1명미만

공포와 분노를 먹고 자라는 언론, 인포데믹infordemic 또는 질병포르노

두려움과 공포는 생명체의 본성이지만 우리에게는 이성이라는 선물도 주어졌죠. 경계하고 위생에 철저히 주의하되 부디 삶으로, 봄으로 돌아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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